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슬로우 폭스트롯에 빠져들다.
(2007. 4. 23. 월)
최근에 룸바 자세 다듬는다는 둥, 자이브 베이직 고친다는 둥.
차차차 배우고 삼바 입문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틀 정도 모던댄스를 등한시 했더니 모던댄스 연습이 너무 고팠다.
오늘은 문화센타에서 룸바 수업을 끝내고 늦은 시간에 연습하러 갈채로 달려갔다.
어느 동호회에서 단체로 와서 라틴댄스에 열중하고 있었다.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눈치껏 구석에서 부분 연습을 했다.
라틴댄스용 음악과 왈츠가 나오면 붐비고 플로어가 미어터졌다.
아주 드물게 슬로우 폭스트롯 음악이 나오는데도 거의 사람들이 춤을 추지 않았다.
아무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때는 이때다 싶어서 슬로우 폭스트롯 음악에 맞춰서 나 홀로 솔로 댄스로 폭스트롯을 즐겼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본격적으로 모던 매니아님들만 남았다.
남아봐야 나중에는 나 말고는 늦은 시간대에 오셔서 시합 준비하시는 듯한 한 커플뿐이었다.
오늘은 그분들이 모던댄스 음악을 종목별로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을 돌렸다.
왈츠만 여러 곡 질리도록 나오고 다음에는 탱고 음악이 계속 이어졌다.
근데 그 다음에 슬로우 폭스트롯 음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왔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이토록 폭스트롯 음악이 오래도록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슬로우 폭스트롯 음악이 너무 좋았다.
처음에 왈츠 배울 때는 물론 왈츠 음악도 좋았다.
왈츠가 매우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슬로우폭스트롯 음악이 최고로 좋다.
꿈결처럼 감미롭고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이 음악에 맞는 슬로우 폭스트롯이 정말 좋았다.
오늘은 원 없이 미치도록 슬로우 폭스트롯을 마음껏 연습할 수 있었다.
슬로우 폭스트롯이 너무 좋았다.
정말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했다.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표 나지 않았지만 너무나 황홀하고 북받쳐 오르는 설움보다 더한 환희를 느끼고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룩주룩 빗물처럼 많은 눈물이 내 얼굴을 타고 내렸다.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환희의 눈물이라는 걸...
이보다 더 진한 카타르시스가 어디 있을까.
절정에 달한 섹스의 쾌감도 이보다 더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지는 못할 게다.
하기야 섹스의 쾌락은 형이하학적인 듯 하다.
댄스에서 느끼는 쾌감은 형이상학적인 만족감을 주는 것임을 진즉에 알았다.
이보다 더 깊은 쾌락을 느껴보기도 정말 드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에 왈츠에서도 이런 느낌과 쾌감을 여려 번 맛보고 느껴보았다.
최근에는 왈츠는 정말 시큰둥하고 시시한 감이 없지 않았다.
힘만 들고 별로 재미도 없고.
내가 언제 그렇게 왈츠에 심취하고 미쳤었나 할 정도로 내 왈츠의 사랑이 식은 게 사실이었다.
그냥 묵은 정 때문에 사는 조강지처인 양 그렇게 왈츠에 대한 열정은 식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왈츠에 심취해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오히려 부럽기조차 할 따름이었다.
난 별로 그렇게 예전처럼 왈츠에는 미쳐있지 않았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그런 심드렁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근데, 요 근래에 들어서는 정말이지 이 슬로우 폭스트롯이란 춤이 또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닌데...
물론 왈츠도 그렇고 모든 모던댄스가 나를 울리고 나를 늘 비참하게 만들었다.
해도 해도 안 되고 그 실체도 안 잡힌다.
이번에는 이 넘의 슬로우 폭스트롯이 또 나를 죽일 것 같았다.
이렇게 사람을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춤은 여태껏 또 처음 겪어보는 듯하다.
왈츠 하나만이 나를 이처럼 망가뜨렸으면 되었지, 또 새로운 이 춤의 맛과 매력에 듬뿍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쭉쭉 끌고 나가는 그 느낌.
한없이 뻗어 올라가는 그 욕구 충족의 쾌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상체에서 느끼는 희열감.
마음껏 미끌어져 나가는 후진 워킹의 리버스 웨이브의 최고조의 절정감.
이 모든 게 나를 마약에 취한 것처럼 미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냥 누워 있어도 밥을 먹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이 춤에 대한 생각만 내 머릿속에 온통 꽉 차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렇게도 매력 있는 이 춤을 누구와 홀딩하고는 아직 그 맛을 진정으로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
단, 내가 나가는 연구반 선배님 중에는 그 느낌을 전달해주는 분이 있었지만 그런 분들은 이미 파트너와 즐거운 댄스 인생을 누리는 것 같았다.
나를 지도해주는 현역 프로선수인 사부만이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 깊은 맛이 질리기 전에 누가 나의 이 욕구를 충족시켜 줄까.
그 흔해빠진 왈츠 매니아 중에서도 나와 극치감을 맛볼 상대를 못 찾았는데...
왈츠보다 한 단계 높다는 이 춤을 맞출 수 있는 상대가 과연 내 기력이 남아있는 동안에 나타날런지...
정말 모던댄스의 세계는 길고도 어렵기만 한 듯하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쾌락의 도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댓글
오빠오네 07.04.24 08:50 첫댓글
정말 부럽네요...
무지개빛1 07.04.24 09:00
슬로우 폭스트롯이 그렇게 좋은가요? 배워 보고는 싶은데........아직 왈츠를 아직 마스터 못했는데...... 또 배워도 될런지요.........
즐콩이 07.04.24 09:19
청노루님 일기 올 만에 보네요..... 사댄에 스댄에..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니...원 ..... 부럽기만 할뿐입니다~~~
겨울나그네 07.04.24 10:12
부럽습니다... 분야별로 골고루 빠져들 수 있으시니....ㅎㅎ
돌이 07.04.24 10:21
오우 폭스..........다리 긴 사람으 ㄴ좋겟어요. 저는 다리가 모두 짧아서리............ㅋ
노란 수선화 07.04.24 11:24
그래서 사랑은 변하는 거라 했던가?? ㅎㅎㅎㅎ 청노루님의 끝없는 춤의 열정에 감탄사가~~!!~~ 그래도 행복하시겠어요.... ^^
엘비스님 07.04.24 13:32
모던의 마직막은 폭스트롯이란 말이 있지 않읍니까~ 저 역시 모던 5종목 중에 푹스트롯을 가장 좋아하고 즐김니다. 당연 폭스를 할려면 왈츠 탱고는 기본으로 한 다음에나 가능한 종목이죠. ㅎㅎ 정말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움직이는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동작이 너무 좋습니다.
폭포수처럼 07.04.24 17:19
에유우~~라틴을 쫌 더 파시나 기달리고 있는데 다시 모던쪽으로 쏠리~~??? 노루님 낮 시간 함 비워 주소서 자이브 룸바 연습점 해보입시덩~^^
노스탈쟈 07.04.26 01:20
폭스는 문자 그대로 여우처럼 얍삭 빠르게, 깃털처럼 사푼하게, 글고 모던 댄스에서 씨비엠, 스웨이, 후드웍에 모든 것이 망라된 완성 춤입니다, 이춤을 추지 않고는 왈츠도 럭서리 하게 출 수가 없답니다, 열공하시어 시범 한번 하셔야죠?
바리바리 07.04.29 05:39
그러고 보니 연습하러 간지도 오래되네요. 지금도 벅차서 폭스는 못하는디 노루님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