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시작 - 수태에서부터 성장기까지
26. “비구들이여, 세 가지가 만나서 수태가 이루어진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더라도 어머니가 월경이 없고,
간답바(*16)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더라도
간답바가 있지 않으면 수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합하고 어머니가 월경이 있고 간답바가 있어서,
이와 같이 세 가지가 만날 때 수태가 이루어진다.”
(*16) “‘간답바(gandhabba)’란 그곳에 올 중생(tatrūpaga-satta)을 말한다.(MA.ⅱ.310)
일반적으로 빠알리어 간답바는 산스끄리트 간다르와(Gandharva)와
관련된 단어로 간주되며 중국에서 건달바(乾達婆)로 옮겨졌다.
그러나 빠알리어 ‘간답바(gandhabba)’는 초기 불전에서 크게 다음의 세 가지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1) 사대왕천(Cātummahārājika)에 사는 신들이다.
2) 향기(gandha) 나는 곳에 사는 신들이다.
3) 바로 본경에 나타나는 태아의 잉태와 관련이 있는 존재이다.
27.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아홉 달이나 열 달을
이 태아를 무거운 짐으로 크게 염려하면서 뱃속에 잘 잉태한다.
비구들이여, 어머니는 아홉 달이나 열 달이 지나면
무거운 짐으로 크게 염려하면서 이 태아를 출산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신의 피로 키운다.
비구들이여, 성자의 율에서는 모유를 피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28. “비구들이여, 그 어린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감각기능들이 원숙해지면 소년에게 어울리는 놀이를 한다.
즉 장난감 쟁기놀이, 자치기 놀이, 재주넘기, 팔랑개비 놀이,
잎사귀로 만든 튜브 놀이, 장난감 마차놀이, 장난감 활 놀이를 하며 논다.”
29. “비구들이여, 그 소년은 점점 성장하고 감각기능들이 원숙해지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긴다.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
혀로 인식되는 맛들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인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긴다.”
출처 : 대림스님 『맛지마니까야 』2권. 초기불전 연구원. pp. 229-231
윤회의 전개
30. “그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사랑스러운 형색에는 욕망을 일으키고
사랑스럽지 않은 형색에는 혐오를 일으킨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마음은 제한되어 있다.(*17)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17)“‘마음은 제한 되어 있다’는 것은 해로운 마음으로 차있다는 말이다.”(MA.ⅱ.311)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에 구속되어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는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쥔다.(*18)
(*18)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쥔다’는 갈애를 가지고 즐기고,
갈애를 가지고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면서 환영하고, 갈애를 움켜쥐는 것을 말한다.
즐거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즐길 수는 있지만 어떻게 괴로운 느낌을 즐기는가?
이 경우에는 ‘나는 괴롭다, 나의 괴로움’이라고 움켜쥐는 것이 즐기는 것이다.”(MA.ⅱ.311)
그가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쥘 때 즐거워함[愛]이 일어난다(*19)
(*19) “여기서 ‘즐거워함이 일어난다.’라는 것은 갈애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바로 그 갈애는 움켜쥔다는 뜻에서 ‘취착’이라고 불린다.”(MA.ⅱ.311)
느낌들을 즐거워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생]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그는 귀로 소리를 듣고 … 코로 냄새를 맡고 … 혀로 맛을 보고 …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사랑스러운 법에는 욕망을 일으키고 사랑스럽지 않은 법에는 혐오를 일으킨다.
그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립하지 못하고, 마음은 제한되어있다.
그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남김없이 소멸되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이와 같이 욕망과 성냄에 구속되어 그가 무슨 느낌을 느끼는지[受],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쥔다.
그가 그 느낌을 즐기고 환영하고 움켜쥘 때 즐거워함[愛]이 일어난다.
느낌들을 즐거워함이 바로 취착[取]이다.
그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다.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출처 : 대림스님 『맛지마니까야 』2권. 초기불전 연구원. pp. 23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