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바자르
아치형 돔 지붕이 있는 대형 시장으로 터키의 전통 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터키어로 ’덮혀 있는 시장‘Kapar Carsid ) 란 뜻으로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세 때 대대적인 확장과 여러 번의 중+개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60개의 미로, 5천여 개의 상점, 2개의 주요통로 끝에 20여개의 입구가 있다. 성 소피아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위치하며 500년 역사에 오랜 시간 동.서 교류의 요충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시장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한 달을 둘러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매력에 사진을 찍기도 부족한 시간을 준 가이드를 원망하며 걸었다. 향료, 양탄자, 금세공, 전문매장, 특산품인 가죽., 여자들을 미치게 하는 터키석까지, 화려한 이슬람 문양의 접시를 사고, 자수가 고운 소품 한 점을 샀다. 비행기 하나를 전세내서 가득 싣고 가고픈 이 이뿐 것들을 두고 어찌 발길을 뗀단 말인가? 고풍스런 건물과 늙은 프라타너스 가지가 운치를 더해주는 그랜드 바자르는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셰계의 언어가 섞이고, 이국적 정취가 넘쳐, 터키인들 보다 여행객들이 더 사랑하는 곳이리라 여겨진다.
매력적인 숲속의 궁전-톱카프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거주하던 궁으로 19세기 중반에 돌마마르체 궁전이 건설되기 약 400년 동안 많은 술탄들이 이곳에 살았다. 영화로웠던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보여주듯이 이곳의 내부 장식물과 유물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지금은 궁 전체가 박물관이다. 400개의 방이 있고, 궁의 내부에는 ‘하렘’이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술탄의 여인들이 거주했던 별채로서 내부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TOP(대포)KAP(문) saravi(궁전)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대 25명의 술탄들이 거처했던 궁전이자 행정 중심지, 최고의 군사적 요새이다. 15세기-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오스만 역사와 함께했던 톱카프 궁전은 1475년 처음 건설되어 4세기동안 역대 술탄들에 의해 확장되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높고 평평한 곳에 위치하며 1400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궁전은 전체면적이 바티칸 2배, 모나코의 절반에 달한다. 전성기엔 술탄의 가족 외에 시종들. 군사들. 각료들의 수가 5천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와 번영을 누렸다. 이곳은 그 크기와 규모가 중국의 자금성과 견줄만하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매표소와 함께 제1정원이 나온다. 짙은 수목으로 무성한 이 정원의 오른쪽에는 부대막사와 주차장 궁전 병원 등이 있고, 왼쪽에는 성 이레인 교회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2번째 정원인 ‘예절의 문’이 나온다. 오스만 시대 땐 술탄과 술탄의 모후를 제외한 나머지 재상들은 모두 내려 경의를 표한 후 지나가야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곳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궁전 나들이가 시작된다. 궁전 양옆 문엔 2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는데 사람들을 압도하듯 하늘높이 뻗어있다. 예전엔 첨탑 끝에 죄인의 목을 메달기도 했단다. 왼쪽 탑은 범죄를 저지른 고위 관리들의 감옥 이기도 했다. 제2정원은 푸른 잔디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멋스럽게 어울린다. 공원 같기도 한 이곳은 예전엔 많은 동물들을 사육한 곳이란다. 16세기엔 최강대국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더욱 강성해졌고, .에게 해와 흑해를 차지, 에디오피아, 중앙아프리카, 에멘, 크리미아를 점령했으며, 유럽의 비엔나까지 그 영토가 확장되었다. 정원의 오른편에는 부엌이 있는데, 매일같이 궁전에 거주했던 5천여 명의 하루 세끼 식사를 책임졌던 그들의 노고가 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유리문 안쪽엔 그 시절 사용했던 부엌 살림살이가 가지런히 벽에 걸려있다. 우리네 아궁이와 비슷해서 더 눈여겨봐졌다. 옆 건물은 세계적인 도자기 전시실,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이 자기들이 보물 수집품이 아닌 일상생활에 사용 됬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처럼 동양의 도자기들이 식기로 사용된 이유는 음식에 독을 타면 자기의 색깔이 변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란다. 궁중이라는 공간의 특정상 당시 술틴들은 항상 암살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톰카프의 하이라이트는 술탄의 많은 부인들과 자식들이 거주했던 ‘하렘’이다. 하렘은 종교적으로 ‘금지된’이란 뜻으로 아랍어 ‘하람’에서 기원되었다. 또한 이슬람교도들에겐 ‘약속된 미인들로 가득 찬 천국’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렘은 259개의 방, 46개의 화장실, 12개의 창고, 8개의 욕실, 5개의 음식물 저장소, 수영장, 그리고 지하 감옥으로 이루워져 있다. 하렘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고립된 곳으로 평생토록 술탄의 총애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만 했던 화려함과 애환이 공존하는 황금새장이다. 하렘을 빠져 나오면 제3정원으로 들어가는 ‘행복의 문’이 나온다,. 술탄이 중요한 업무를 보거나, 외국 대사들을 접견했던 ‘알현의 공간’이다. 이곳 내부의 아름다움은 거의 환상적이다. 바닥에 깔린 화려한 양탄자 못지않게 벽을 장식하는 타일들은 하렘을 뛰어넘는다. 이곳에는 신성한 유물을 보관하는 ‘성의의 공간’이 있다. 바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흐메드의 유물, 망토, 칼, 깃발, 활, 발자국, 이빨, 수염, 편지가 보관되어 있고, 그 외 요셉의 터번, 모세의 지팡이도 보관되어 있다. 그 무엇보다도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중시했던 마흐메드 2세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것일까? 이외에도 중국의 비단옷과 술탄들이 입었던 예복들,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는 다이아를 비롯, 보석으로 장식된 술탄들의 칼 등이 있었고, 그 다음은 제4정원‘ 골든 홀 테라스가 나온다. 이곳에 서면 금방이라도 하얀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오른쪽으로 몇 발작 걷다보면 술탄의 화려한 정자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경치는 일품이다. 짙푸른 바다와 멀리 아시아 대륙, 신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에 동서양 문명이 조형물로 남아 서로 조화를 이루고,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상생하여 왔던 터키의 문화’ 히타이트,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거쳐 간 곳을 체험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격동의 세상에서 어느 한 쪽에서는 상생하고, 흡수되고, 갖은 박해 속에서도 뿌리를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 깊은 곳 감사함이 넘쳤다.
카파도키아-괴레메 마을
스머프 들이 튀어 나올 것 같은 동화 같은 괴레메 마을, 100% 내 취향의 도시, 나를 두 번이나 오게 만든 곳이다. 아! 탄성이 나온다. 신비롭고 독특하고 환상적인 거의 울고 싶게 하는 곳, 하지만 날씨가 받쳐 주지 않는다. 바람에 떨며 그리도 열망했던 열기구 타기가 무산되었다. 그 대신 미니버스로 마을 곳곳을 누비기로, 오히려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워서 재미가 쏠쏠했다. 고깔 쓴 바위들의 행렬이 무수한 ’파사바 계곡‘ 은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도 했다. 영화 ’스타워즈‘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사암으로 이루어져 구멍을 파기 쉬웠고, 5층 구조에 가축의 우리까지, 지금도 간혹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곳곳의 유적들은 파노라마 필름을 펼쳐 보는 듯 했다. 너무나 황홀했던 밤 풍경, 태양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구름이 희미한 빛을 안고 기지개를 펼 무렵,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두들 기다리는 괴레메 마을의 아침이다. 아침의 수줍던 태양이 이글거리기 전에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버스에 통째로 싣고 가면 안 될까? 중간 터키 중부 ’네부세히르주‘ 에 있는 ’데린쿠유‘지하도시 입구에 도착했다. 지상에서 보니 농산물 저장고 같이 지하계단이 나왔다. 안은 광장이다. 깊이 85m, 지하 8층 구조, 종교적인 이유로 은신하려는 사람들이 살았다. 모두 AD5-10세기의 중기 비잔틴 시대에 속하는 것들이란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파묵칼레
자연이 만든 최고의 선물 파묵칼레는 우리나라 시골 느낌이다, 294km 터키어로 ‘목화성’멀리서 보면 하얗게 목화밭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신혼 여행지로 유명하다. 지하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흐르며 식어서 지표면에 물웅덩이, 종류석, 석회석 동굴을 만들었다. 물에 포함된 미네랄 성분이 부드러운 백색 석회질로 덮히며 아름다운 지형을 이룬 것이다. 보호 차원에서 맨발 입장, 겨울이라 발을 담그자 몹시 차가웠고, 미끄러웠다. 안쪽으로 향하자 따뜻한 온천수,기관지염, 심장병에 효험이 있다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온 천지가 하얗고 에머랄드빛 온천수가 다랑이 논을 연상시키다. 언덕 위에는 고대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이 있다. 기원전 4세기 알랙산더 대왕이 소아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 터키 내에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형태인 폴리스가 여러 곳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의 코린트 양식에 터키 서부 이오니아 지방 양식이 혼합된 대리석 기둥이 화랑을 장식하게 되었고, 풍요와 사냥을 관장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조각이 신전에 모셔지게 되었으며 상업을 위한 시장과 정치활동을 위한 공화당이 건설되었다. 체육단련과 교육을 위한 ‘짐네지움’이 추가되었다. 대부분의 폴리스들은 그리스의 문화위에 로마문화가 덮씌워진 형태로 발전을 거듭, 이 시기의 도시국가들은 모두 펀리한 교통과 무역을 위해 해안가나 강 하구에 건설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히에라폴리스
‘히에라 폴리스’는 14세기 대지진으로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고, 잔해들만이 영화로웠던 과거를 보여 주었다. ‘히에라 폴리스’는 ‘죽은자의 도시’란 뜻으로 로마 시대에는 휴양도시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들었다. 이곳에서 죽으면 호화로운 무덤을 남겼는데, 대개 부유층들 이어서이다.
현재 발굴된 석관만 1700여개에 나라가 다르다 보니 형태도 다양하다. 온천물에 석회암이 녹아 흘러내리며 만든 특이한 지형이다. 이곳이 원래 고원지대인데도 언덕위에 건설된 것은 언덕 아래로는 매우 특별한 온천수가 위로부터 흘러내리고 유황과 석회성분이 듬뿍 들어있는 파묵칼레 때문에 폴리스가 세워졌단다. 특이한 볼거리는 거대한 공중목욕탕과 넓은 공동묘지이다. 서로 딱 붙어있다. 공중목욕탕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커다란 욕조에 스팀 사우나방, 때밀이 방,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방, 심지어 여자들과 즐기기 위한 유곽도 있었다. 스팀과 열기로 가득한 대중탕, 사람들이 물을 끼얹으며 목욕을 하고, 수세식 화장실에는 모시는 주인을 위해 커다란 엉덩이로 변기를 데우고 있는 노예들의 분주했던 모습, 이제는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그 옛날의 영화를 그저 추억할 수 있을 뿐,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는 물론, 온천물과 찬물을 적절히 이용한 냉난방의 공존 씨스템, 휴식과 치료를 위한 나무랄 데 없는 병실의 구조와 호텔과 같은 귀빈실 등, 요즘 말하면 다목적 복합 스포츠 센터가 아닐까, 이미 2천 년 전에 요즈음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완벽한 시설의 온천장이 있었다. 어쩜 건축물이 이리도 정교한지, 마치 돌을 비누 다루듯이 깍고, 끼우고, 맞추고, 자유자재로 조각하였다.
히에라 안쪽은 약 1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극장이 있었다. 수백 개의 항아리들로 공기를 채워 객석의 꼭데기 부분을 장식함으로써 무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리가 생생하게 반향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어 그 옛날 이 곳이 온천과 휴양지로서 얼마나 대단한 수준과 인기를 누렸는가를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진으로 인해 지나간 세월에 무너지고, 파괴되고 너부러진 채 잡초만 무성히, 할 일 없는 양떼들만 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는 태고로부터 역사를 같이했던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서있는 ‘타우르스봉 만이 인간의 헛된 영화와 욕망을 말없이 비웃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