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2004년
1988년에 '스가모아동방치사건'을 토대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미혼모인 유키코는 애가 넷이다. 세들어 사는집주인에겐 이들 아키라 한 명만 소개한다.
여행가방 안에서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 나오는데 기겁을 했다.
공식적으로 외출하고 하는것은 아키라에게만 허락된다. 다른 아이들은 절대로 남의 눈에 띄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호적에 올리지 못해서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엄마는 장남인 아키라에게 모든것을 의지하며 일을 한다. 아키라는 학교대신 집안살림과 장보기.동생들 돌보기로 하루를 보낸다.사칙연산도 제대로 배우지 않아 가계부 쓰는것도 서툴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4가지 규칙을 알려준다.
1.밖에 나가지 않는다
2.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3.베란다도 나가지 않는다
4.교코만 베란다세탁 허용
한참 개구지고 뛰어놀아야할 아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규칙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안에서 나름대로 잘 지내는 것 같은데...아이들보다 엄마의 삶이 불안정해보였다.
여자 혼자서 네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이들의 아빠도 각각 다른것을 보면 철이 덜든 엄마같기도 하고, 그런 엄마에게 기댈 수 있는 남자가 필요했나보다.
엄마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고 아키라에게 돈과 지갑을 맡기며 동생들을 부탁한다. 한 달뒤에 찾아온 엄마는 짐을 챙겨 크리스마스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오지 않는다.
부모의 부재,
엄마의 부재는 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일이....
전기, 수도, 보일러가 끊기고...
초등학교6학년 아키라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상황이 계속해서 생긴다. 엄마와 관계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지만 역부족이다.
엄마로부터 온 편지속의 연락처로 전화해보지만 엄마는 이미 다른 사람의 성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끊는다.
엄마를 기다리며 넷이서 베란다에기대 바깥을 바라본다. 아이들 눈에 들어온 하수구 수쳇구멍사이로 주황빛 예쁜꽃들이 피어있는것을 보고 우르르 밖으로 달려 나간다.
"누가 버렸을까"
그 장면이 이 아이들과 너무 오버랩되었다.
'누가 이 아이들을 버렸을까' 이렇게 들렸다. 우리 사회를 향해 외치는것 같았다.
아이들은 씨앗을 조심스럽게 받아와서 빈 통에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심는다.
싹이 트는것을 관찰하며 그리운 엄마에 대한 보고픈마음을 기대어본다.
학교가고 싶고, 놀고싶은 나이의 아키라는 점점 지쳐가면서 게임에 빠지고 아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방황하는 사이에 막내인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져 죽는다.
어쩌면 살 수도 있었던 아이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다. 엄마가 보고싶어 비행장근처에다 사키(친구의 죽음으로 학교도 가지 않고 방황하다 만난 친구)와 함께 묻어준다.
화장실도 밖으로, 빨래도, 씻는것도 밖에서 해결해야하는 아이들. 그러나 세상은 너무 자연스럽게,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흘러간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우리 아이는 국어점수가 형편없어"
주인집아주머니는 너무귀한 강아지를 안고 와서 월세가 안들어왔다고 엄마를 찾는다.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은 아키라
새 신발이 너무 크다고 투덜거리는 친구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실화와 조금은 다르게 그린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 따라 자연스럽게 묘사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왕성한 어린 생명력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삶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인 척박한 수쳇구멍에서도 아름다운 생명력은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나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는 것인가
보호받아야할 아이들이 누구의 시선에서도 관심 받지 못한 무관심한 사회의 일면을 보는것 같다.
최근에 두 형제가 라면을 끓여먹다가 화재가 났던 사고도 보면 어른의 부재와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났다. 단지 뉴스화되지 않았을뿐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취약계층이 얼마나 많을지...
무심하게 서로 인사하며 지나치는 이웃들의 평온함에서 옆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현대사회의 모습들. 그 때 그 시간들도 유유히 흘러가고 기차는 쳇바퀴 돌듯이 레일따라 달리고 비행기는 무심히 하늘을 날고 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