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을 대하는 온도차이 / 심지현
2024년 어느 날이었다. 집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데 우리 딸과 동갑인 아이가 있는 배가 세 척이나 있다는 부인이 말을 걸어 온다. 내가 동경하던 선주 부인이라니 흥미롭다. 다음 생이 있다면 선주 부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왔다. 말 솜씨가 있는 내 절친 언니가 내가 상냥하고 착해보여도 꼬라지가 장난이 아니며 내 여러 가지 일화를 선주 언니에게 하는 바람에 배꼽을 잡고 웃는다. 친해지니 마음을 열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 놓는다. 게다가 선주 언니 신랑과 우리 신랑이 동갑이다. 신랑들 성향도 비슷하다니 언니가 얼마나 힘드냐며 나를 측은하게 여긴다. 사실은 우리 신랑이 나를 만나 더 고생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도 언니는 우리 동네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았으면서 왜 그동안 놀이터에 안 보였냐고 물으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단다. 효부였다. 서로 반찬도 나눠 먹기도하고 그렇게 지냈다.
시간이 흘러 선주 언니가 생선을 주겠단다. 선별 작업을 거쳐 좋은 것들은 위판을 보고 남은 작은 생선이긴 하나 싱싱하단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소속된 우리 동네 엄마들로 구성된 '커피 공주님' 전원에게 준단다. 깡다리 철에 깡다리가 시작이었다. 꽃게철에는 꽃게를, 갈치, 새우, 병어, 민어 새끼들... 내가 없을 때도 내 몫까지 나눠나서, 내 몫을 챙겨놓은 이에게 먹으라고 했다. 내가 잘 전달받아서 먹은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난 신랑이 생선을 좋아해서 신랑이 사오거나 낚시로 잡아와서 공짜라고 해도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집 냉동실은 공간이 작아서 많이 넣을 수도 없다. 신랑도 먹을 것에는 진심이라서 작은 고기는 쳐다도 안 본다. 생선 손질도 신랑이 거의 한다. 내가 칼을 무서워해서 칼질도 잘 못해서다.
배가 들어와서 생선을 나눌 때도 곤혹스러웠다. 플라스틱 상자에 물고기가 한가득 들어있다. 그런 게 몇 박스나 된다. 거기서 얼음이라도 걷어내고 선주 언니를 돕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다들 비린내도 나고 안 해본 일이라서 그렇다. 선주 언니가 비닐 봉지라도 벌리라고 다른 언니들한테 소리친다. 냉동 탑차 앞에서 아낙네 열댓명이 그러고 있으니 지나가던 주민들도 파는 건 줄 알고 팔라고 해서 선주 언니는 파는 거 아니라며 작은 검정 봉지에 조금 담아 드린다. 이거 그냥 드시고 다음 번엔 또 주라고 하면 안 돼요 하며 건넨다. 그분들은 연거푸 고맙다고 한다. 아까는 그렇게 팔라고 조르더니 이젠 지갑을 집에 두고 왔는데 미안해서 어쩌냐며 간다.
선주 언니는 우리 동네에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난 생선 손질이 싫어서 울게 되는 일이 많아서 적게 받아도 불만이 없는데, 하루는 다 나눠 가지면 가져가는 몫이 적다고 몇 명만 나누기도 해서 비밀 아닌 비밀에 입조심을 해야 했다. 다들 생선을 받는 횟수가 잦아지니 친정이나 시댁이 목포인 곳은 거기로 실어 날렸다. 나도 그럴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며 잠시 부러웠다. 다들 선주 언니에게 고마워서 맛있는 밥 한 번씩 사고 그랬다. 심지어 내 절친한 언니는 몇 시간을 걸려서 선주네 언니 집 생선 손질을 다 해 주느라 연락두절이 되기도 했다. 언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노고를 감내하는 낯선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배가 출항했다가 들어올 때마다 선주 언니 생선을 다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주 언니 얘들이 어려서 언제 다듬겠냔다. 우와. 말도 예쁘게 한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 절친 언니한테 질 수 없다. 난 선주 언니 신랑이 장조림을 좋아한다길래 받은 꽃게와 새우로 간장 게장과 새우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선주 언니가 맛있게 먹었다며 옷을 여러 번 선물해 준다.
이 모든 것을 지켜 본 우리 '커피 공주님'의 여왕벌 언니가 선주 언니에게 한마디 한다. 한 번 줬다고 해서 의무감으로 매번 우리에게 생선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쐐기를 박는다. 사실 여왕벌 언니야말로 아쉬울 게 없다. 신랑 직장이 수협이어서 생선 좋은 걸로만 먹고 살아서다. 그 뒤로 여왕벌 언니는 선주 언니가 비금에서 캐 온 섬초를 나눈다고해도 필요없다며 받지 않는다. 용기있게 말할 줄 아는 여왕벌 언니가 부럽다. 나도 사실 그 생선때문에 고민이 많다. 내가 생선을 받은 척 연기도 그만하고 싶다. 선주 언니가 내 몫을 챙겨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남들 다 받는데 나만 안 받으면 손해인 것 같고, 생선 손질은 하기 싫고... 여러 가지 욕심으로 거절을 못 하는 이런 내가 한심할뿐이다.
첫댓글 하하하, 선주 부인 될 꿈은 계속 지니고 있어도 되잖아요. '커피 프린세스' 모임에 여왕벌도 있고 정말 재미있네요. 그래도 심지현 선생님 글이 더 재미있어요.
고맙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더 재밌게 못 썼어요.
목포는 생선이 흔하지요.
서부초등학교 졸업, 혜인여중 다니다 전학가서 목포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심지현 선생님 요리도 잘하나보네. 신랑이 행복하시겠어요. ㅎ
요리는 신랑이 잘 하고요. 저는 산골에서 고등어만 한 번씩 먹은 게 전부라서 목포 오니까 생선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여기 선생님들 요리의 달인이실텐데 제가 요리 잘한다고 글 써서 죄송합니다.
장조림 잘 하면 살림꾼이지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그래요, 주고 받는 것은 품앗이지요.
간장이 했어요. 선생님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주 부인! 재밌습니다.
4차원이어서 가능한 생각인가 봐요.
상황이 잘 그려져 재밌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커피 공주님들 사이에서 인기 많을 거 같아요.
인기는 없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