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예식의 변화하는 현구고례(見舅姑禮) 문화
이 재 곤
혼인예식장에 근무하던 어느 일요일 예식홀마다 예식을 진행하고 있어서 바쁜데 수모(手母) 한사람이 상기된 얼굴로 사무실에 황급히 들어와서 하는 말이 4층 폐백실에서 폐백을 올리고 시부모께 신부가 절을 하던 중에 신랑의 큰아버지란 사람이 나서서 자기가 폐백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화를 내서 당황했고 수모가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는 것이다.
폐백을 올리는 일은 가문마다 전통이 다른 것이 아니고 혼주인 시부모가 폐백을 먼저 받는 것이 전통이고 예의에 맞다. 그 이후로 각층 담당 수모에게 폐백의 의미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대처하도록 당부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이 말을 잘 쓰지 않는데 현구고례(見舅姑禮)는 신부가 시집가서 신랑의 부모, 즉 시부모를 처음 뵙고서 배례(拜禮)하고 폐백(幣帛)을 울리는 의례로 이때 시가(媤家)의 친족에 대한 상면(相面)의 예도 같이 행하는데 “폐백”을 드린다. 또는 올린다는 말은 현구고례에서 기원(起源)한다.
현대 혼인예식에 있어서 예식홀에서 혼례식이 끝나고 나면 신랑 신부가 옷을 갈아입고 예식장 내 폐백실에서 폐백을 올리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혼례 시 폐백(幣帛)이란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을 말하며 주로 대추나 육포 따위를 올리는데 지금은 시대 따라서 폐백 음식이라 해서 떡, 과일 종류, 구절판(九折坂), 술도 같이 차려 올리는 예가 많고, 혼인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댁으로 보내는 예물도 폐백이라 하며 지난날은 폐백 음식을 각 가정에서 마련하였으나 현대는 편리에 따라 전문점에 주문하여 준비한다.
현구고례 예에 따라 폐백을 받기 위해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마련된 자리에 앉게 되는데 이때 시아버지는 왼쪽에 시어머니는 오른쪽에 앉는다. 시부모가 앉는 쪽이 자연의 방위와는 관계없이 예절 의식상 북쪽이 되고 신부가 서는 쪽이 남쪽이 된다. 즉 신부는 남쪽에서 북향하여 절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신부가 폐백상을 차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수모(手母)가 곁에서 보조하여 미리 차리는데 시아버지 앞에 대추를 올리고 신부가 사배(四拜)하고 시어머니 앞에는 육포를 올리고 사배한다. 그러나 요즘은 절을 재배(再拜)만 하는 예가 많아지고 시부모가 절을 한 번만 하라고 하기도 한다. 폐백을 올릴 때 전통적으로는 신랑은 옆에 서 있고 신부만 절하게 되어 있으나 현대는 신랑 신부가 같이 절을 하는 예가 보편화되었다. 신랑 신부의 복장은 조선시대 전통 혼례 복장을 많이 하는 편이나 지금은 꼭 어떤 복장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고 나름 예식장에서 정해놓은 복장으로 하는데 신랑은 조선시대 관복을 입고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활옷을 입는 것이 대중화 추세다.
시부모님께 폐백 의식이 끝나면 시어머니가 대추 몇 개(혹은 알밤)를 신부의 치마에 던져 주기도 하나 복주머니에 담아서 신부에게 주면 보기에 좋고 간직하기도 편리하다. 이때 시부모가 덕담(德談)을 내리기도 한다. 이 대추는 옛 전통으로는 첫날밤에 신부가 먹는데, 이는 품성이 좋고 똑똑한 자식을 많이 낳도록 바라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덕담의 보편적인 말은 “너는 이제 우리 집에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의 가례(家禮)와 가법(家法)을 잘 배우고 실천하되 어른을 잘 모시고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며 아들 딸 낳아 우리 가문을 더욱 번창하게 해주고 일가친척과도 화목하게 지내다오”하며 폐물이나 신혼여행 경비로 현금을 주기도 하는데 현대에 생겨난 풍습인 것으로 생각된다.
신부가 예식장 폐백실에서 시부모께 폐백을 차려놓고 큰절을 올릴 때의 요령은 수모의 도움을 받아 절할 자리에 서서 앉을 때는 수모가 먼저 앉으며 일어설 때는 신부가 먼저 일어서며 수모는 신부를 부축하여 따라 일어선다.
시부모께 폐백 의식이 끝나면 상면 제친(相面 諸親) 의식을 행한다. 즉 상면 제친은 집안의 여러 어른과 가족을 뵙고 서로 인사하는 예이다. 순서는 시부모의 직계 존속인 시조부모가 계시면 뵙는데 만약 본가에서 폐백을 올리는 경우는 신부를 시조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안내하여 뵙고 큰절을 올린다. 이어서 조부모 계열 어른을 뵙고 다음으로는 백숙 부모와 고모, 당숙 부모와 당고모, 숙(叔) 계열의 어른을 뵙는다.
다음으로는 신랑과 동 항렬로 손윗사람은 동쪽에서 서향해 서고 신부는 서쪽에서 동향해 서서 마주 보고 평절로 맞절한다. 같은 세대의 아랫사람은 서쪽에서 동향해 서고 신부는 동쪽으로 가서 서향해 서서 평절로 맞절한다. 장소가 마땅치 못하면 자리의 여건에 맞추어 예의범절에 맞게 행하면 된다.
근래에 와서 현구고례 의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또는 양가(兩家)의 사정에 맞추어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여 시가의 폐백 의식이 끝나면 다음에 만나기가 어려우니 신부 친정집 가족도 와서 서로 인사를 하는 상견례 의식 같이 행하는 예가 어느 순간에 보편화되어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시대가 변해 예의범절도 따라 달라져 어쩔 수 없는 사정이니 변화를 순리라 받아들이고 따라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