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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th. May(토)
5월13일이다. 지난 1월 13일, 그러니 하역 중 불시에 Lome로 가라고 하는 통에 허겁지겁 菅原군과 三浦군을 교대하는 쇼를 하고 떠난지 꼭 4개월 되는 날이다.
11시30분 Pilot Oscar의 도선으로 Tincan N0.10을 벗어나다. 작년12월 26일 외항에 닻을 내린 후 Lome 정박 10일 제하고는 줄곧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Lagos! 내게 많은 시련을 안겼고 속도 썩혔으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배우기도 한 곳이다. 더 이상 미련은 없다. 후련하다. 아귀다툼 같은 한 순간순간들이 어떻게 쌓여져 왔는지? 잔잔한 수면 위에 숨을 멈추고 잠자는 듯한 100여척의 대기선박들이 새삼스레 보아진다. 저 속에서도 제각기 다른 입장과 사정을 갖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Byron과 Ice Land에서 긴 기적과 함께 손을 흔들어 준다. 길던 짧던 석별은 아쉬움을 낳는다. 다시는 이곳을 들리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좀 더 멀리 깊숙한 내륙지방에까지 가서 아직도 문명의 각박함이 덜 묻은 순수한 검은 인종들 속에서 그들의 고유한 춤과 웃음과 인정들을 접해보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서운함을 갖게 한다. 살갗이 검고 미개했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들이 노예로 끌려갔고 가진 자들의 숱한 박해를 받아 오고 있지만 이제는 서서히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가고 있음직하다. 그들 자체가 한 문명이나 현대의 주체가 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느낌도 있고 어쩌면 근원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한 듯 하기는 하지만 이미 눈이 트이고 가진 자들이 ‘무역’이라는 그네들의 利를 위한 수단으로 자꾸만 꾸며가고 강요당하고 있다. 좁은 도로에 밀리는 차들이 몇시간씩 묶여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하루에 수천대씩의 차량이 계속 수입되고 있어 너무 많다는 불평들을 누구나 하면서도 막상 자기 차는 없다고 두털대는 일반 서민 검둥이들이 바램은 오직 욕망만 커져가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한 방법과 수단을 가릴 수 없게 돼가는 사회의 흐름에 편승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그것이 곧 주객도 없고 그저 가지고 있는 놈이 큰소리치는 역조현상마져 일고 있다.
결국 끝까지 이루지 못하고 만 구서증서! 그냥 가지고 온 Mr.Samuel이 조금도 미안한 감이라고는 없는 뻔뻔스런 태도에서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본다. 차라리 정글 속에서 열매나 따먹고 짐승을 잡아가며 순수하게 사는 것이 저들에게는 적절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외세가 완전히 저의 것이 되지 못하더래도 어느 정도 토착화시키고 동화시켜 나가지 않는 이상 아득한 것은 내일일 뿐이리라. 처음부터 내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더욱 분통을 터뜨린 일이 많았을까? 달면 삼키고 쓰면 사정없이 뱉아버리는 것이 여기 생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도 실책이랄 수 있다. 좀 더 마음껏 모든 것을 주무르지 못한 것도 미련을 남긴다. 아무튼 Lagos. 그리고 Africa는 기념비적이 될 수는 있는 곳이다. 다시 내가 이곳을 찾는 날이 있을 땐 느긋한 마음으로 대하고 살갗에서 풍기는 냄새도 구수한 듯한 제스추어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 이제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불을 붙인 Rocket가 우주를 향해 첫 폭음을 내는 듯한 기분으로 내 조국, 내 가정에 닿는 날까지는 다시 분투를 거듭하는 일이다.
14th. May(일)
벌써 5월이 허리를 접는다. 잔잔한 해면과 길게 밀려오는 너울이 더욱 한가로운 느낌을 주는데 비해 어제부터 계속 하늘은 찌뿌린째다. 작년 이맘 때 처럼 Radar가 고장이라 하늘만 쳐다보며 가는 수 뿐인데, 하늘이 가리워진다는 것은 큰 어려움을 준다. 계절이야 좋을 때라지만 닿는 날까지 해상이나 좋아야지.
3/O 대신 봐야하는 하루 8시간의 당직이 무척 괴롭다. 줄곧 섰던 TungHo 때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고, 또 그때는 처음부터 그러기로 작정을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한동안 신경을 안 썼고 그나마 맹탕 1년 4개월간 하지 않던 일이다. Cotunou앞 해상에 대기중이란 神德丸와 교신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했다.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가 있을 터인데 -. 온통 세상이 잠든듯한 정적이 감돈다. 지저분하던 Deck 위, 종일 왕왕대던 VHF, 무슨 법이 있었겠나마는 그래도 한가닥 얌체도 체면도 없이 달겨들고 물어 뜯던 이름 모를 벌레들, 아직도 Hatch안에서 간간히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정갱이 토막 썩어나는 냄새하며, 이런 모든 것이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물 위에 뜨면 오직 뵈는 것은 수평선이고 하늘이고 우리 식구뿐인 것이 당연지사인 것을, 그것이 오히려 이상스레 느껴진다. 무질서 속에서 잊어졌던 내 자신을 도로 찾을 수가 있다. 아직도 여러 군데의 물렸던 영광의 상처(?)가 가끔 신경을 건드리고 한군데는 기어이 탈을 내고 말았다. 전신에 묻었던 땟국도 좀 말끔히 씻어내자. 새로운 해풍의 눅진한 기운에 그 위에 휩싸이고 묻어 쌓이겠지만 그것은 다시 벗겨내고 묻히는 반복작용이 계속하는 동안 Las를 거치고 지중해를 거쳐 나갈 것이다. Lagos를 벗어나기만 하면 곧장 날아갈 듯 하던 기분에 비하면 너무 속력이 답답하다. 배 밑바닥(船底)에 엉켜 붙은 조개껍질이랑 해초들이 잡아당기듯 한다. 기분 탓이 많으렷다. 마치 지난날 북양시절 힘겹던 작업을 마치고 귀항길에 오르면 바로 수평선 넘어 부산의 산들이 보일 것만 같은 기분에 쌓여 며칠을 보내고 그러다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겨우 손꼽아 헤아려 보곤 했었다. 그러나 아직은 너무 멀다. Las까지도 10여일은 잡아야지. 그런데도 곧장 내일이면 닿을 수 있는 듯한 기분은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다.
15th. May (월) 1978
어제 오후부터 개이기 시작한 날씨가 계속 따가운 햇살을 쏟고 잔잔한 해상을 누빈다. 順航! 그것은 바다 위를 사는 항해자들에겐 언제나 한결같은 소망이다. Radar가 없어 매시간 태양을 측정하고 육지에 의한 물표를 지날 때마다 훨씬 많은 신경을 쓴다. 첨단을 걷는 전자과학문명을 이용하는 지금의 항해설비로선 밤하늘의 별을 찾고 태양을 관측하며 육상의 지물지표를 겨눈다는 것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이고 다소 시대에 뒤진감이 있다. 세계의 필요한 7개의 요소요소에 전파국을 설치하고 전 지구표면의 해상을 Cover하는 Omega에다 Computer를 부착하여 모든 Position. Speed, Course 등이 Button으로 조작되는 요즘의 선신국의 소형선들도 결국은 그 근본적인 이유가 선박의 안전보다도 인력을 줄임으로서 그들이 운항경비절감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천문, 지문항법은 다소 개인차는 있을망정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기계가 범할 수 있는 오류가 없고 믿을 수 있는 정확성도 있다. 원시적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先人들이 연구하고 이제는 1초까지도 다투는 과학적 뒷받침을 받고서 모든 제원계산을 한 것이다.
계속 좋은 날씨가 돼야할텐데-. 德丸에 ETA와 더불어 수리, Supply, 보유, 선용금 등 모든 수배를 확인하는 전보를 보내다. 바로 Lagos에서 양하 중 노고를 深謝한다는 문구와 더불어 Laspalmas 도착시점부터 日魯漁業에 Time Charter로 들어가며 그 후에는 용선자의 지시에 따르고 Tokyo까지의 필요한 보유량을 알려 달라는 내용과 선원들의 편지 등은 모두 Las로 보낸다는 두 통의 답신이 있었다. 아마 저들도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지난 11일 아직 최종 용선료가 입금되지 않았으니 현지대리점에서 선원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10,000달러를 Cash Advance해서 보관할 수 없는냐는 문의가 있었고, Mr. Assaf의 펄쩍뛰는 반응을 들어 현지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연락은 했으나 역시 재수 없는 놈들을 만나 욕보기는 마찬가진 모양이다. 自古로 먹고 떨어지려는 놈한테는 당하기 십상이지만 서로 믿고 거래치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재의 장사속들이니 별수야 없겠지? Mr.Tikam이란 놈이 그렇게 떼어먹고 말 놈 같지는 않았으나 사람속이야 알 수 없는 노릇아닌가. 그네들이야 저들 것 받으면 그만이듯이 나도 내 것 받아내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 미리 미달러로 준비해두란 전보는 쳤지만 Canpex의 두 인도놈 형제가 있어야 할텐데-. Hatch Cleaning 시작하다. 근 60일만에 다시 완전히 물로 씻어내는 셈이다. 일본행 Cargo라면 이쪽보다야 몇 배 고급 魚種일거고 까다로울 것이다. 지금까지 검둥이들 모양 어물쩍해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적하중 Survey도 붙이도록 해보자. No.4 Hold. 이번에도 몇 개의 Damage가 났었다는 원인도 규명해야겠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별이 빛난다는 말은 수없이 읽고 듣고 말해봤지만 막상 그것을 내 눈과 마음으로 그렇게 느껴보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약간 붉은 것도, 파란 것도 있으나 Diamond가 저렇듯 반짝일 수 있어서 값진 것일까? 제 빛을 발하는 상현달에 달무리가 진다. 달무리는 날씨가 Menses하는 것이라고 어떤 글쟁이가 말했다만 아마도 내일쯤 다시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을 모양이다.
1기원 최유덕군이 발병하다. 말라리야가 아닌지 염려된다. Lagos 정박 중일 때와 해상의 항해중의 기온차가 다소 심하고 모처럼 다시 시작하는 항해라서 몸살이 날 수도 있으니 아무튼 큰 탈이 없기를 빈다. 작년처럼 잠복성 말라리아로 두 사람이나 장기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지. 다섯 사람이나 결원이라 더욱 그렇다.
16th. May(화)
새로운 용선자인 니치노(日魯)에서 752자에 달하는 긴 전문이 입수되었다. 운항에 관한 것이다. Las에서 2,200Tons 적재. 6월 22일경 출항예정, Berth Term에다 GENCON C/P, 그리고 운항 중 유지 온도, 적재중의 주의사항 등 자세한 내용이다. 아무래도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Reefer Cargo 원칙에 입각한 운항이 될 것 같다. 역시 관록을 가진 회사인데다 본선이 처음엔 저네들 배였으니 본선의 제원이나 내용마져 훤히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Las에서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니 이게 무슨 변이다. 기다리는 것이 금년의 신수인가보다. 토정비결이라도 한 번 봤으면 싶어진다. Lagos와는 달리 쓰임새가 그만큼 많고 유혹되기 쉬운 곳인데-. 그러나 저러나 일본 도착은 8월3일로 본다. 분명히 잡신이 붙었다. Las정박 대기중 연장한 3개월이 넘는다는데 다소 선원들의 동요가 예상된다. 진짜 제기랄이다. 무슨 놈의 일이 이렇게 잘 안 되나. 안 그래도 꼴값하는 친구들의 진급이 어떠니 하는 말들이 오간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거나 간에 Lagos의 검둥이들을 나무랄 수 없을 만큼 우리네 현실도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선주에게 꼼짝 못하는 Manning회사며 그 대리점에 다시 문틈에 손가락 끼이 듯한 선원들의 입장. 배가 있어 선원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것이 진리처럼 돼버린 지금이다. 얼마나 사람값이 오르면 이런 일이 없어지고 회사가 선원 위에 군림하는 풍조들이 없어질 것인가?
德丸에서는 수배 관계 그리고 연료유의 중간보급을 Suez에서 피하고 Las에서 몽탕 했으면 한다는 연락이 있다. C/E와 각 Tank의 사정을 재점검, A유용 Tank를 C유용 Tank로 한다면 될 수 있어 조정하도록 하다. Pipe의 개조작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간 개망신 당할 뻔했다. 사전에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어쩌면 본선의 Dead Weight로서는 거의 만선에 가까울 것 같다. 어떻게 하던 기다리는 기간이 없도록 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일단은 좀 더 두고 보자. 용선자도 공짜로 빌린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지. 일본놈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 전원에게는 일단 공개하지 말도록 三浦군에게 지시하다.
17th. May(수)
Las에서 선원명부를 미리 보내란 선주의 지시가 있다. 아마도 Lagos에서 5명이 귀국한 다음에 보낸 서류가 도착하지 않은 모양 이다. 결원으로 한다고 했지만 정식 보고가 없었으니 궁금하기도 하겠지. Las에서도 한 달을 머문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뜻같이 5-6일이면 충분히 Loading 마치고 바로 귀항길에 오를 수 있으리란 기대가 다시 무너진다. 불과 한 달인데도. 그 숱한 자극을 참아야 한다는 것은 Lagos보다 몇 십배 고통스러울런지도 모른다. 찬란한 불빛, 다정한 남녀, 희고 귀여운 얘들의 모습, 흰 살결의 내음, 각가지 美食과 술, 갖고 싶은 많은 상품들! 차라리 아무것도 없고 체념을 할 수 있었던 Lagos가 마음 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열흘을 참고 견디면 한 달을 부산에서 땅을 딛고 지낼 수 있는 경비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아는 이상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없다. 차라리 형벌이 아닌가. 8월 초순이라지만 양하까지 마치면 8월 중순으로 봐야지. 그럼 한 더위도 고갤 숙이는 계절이다. 계획하던 ‘집짓기’는 그런대로 괜찮을 시기기는 하다만 -.
아마 2-3일 전에 붙인 내 편지를 받았을 텐데. 집 짓는데 두어 달 보고 다시 한겨울을 곰처럼 깊숙히 파묻혀 그간의 응어리를 풀어봐? 푸근한 마음으로 맘끗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고 즐겨보는 것도 결코 낭비라고 생각할 순 없어리라. 나만의 城, 우리들의 城, 그것부터 이루어 놓고 보는 것도 옳은 일이다. 옛적 국가가 굳게 성벽부터 쌓아야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번은 전처럼 아무렇게나 묻혀 보내 버릴 수만은 없다. 길을 뚫어야 한다. 설사 한 해를 더 승선하는 한이 있어도 그냥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계기! 무엇이던 건덕지를 만들어 놔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할 부산이란 사회가 날고 뛰는데 비해 너무나 소외된 지금이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되는 것도 아니다. Again Play하는 마음가짐, 내 자신에다 사회를 비교하지 말고 환경에다 내 스스로를 맞춰야 하는 정신적인 각오부터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만 무엇보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직한 성격을 컨트럴 할 수 있을 만큼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19th. May(금) 1978
그간 순조로웠던 항해가 서서히 암운을 띄운다. 내일쯤 Senegal의 Dakar를 항과할텐데-. 거기서부터 Las까진 다소 황천을 예상했지만 보다 이르다. 서서히 시작하는 Punching, 얼마나 계속하려는지? 장기간 항해를 앞두고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선체 및 각 계기들의 성능이다. 끝까지 아끼고 간수하는 마음으로 끌어야 한다. 어제 앞서온 배가 있고 항내에서 기다릴 예정이며 현장은 가지 않는다는 日魯의 전문이 있더니 Dakar 기항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가 다시 Cancel한다는 연락이 연이어 온다. 차라리 중간에 얼마라도 적재하고 갔으면 싶기도 하다. 空船항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Cargo Booking에 차질이 있거나 무리를 빚는 느낌도 있다. 아직 각 Hatch의 Pre-Cooling(예비냉각)도 시작하지 않고 있다. Loading이 늦어지면 구태여 일찍 할 필요도 없다. 일단 대리점인 Frucasa에 상황을 문의 타전하다. 비싼 용선료를 물어가며 한 달을 체선시키면서도 용선하는 日魯측과 선주측 사이에 어떤 사연들의 있는지는 모르나 일의 됨됨이가 질서를 잃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日魯같은 대회사가 그만한 Carrier를 갖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싼 용선료로 어떻던 채산성을 고려한 용선이었을 테니까.
처음부터 자기네 배인데 토쿠마루(德丸)해운에 판 것이 본선이기에 정확한 Data에 의해 면밀한 계획하에 운항하는 데 비해 너무 허술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선장으로서의 어려움이 따른다. 이제부터라도 냉동선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제는 승선 전에 용도, 항로 등을 고려하고 선형까지도 선택해야 할 단계까지 왔다. 능률을 위한 專用船과 多目的船이 최근의 경향이다. 그 목적달성에 기동성을 붙여 Speedy한 운항으로 시간과 선원들의 단축을 실행하고 있다. 년간 90%를 항해에다 소비해야 하는 데 비해 겨우 20-30% 밖에 항해치 못하는 우리는 실상 채산에 앞서 운항의 기본적 요소도 무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저조한 실적이다. 내가 염려하고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나는 다만 그들의 충실한 고용인으로서 계획에 가깝도록 운항이 임하면 된다. 그런대로 그 결과에 따라 그 책임의 일부가 내게 있는 것처럼 서로가 생각하겠금 되어지는 경우는 있다. ‘잘못되면 조상 탓이고 잘 돼면 제 탓’이라듯이 -. 동서양인들의 사고방식상의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같은 값이면 회사측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방향으로 일이 쉬이 풀려나갔으면 한결 그간의 고생한 보람도 서고 더욱 많은 대화의 길도 터일 것인데-.
20th. May(토) 1978
09:00시 Dakar 항과하다. 희부연 하늘이 온통 흙먼지투성이다. 沙塵이다. 쌓이는게 먼지고 머리밑이 뻑뻑해진다. 강열한 햇살도 그 속을 뚫지 못하고 수평선도 삼켜져 버린다. 계속 거칠어지는 해상이다. 그런데 이상한 바다다. 바람이 없는데도 출렁이는 파도가 방향도 없다. 그냥 출렁거릴뿐이다. 아마도 이것이 커지면 무서운 삼각파도를 이루게 되리라. 또한 바다 빛이 피빛이다. 군데군데 마치 한차례 격심한 해전(海戰)을 겪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흔적처럼, 아니면 부근의 어선에서 버린듯한 고기 피 같기도 하다만. 적조현상이 이런 것인가?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월말부터 적하시작 예정. 예냉을 하지 말라는 Fulucasa의 전문이 있다. 그렇다면 예정보다 다시 당겨진다는 소린가? 하기야 최대한 체선 기간을 줄이려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기대가 없는 바도 아니다. C/O. 2/Q 발병하다. 몸살인 듯 하다만-. 의외로 환자가 많다. 2/O의 신경통도 문제가 된다. WR-1 최군도 차츰 경과가 좋아진다고는 하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왜들 그럴까? 아래쪽보다 기온의 차이는 심하다. 수개월을 쉬지 않고 돌던 선풍기도 멎었고 짧은 옷을 벗고 긴 옷으로 바꿔 입었다. 시작되는 북서계절풍이 아무래도 Las까지 남은 항로를 난항으로 만들 것만 같다.
21st. May(일)
기온이 계속 강하. 방한복을 걸치게까지 한다. 밤새 치고 두들기고 흔들어 댄다. 시골 자갈밭 길 위로 쇠바퀴의 소구루마 탄 듯이 배를 딛고 선 몸 전체까지 털어준다. 그렇게 큰바람은 아닌데 워낙 공선이다. Ballast 항해가 그래서 어렵다는 것이다. 모두가 얼굴이 버석하다. 불과 하루사이에 -. 먼젓번에도 이 부근에서 갈之자 항해를 했었다. 닥아갈수록 가져지는 새로운 불안. 내일 그리고 내년이 그것이다. 이런 날은 그저 만사 집어치우고 먹고 자고 그래서 세상을 시간을 잊는 수가 상수다. 물렁한 소설이 제격이고 헐렁한 유행가가 어울린다. 한동안 흘려 대던 땀 대신 잦은 소변이 억세게도 귀찮스럽다. 시원스럽던 청수가 손끝에 차갑게 느껴진다. 2/Q가 마라리아 같다. 그리 든든하던 덩치가 맥을 못 춘다. 현지에서 발병치 않고 기후가 다른 곳에서 발병. 치사케 하거나 서서히 사람을 말리는 독성을 가진 잠복성도 있다고 하더라만. 검둥이들이야 감기 앓듯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보통일이 아니다. 투약과 주사로 버티는 수뿐이다.
23rd. May(화)
彷徨! 바로 그것뿐이다. 어쨌든 좀 털지 않는 쪽으로만 가다. 통신용 안테나가 끊어지고 잡다한 것들이 깨지고 터지고 떨어진다. 난장판이다. Speed도 최대한 Down했다. 없는 놈 제사 닥치듯 하는 당직시간. 밥 때, 그리고 근질거리는 온 몸뚱이. 절은 속옷, 만사가 귀찮은 것 뿐이다. 그래도 제때 먹은 것은 꼬박꼬박 제 자리를 찾아가는지 탈은 없고 입맛은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다. 누르팅팅한 얼굴, 훨씬 골이 깊어 뵈는 주름살 등이 고통스럽기까지 해 보인다. 3일째가 이렇게 아득할 수 가 있나. 맑은 하늘, 환한 달빛은 그래도 고마움까지 갖게 한다. 음울하면서 속도가 빠르고 매섭지만 일찍 끝나는 저기압에 비해 한결같은 끈질김을 계속하는 대륙성 고기압에 의한 계절풍은 그 변화가 없을 뿐 아니고 더욱 강하다. 모든 것을 끈기 하나로 집어삼키려는 듯이 기계처럼 한결 같이 물고 늘어진다. ‘바람은 공기지만 단순한 공기가 아니다’라던 FAO 초대 소장이던 놀웨이인 Mr.Lucin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무려나 Lagos 외항에 닻 놓고 퍼질고 놀 때가 가장 호시절(?)이었음이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오늘 Las 입항이 되야 하는데 아직도 이틀을 남기고 있다. ‘바람님 좀 주무시지요, 예’. 어구야-.
24th. May(수)
오전 중 다소 기세를 숙이는가 했더니 오후 들어 다시 일어난다. 하룻밤을 넘길 때마다 ‘오늘은 좀 -’하고 학수고대하는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았을 때 여전히 기세를 누그리지 않고 있음을 보았을 때의 그 실망과 짜증. 거기다 또 하루를 -. 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부터 생긴다. 계속 12시간을 주기로 변침을 한다. 풍향이 NW에서 NE로 바뀐 것이 그냥 계속이다. 풍속도 마치 기계처럼 18-20m/S로 고정되어 있다. “대서양을 모르는 사람이 바람 없다고 한다.” “한번 불기 시작하면 보름이나 한 달을 불데요.” 2갑원의 말이다. 환자가 많다. 신경통으로 정상적으로 당직을 못 써는 2/O. 2/Q는 더욱 쇠약해져 간다. 마라리야가 분명하다. 주사를 진작해야 하는데 2/O의 실책이다. 제대로 갔으면 어제쯤 입항했을 텐데.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내일 오후라야 되겠다. 지긋지긋한 바람이다. 항해중일 때가 가장 차분히 책을 마주하고 일을 계획할 수가 있는데 이처럼 덜커덩거리거나 흔들릴 때는 만사가 공이다. 볕난 날 우산 장수처럼. 한번 읽은 적이 있는 ‘장길산’ 제2부 상・하권을 재독하다. 내용보다도 그 방대한 자료수집과 풍부한 어휘의 구사는 실로 글을 쓰는 사람들만의 재주이고 뛰어난 기량이다. 실로 오랜만에 뜨근한 물에 목욕, 그리고 빨래를 하다. 젖은 바윗돌에 이끼 붙듯한 땟자국을 뭉텅이로 밀어냈다. 라고스 출항이후 아마 처음하는 목욕이다. 한편 개운하고 정신이 든다. 내일은 굴러가도 Laspalmas 외항에는 닿겠지.
25th. May(목)
Gran Canaria섬을 지척에 두고 바로 그 아래 지점서 새벽까지 지독스레 흔들리고 물기둥에 두들겨 맞았다. 뵈지 않는 곳에 상처를 낸 것은 아닌지 자못 염려스럽다. 현지시간 13:00시 Las 외항에 닻을 내렸다. 역시 천신만고 끝이라고 하겠다. 상냥한 Pilot Officer 아가씨가 선내 시간보다 2시간 앞서간다고 알려준다. 닻을 내리기 20분전까지도 골탕을 겼었다. 계속 바람이 있고 너울이 있으나 섬 곁이라 한결 눅어졌다. 퀭한 눈들이 화사한 시가지 쪽을 향한 체 오래 머문다. 각고 5개월이 그토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왕 시작한 항해인데 내일이래도 접안, 적하했으면 좋으련만. 해야 할 일도 산적했다. 수리, 보유, 영사관 확인, 받아야 할 작업비 정산, 검사, 위생증서 교환 등등이다. Lagos가 왠만한 곳이였다면 이렇게 한꺼번에 일이 밀려있지는 않을 것인데-. 항해를 위해 완전무결하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일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하고 환자들을 병원에 보내야겠기에 Furucasa에 통선 수배를 타전하고 조용히 쉬기로 했다.
26th. May(금)
밤새 식중독 증세에 시달리다. 허리 아랫부분 전체가 뒤집혀지듯 했다 특별히 먹은 것도 없었는데? 해수에 목욕. 그리고 위스키 한 잔에 돼지고기 볶음 한 접시 한 후 자리에 들었는데 그 돼지고기가 나빴나? 증세가 나타나긴 초저녁부터였으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재수 옴 붙는다더니.
C/K 김군이 갖고 있는 주사한대 맞고 상육, Furucasa에 가다. 일본인 Mr.山下에게 대강의 일정을 듣고 Renasa의 Mr. Akiya에게 식품의뢰. Mavacasa와 Canpex도 거쳤다. 점잖은 신사. Mr. Luis가 반겨준다. 편지를 찾았고 다행이 Mr.Tikam도 만났다. 밀린 작업비는 내일 받기로 하고 Agent의 모든 관계는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하기로 합의, 그대로 귀선하다. 식중독이 계속한다. 약을 사 먹었는데도 즉효가 없는 듯하다. 부풀은 양다리와 궁둥이가 화끈거리고 으시시 한기까지 든다. 근질근질해 오는 가려움을 참는 데는 아픔보다 더한 인내심이 든다. C/K 김군만 꾸지람 했다. 한 알씩 먹어라는 걸 두알 녹여 먹고 누었는데 통 기별은 없고 검은 색에 익은 눈에 비친 낮의 흰살결, 그나마 반쯤은 훌렁 들어낸 체 실락거리는 통통한 젖무덤과 엉덩이들만 자꾸 눈앞에 삼삼거린다. 평소보다 신체적으로 어떤 이상을 가질 때 더욱 성욕을 느끼게 되는 것도 같다. 꺾지 못할 꽃이 더 예쁘고 남의 것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인간의 심리 때문인가? 작년 7월 여기서 Docking했을 때처럼 정신없이 일에 매달려 바삐 돌아갔으며 좋으련만-.
27th. May(토)
Canpex에서 우선 $7,000을 받았다. 나머지는 월요일 다시 정산키로 했다. 정산할 때까지 우선 개인당 $250씩 지급, C/E의 작업지급문제가 되다. 일도 않고 애만 먹였으니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체선원들의 의사는 이해가 가지만 그 방법에는 무리가 있다.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으나 그러기엔 너무나 질서가 문란해질 것도 같고 또한 그대로 하기에는 부당성도 있다. 중간 입장인 C/O나 1/E 그리고 두 직장 영감들이 욕을 먹고 꾸중을 들었지만 역시 그네들 입장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행동이 끝까지 말썽이 되고 있다. 몹시 기분이 언짢다. 남은 기간 그리고 여기서 6월 10일은 넘겨야 하는 현재의 사정. 그렇다고 그를 보내 버릴 수 없는 선내의 딱함이 얽히고 설킨 셈이다. 어느 놈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나 새 냉동사도 문제가 되고 있다. 1/E을 위시한 기관사들의 저의도 짐작한다. 오직 그 원인은 하나뿐이다. 좌우지간 이번 기회로서 하나를 끝맺자. 더 이상 지난 일을 가지고 논하지 말자고 -. 지금까지 그가 받은 심적 고충도, 수모도 감안을 해야 한다고 모두에게 얘기해줄 필요도 있다. Las만 뜨면 물에 뛰어내리지는 못할 테니-. 수일전부터 냉동사에 대한 말이 있더니 본격적으로 나온다.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행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밑에 거느리고 시키고 쓰는 사람들의 컨트롤까지 자시에게 속해 있음을 잊고 있다. 소위 기사면허장을 갖고 있다는 몇 사람이 같은 동료한 사람을 통솔하지 못하고 흉만 본다면 그것은 본인자체의 결함도 문제가 되지만 그 상급자들도 책임을 느껴야 할 것 아닌가?
이 딱한 양반들아!- 수단은 자기의 방법이다. 어떤 수단을 쓰던 소기의 목적을 원만히 달성 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그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은 저절로 묻히게 마련이지만 아무리 과정이 바르고 좋다고 해도 결과가 시원치 못하면 피장파장이다. 식품 냉동고가 말썽이군. 모두들 제나 내나 얕은 수 가지고 빌어먹고 살기 위해선 자신들의 속을 감추고 치부를 들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공통된 사실이지만 모르고 약한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또 잘하는 놈 있으면 받아드리고 배울 수 있는 융통성이 없이 시기가 앞서고 비난을 딴 곳으로 돌려 댄다면 뭐가 될 것인가? 항상 연구하고 찾는 마음가짐, 얕은 경험만을 밑천 삼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좀 더 일찍 깨닫는 사람이 곧 자기 발전이 있고 말수도 적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여길 떠나는 날까지 이게 또 속을 썩힐 것 같기도 하다만 예상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모든 정리가 끝나는 날부터는 전처럼 그냥 두지는 않을테니. 더욱 조바심나게 닥달내지 않으면 의외의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갑판부는 갑판상, 기관부는 기관실 내부의 필요한 정비작업에 일과 시간을 소비시킴으로서 잡념이나 유혹을 잊게 해주는 것도 한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부터 C/E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 줘야 하고 그로 인해서 영향을 받든 중간책임자들의 입장도 다시 세워 주야겠다. 다 된 죽에 코 빠지는 격이 되지 않도록-. 지난 1년간 선주가 알지 못하는 제반 여건 속에서 보낸 고역들이 실감 있게 받아드려지느냐? 않느냐 하는 것도 이번 일본 도착과 함께 나타나 진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자신의 문제다. 선체 궁둥이 부분에 받친 상처가 千慮一失이지만 그 동안의 안전무사한 운항이 모두 내 탓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28th. May(일)
식중독이 가라앉는다. 다행한 일이다. 긁은 자리가 진흙바닥에 자동차 지나간 듯이 붉게 패인 곳도 있다. 무얼 먹어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건덕지가 없다. Bridge에 당직중인 2갑원과 Casset 때문에 티걱거리던 C/E가 기어코 내려왔다. 제 말 마따나 맑은 정신으로는 도저히 올 수 없어 솔곳이 한 잔 걸쳤다. 징징 울었다가, 성냈다가, 빌다가, 웃었다가. 마치 실성한 사람 같다. 서너시간을 한마디 대꾸 없이 두었다. 같은 말이 세 번 나오면 이미 끝장은 난 것이다. 제풀에 꺾여 수그러지고 되돌아 갔지만 한심스럽다. 아무래도 한 달 동안 무사해질 것 같은 생각이 없다.
묵은 종기는 터뜨려야 하고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자꾸만 타래실 꼬이듯이 외딴길로 꼬여가는 본선의 입장이 안타깝고 원망스럽기도 하다만, 그러나 어쨌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 항해의 성취는 내 의무고 책임이다. 또한 내 능력에 달렸기도 하다. 어떤 수를 쓰던 그들을 지휘하고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각자의 직무에 소홀히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감정을 극히 자제하고 분명한 명분하에 이끌어 가야 한다. 본선으로서도 내게 있어서도 한 고비가 될 것이다. 두들기고 밀어보자. 목적은 하나뿐이다. 새살이 돋아나기까지 잡다한 건덕지는 뜯어내야 하고 그 아픔도 참아야 한다. 그래서 새 살이 서서히 자리를 굳혀갈 때면 저절로 아물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정도의 주정은 받아주고 이해를 해주자. 근본적인 정신 자세만 잃지 않는 다면 -. 술이 싫어진다. 한 잔 하곱던 생각이 이런 꼴을 보면 싹 가신다. 술 자체가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다.
29th. May(월)
Agent에 들려 2/O, 2/Q, 3/Q 병원 보내다. 수리 및 보급신청서 제출하고 수배 Order도 마쳤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입항한 Tokyo Reefer의 다음이라는 예정을 받다. Canpex의 Mr. 육. 전, 강과 같이 Casa De Corea에서 비빔밥으로 점심하다. 日魯사무실을 통해 운항지시서를 받다. 사무소장 沢村(Sawamura)에게 협조 부탁했으나 그도 아직은 내용을 자세히 모른다. 동경과 Furucasa 지시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Canpex와는 정산을 마쳤다. Mr.Tikam이 London가고 부재. NH3 350Kg Canpex Charge로 수배할 것을 요구하다. Lagos에서 빌려준 것이다. Agent의 山下씨. 협정서 작성은 자기 소관이 아니란다. 日魯소장도 같은 대답. 즉시 동경 德丸에 타전토록 했으나 이미 동경에서는 사전 협의가 있은 모양이다. 본사들 사이에서 할 예정이라고-.
2타수 입원하다. 링겔르 즉시 주사했다고 한다. 말라리아가 맞는 모양. 작업비 잔액, 주부식 여분, 작업복대, 모두 정리를 끝내다.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다. 5월말 현재로선 모든 결산을 마친 셈이다. 4명분의 결원수당까지 책정했으나 지불은 일단 회사와 연락한 후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Bilbao 은행에서 선용금을 미 달러로 찾다. 전보다 달러 사정이 많이 좋아진가 보다. 그만큼 $가 흔해지고 싸졌단 의미도 된다.
30th. May(화)
작업비 등을 각자에게 지불하기 전에 운항지시서(Sailing Instruction) 및 내일부터 해야 할 작업과 일과 수행을 철저히 지킬 것을 Saloon Class에게 지시하고 완전 정산을 끝마쳤다. C/E의 궁상스런 변명이 있었으나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처리, 봐주는 반면 최종 다짐을 받다. 더 이상의 말썽은 없을 것이다. 1/E가 냉동사에 대한 불만이 많음을 토로한다. 일단은 그의 Part에서 책임을 지고 해결토록 했으나 새로운 불씨가 될 우려가 있다. 좀 더 자세한 원인 규명이 있어야겠다. 오후 병원 방문, 닝겔 두서 병에 자기 정신을 찾은 2/Q의 모습에 우선 다행스러움을 가진다. 많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일부러 채용됐다는 Mr. Lee 그리고 일본인을 위한 여자 간호원을 두고 있다. 병명은 아직 검사 중이란다.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 Kano Reefer의 1/E의 사망 소식을 듣다. 섬찟한 느낌이다. 결국 말썽 많던 배에서 그런 일마져 생겼군. 아무도 없는 타국만리 객지에서 불귀의 객이 돼다니 -. Dakar에서 수혈. 입원 후 수술했으나 이미 손댈 수 없을 정도라 도로 꿰맸고 일행이 있을 경우 함께 귀국시키기로 했다는 소릴 엊그제 Canpex에서 들었었는데-.
마침 입원중인 전 日魯소장을 문안 온 Mateo의 Mr.西村부처와 그들의 꼬마를 만났다. 언제 봐도 깎듯이 상냥스러운 왜년들에게서 심술이 난다. 한창 재롱을 부리는 그의 딸에게서 내 딸들의 환상을 찾았고 -. ‘ふじ(후지)’라는 일식집에서 三浦군과 식사하다. 모처럼 일본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는데 많이 먹히질 않는 모양이다. ‘またきます(다시 옵시다)’ 그 한마디가 기대에 차 있는 듯하다. 역시 보이는 것이 모두 공해다. 가볍게 한잔한 기분이 좋아지기보다 시기와 화만 나게 한다. ‘몽땅 내 것으로 할 수 없을까?’. Las도 물가가 많이도 올랐다. Bus나 Texi의 공공 요금부터-. $의 가치도 내렸다. 바야흐로 자국의 이권을 위해, 개인은 자기자신의 부의 축척을 위해 필사적인 경쟁과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다. 너희들이 아무리 휘황찬란하게 해두고 날 꼬셔봐라 내가 넘어 가는가. 아무리 봐도 탐스러운 털옷들. 그 속에 푹 쌓인 아담한 마누라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세금만해도 200여만원이 된다는데 -. 1년을 죽자고 번 것이 저거 하나 값만 못 한데서야 말이 안 된다. 1-2천달러를 써버리기에는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운 곳이다. 한푼 두푼 모이는 재미에 아예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묵호시절 ‘보지골’를 보면서 ‘하면 개좆이고 안 하면 고자’라던 김원술 기관장 영감의 말처럼 죽치고 들어앉아 있기도, 나오기도 고통스러운 Laspalmas다. 어서 떠나고 싶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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