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느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가나안 땅
(눈앞에 두고도 갈수 없었던 회한의 땅)
느보산 정상에 세워진 구리뱀 십자가
느보산 모세 성당
친정엄마와 동행한 이스라엘순례때, 모세성당에서
2024. 2. 22
신명기 1장에서 4장까지!
(신명 4,20)
너희는, 주님께서 도가니
곧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오늘 이처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백성이다.
묵상ㅡ
벌써 신명기라니
시작이 반인게다.
흠, 도가니라니!
생각만해도 뜨겁고
답답하고 열이 난다.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인건비도 못받고
종살이하던 그 시절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퉁치셨다.
내 지난세월의 삶을
타임머신 거울로 비춰주고는
'너 알지? 원래 니 신세'
그러시는것 같아
식겁하면서 깨개갱,
사순절 회개 모드로 얌전히 입덕했다.
주님께서는 파라오에게
'너 왜 우리 백성들 함부로 다루니?
아직도 주제파악 안됨?
얘들 니꺼 아니고 내꺼거든.
여기서 감옥살이 할 애들 아니고,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내 새끼들이란 말이다.
자, 그럼 내꺼 찾아간다.'
절대강자 협상꾼이신 우리 하느님,
이렇게 멋지신 분이신거
갈수록, 새록새록, 모락모락, 피어난다.
당신 소유로 삼으신 이 백성들이
모세에 의해 잘했건 못했건
과거를 한번 회상, 점검받으면서
이젠 파라오(우상)꺼 아닌 하느님꺼
답게 살려면 해야할게 있음을, 주지시킨다.
답게 살겠습니다.
캠페인이 이때부터 있었던가 봄.
우선, (신명 1,9)
'나 혼자서는 너희를 떠맡을 수 없다.'
무엇이든 혼자 하려는 습관은
너나없이 안 좋을듯.
특히나 K(한국)장녀나
장남들은 내가 다 책임져야만 한다,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신념을 장착하고 태어난 듯이,
누구와 함께 나누며 일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나부터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좋은것만은
아닌것이, 자기한계를
뛰어넘으면서까지
혼자 책임지려다
관계에 사달이나고
병이 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
이에 모세는 장인 이트로가,
'자네가 일하는 방식은
좋지않네.'라고 충고한
전적이 있어선지,
나혼자 떠맡을순 없다며
약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느님과 이웃과
나자신과 단절되어
독단적인 삶이 될수 있다.
하여 모세는 참 지혜로웠다.
'참 잘했어요' 도장 꾸욱~~
그 다음, 하느님꺼 답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신명 2,24)
일어나 떠나라.
그리고 아르논 강을 건너라.
보아라, 그의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리니,
그 땅을 차지해 나가라.
그에게 싸움을 걸어라.
떠나라신다.
내 앞에 건너야 할 강을
두고 두려워 안주한다면,
그 좋은 땅은 어찌 내 소유가 되랴.
예를들면 아버지가
저 먼 김해 땅을
줄테니 식솔들을 데리고
일어나 강을 건너 떠나거라.
하시는데, '무서워서 안갈라요' 하고
주저앉으면 그 땅은?
용기내어 떠난 다른 아들 차지가 될터.
백성들은 용케도
강을 건너 그 땅을 차지했다.
홍해가 갈라졌던 하느님의 능력을
기억했을 테다. 과연 하느님꺼 답잖아.
그리고 (신명 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캬!!! 이말이 대박이야.
보태고 빼는 걸 첨삭이라고 하지.
제발 첨삭하지 말고
핵심만 말하란거다.
없는 거 지어내지 말고,
있는 거 없애지 말고,
진실만, 있는그대로 표현하고 알리고
전하라는 거렷다.
시금치에 소금만 넣으라시면 소금만
넣고 무치면 된다.
간장에 마늘에 생강에,
좋다고 온갖 것을 넣어
시금치와 소금이라는
진실을 왜곡시키지 말란 말야.
보태고 빼는거 없이
오직 말씀의 핵심과
진실만 갖고 소통하자는 취지였을게다.
사람관계에서도 그래.
내가 원래 그릇이 60점이면 60점답게
말하면 되는데, 있어보이는척
가산점 10점, 포장지로 싸서 10점,
안되는걸 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게 진짜 나인양
10점 가산점, 이런 계산법으로
내 진실 60점에 가산점 30점,
이렇게 부풀려진 나의 총점 90점!
상대도 마찬가지야.
내가 믿고싶은 상대에게
좋은것만 꽂혀서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은
60점인데, 학벌이 좋아
10점 가산점, 돈이 많아 10점,
뭐든 잘해서 나에게 유익할것 같아
10점, 좀 더 노력해줬으면
하는 나의 기대치 10점.
아이구야!
60점이 진실인 상대를 100점,
만점짜리로 올려놓고는, 실제
60점만큼 행동하면,
실망이다, 배신이다,
잘못봤다, 믿을 사람 없다,
변덕이 춤을 추니 말이다.
제발 있는척, 괜찮은 척,
포장하지 말라는 일침일게다.
소화데레사 성녀께서
'나와 타인을 있는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 인정하는게
사랑이고 겸손'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니까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며 있는그대로
진실만 말하며 하느님꺼 답게 살라는것,
이밖에도 알아내지못한
당신 소유로 삼은
우리들이 해야 할 것들을 사모하게 하소서.
이를테면 두려워 말거라.
내가 함께 싸워줄거다.
하느님께서 절대강자 싸움꾼으로 등극,
용기를 퍼부어 주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
주님이 하지말라는건 하지말기를!
주제파악 능력을 기르는 것 역시
하느님과 우리의 경계를 세우는
겸손의 영역이다.
우상숭배는 다 알지?
주님의 질투심을 자극한다는 거,
왜 안그러시겠어
내꺼 남의집 살이 하는거
열불나셔서 빼내오신건데,
다시 또 내꺼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나
허락한 남의 꺼 눈독들이면,
우리 하느님, 질투심
이글거리셔서 홧병,
우울증 생기신단 말이지.
주님이 불쌍한 우리를
당신 소유로 삼으셔서
당신 새끼들답게 살게
하시려고 모세를 통해
밀어부치신 이야기들이
신명기 초반에 실렸다.
그게 다 우리에게,
(신명 1,8)
보아라, 내가 너희 앞에
저 땅을 내놓았다.
가서 주님이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그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을
차지하여라.’”
당신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하시려고
읊으신 하느님 사랑과
자비의 잔소리시다.
'보라, 내가 너희앞에
저 땅을 내놓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나의 땅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말해뭐하랴.
당연히 주님께서
깔아주신 멍석이겠지.
내가 너의 땅에
넓은 멍석을 깔아줄테니,
그 위에서 신명나게 살아.
하고 싶은거, 이루고싶은거,
원없이 실현하면서
기쁘고 자유롭게, 아이처럼 말이다.
내가 주는 그 땅에서
온전히 내 소유가 되어,
내꺼답게 살다 오니라.
아, 주님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일어나 다시 떠나겠습니다.
제 마음의 제렛 시내를 건너고
아르강논 강을 건너
제게 주신 땅에서
제 2의 인생을 펼쳐보겠습니다.
춤추듯이 신명나게 말이지요.
그 땅은 저에게 또 다른 삶의 신명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찬미영광받으소서
산티아고 길의 풍경들
첫댓글 성경묵상글 빠져들고 있어요
어릴적 보던 장편 만화보다 재미나요
생생한 정보 묵상글 고맙습니다
성경말씀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