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辯)
이창을
이름을 대면 알만한 어느 시인이 시를 쓰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의 생각이 시를 쓰고자 하는 자들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시인이란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의 말대로 사물이나 대상을 그렇게 자세히 나누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발견하고 포착하면 일반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떨리게 하는 멋진 시가 만들어 질까? 그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자세히 관찰하고 구분하고 멋지게 단어들을 조합할 수 있어도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봄이 되면 뿌연 회색빛 하늘에 강하고 세찬 바람이 불고, 갑자기 폭설이 내리며, 노란 황사가 하늘을 가득히 덮고 있다. 따뜻해진 봄기운이 대지의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면 땅속에서는 실처럼 가는 뿌리들이 기지개를 켜고 수분을 찾아 빨아들이고 줄기를 향해 가지를 향해 밀어 올린다. 나무들의 가지들은 허공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으며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는 노란 꽃들이 밝고 화사하게 피어나 작지만 경쾌한 노래를 부른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도 가지 끝으로 밝은 노란 형광색 물감을 끊임없이 밀어낸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샛노란 액체는 부풀어 오르다가 팝콘처럼 가지 끝에서 팡팡거리며 어두운 밤을 화사하게 만드는 불꽃놀이가 된다.
관찰하고, 구분하고, 분석하고, 원리를 찾은 들 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시인이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위로와 격려를 주는 글이어야 한다. 정신적으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주며 황폐해진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주는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마음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시인은 글을 읽는 이와 함께 나아가는 방향을 일러 주어야 한다. 시를 쓰는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거나, 자신의 학문적 자질을 자랑삼아 글을 쓰고, 특정인이나 드러내는 글은 더더욱 안 된다.
시인이 쓰는 글은 함께 일어나 같이 가자고 말하는 삶의 내용이면 충분하다. 마음을 움직이고 삶에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면 참 좋은 글이다. 글을 쓰는 자는 자연에 대한 경이를 발견하고 마음이 감흥 되어야 한다. 바라보거나 들려지거나 만지지는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마음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면 좋은 글이다.
봄이면 차가운 바람에 가지 끝을 부르르 떨면서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이 피어나고 있다. 내 마음도 한 쪽 방향으로 생각을 밀어 올리고 있다.
장마(오송지)
이창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멀리서 친구가 방문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친구와 같이 비가 오락가락하는 전주 서북쪽에 있는 건지산 조그만 연못 오송지를 걸었습니다. 물안개가 가득한 연못 주위를 참으로 편하게 걸었습니다. 여름은 초목들이 치열하게 영역을 넓히고 확장하는 것 같습니다. 연못에 가득한 창포와 개구리 풀 그리고 연잎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점점 확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연못의 색도 짙어지고 햇볕을 많이 받으려고 식물들이 부지런히 세포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수면 위를 가만히 바라보면 식물들의 세포분열 소리가 수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른쪽에 잎을 넓히고 싶어요. 왼쪽으로 가지를 만들고 싶어요. 물 위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는 보고 있으니 식물들의 크고 작은 대화를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면 식물들은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초목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효율을 계산하고 성장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다리고 멈추고 인내하고 자기 능력을 남용하지 않고 다른 식물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최선을 다해서 현실을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무시하고 폭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가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행동하는 것으로 조화와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환경과 현실은 받아들이길 싫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획하고 조작하고 왜곡시켜 개인이나 집단에 이익에 적합하게 재창조(?)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보았던 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커다란 나무가 인도로 넘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통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나무는 잘라서 어디론가 옮겨졌습니다. 며칠이 지나 일기예보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자 얼마 전 잘라져 나간 나무의 주변에 있는 오래된 많은 나무들마저 모두 잘라서 버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인간에게 정서적인 감정을 주었던 나무들이 잘라졌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인간의 탐욕과 성장(?)이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무시하며 부정하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때로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바꾸려고 하거나 벗어나지 말고 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삶이 더 행복하고 풍성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름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중력에 반하여 잎과 가지를 위로 올리는 나무들과 오송지를 가득 덮고 있는 수생식물들에게 고맙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뜨거운 태양, 쏟아지는 장맛비, 무자비한 태풍, 어두운 밤 별들과 외로움을 견디어야 하는 장마가 좋아집니다.
날이 후텁지근 한가요? 불쾌하신가요?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구룡포 해변(포항)
이창을
그는 지금 포항 구룡포에 있다.
그는 구룡포 해수욕장 옆 펜션에서 한 달을 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매일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힘겨워 하고 있는 나에게 자꾸 사랑한다고 작은 모래 해변에 글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나를 사랑한다고 자꾸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힘들어하고 있는 나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그는 몸이 아파서 힘든 삶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데 말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기침을 하며, 몸을 웅크리고 기침을 하고 나서야 몸을 곧게 세우고 대화를 해야 하는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그가 나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보내고 있다. 한강의 시집에 있는 시를 찾아 휴대폰으로 촬영해서 첨부파일로 보내고 있다. 삶에 희망을 잃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 아직 생명이 있는 한 살아야 한다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남은 생애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건강한 삶을 사는 자들 보다 힘들고 고통을 격고 있는 이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삶의 의미와 자세,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하게 하고 있다. 그는 펜션 앞 작은 모래 해변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변에 있는 작은 돌멩이들을 모아 커다란 하트를 만들었다. 그 안에 아내와 내 이름을 적었다. 파도와 바람이 밀려오고 불어와도 힘든 몸으로 계속해서 쓰고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남은 삶에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삶에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가족을 떠나 남은 삶을 정리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가려는 그의 의지에 내 지신이 한 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표류하는 나의 삶에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족을 사랑하라고, 이웃을 사랑하라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사랑하라!
2018년 5월 25일 포항 구룡포 해수욕장의 봄바다는 밀려오는 파도소리 반, 따듯한 봄바람이 시원한 바다내음을 내 가슴속 깊이 몰아넣으며,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며 살아라.
갈매기가 바람을 거슬러 바다로 간다
날아가는 모습에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