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擔麻(기금담마)
갑진년 백중 2024.8.18. 비로사 동당
진허돈여
오늘은 중아함경에 나오는 棄金擔麻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如筏喩者 法尙應捨어늘 何況非法이리오 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법을 뗏목에 비유하고 사다리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수행에 젓어서 수행 그 자체만을 좋아하며 그 삶에
서 나오려고 하질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수행자가 깨쳤다고 수행자 아닌 생이 되라는 것이 아닐진대
오후사가 무엇일까요?
六祖스님은 法者는 是般若波羅蜜法이요 非法者는 生天等法이라
般若波羅蜜法은 能令一切衆生으로 過生死大海케하나니
旣得過已하야는 尙不應住어든 況生天等法을 而得樂着가
강을 건너는 데는 모름지기 뗏목을 쓸 것이고
언덕에 이르러서는 뗏목을 사용치 않음이라
人과 法에 있어서 아가 없음을 안다면
이치를 깨달았음이라.
어찌 방편을 수고롭힐 것 인가
중도에도 빠질 수 있거든
누가 이변에 있음을 논할까.
유무에 만약 하나를 취한다면
곧 마음 밭을 더럽히리라.
분양스님이 상당하여
구름은 푸른하늘 휘덮고
안개가 기나긴 허공에 자욱하네,
이슬은 방울방울 구슬 맺고
매서운 찬바람에 낙엽 흩날리네.
해와 달이 매양 밝으니
하늘과 땅이 반짝반짝
사람들 마음이 어둡지 않으니
만물도 자유롭구나
가을 가고 봄이 오니
따사로움 울 밑에 어우러지네,
예서 분명히 알아낸다면
현음을 잃지 않으리
지금 도달하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야 할까나?
이때 한 스님이 여쭈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삼을 지고 있으니 끝내 귀하지 않구나.”
“어떤 것이 귀합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천한 줄 알면 귀해진다.”
나는 어릴 때 선원에서 도반들과 법회가 있고나면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 주십시오 이렇게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를 스스로에게도 질문하고 답 할 수
없음에 답답함을 키우며 화두의 힘을 더해가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나에게 누가 묻는다면
나는 법상에서 내려갔다가 올라오겠습니다.
혹 오르기도 내려가기도 하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무지리지 즉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경계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선승들이 의문하고 있는 것이 괴문괴답이다고 혹평들 하시는데
그리 하찮게 말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금강경에서 설하신 반야의 근본이지요.
원효스님에게 찾아간 설총이 하루는 법당 뜰을 말끔히 쓸어 놓고 쉬고 있자니
스님이 나오시더니
모아놓은 낙엽을 한 줌 쥐고 다시 쓴 곳에 뿌리시며 하시길
너무 깨끗하면 수행하는 맛이 없질않느냐?
이러셨다 합니다.
수행을 마친 뒤에 무슨 맛으로 살아갈까요.
무애행이나 하며 살까요.
悟後事 寂無事 단어는 일 마친 도인의 분상이니 좋아보이나
스승이 없는 세상과 같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의 인생 같고
자녀 없는 인생 같아서 무슨 재미로 살까요?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흐른 땀이 온몸을 휘감고
눅눅함과 척척함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我조차 없이
묵묵히 이어지는 일상에서
다시금 적요가 함께 하였나니
한가함에 한가함은 어제의 일이고
일중에 한가함이 오늘이 일이나니
나에게 무엇이 있어 집착할까?
金不愽金이요 水不洗水로다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 보다
잡은 가지를 놓으라고 하나니
본래 나인 것을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