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다른세대
2022. 9. 11(주일낮예배) 사사기 2:6-10
THE(Times Higher Education)라고 하는 기관에서 2022년 세계대학순위를 발표하였다. 99개국 1,600개 이상의 대학을 평가한 THE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학을 54위로 평가하였다. 대학의 각 학과별로 순위를 정하고, 그 순위점수를 종합했을 때 서울대학 54위, 성균관대 122위, 연세대 151위, 고려대 201-250위, 경희대 251-300위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 세계 1위의 대학은 어디겠는가? 1위가 영국의 옥스포트 대학이었고, 2위가 미국의 칼텍대학, 3위가 하버드대학이었다. 그런데 실제와 상관없이 우리 마음에 영원한 최고의 대학은 하버드이다. 왜냐하면 하버드는 미국최초의 대학이고, 미국 대통령과 억만장자,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시작은 뉴칼리지라는 단과대학이었다. 1636년 메사추세츠주의 지도자들이 신학교로 세웠는데,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년~1638년)가 780파운드를 기부하면서 학교 이름을 하버드로 개명하였다. 780파운드는 당시 식민지 1년 세금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미국 챨스타운으로 이주하여 목회자로 또 법무부 위원으로 존경받고 있던 하버드는 결핵으로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그의 전재산을 기부한 것이다. 이에 매사추세츠 의회는 하버드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교명을 하버드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교문에 하버드가 주장하던 신념을 새겨 놓았다.
학문을 발전시켜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전해주며, 장차 교회가 학문을 배우지 못한 목회자에게 맡겨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죽어가는 하버드는 자신의 전재산을 기부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해지며, 또 자녀들이 학문에 증진하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전재산을 다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만큼 중요한 바람이 있는가? 여호수아서의 시작은 모세의 죽음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을 인도한 모세가 가나안 땅 앞에서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고, 이제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간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수 1:1)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사사기의 시작도 비슷하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삿 1:1)로 시작한다.
무슨 말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광야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모세가 죽은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엄청난 위기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이스라엘은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아는가? 여호수아서의 제일 마지막은 여호수아가 오직 나와 네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수 24:15)고 유언을 말하고,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겠다(수24:18)고 약속한다. 그런데 사사기 마지막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삿 21:25)고 기록한다.
왜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결말에 차이가 나는가? 2016년 구봉서씨는 90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렇게 구봉서씨가 임종한 후 막내 아들이 인터뷰를 하였는데, 아버님은 평안히 눈을 감았다고 평안한 모습으로 말하였다. 사실 교회 장로였던 구봉서씨는 정계진출 등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외길 코미디언의 길을 걸으며 말씀에 따라 반듯한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가정과 사회에서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배삼용씨는 달랐다. 구봉서씨와 같은 해인 1926년에 태어난 배삼룡씨는 훨씬 더 인기있는 코미디언이었다. 그래서 많은 돈과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3번의 이혼과 사업실패를 하였다. 그리고 전두환정권 때는 방송출연이 금지되어서 말년에는 병원비가 없어 소송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인기와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살았던 배삼룡씨는 불쌍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한 배삼룡씨는 자녀들에게도 많은 원망을 받는 아버지였다. 같은 시대 코미디언을 하였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의 결론을 가진 것이다.
여러분은 구봉서와 배삼룡 중 누구의 삶을 살고 싶은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왜 사사기의 결말이 여호수아와 달랐는지를 알려주는 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먼저 본문을 읽기 바란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0세에 여호수아가 죽었고, 그와 함께 한 세대들도 다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후 세대를 다음세대라고 하지 않고, 다른세대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세대는 어떤 세대를 말하는가? 오늘본문을 보면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세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은 애굽땅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광야 40년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가나안 전투에서 승리케 하여 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통하여 들었고, 또 아버지가 체험한 그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그 자녀들은 몰랐다는 것이다.
왜 몰랐겠는가? 그런데 사사기 3장 2절을 보면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세대에 대하여 또 다른 표현을 한다. 먼저 읽기 바란다.
(삿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어떻게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자손이 전쟁을 알지 못하였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답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고생을 모르는 세대로 해석한다. 부모된 세대가 나는 고생을 해도 내 자식은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는 노력하였다. 그래서 부모는 목숨걸고 전쟁하였지만, 자녀들은 부모들이 이루어놓은 그 땅에서 농사짓고, 부요하게 살기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생을 모르는 세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수고와 고생을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고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하는 것이겠는가? 그런데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목숨걸고 헌신한 경험이 없는 세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전쟁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결국 하나님을 위하여 목숨걸고 헌신한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인가? 지난 화요일에 태풍 힌나노로 인하여 새벽기도를 쉬었다. 그때 저는 아내에게 이전에 우리 부모님들은 태풍이 몰려오니까 더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지금은 태풍이 오니까 기도를 멈추는 세대가 되었다고 제가 안타까운 마음을 농담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세대의 신앙의 현주소가 아닌가? 지난 주에 노회를 앞둔 시찰회가 있었다. 그래서 시찰원들이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그때 무척산기도원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목사님들이 다 무척산 기도원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이다. 방학이 되면 기타를 들고 친구들과 무척산 기도원을 올라갔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 기도원에 올라간 저는 기도원에서 파는 마른 나뭇가지를 사서 힘들게 아궁이 불을 지켰다. 그런데 저녁예배시간이 되어서 가야되었는데, 제 생각에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면 불이 꺼져서 다시 힘들게 피워야 할 것같았다. 그래서 아궁이 가득히 나뭇가지를 넣고 예배드리러 갔다. 예배를 마친 후 방에 들어갔는데, 방안에 훈기가 가득한데 너무 뜨거워서 바닥에 앉을 수가 없어서 요를 깔고 그 위에 앉아서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도원 직원이 와서 제가 앉고 있었던 요를 들고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 마당에 던졌는데, 그 순간 요에 불이 붙었다. 방이 너무 뜨거워서 요에 불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 더 미안한 것은 제가 앉은 그 자리 장판이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랬다. 힘들게 무척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밤새 기도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하나님께 헌신하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목이 쉬도록 기도하였다. 교회 부임할 때 사례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하나님이 보내시는 줄 알고 순종하며 가서 열정적으로 사역하였다.
그러면 지금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20대의 신학생들은 우리와 같이 기도하겠는가? 그런데 신학생만 변한 것이 아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쳐서 열정과 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헌신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들어 졌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힘들고 어려운 봉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마저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목숨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열정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다음세대를 세우고 있는가? 다른세대를 세우고 있는가? 우리 자여교회는 다음세대를 세워갈 수 있는 가정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언약 앞에 헌신과 수고하기를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 끝이 세상과 다른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