"설악산 얘기" / 진교준
나는야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야 산이 좋더라.
푸른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산에는 물, 나무, 돌뿐 아무런 오해도 없어, 법률도 없어
내 발로 뛸 수 있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기 위하여 여기에 왔는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듯.
그 사이에 내가서면, 하늘처럼 무한대처럼 마구 부풀 수 있는 것을
아! 170 cm라는 것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을
설악산 오름길에 다리쉼 하노라면 내게 한 것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실컷 먹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 뿐
깨어진 기왓장처럼 흩어진 오세암 전설이 있는 곳에 어둠이 내리고
종이뭉치로 문구멍을 틀어막은 움막에는
뜬 숯이 벌건 탄환케이스를 둘러앉아
갈지자로 멧돼지를 쫓아간다는 어느 포수의 옛 얘기가 익어 가는 것을
아! 정말 이런 밤엔 칡 감자라고 구워 먹으면 더욱 좋을 것을
백담사 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 했다.
그 해골을 주어다 술을 부어 마시자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런이 죽어 하나의 해골이 된 것처럼
철학을 부어 마시자 했다.
나는야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야 산이 좋더라.
푸른 바다가 내려 다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나는 좋더라...
<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 >
< 시산회 95회(2008. 10.18~19) "설악산" 산행(신흥사~양폭산장~신성봉~공룡능선~나한봉~마등령밑~오세암~영시암~백담사)~용대리(버스) > ※ 당시의 기세환 회장님은 하산시에 넘어져 백담사까지 큰 고생을 하였다.
< 설악산 12선녀탕계곡 산행 >
< 시산회195회(2012. 10.07) 설악산 산행(남교리~"12선녀탕 계곡~대승봉"~대승폭포옆~장수대) >
※ 설악산(雪嶽山) 얘기!
학교 산악회에 입회를 하고 활동을 하게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엉성하게 프린트된 종이 몇 장을 받아서 외우는 일로 부터 산악회 모임은 시작된다.
산악인 선서, 등산史, 알피니즘, 등산용어, 매듭법, 산노래와 팝송,
그리고 詩 하나 "설악산 얘기" 였다.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 는 오늘날까지 4~50대 산꾼들이 많이 알고 있으며,
술 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띠엄 띠엄 몇 구절 생각나는대로 낭송하는 詩이기도 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山 관련 월간지를 통해서 였다.
설악산으로 하계, 동계 등산훈련을 들어가면(짧게는 4박5일에서 보름정도) 설악가를
부르고 '설악산 얘기'를 중얼거렸다.
그 당시 이 詩의 작자를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詩는 산꾼 또는 산사나이라고하는 자처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차 일반 산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이것이 시인지 노래 가사인지
이시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니 작자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알고있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 마치 옛 설화처럼, 부초처럼 떠 다녔다.
그렇다 시집을 간행하여 거기에 수록된 것도 아니다.
그후 산 관련 월간지(월간 산)에서 그를 찾아 취재를 했다.
서울고, 외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하던 사업을 접고,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우이동이 종점인 6번 시내버스의 운전기사. 진교준 자신이 원치 않는 취재였는지도 모른다.
그 월간 山誌에서 내가 본 그의 모습. 담배를 손에 들고 있는 버스 기사의 모습은 힘들었던
그의 삶과 새로운 삶이 교차하는... 그리고 한동안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언젠가 문득 "설악산 얘기" 詩를 찾아 다니다가 그가 2003년 11월 새벽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교준님은 가셨지만 님의 명시 "설악산 얘기"는 모든 산악인의 가슴에 한귀절 한귀절 애송될
것이다. 진교준님의 "설악산 얘기"를 읽으며 '설악가' 들으니 가슴속이 뜨거워지며 짠해 진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국의 산천에서... -
※ 설악산 얘기 [ 정리 : 한국의산천 http://blog.daum.net/koreasan ]
설악산 얘기. 이것이 詩인지 노래 가사인지. 이것이 詩라면 시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니 작자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알고있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채, 마치 옛 설화처럼, 부초처럼 떠 다녔다.
그렇다 그저 이 글은 산꾼 또는 산사나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차 일반 산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설악은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솜다리꽃, 박새품, 둥굴레, 함박꽃, 전나무, 아! 자작나무, 설악골, 용소골, 토막골, 잦은바위골, 곰골, 그리고 대청의 바람과 구름 그리고 동해까지… 거기에다 설악시를 가지고 있고 또 설악가라는 노래까지 가지고 있다.
설악의 노래는 슬픈노래다. 아니,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래다.
"너와 나 다정하게 걷던 계곡길, 저 높은 봉우리에 폭풍우칠 적에…"
그 설악의 가을에 산친구는 죽었다. 죽은 친구를 설악에 묻고 돌아보며 또 다시 뒤돌아보며 부르는 노래가 설악가이다.
"잘 있거라 설악아, 내 어이 잊으리요 꿈 같던 산행을,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지금부터 '설악산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진교준('41년생 서울고 12회. 외국어대 불문과 졸업. 서울고 2학년 재학시 지음)의 1958년作.
조병화 선생님이 뽑은 교내 제1회 경희문학상 수상작.
1.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 설악 . 설악산이 좋더라
2.
산에는 물, 나무, 돌 . . .
아무런 誤解도
法律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自由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3.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障碍도 없고
멀리 東海가 바라 뵈는 곳
산과 하늘이 融合하는 틈에 끼어 서면
無限大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 수도 있는 것을 . . .
정말 160cm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을 . . .
4.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素朴한 慾望일 수도 있는 것을 . . .
自由를 꼭 깨물고
차라리 잠 들어 버리고 싶은가
5.
깨어진 기왓장처럼
五世庵 傳說이 흩어진 곳에
금방 어둠이 내리면
종이 뭉치로 문구멍을 틀어 막은
조그만 움막에는
뜬 숯이 뻐얼건 탄환통을 둘러 앉아
갈가지가 멧돼지를 쫓아 간다는 (註· 갈가지: 강원도 방언으로 범 새끼)
포수의 이야기가 익어간다
이런 밤엔
칡 감자라도 구어 먹었으면 더욱 좋을 것을
6.
百潭寺 내려가는 길에 骸骨이 있다고 했다
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
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빠이론이
한 개의 해골이 되어버린 것 처럼
哲學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다
해· 골· 에· 다· 가 . . .
7.
나는 산이 좋더라
永遠한 休息처럼 말이 없는
나는 산이 좋더라
꿈을 꾸는 듯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 "
- 진교준(秦敎俊, 1941년~2003년 11월17일 오전 5시30분 교통사고로 운명) -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던 설악산에는 한때 해골이 즐비했는데, 전후 이곳을 대담하게도 고교생의 신분으로 무단결석을 하며 찾은 이가 있었다. 바로 서울고교 2년생이었던 진교준 시인이다. 그리고 그 체험을 ‘경희백일장’에서 ‘설악산 얘기’라는 시로 써냈고, 당시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조병화 시인의 눈에 들어 ‘장원’으로 뽑혔다. “나는야 설, 설악, 설악산이 좋더라”로 시작되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 얘기’는 오늘날까지 40-50대 산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술자리에서 노래 대신으로 ‘낭송’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백담사 내려가는 길에 해골이 있다고 했다/해골을 줏어다가 술잔을 만들자고 했다/해골에 술을 부어 마시던 바이론처럼’… 이라는 대담한 시구도 보인다. 이 시를 썼던 진교준은 문단 진입에는 등한 하기만 했는데, ‘재건운동 시대’의 척박 속에서는 ‘슈르 레알’의 문학 공간을 마련할 방도가 없었던 것 이었을까. 방정환, 윤석중 등과 함께 ‘색동회’를 이끌었던 진장섭이 부친 이었고,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언론인 진철수가 그의 형이었다.
2003년 11월17일(월) 오전 5시30분 교통사고로 운명.
그는 떠나갔을지라도 그의 설악산 이야기는 전설로 여전히 이 시대 사람들 속에 머무르고 있다.
설악산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는 동안 평생을 잊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전, 중, 고, 대학 후배인 김종구(동중 17회, 광주고 24회, 부산수대 75학번)는 너무나 설악산을 사랑 하였기에 폭설이 내린 설악에서 눈사태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