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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주일설교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
마태복음 13:16~23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그런데 정보란 나만 알아야 가치가 있지 온 세상이 다 알면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가끔 좋은 정보를 제공할 테니 기회를 잡으라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곤 합니다. 좋은 땅이 있다는 전화가 옵니다. 주식 변동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메시지가 옵니다. 제가 그런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땅이 있거나 주식 변동의 정보를 알면 자기가 사면 될 텐데 왜 생면부지인 나에게 정보를 제공할까요? 그런데 그렇게 뻔한 거짓말에 속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모아놓고 다른 가족은 모르는 정보나 소식을 알려준다면 그것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혹은 친구 중에 믿을만한 사람, Best Friend가 나에게만 특별한 정보를 준다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절친 관계에서는 너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보를 통해 너에게 이익이 생기는 것이 나에게 기쁨이 된다면 고급 정보를 서로 나눌 수 있죠.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바로 그런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와 공동 운명체가 되시고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이 곧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행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바로 언약 관계라고 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몇 사람과만 계약을 체결하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미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소수였는데 갈수록 그 대상이 점점 확대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약을 맺은 대상이 처음에는 한 사람, 다음에는 한 가족, 한 가문, 한 민족, 그러다가 한 나라 전체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들이 참 말을 안 듣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등한시하고 무가치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처음부터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안 듣는 그 이스라엘 나라는 사실은 샘플입니다. 전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서 한 명씩 불러모아서 글로벌 나라를 세우는 것이 원래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글로벌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샘플로 부름받은 나라를 성경에서는 제사장 나라라고 합니다. 그 샘플 나라 혹은 제사장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 역할을 등한히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따로 불러모으신 사람이 있습니다.
따로 부름받은 그 사람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전달하는 대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나라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달하는 일은 선지자들이 맡았고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전달하는 일은 사도들이 맡았습니다. 예수님을 그 사명을 맡기기 위해 12 사도를 세우고 그 사도와 함께 동역하는 제자들도 세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12 사도에게 비밀을 지령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때는 12명이었지만 지금은 그 비밀 지령을 받는 대상이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제사장 나라 백성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내리시는 비밀 지령이 무엇인지 잘 듣고 그 비밀을 잘 수행하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 설명을 갑자기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당황스러운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들어도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저의 지난주 설교 제목이 “일부러 못 알아듣게 설교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면서 사람들이 잘 알아듣게 하시려고 비유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못 알아듣도록 하려고 미스테리한 말씀을 하셨다니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한 것이 바로 이사야가 말한 메시아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백성들에게 파송하면서 백성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도 그렇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미스테리가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너희들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비밀이 오로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고 엄청난 복입니다(16절). 그들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미스테리를 제자들은 듣고 깨달을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게다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지만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보지 못했습니다(17절).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한 노인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에게 할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왔을 때 시므온이라는 노인이 등장합니다. 시므온은 오로지 메시아를 기다리며 산 경건한 분인데 메시아를 보고 죽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분입니다. 어느 날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성전에 들어가도록 감동하셨는데 바로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시므온은 단박에 이 아기가 메시아로 오신 그분임을 알아보고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스리시는 주여, 이제 주께서는 주의 종이 평안히 가게 해 주십니다. 제 두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 구원은 주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것으로 이방 사람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이어서 안나도 아기를 만나고 갔는데 안나는 과부로서 밤낮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하던 노파(老婆)입니다.
이렇게 극소수의 사람들은 메시아를 만날 수 있도록 특별히 오래 살았지만 다른 분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뻔히 보면서도 그가 메시아인 줄 몰랐으니 그들은 메시아를 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천국 비유를 말했을 때 그들이 깨닫지 못했으니 그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방금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가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비유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깨닫기 전에 복음을 나쁜 사람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즉 복음이 마음에 뿌리내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다 빼앗겨 버리는 사람입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겨우 싹은 텄지만 뿌리가 없어서 말라죽었습니다. 또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어떻게 먹고 사는가, 예수 믿다가 세상에서 손해는 없을까 하는 세상 걱정에 그 믿음이 질식해버리는 사람입니다. 악한 시대에는 환란과 박해 때문에 믿음이 죽어버리지만, 요즘같이 평안한 시대에는 더 편하게 살고 더 잘 먹고 싶어서 믿음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예수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이 바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버리는 사람입니다.
비유 속에서 씨앗은 스스로 딱딱한 길바닥을 부드럽게 갈아엎을 수가 없습니다. 땅바닥도 스스로 좋은 밭으로 일굴 수 없습니다. 또 돌밭에 떨어진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씨앗이 스스로 돌을 골라내거나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받은 사람들은 인격체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땅을 갈아 일굴 수 있습니다. 돌을 골라낼 수도 있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라도 극복하고 믿음의 열매가 결실하도록 자신을 가꾼다면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둘 다 어릴 때 교회 나간다고 부친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어 믿음을 지켰고 목사와 사모가 되었습니다. 제 아들들은 목사의 아들로서 주일에 있는 태권도 승단 시험, 검도 승단 시험에 가지 않으려고 좋아하던 태권도나 검도를 그만두었습니다. 해외여행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땅이 아니고 씨앗도 아니므로 박해와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100%, 사람의 노력 100%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믿음이 생기지만 우리가 노력해야 믿음이 자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스스로 길가 밭을 갈아엎고 돌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내고 가시덤불을 헤쳐 좋은 땅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은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이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좋은 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합니다. 100배 목표를 잡았다가 60배 결실할 수도 있고 60배를 목표로 잡았다가 30배 결실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0배 목표로 삼았다가는 가시덤불에 눌려 죽어버리는 믿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60점은 겨우 D 학점을 받지만 30점은 낙제 점수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100점 받는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이고 복음을 잘 알아듣게 하기 위한 비유가 아니라 못 알아듣게 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듣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중에 알아들은 소수가 있었습니다. 그 소수를 이사야는 ‘남은 자’라고 불렀고 바울은 ‘선택된 자’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자, 성도 등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비밀입니다. 남들은 들어도 모르고 보아도 모르고 오직 우리끼리만 아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그 비밀을 우리를 불러모아서 알려 주신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공동 운명체입니다. 여러분의 기쁨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여러분의 행복이 하나님의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남남이던 남녀가 결혼하면 일촌(一寸)도 아니고 무촌(無寸)이 됩니다. 재산을 공유하는 경제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었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의 신랑이신 예수님은 신부인 교회를 위해 목숨을 주셨습니다. 이제 신부인 교회, 즉 성도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길바닥처럼 딱딱하든지, 돌밭처럼 척박하든지, 가시덤불처럼 장애물이 많든지 모두 이겨내야 합니다. 묵을 땅을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가시덤불을 제거하여 옥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모두 좋은 땅, 옥토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잘 자라고 잘 성숙해서 100배로 결실하고, 100배로 헌신하고, 100배로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https://youtu.be/PWU0N2_YoGQ?si=ucKJNGJuQDYsQT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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