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죽음과 한일관계
제98대 일본 총리요 일본 극우파 대부(代父)인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2022년 7월 8일 나라시(奈良市)에서 이틀 뒤에 있을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도중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가 쏜 총에 맞아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아베의 저격 사건은 통일교와 관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범인은 통일교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었다고 믿고 처음엔 통일교의 고위 관계자를 암살하기로 계획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던 중 통일교가 주최한 국제행사인 ‘Think Tank 2022’에 아베가 축하 영상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때 범행을 결심하여 결국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베는 1954년 9월 21일 도쿄도(東京道) 신주쿠구(新宿區)에서 당시 마이니치 신문(每日新聞)의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와 그 아내 아베 요코(安倍洋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 아베 간(安倍寬)은 외무대신을 역임했고 그의 외조부는 제56·57대 내각총리대신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이며 작은 외조부는 제61·62·63대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이다. 아베는 어려서부터 늘 정치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의 정치 입문은 1982년부터 당시 외무대신에 취임한 아버지의 비서관을 맡았을 때부터다. 아베는 1991년 5월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의 지역구 야마구치현(山口懸) 제1구를 이어받고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 이후 현재 야마구치현 제4구에서 내리 8선에 당선되어 9선의 중의원 의원이 되었다. 정치적 입지가 탄탄대로(坦坦大路)였던 아베는 2006년 일본 자유민주당의 제21대 총재로 선출되었고, 9월 26일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에서 제90대 총리대신으로 지명되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뒤를 이어 첫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그러나 아베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며 권위가 실추된 데다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져 1년 만인 2007년 9월에 사퇴하고 단명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2012년 12월 제46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교체하고 총리에 복귀하였다. 2014년 제47회, 2019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여 제3차, 제4차 아베 내각을 구성했다. 그는 일본 정치사에 총리 통산·연속 재임 기간 기록을 경신했다. 2019년 11월 20일에 내각총리대신 통산 재임 일수가 2,887일이 되어 이전까지 최장이었던 가쓰라 다로(桂太郞)의 2,886일을 갈아치웠다. 2020년 8월 24일에는 연속 재임 일수가 2,799일을 돌파하여 사토 에이사쿠의 2,798일의 기록을 제쳤다.
아베의 화려한 정치 이력은 그의 가문의 정치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베의 조상 가운데 한국 국민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아베 노부유기(阿部信行, 1875~1953)다. 이 사람은 이시카와현(石川懸) 출신이며 1929년에 육군차관, 1939년에 제36대 일본 수상을 지냈다. 능력도 개성도 변변치 않았던 그는 5개월 만에 사임하고 전전하다가 1944년 7월 24일에 조선의 마지막 제9대 총독으로 부임하여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패망한 후 9월 9일 일본을 대표하여 연합국 대표인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한 인물이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전쟁 수행을 위해서 조선의 물적·인적 자원 수탈에 총력을 기울였다. 징병·징용 및 근로보국대의 기피자를 마구잡이로 색출했으며 심지어는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근무령서를 발부했고 이에 불응 시는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내리기도 했다. 현재까지 한일갈등의 원인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의 원흉이다. 바로 이 사람 아베 노부유기가 아베 신조의 증조부다.
아베는 총리로 있으면서 극단적 우경화 정책에 힘을 썼다. 항상 한일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였다. 2019년에 한일무역 갈등을 일으켜 한일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갔었다. 반일 감정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한국의 좌파 정부가 박근혜(朴槿惠) 정부에서 합의된 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전면 부정하고 한국 내 일본자산을 동결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에 반도체 핵심 부품을 비롯한 전략물자 수출에 제동이 걸려 한국경제에 지대한 타격을 주었다. 한국의 좌파 정부는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인 ‘지소미아(GSOMIA)’ 파괴를 거론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때 아베는 마치 과거 제 증조부처럼 식민치하의 조선을 통치했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처럼 행동했다. 그런 그가 중국 우한(武漢)발 역병에 된서리를 맞고 경제 침체, 올림픽 연기,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악재들이 터지면서 지지율이 바닥 쳤다. 아베는 자신과 자민당의 안전을 도모하며 표면상으로는 중학교 3학년 때 앓았던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하여 건강을 핑계로 2020년 8월 28일에 사임을 발표했다. 이 일은 2007년에 이어 두 번째요, 총리가 된 지 7년 6개월 만의 일이다. 그 후 아베는 제99대 총리 스가 요시히데(管義偉)와 제100대 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의 막후에서 상왕처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본 극우파의 대부로 활동했다. 그가 사망하던 날도 참의원 선거에 지지 연설하다가 변을 당했다.
일본의 우경화나 한국의 좌경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이념의 굴레에 국민을 가두고 천년만년의 권력을 행사할 망상에 빠진 정치꾼들이다. 비틀거리며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던 아베, 제집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도 어쩔 수 없이 역사에 또 하나의 아쉬움을 남긴 인물임을 확인해 주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10일 동안 피는 꽃이 없으며, 10년 가는 권세도 없다는 뜻이다. 아침 안개처럼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 권력만 믿고 그렇게 교만한 어리석음을 범하는 정치판 폭꾼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움이 크다. 아베의 죽음이 이런 극단으로 치 닿는 이념의 대립이 끝나고 지구라는 한배를 타고 가는 운명의 공동체로서 한일(韓日) 양국의 상생과 공존의 시대를 활짝 열 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 40:8).
첫댓글 제98대 일본총리대신 아베신조
아베신조의 2살 때(왼쪽) 아버지 아베신타로와 어머니 아베 요코
아베신조의 증조부 아베 노부유기는 조선의 마지막 총독으로 강제징용, 정신대 착출 등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아베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아베신조의 작은 외조부 사토 에이사쿠
2022년 7월 8일 나라시에서 유세연설 도중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있다.
저격 현장에서 잡힌 야마가미 데쓰야
사망한 아베신조의 추모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