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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장 나쁜 장애를 대치하는 법
대치對治란
병의 증상에 따라 상반되는 약으로 상대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뜨거움은 차가움으로 다스리고, 차가움은 뜨거움으로 다스리는 것이 대치이다.
그러므로 지止를 행하다 병이 생기면 관법으로 다스리고,
관觀을 행하다 병이 생기면 지법으로 다스린다.
지관문止觀門에서 열다섯 가지 방법47)을 세운 것은 바로 열다섯 가지 병의 증세를 대치하기 위한 것이다.
47)열다섯 가지 방법 : 앞서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설명하면서 수행문을 아나파나문阿那波那門·부정관문不淨觀門·자심관문慈心觀門·인연관문因緣觀門·염불문念佛門의 다섯 가지로 나누고 각각에 세 가지 법이 있음을 밝혔다. 아나파나문에는 수식數息·수식隨息·관식觀息이 있고, 부정관문에는 구상九想·배사背捨·대부정관大不淨觀이 있고, 자심관문에는 중생연자衆生緣慈·법연자法緣慈·무연자無緣慈가 있고, 인연관문에는 삼세십이인연三世十二因緣·과보십이인연果報十二因緣·일념십이인연一念十二因緣이 있고, 염불문에는 염응불念應佛·염보불念報佛·염법불念法佛이 있다.
그러나 의술에는
바로 대치하는 방법뿐 아니라
바꾸어 치료하는 방법(轉治)과
겸해서 치료하는 방법(兼治)도 있다.
바꾸어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바뀌면 치료법도 바뀌는 것을 말하고,
겸해서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두세 가지 증상을 겸하고 있으면 치료법 역시 겸하는 것이다.
법문의 방편도 이와 같으니 해당하는 사람에 따라서 잘 분별해야만 한다.
따라서 만약 지나치게 날카로운 마음에서 각관覺觀이 일어나는 병이 있다면 응당 호흡을 세도록(數息) 가르쳐야 한다.
왜 그런가?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면서 중간에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지러운 생각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살피면서 숫자를 분명하게 세면 능히 날카롭게 따지는 마음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흡을 세는 법으로 그 병을 없애는 것이다.
만일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각관의 병이 있다면 호흡을 따라야만(隨息)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따라 마음이 항상 호흡을 의지하면, 호흡이 거칠 때에는 마음도 따라 거칠어지고 호흡이 가늘 때에는 마음도 따라 미세해진다.
마음과 호흡이 미세할 때 각과 관을 깨뜨릴 수 있고, 마음이 밝은 거울처럼 고요해지고, 호흡의 길고 짧음과 가고 옴을 알게 되며, 비추는 작용이 분명할 때 혼침을 깨뜨릴 수 있다.
(이런 병에)
만약 호흡을 세는 법을 닦으면 혼침을 부추기는 허물이 있고,
호흡을 관찰하는 법을 수행하면 들뜨고 어지러워지는 과실이 있으니,
그것은 잘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호흡을 따르는 법만이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각관의 병을) 바로 대치할 수 있다.
만일 어둡고 가라앉은 마음에서 각관이 일어나는 병이 있다면 호흡을 관찰해야만(觀息) 한다.
숨이 들어올 때 이 숨이 어디로부터 와서 중간에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이르는지 자세히 관찰한다.
그 숨이 나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그 근원을 찾아보면 나가도 흩어짐이 없고 들어와도 쌓이는 것이 없어 정해진 모습을 볼 수 없다.
밝은 마음으로 관찰하고 비추면 마음의 눈이 곧장 열리기 때문에 혼침을 깨뜨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호흡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산란함을 부순다.
그러므로 호흡을 관찰하면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
惡障對治法第三十九章
對治者。隨其病症。以相反藥。對而治
之。如熱以冷治。冷以熱治。是爲對治。
故止中病生者。以觀法治之。觀中病
生者。以止法治之。止觀門中。列立十
五方法者。正以對治。十五症病也。然醫
方有正對治。亦有轉治。兼治之法。轉
治者。病轉而法亦轉。兼治者。病兼兩
三症。而治法亦兼。法門方便。亦復如
是。惟在當人。善爲分別也。
是故若有利心覺觀之病者。即應敎令
數息。何以故。繫心在息。從一至十。中
間不忘。則能破亂想。潜心詳審。記數
分明。則能治明利。是以數息。能除其
病也。
若有半明半昏覺觀之病者。即應隨息。
隨息出入。心常依息。則息麁心亦麤。
息細心亦細。心息細時。能破覺觀。心
靜明鑒。知息之長短去就。照用分明時。
能破昏沈。若數息有扶昏之過。觀息有
浮亂之失。非其善對。惟是隨息。正爲
對治故爾。
若有昏沈心中覺觀之病者。即應觀息。
息入時。諦觀此息。從何處來。中間經
歷。入至何處。觀其出息。亦復如是。求
其根源。出無分散。入無積聚。不見定
想。明心觀照。心眼即開故。破其昏沈。
靜心依息故。破其散亂。是以觀息。能
治其病也。
만일 바깥 대상에 대해 탐욕이 많고 음란한 마음이 쉬지 않으면 더러움을 살피는 구상관九想觀을 닦아야만 한다.
생각만으로 대적할 수 없다면 직접 무덤으로 가서 시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그 시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인연 있는 자라 여기고 위아래를 자세히 보며 안팎으로 잘 헤아린다.
그러면 부풀어 오르고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이 흘러나오며 대소변이나 탐내는 온갖 벌레들이 갉아 먹는 것만 보게 된다.
“지금 내가 반연하는 대상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어디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면 음란한 마음이 저절로 쉬게 된다.
그러므로 구상관으로 그런 병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안팎으로 탐욕을 부르는 번뇌의 병이 있다면 배사背捨 등의 관법을 행해야만 한다.
내 몸의 더러움을 자세히 관찰하여 안(자신)에 대한 탐욕을 부수고, 또 바깥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바깥에 대한 탐욕을 떠난다.
이것이 바로 초배사初背捨이니,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안팎의 색을 관찰하여 안팎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병을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배사로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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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온갖 곳에 모두 탐욕과 애착을 일으킨다면 모든 곳을 반연하는 대부정관大不淨觀을 행해야 한다.
모든 남자와 여자, 자기 몸과 다른 사람의 몸, 토지와 집과 의복 등 세간의 모든 존재를 관찰하여 그것은 모두 더러운 것으로 어느 한 곳도 욕심내고 집착할 것이 없다고 본다.
이로 말미암아 온갖 곳에 대해 모두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긴다.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기면 곧 탐욕이 일어날 만한 연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정관으로 그 병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도리에 맞지 않게 잘못 성내는 병이 있다면 중생을 반연한 자심(衆生緣慈)을 닦아야만 한다.
가까운 한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취하여 그것을 반연해 선정에 들어간다.
가까운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별 감정이 없는 사람이나 원한이 있는 사람까지 모두 즐거움을 얻게 하여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하여 기쁘다는 생각을 낼 수 있으면 중생들 틈에서 성내고 괴롭히고 원수지고 해치려던 마음이 저절로 파괴된다.
그러므로 자심관慈心觀으로 성내는 마음의 병을 없앨 수 있다.
若外貪慾多。婬心不歇者。應作不淨九
想觀。想猶不敵。直至塚間。諦觀屍相
以其屍。代作所愛所緣之物。上下審視。
內外諦量。但見肨脹爛壞。膿血流出。
大小便利。諸蟲唼食。今我所緣者。亦
應如是。何處可愛。作是觀已。婬心自
息。是以九想。能治其病也。
若有內外貪欲煩惱病者。當作背捨等
觀。諦觀內身不淨。以破內貪。又觀外
身不淨。以離外貪。是則初背捨。以是
不淨心。觀內外色。能捨內外愛著之病。
是以背捨。能治其病也。
若一切處。皆起貪愛者。應作緣一切處
大不淨觀。觀一切男女自身他身。田宅
衣服。世間諸有。皆見其不淨。而無一
處。可貪愛者。由是一切處。皆生厭離心。
厭離心生。則貪欲無緣可起。是以大不
淨觀。能除其病也。
若有非理邪嗔之病者。應修衆生緣慈。
取一親人。得樂之相。緣之入定。如是
見親人得樂。中人怨人。皆令得樂。而
取他樂相。能生喜念。則衆生中。瞋惱
怨害之心。自然破滅。是以慈心觀。能
除瞋心之病也。
만일 그릇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이치에 맞게 성을 낸다면 법을 반연한 자심관(法緣慈觀)을 닦아야만 한다.
“오음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서 중생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지켰느니 범했느니 하며 시비할 수 있겠는가? 다만 느낌 가운데 법의 즐거움을 반연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심과 사랑하는 생각을 베풀어야지 괴롭혀서는 안 된다.”
이렇게 관하면 시비가 저절로 없어지고 성내는 마음도 자연히 쉬게 된다.
이것이 법을 반연한 자심을 행하여 그 병을 다스리는 것이다.
만일 법에 대해 논쟁하며 성을 낸다면 반연함이 없는 자심(無緣慈)을 닦아야만 한다.
왜 그런가? 이 사람은 자기 견해를 옳다고 여겨 자신과 같으면 기뻐하고 자신과 어긋나면 성을 내는데, 기뻐하거나 성내는 마음은 법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 것이다.
만약 반연함이 없는 자심을 행한다면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둘 곳이 사라져 온갖 법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게 된다.
이미 기억하고 생각함이 없는데 어찌 말다툼이 일어나겠는가?
큰 사랑과 평등으로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이 없게 한다.
그러므로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삿된 견해가 있다면 삼세三世의 십이인연을 관찰해야만 한다.
과거에 두 가지가 있고, 현재에 여덟 가지가 있고, 미래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것이 십이인연이다.
삼세가 서로 원인이 되어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십이인연은 다음과 같다.
과거의 번뇌를 무명無明이라고 하고,
과거의 업을 행行이라 한다.
현세에서 처음 모태에 드는 것이 식識이고,
태에 들어가 눈·귀·코·혀 네 근이 갖춰진 때가 명색名色이며,
네 가지 근이 갖춰졌어도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때가 육입六入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분별하기 전을 촉觸이라 하고,
물들어 익숙해진 것을 오로지 좋아하는 것이 수受이다.
다섯 가지 욕망을 익히고 가까이하는 것이 애愛이고,
안팎으로 탐내며 구하는 것이 취取이며,
신·구·의 삼업을 일으키는 것이 유有이다.
현세의 식이 내세의 생生이 되고,
현세의 명색·육입·촉·수는 내세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된다.
따라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식을 연하여 명색이, 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육입을 연하여 촉이, 촉을 연하여 수가, 수를 연하여 애가, 애를 연하여 취가, 취를 연하여 유가, 유를 연하여 생이,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는 것이다.
이 십이인연법은 그 모습이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영원한 것도 아니고,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삼세가 서로 원인이 되어 돌고 돌아 끝이 없는 것이다.
만약 십이인연을 잘 관찰할 수 있다면 삿된 견해의 병인 단견과 상견을 다스릴 수 있다.
若見人作非法而起正嗔者。應修法緣
慈觀。五陰虛假。不見衆生。豈有持犯。
是非之事。但緣受中法樂。以與他慈
心愛念。而不可加惱。則是非自泯。瞋
心自息。是爲行法緣慈。能治其病也。
若以法中。諍論而起嗔者。應修無緣慈。
何以故。此人以己見爲是。而同我者喜。
違我者嗔。喜瞋之心。生於法執。若行
無緣慈。則言語道斷。心行處滅。於一
切法。不念不憶。旣無憶念。有何諍訟。
大慈平等。與樂無惱。是以能治其病也。
若有斷常邪見者。應觀三世十二因緣。
過去有二。現在有八。未來有二。是爲
十二因緣。三世相因。不常不斷。十二因緣者。過去
煩惱。名爲無明。過去業爲行。現在世中。始受胎者爲識。入胎而四根旣具時。爲名色。四根旣具而未知
觸時。爲六入。未別苦樂爲觸。染習一愛爲受。習近五欲爲愛。內外貪求爲取。起身口意業爲有。現在世
識。爲來世生。現在名色六入觸受。爲來世生老病死。 故無明緣行。行緣識。識緣名色。名色緣六入。六入
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此十二緣法。相幻故非常。相續故非斷。三
世相因。循環無窮也。若能善觀十二因緣。則能治
斷常邪見之病也。
若發計有無邪見者。應觀果報十二因
緣觀。現在歌羅邏時。名曰無明。而乃
至生老死等。現在即有。五陰十二入
만일 유견有見과 무견無見의 삿된 견해를 일으킨다면 과보果報의 십이인연관을 관찰해야만 한다.
현세의 가라라歌羅邏 때를 무명이라 하고, 나아가 태어남·늙음·죽음 등 현세에 존재하는 것들은 오음·십이입·십팔계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가라라 때에는 곧 명命·난暖·식識 세 가지만 있다. 따라서 무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미 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기에 고유한 자기 성품이 없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나아가 늙음과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공도 아니고 존재도 아님을 안다면 공견空見과 유견有見 두 가지 견해의 병을 깨뜨릴 수 있다.
만일 세간의 성품을 헤아리는 삿된 견해가 있다면, 그는 미세한 본성이 만법을 낳을 수 있다고 헤아리게 된다.
그럴 때는 일념一念의 십이인연관을 닦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일념 가운데 십이인연이 갖춰져 있음을 깊이 관찰하면 일념은 십이인연이 아니요, 십이인연은 일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념에 의거하여 십이인연을 설하고, 십이인연에 의거하여 일념을 설한다. 따라서 일념에는 고정된 성품이 없음을 알아야만 한다.
이미 일념에 고정된 성품이 없다면 세간의 성품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관으로 그 병을 깨뜨릴 수 있다.
만일 어둡고 가라앉아서 캄캄하게 막히는 장애가 있다면 응신불의 삼십이상 중 먼저 한 모습을 취해 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면 눈을 감고 먼저 부처님 미간의 백호상을 관찰한다.
마음이 어둡고 둔하여 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의 불상을 마주한 뒤 한마음으로 그것을 반연한다.
이렇게 하여 선정에 들었는데도 여전히 명료하지 않으면 눈을 뜨고 쳐다본 후 눈을 감고 다시 관찰한다.
이와 같이 정진하면 하나의 상호가 분명해진다.
이렇게 차례대로 삼십이상을 두루 관찰하여 마음의 눈이 밝게 열리게 하면 어둡고 가라앉고 침침하고 졸리던 마음을 깨뜨릴 수 있다.
염불의 공덕이 죄의 장애를 없앤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十八界成就。皆從因緣而生也。此歌羅
邏時。即有命暖識三事。故名無明。此
旣從緣而生。無有自性。不可言有。不
可言無。乃至老死。亦復如是。若知非
空非有。則能破空有二見之病也。
若有計世性邪見者。彼計細微之性。能
生萬法。應敎還作一念十二緣觀。何以
故。行者。深觀一念之中。具足十二。則
一非十二。十二非一。而今約一說十二。
約十二說一。當知一無定性也。旣無定
一。則世性不可得。是故此觀。能破其
病也。
若有昏沈闇塞障者。敎觀應佛三十二
相中。先取一相。或閉目先觀佛之眉間
毫相。而心若闇鈍。懸作不成。當對一
像。一心緣之。入定猶不明了。開眼瞻
視。後閉目更觀。如是精進。一相明了。
次第徧觀三十二相。使心眼開明。能破
昏沈闇睡之心。念佛功德。即除罪障者
是也。
若有惡念障者。應念報佛功德。以正念
之心。緣佛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
一切種智。圓照法界。常寂不動。普現
色身。利益一切。功德無量。不可思議。
만일 나쁜 생각의 장애가 있다면 보신불의 공덕을 생각해야만 한다.
바르게 염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십력·사무소외·십팔불공법·일체종지로 원만히 법계를 비추고, 항상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두루 색신을 시현하여 일체에게 이익을 주며, 그 공덕이 무량하고 불가사의함을 반연한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즉시 장애를 대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염불공덕은 뛰어난 선법善法을 반연하여 따르는 가운데 생겨나는 심수법이고, 악념의 사유는 악법惡法을 반연하여 따르는 가운데 생겨나는 심수법이기 때문이다.
선은 악을 깨뜨릴 수 있으니, 마음을 항상 선한 연에 머물게 하면 흠모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생겨나 찰나찰나 생각하는 가운데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
만일 경계가 핍박하는 장애가 있다면 법신불을 생각해야만 한다.
법신불이란 바로 평등한 법성이니,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모양과 빛깔도 없고 텅 비고 고요한 무위無爲이다.
무위 가운데 이미 경계가 없는데 무엇이 핍박하겠는가?
만일 경계가 공함을 안다면 곧 이것이 대치한 것이다.
(경계가 핍박하는 장애가 있을 때) 만약 삼십이상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장애를 대치하는 바른 방법이 아니다.
왜 그런가? 이 사람은 이미 경계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다시 상호까지 취한다면 이로 인해 마귀가 붙어 어지럽히게 되고 그 장애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공을 관하여 경계를 제거하고, 법신불의 한량없는 공덕을 염하는 일에 마음을 두면 중죄가 없어지고 모든 장애가 제거된다.
如是念時。即時對治。何以故。此念佛
功德。從緣勝善法中生心數。惡念思惟。
從緣惡法中生心數。善能破惡。令心常
在善緣中。則欽慕心深。恥愧心生。念
念之中。能除一切障也。
若有境界逼迫障者。應念法佛。法佛者。
即是法性平等。不生不滅。無有形色。
空寂無爲。無爲之中。旣無境界。何者
是逼迫之相。若知境界空。即是對治也。
若念三十二相。即非其對治。何以故。
是人已爲境界惱亂。而又取於相。則因
著魔亂。其障尤甚矣。今觀空除境。存
心念佛。功德無量。則滅重罪。破諸障
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下卷(ABC, H0254 v10, p.925a01-a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