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한반도의 서쪽,현재의 서울경기일대,호서지방과 호남ㄴ지방에 기원전 3세기~기원후 4세기 중반에 성장 발전하던 정치체.
0.그러나 가장 남쪽에 해당하는 현재의 전라남도 영산강 유역에는 6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마한의 물질문화와 토착 세력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고고학으로 본 마한의 시작
0,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고인돌 문화와 송국리 문화가 쇠퇴하고 중국 요령지역 주민의
한반도 이주확대
0,이 과정에서 한반도에서는 덧띄토기와 한국식 동검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화가
전개됨.
0,마한은 한국식 동검문화에 이어 철기문화가 남한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중서부지방을
중심으로 소규모 집단 이 점차 통합되어 형성된것으로 보임.
문헌자료로 본 마한의 시작
0.사마천의 사기열전 조선전에는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에게 쫓겨 남한으로
내려올때 한반도 남부 일대 에 그 이전부터 토착하고있던 한(韓)이라는 정치체가 존재하였다 고 함.
0.마한은 변한,진한보다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수용 발전시켰으며 이는 서북한 지역
철기문화의 전파와 관련.
0.유적중에 현악기가 출토되고 중국 기록에 전하는 구슬 에대한 선호는 한반도 서부지역의
마한유적에서 구슬관련 유물이 많았으며 새모양의 솟대(새는 영혼의 전달자,농사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곡령신의 의미를 담아 )신의 영역을 상징하며
마을의 수호신 또는 경계신이라는 의미로 세웠다.
0.영산강 유역에서는 오랫동안 독널을 매장시설로 사용했던것으로 보이는 나주 오량동
가마터에서 49기의 가마가 발굴조사되였다.``
오싸르의 내세관
0.빛과 善의 신인 아후라마즈다는 인간의 지성과 뼈를 창조했고 어둠과 惡의 신인
아리만은 살과 나머지 육신을 창조함. 따라서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않고 짐승이나 새, 비바람에의해 육탈이 되도록
풍장
.0.육탈이 된후 뼈만을 모아서 장려를 치러야만 최후의 심판시에
부활.옹광묘의 형태가 계란형으로 부활상징의 의미로본다.
0.오싸르에 묘사된 인물들은 최후의 심판시에 인간에게 호흡과 육체와 피와 털을
돌려주는 4대원소 즉 물과 바람과 햇빛등을 상징
나주 반남고분군 의 최초 조사
0.일제 강점기인 1917년 과 1918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인
야쓰이세이이치,조사원 오바츠네키치,제도사 진사. 오가와게이기치,노모리겐 등에 의해 10여일간에 걸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들 유적을
왜인들의 무덤으로 보는 시각이 제기되는등 조사의 시대적 한계와 문제가 있었음. 이때발굴된 유물들은 일제가 패망해 돌아간후 미군정청에있다가
국립중앙박물관 으로 옮겨진후 2013년 나주국립박물관이 들어스고 옮겨옴
이후 20년동안 조사가 이루어지지않았으며 이 기간동안 도굴의 피해를 크게
입음.
0.1980년대들어 반남고분군을 비롯한 영산강유역 독널무덤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조사
시작
신촌리 9호분의 을관
반남고분가운데 가장 위치가 우월한곳에 위치한곳으로 11개의 옹관이 확인되고 내부에서
금동관(국보제295호)과 금동신발등 가장 화려한 위세품이 발굴됨
마한 토기
0.조족문 토기(토기에 새발 모양 양쪽 손잡이)
0.양이문 토기(토기, 뚜겅 상하좌우에 귀모양 )
0.이두문 토기(토기주둥이가 두줄)
빗살무늬= 줄무늬(신석기시대)
2015 전라남도 문화해설사 보수교육 자료中 -박중환국립나주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