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봉헌된 어머니의 성당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1박2일의 일정으로 충북여행을 계획했을때 여정중에 가장 기대 되었던 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이었다. 지롱의 종교가 카톨릭이기도 하고, 많은 사연을 갖은 본당이기에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전날 충북종단열차의 첫 기착지인 제천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컴컴한 밤같은 아침을 맞이한 이유는 아침 기차를 타고 음성역으로 가기 위함인데 이유는 그 곳에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여행에서 지롱이 탔던 충북종단열차는 동대구역을 출발해서 영동-옥천-대전-조치원-오송-청주-청주공항-증평-음성-충주-제천-단양-영주를 하루 2차례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왕복 운행하는데 충북 최남단인 영동과 최북단인 제천·단양에서 충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오송까지 운행하는데 운행시간은 90분정도 소요되니 여행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출,퇴근 교통수단으로도 좋을 듯 하다.
▲ 음성역으로 향하는 충북종단열차의 무궁화호 열차 차창 밖 풍경
50분 남짓 덜컹거리는 기차레일의 소리가 멎으니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의 느낌이 드는 음성역에 도착했다.
묵주의 의미가 담겨있는 감곡매괴성당 감곡성당을 감곡매괴성당이라고도 하는데 ‘매괴’는 ‘묵주’를 의미한다. 캐톨릭에서 말하는 ‘묵주 기도’의 원어는 ‘로사리오 기도’인데, 로사리오는 장미꽃다발이라는 의미이고, 로사리오를 번역한 중국식 한자가 ‘매괴’라고 한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지만 묵주를 매괴, 묵주기도를 매괴경이라고 불렀다.
▲ 전날에 내린 비에 짙은 가을색의 단풍과 어우러진 감곡매괴본당의 모습
"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 감곡성당이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되고 매괴성모순례성당이 된 사연... 51년 동안 매괴성당에서 사목생활을 했던 임 가밀로 신부는 1947년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감곡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시잘레(chizalle)신부가 설계, 1928년 공사에 들어가 3년 만에 완공한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은 110년간 충북은 물론 경기 남동부 일원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온 믿음의 고향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36.5m의 중앙종탑에 8각 첨탑이 있다.
초대 본당 신부였던 임가밀로는 1894년 사제품을 받고 우리나라로 와서 여주 부엉골에 부임했다. 이후 새로운 사목지를 찾던 중 장호원에서 멋지고 큰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는 이후 “이 집을 성당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그러면 성모님을 마리아의 주보(수호성인)로 모실 것”이라고 매일 성모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마침내 그 기도는 이뤄져 1896년 10월 그 자리에 본당을 세울 수 있었고, 임 가밀로 신부는 1914년 최초로 성체거동행사를 개최함으로 문맹퇴치를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 식민지하에서 억압받는 청년과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한글을 가르쳐 민족의 뿌리가 마르지 않게 하였다.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은 후 바로 입국하여 그 다음해인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 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 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 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민응식이 서울로 압송되면서 의병들이 사용하게 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 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 성모순례지 성당이 된 것이다.
▲ 성당의 대문 사진
설계는 프랑스 신부 시잘레가 하였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는데 서울 명동성당과 전주 전동성당과 같은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명동성당과 전동성당은 북쪽으로 출입문이 있지만 감곡 매괴성당은 남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안쪽 천장은 돔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 감곡성당은 전국에서 18번째, 충북 도내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성당으로 1930년 10월 7일에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다.
수난 받은 매괴 성모님
성당 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다행이 지롱이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없는 시간이었기에 성당 관계자분께 촬영 승낙을 받아 본당 내부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매괴 성모님은 프랑스 루르드에서 제작하여 1930년 대성전 건립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 되었다. 그 후로 한국전쟁 당시 성당은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되었는데 인민군이 성당 안에서 여러가지 이상한 일을 겪자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나 7발을 맞고도 성모상이 부서지지 않자 기관단총으로 사격을 했으나 총알은 피해갔고 그래서 성모님을 끌어내리려고 올라갔을 때 성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들은 성모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때부터 성당에서 철수 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부터 성모상은 " 칠고의 어머니 " 또는 " 매괴의 어머니 "로 불렀다 한다.
▲ 본당 제대에 모셔져 있는 매괘성모님
충북 최초의 석조건축물 " 매괴박물관 " 성당 옆으로는 매괴박물관이 있는데 매괴박물관은 1930년대 지어진 충북 최초의 석조건축물로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박물관 내부에는 감곡성당의 옛 흔적을 담은 여러 사진들과 임 가밀로 신부가 입으셨던 금제의와 영대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기적의 종이었는데, 이 종은 일제시대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본당의 종을 쇳물을 만들기 위해 제철소에서 갖은 노력을 해도 결국 녹이지 못해 오늘날 까지 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 매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적의 종
▲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 모습 ( 초창기 매괴 성모광장 전경 )
▲ 매괴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옛 사진들
▲ 가밀로 영성의 집 (사제관)
사제관에는 얼마 전 내한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사진전이 열리고 있으며 감곡매괴성당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십자가의 길은 성모광장, 산상 십자가, 임가밀로 신부님 가묘로 이어지는데 길 옆으로는 묵주 기도 20현의 상이 세워져 있고,
성모광장 오른편 끝에서 산길은 계속되며 이곳에서 부터 산상 십자가의 길, 14처가의 석상이 길 굽이굽이 마다 설치되어 있다.
매산 정상에 오르면 높이 15m의 대형 나무 십자가가 있는데 대형십자가를 보면 천주교 신자가 아닌 여행자들도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성모광장
▲ 산상 십자가
감곡매괴성모순례성당
감곡성당 충북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043-881-2808
|
출처: 같이 걸을까...? 원문보기 글쓴이: 지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