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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하지 않으시는 약속. / 断罪なさらない約束。(2023년 5월 28일 주일예배)
본문; 요한복음 13:1-11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11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 さて、過越祭の前のことである。イエスは、この世から父のもとへ移る御自分の時が来たことを悟り、世にいる弟子たちを愛して、この上なく愛し抜かれた。2. 夕食のときであった。既に悪魔は、イスカリオテのシモンの子ユダに、イエスを裏切る考えを抱かせていた。3. イエスは、父がすべてを御自分の手にゆだねられたこと、また、御自分が神のもとから来て、神のもとに帰ろうとしていることを悟り、4. 食事の席から立ち上がって上着を脱ぎ、手ぬぐいを取って腰にまとわれた。5. それから、たらいに水をくんで弟子たちの足を洗い、腰にまとった手ぬぐいでふき始められた。6. シモン․ペトロのところに来ると、ペトロは、「主よ、あなたがわたしの足を洗ってくださるのですか」と言った。7. イエスは答えて、「わたしのしていることは、今あなたには分かるまいが、後で、分かるようになる」と言われた。8. ペトロが、「わたしの足など、決して洗わないでください」と言うと、イエスは、「もしわたしがあなたを洗わないなら、あなたはわたしと何のかかわりもないことになる」と答えられた。9. そこでシモン․ペトロが言った。「主よ、足だけでなく、手も頭も。」10. イエスは言われた。「既に体を洗った者は、全身清いのだから、足だけ洗えばよい。あなたがたは清いのだが、皆が清いわけではない。」11. イエスは、御自分を裏切ろうとしている者がだれであるかを知っておられた。それで、「皆が清いわけではない」と言われたのである。
지난 주일에는 죄사함의 은혜에 관하여 말씀을 통해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죄악도 용서하시고, 그 죄에 대한 처벌의 대가를 치르신 능력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능력인지 우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고 따라 순종하는 인생은 이 세상에 다른 무엇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인 것이지요.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와 실력에 매여 사는 탐욕적인 삶에서 주님의 능력과 항상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의 제물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시던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이 있던 이 장소를 대체로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좁고 어두운 장소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다락방이란 석조로 지어진 일반주택건물의 윗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곳의 외부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구요. 내부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 뒤에 성령님께서 불처럼 강림하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당시 이 윗층방에서 일어났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3-4)
예, 바로 오늘이 바로 그 성령께서 불의 혀처럼 이 땅에 강림하신 사실을 기념하며 기억하는 절기인 성령강림주일인데요.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은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의 차이에 대해서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지난 3주간에 걸쳐서 우리가 십자가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인임을 기억하며 나는 죽고 예수로 살자는 말씀(즉 예수동행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구체적으로 성령의 열매와 그 증거들로 나타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갈 5:22-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성령을 받은 이들의 삶과 내면에는 지금 이와 같은 열매가 맺히고 있다는 약속입니다. 하나하나의 덕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태도와 자세의 인생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완전히 성화되어 가는 인생에서 성령의 열매는 너무도 자연스레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성령의 열매가 한순간에 짠하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령의 이런 증거를 ‘열매’라고 비유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열매가 맺는 데에는 최적의 환경적인 여건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도 마찬가지 그 모습이 온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 삶을 사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현실에서 죄와 유혹의 문제로 실족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으로 행하면 반드시 열매는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요? 또 어떻게 해야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바로 서로 발을 씻어주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발을 씻는다는 것은 곧 죄로 인해 더러워진 곳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주며 당신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된 14절 말씀에 보시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이렇게 해 주며, 서로를 지켜 주라고 명령하시는 구절이 있지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
발을 씻어주는 것은 섬기는 것인데요.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이 종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마음에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이의 대속제물(화목제물)이 되셔야 한다는 말씀이 불편하여 예수님께 화를 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발만 씻지 마시고, 몸까지 씻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온몸이 깨끗하다고 하시며,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도 하시는데요. 온몸이 깨끗하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속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구요. 그 믿음 안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 혹은 이제 분명히 받을 사람인 것을 인정하시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시 돌이키지 않은 가룟 유다의 존재를 염두에 두시고 모두는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럼 논리적으로 아직 제자들이 거룩함을 이루지 못했고, 성령의 열매도 거두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온몸을 깨끗하게 씻은 자들이라고 하신 것일까요? 바로 여기서 성령께 속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께 속해 있는 성도도 여전히 육신의 삶을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실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요. 인간의 육신은 여전히 죄의 유혹에 취약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하나하나 예를 들지 않아도 저와 여러분의 일상적인 삶과 그 가운데에서의 자신의 태도와 자세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단 한 번의 제사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처벌을 대신 속죄하시고 해결하셨습니다.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앞서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이 깨끗하다 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물론 아직은 시차가 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야 모든 죄가 속죄받고 온전하게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전이라도 이미 주님께서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미 그렇다”라고 말씀하셔도 틀림이 없는 것이지요. 다만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 은혜를 누릴 기회를 스스로 박탈당하게 되지요.
여하튼, 우리는 이제 죄와 상관없는 존재이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고 있는 발은 자주 씻어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이단 종파(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은 한 번 죄 용서를 받으면 다시는 정죄 받지 않는다면서 죄를 짓더라도 구원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은 앞부분은 맞지만, 뒷부분은 맞지 않기에 완전히 틀린 말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주님께 회개하여 거짓말의 죄를 용서받고 보혈로 거짓말의 죄가 씻겼기 때문에 다시 거짓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인 것인데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속죄하신 성도가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죄를 받지 않는 것과 죄에 대해서 징계를 받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지으면 그 죄에 합당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 3:1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가 잘못을 저지르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심정으로 가슴 아파하시며 징계하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유혹과 실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사람이라도 범죄의 유혹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육체의 소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은 거스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인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더 이상의 정죄는 없습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그 점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더 이상 우리에게 결코 정죄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목욕한 이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지옥이나 멸망할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이유는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실감나게 체감하게 하시기 위해서 각자에게 임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임재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수시로 발을 씻어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말에는 어떤 나쁜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손을 씻는다”는 표현이 있지요. 그런데 일본어에는 발을 씻는다고 표현하더라구요? 매우 성경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경험해 본 바, 한 번 발을 씻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죠.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하게 되면 할 때마다 씻어야 합니다. 다시 온몸을 다 씻을 필요는 없으나, 이 죄악 세상에서 돌아다니느라 더러워진 발을 계속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거룩함과 정결함과 구원의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회개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회개는 한 번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리는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구원을 위한 회개는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영생을 얻는 회개를 했다고 해서... 목욕을 했다고 해서 발이 더러워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구원에 대한 확신과 깨우침이 있어서 더 이상 회개하지 않고 현실의 삶에서 저지르게 되는 작고 큰 범죄를 그대로 방치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하늘의 소망을 한 번 맛보고도 타락한 자와 같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 6:5-6)
물론 주님의 구원은 영원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구원이라도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얼마든지 빼앗길 수 있다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반복되는 허물과 죄에 대한 반복된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우리 일상의 모든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그 범죄의 행실이 우리를 삼키게 될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범죄에 우리가 패배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 죄의 유혹을 이길 때까지 회개하는 것이지요. 반복되는 죄와 허물 때문에 근심하고 낙심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근심과 그로 인한 회개의 반복이 우리의 영생을 지켜줍니다. 우리의 거룩함과 정결함, 그리고 경건한 일상생활을 이어갈 기회를 주십니다. 마치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말이지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회개하며 죄와 싸우게 되고, 또 싸워야 합니다. 만일 죄와 싸우지도 않고... 죄를 저질러도 더 이상 양심에 가책도 없고, 찔림도 없고, 죄를 짓고 나서의 근심도 없다면 우리는 정말 심각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타락하여 주님께 버림받은 처지일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8)
여기서 말하는 합당하지 못한 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연이어 29-3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9-31)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죄를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죄가 세상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사는 양념과 같은 것이라고까지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맞이하는 오순절에 강림하셔서, 오늘날까지 줄곧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일깨워 죄에서 멀리하고, 죄를 이기게 하시는 회개의 유익함과 권능을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죄를 이기는 회개의 유익함과 권능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능력에 의지하여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그리고 죄사함을 받은 은혜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회개의 권능을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더 이상 정죄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시로 징계하시며 근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징계로 인한 근심이 곧 우리가 영생에 속한 자임을 더욱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안에 임재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일깨워주시는 죄와 허물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회개로 죄와 싸워 반드시 승리하는 경건하고 거룩한 소명을 이루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울러 죄에 대해 죽은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예수로 사는 놀랍고 복된 삶의 궤적을 쌓는 일상생활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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