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일) 절기로 춘분(음2.6) 03:30 기상과 함께 기상청사이트에 들어가 미세먼지농도추이를 살피다. 황사경보가 내려진 어제저녁 갑자기 오르던 먼지농도가 466㎍/㎡까지 치솟더니 밤사이 뚝 떨어지는 분포를 보였다. 가방을 다시한번 점검하고 강풍주의보가 있어 속옷들도 겹으로 챙겨 입었다. 바셀린과 테이핑, 선로션 등을 바르고 집에서의 출전채비를 마치다. 05:20출발 광역버스 첫차를 놓쳐 다음 차를 타고 종각 앞에 내리니 06:30. 24시간영업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회복장으로 바꿔 입다. 출발대기시간까지 황사에 대비 마스크도 착용하고 보온을 위해 비닐우의로 몸을 감싸고 조그만sack 두 개를 허리에 둘러찼다. 겉옷가지 등을 행랑에 담아 넣고 교보앞 집합장소에 도착하니 휘마동대원들이 모여있다. 오늘 출전하는 동호회러너는 모두 33명. 정일남님의 휴대폰디카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물품보관소로 이동. 국제육상경기연명(IAAF)이 인증하는 국내최초의 골드라벨대회의 명성에 걸맞게 물품보관소도 그룹별로 나누어 번호순으로 배치해 둔 것이 참가자들의 편의를 많이 배려했다. 07:20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내가 속한 D조그룹에서 출발선을 밟은 시각 8:27:02. 대회장에 늦게 도착하다보면 마음과 몸이 조급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여유롭다. 기록순으로 출발순서를 맞추다 보니 1시간쯤 기다려야 하지만 시간이 금새 지난다. 광화문광장에 모여든 인파와 울려퍼지는 음악소리가 기분을 북돋으며 철부지아이처럼 부풀어 오른다. 나이 들어 마라톤에 빠지는 또 하나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600년 고도의 한복판. 광화문에서 숭례문을 돌아 남대문로를 지나 을지로구간과 청계천구간 종로구간을 지나는 코스는 서울국제마라톤의 백미구간이라 여겨진다. 뛰는 동안 참가자들이 몸에 걸쳤던 비닐옷들이 바람에 날려 주로에 마구 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발에 휘감겨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페이스를 유지하다. 주로 곳곳에 수거함을 비치하고 더욱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진 물과 빈컵으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급수대 주변도 마찬가지다. 사대문안에서 가장 춥게 느껴지는 을지로네거리. 휘마동 강민석회장을 만나 보조를 맞추어 청계천구간까지 동반주. 세종문화회관에 대형 현수막을 내건 중동고동문들이 청계천초입에서 길거리 응원에 열을 올린다. 최근들어 고교마라톤동호회의 약진이 눈에 띈다. 흥인지문이 보이는 지점에서는 풍물패의 신명난 북소리 대신 적막만이 흐른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마라톤축제를 연출한 동경시민들과 대조되는 분위기다. 종로거리를 지나는데 동년배 회사동료가 뒤에서 나타났다. 제주200km울트라출전을 앞두고 부인과 천천히 동반주하는데 뛰다가 소변을 보고 오는 사이에 마나님을 놓쳐버렸다고 했다. 이제 20km를 지나며 4대문안을 벗어났다. 하프통과시간이 2시간23분. 기록 단축의 기대를 접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신설동부터 뚝섬서울숲까지의 10km구간은 거리 응원도 뜸하고 그저 밋밋하다. 그래도 힘차게 뛰고 싶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중국의 고사에 주마가편(走馬加鞭)과 시벌노마(施罰勞馬)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주마가편’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이 잘하는 사람에게 더 잘하라는 격려의 뜻인데 반해, ‘시벌노마’는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주인이 괜스레 채찍을 치며 벌을 준다는 뜻을 담았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으나 글쓴이는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라고 전한다. 어느 더운 여름날 한 농부가 밭일을 하는 말의 뒤에 서서 쉴 새 없이 채찍으로 말을 때리고 있기에 보다 못한 나그네가 다그쳐 물으니 농부는 말했다 “자고로 말이란 쉼 없이 부려야 다른 생각 않고 일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 없어 자리를 피해 긴 탄식과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한마디 말이 후세에 전해졌다고 한다. “아! 시벌노마(施罰勞馬)” 달리다 보면 기진한 몸이 마음에 제동을 건다. ‘시벌노마’ 잊었느냐 그만 좀 뛰어라! 채찍을 든 마음과 방패로 맞선 몸이 밀고 밀리는 갈등이 심화되는 구간이다. 30km지점의 서울숲을 지나 잠실대교로 향하는 길목부터는 다시 활기가 넘친다. 휘마동과 언제나 형제처럼 지내는 가톨릭마라톤동호회 회원들이 따뜻한 꿀물을 주며 격려해준다. 광진구초입에는 고구려의 문화유적지를 알리는 동호회회원들의 동호회간 응원열기도 뜨겁다. 주로에 나온 여러 동호회들을 보며 내가 마라톤을 그만두더라도 휘마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35km지점에서 다시 강민석회장을 만나 동반주. 오늘 뛰는 속도가 나와 비슷한 것이 겨울훈련이 부족했나보다. 잠실대교가 가까워지면서 혹시 강풍이 불지않나 잔뜩 긴장을 했지만 세찬 등바람이 분다. 바람에 실려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잠실대교를 두발로 건넨뒤 석촌호수부터 올림픽주경기장가까지 4km는 어주구리(漁走九里) 구간이다. 메기의 기습을 받은 잉어가 연못을 뛰쳐나와 냅다 달렸는데 뒤 쫒아간 농부가 거리를 헤아려 보니 구리나 되었다고 해서 어주구리(漁走九里)라 전해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능력도 안되는 이가 능력 밖의 일을 해내려고 할 때 ‘어쭈구리’라며 비아냥댄다. 마라톤의 어주구리 구간에서는 모든 러너들이 필사의 격주를 위해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채찍을 든다. 결승지점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여분의 힘이 다시 샘솟는다. 2만2천여명의 참가자들이 그래서 마라톤을 뛰는 가보다. 먼저 들어온 3시간대 선두주자들이 스탠드에서 휘마동현수막을 내걸고 후미주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물병을 받아 들고 보조경기장쪽으로 들어서니 트랙에 대열을 짖고 앉아 있는 자원봉사학생들이 칩을 풀어준다. 지난해 보다 서비스가 좋아졌다. 타월로 몸을 감쌌으면 좋을 듯한 기온이다.
기습적인 황사와 강풍의 우려 속에 오늘 아무 탈 없이 백여리를 완주한 것에 만족하고 싶다. 물품보관소에서 옷가지를 찾아 스탠드로 오니 휘마동의 맏형수가 준비해온 따뜻한 꿀차가 기다린다. 가족과 휘마동 대원들에 그저 고맙다는 생각뿐이다.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 아직도 주자들이 결승선을 향해 들어온다. 마지막 주자들을 보며 앞으로도 힘이 닿은 데까지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는 달리기에 정진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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