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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학산-고대산서 백마고지를
6월로 접어들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첫날 3.8선을 훌쩍 넘어 동부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철원지역으로 등산을 떠난다. 더구나 천안함 사건으로 가뜩이나 남북이 대치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점이다. 군사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많은 군인들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마음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시아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곳곳에 소가 많이 사육되는데 소는 마냥 태평하기만 하다. 철원 동송읍 철원여자중고등학교 입구에서 들머리다. 같은 강원도라도 대관령엔 영하권으로 얼음까지 얼었다는데 이곳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찌는 날씨에 하늘은 맑고 시계는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초입부터 땀이 흐른다. 중간에 우뚝 솟은 매바위를 지나 능선을 오른다. 정상이 가까우면서 한참 전에 떠나보냈던 철쭉꽃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싱그러움에 반갑기만 하다. 잠시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역행하고 있지 싶기도 하다.
정상은 군사기지로 벙커가 설치되고 시멘트바닥에 헬기장으로도 쓰이나 보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잠시 사방을 훑어본다. 동송읍이 발밑에 펼쳐지고 철원평야가 시원스럽다. 농촌에서는 쌀값이 폭락하여 울상이다. 그래도 때가 되니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시 일터에 나서 내일에 희망을 담아보아야 한다. 아직은 들녘이 희미하지만 벌써 모내기로 채워졌다. 머잖아 뿌리를 내리고 가을을 기다리듯 시퍼렇게 일어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갑자기 산자락이 무너지는 굉음에 아찔하다. 바로 앞 계곡에서 대포를 발사하는가 보다. 포연이 순식간에 폭포를 이룬다. 진한 구릿빛 포탄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날아간다. 눈길이 바쁘게 쫓아간다. 황홀하기조차 한 순간이다. 간간이 소총사격을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훈련이 강화된 최전선에 서있다는 느낌이 번쩍 든다. 포탄은 길게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치솟았다가 산자락을 넘어 탄착지점에서 굉음을 내지르며 작렬했을 것이다.
순간 40여 년 전으로 필름이 돌아간다. 105밀리 포대에서 근무를 했다.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무수하게 포탄사격 훈련을 했다. 곡사포는 몇 가지 준비사항이 필수적이다. 우선 2만5천분의1 지도를 펼쳐놓고 목표물을 잣대로 측정하여야 한다. 또한 원을 6400밀리로 나누어 방향 즉 편각을 계산하고 날아가는 앞자락의 장해물을 고려하여 사각이 계산된다. 또한 사격할 포탄을 선택하고 불을 붙일 신관 장약 시간 등을 계산해냈다. 여기에 HCO, VCO, COM이 있다. 나는 COM으로 당시 컴퓨터란 말이기도 한 계산병이었다. 포대장 아래 전포대장에게 제원을 계산하여 불러주었다. 그러면 전포대장은 복창을 하면서 6문의 포를 지휘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작전명령에 보안을 감안하여 음어풀이가 필수적이다. 승공음어와 전투음어였다. 보병은 3보 이상 구보라면 포병은 승차였다. 기동성이다. 아마 이 철원 뜰도 가상 제3작전기지로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한밤에 조명탄을 띄워놓고 그것도 직접 계산해 낸 제원을 가지고 포탄을 날렸다. 그때 또 하나 필요한 것이 관측 장교다. 소위 OP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관측하며 목표물로 유도한다. 옆의 무전기에서는 더하기 혹은 줄이기 몇 백에 좌 혹은 우로 몇 백을 외치며 포탄을 유도해갔다. 새삼스레 반백년이 가까워도 그 시절이 살아 있고 지금은 상황실이 아닌 뜻밖의 OP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학이 막 내려앉는 산형을 하였다는 금학산(金鶴山·947m)인데 어디에도 학은 없고 몇 마리 까마귀가 대신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아마도 순찰을 돌며 깨어 있으라고 독려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파른 등성이를 넘는다. 모노레일로 부대의 생활용품을 실어 나르나 보다. 중간 지점에 기관실이 있고 한 병사가 잠시 밖에 나와 책을 펼치고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안동서 왔다는 초병은 아직도 공부에 미련이 남아있나 보다.
군데군데 작은 표지판을 세워놓았다. 부대장의 깊은 마음이 담겨있지 싶다. “자고 일어나면 먼저 웃어라” “어려울수록 웃어라” “크게 웃어라” “억지로라도 웃어라” “하루에 몇 번이고 웃어라” 라는 등 웃음에 관한 글귀를 꽂아놓아 그것을 읽는 마음에서부터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래 우리가 웃으면서 살 수 있으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만한 여유를 담고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웃음보다 더 큰 보약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금학산을 완전히 벗어나 다시 고대산 초입이다. 왼쪽은 담터계곡이고 보개산(752m)을 올랐다. 좌측으로 잘못 들어서 내려갔다고 되돌아와 직진을 하며 능선을 타고 간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절벽에 바위도 나타난다. 마침내 고대산(832m)이다. 이곳도 예외 없이 군사시설의 일부이다.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저기가 민통선이고 DMZ다. 수많은 총탄 세례를 받고 육박전에 뭉개졌다는 그 유명한 백마고지가 저기 저 산인가 보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6.25의 대표적 전적지로 손꼽히고 있는 곳인데 불과 7km 지점이란다. 지금 태연히 한눈에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또 궁예가 말을 달리며 태봉국을 건설하였던 성전자리도 보인다. 월평리역이며 인민군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며 봉래호가 들어온다. 저기 허연 바위가 있는 곳이 명성산이고 한탄강은 저기쯤인가 보이지를 않는다. 철원평야가 오늘 따라 넓어 보인다. 맑은 하늘에 시계는 거칠 것 없다. 산줄기는 남에서 북으로 거침없이 넘어가고 있다. 산만을 기준하면 북한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산은 무성한 수풀로 시퍼럴 뿐 더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북한 주민이 혹은 북한병사가 살고 있을 것이다. 6월은 아무래도 6.25가 연상되고 남북관계가 스쳐간다. 아직껏 으르렁대고 있어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의미 있는 산행을 하고 있지 싶다. 삼각봉 대광봉을 거쳐 칼바위 능선을 타고 연천 방향으로 하산하여 신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