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불꽃놀이하러
최정애
글로벌경제실
전문연구원
나는 습관처럼 밤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보통은 오롯이 혼자일 때이고, 대개는 겹겹이 차오르는 생각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달리는 차 안, 고요로 뒤덮인 거실, 밤의 산책길에서, 나는 하늘의 지극한 어둠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사방이 정적인 찰나 시선에 걸리는 것은 늘 도시의 희붐한 빛 사위 끝에 걸린 별이고, 그 별들을 보며 나는 짧은 숨을 끊어 쉬곤 한다. 그건 그러니까 지금 내가 온전히 홀로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다.
그런 순간들 때문일까, 나는 오랫동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위주로 빈 시간을 채워왔다.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여행을 하거나. 대부분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고, 나는 자연스레 혼자 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침범한다는 뉴스가 터져 나올 때에도 나는 심드렁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산속에 있는 작은 독채 펜션에 들어간 건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가을날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제력이 얼마간 누그러져 있었고, 가족들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시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못 간 여행의 회한이나 같이들 풀어 보자고 했다. 아버지는 왜 본인이 엄마와 사는 37년 동안 굳이 여행마다 호텔행을 택했는지 여러 번 강조하셨는데, 종합해 보자면 어머니에게 밖에서까지 집안일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였다. 가족들은 숲속으로 가지고 들어갈 숯불 구잇거리며 각종 채소, 과일 같은 것들을 풀어 놓았는데, 제부가 정체 모를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나타나 식탁에 올렸다.
“불꽃놀이요.”
그 말에 우리는 콧바람을 내뱉으며 응답했다.
“우리 집에 그런 거 하는 사람 없는데.”
검은 봉지 안에는 기다랗고 얇거나 땅딸막하고 깜찍한 각종 불꽃놀이 세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누군가 그것을 무심히 한 쪽에 치워두었다.
우리는 그날 깜깜한 시골 밤하늘에 영롱한 별들이 무리를 이룰 때까지 바깥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가 일상을 어떻게 멈추게 했는지, 식당에 가는 게 얼마나 힘들어졌는지,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웃을 때마다 검은 숲이 쿵쿵 울렸고 지금 이렇게 모일 수 있게 상황이 좀 나아진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누군가 되묻기도 했다. 그즈음 제부가 물었다.
“우리 불꽃놀이 할까요?”
살갗으로 찬바람이 들기 시작하는데 얼른 안에 들어가 잠잘 생각을 하지 무슨 불꽃놀이냐고 아버지가 말씀하셨고 우리는 대답처럼 잠시 침묵했다. ‘안에 들어가 TV나 볼까’ 하는 말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커피 마시자’는 제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머니가 번쩍 손을 드시더니 말씀하셨다.
“나 불꽃놀이 해보고 싶어.”
우리-그러니까 평소에 자기 의견을 잘 내지 않고 가족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엄마의 모습에 익숙한 나를 비롯한 세 딸과 아버지-가 어머니의 얼굴을 넋이 나갈 듯 바라보는 동안, 엄마는 벤치에서 일어나시면서 구석에 있던 검은 봉지를 야심 차게 쥐어 들었다.
가자, 불꽃놀이하러.
선뜻 일어나 제부가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신 어머니는 이윽고 제부가 시키는 대로 길고 뾰족한 막대 끝에 불을 붙여 크게 흔들기 시작했다.
“어머니, 더 크게 원을 만들어 보세요.”
제부의 말에 어머니는 조금 더 크게, 그러니까 자신의 온 팔을 내밀어 커다란 원을 만들며 빛을 향해 말했다.
“폭죽이 꼭 별처럼 타들어 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아이처럼 웃으며 불꽃을 내뿜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에 별 무더기가 쏟아질 듯 흘러나오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별들과 함께 어우러진 하나의 별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호텔을 고집할 게 아니었네.”
우주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 나는 아마도 밤하늘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각자의 출발점에서 빛의 속도로 날아와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닿은 흔적이다. 수많은 별들이 우주에 있는 데도 우리가 별 무더기보다 어두운 하늘을 많이 보는 이유는, 아이러니하지만 팽창하는 우주에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허공에 수놓인 별들이 탄생과 죽음의 흔적으로 남긴 반짝임을 지켜보며 우리는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시 스스로 에너지를 태우며 끝없이 과거의 존재가 되어가는 보잘것없는 생명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구에는 77억 명의 사람이 산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유한한 공간에서 태어나고 또 죽어간다. 서로 다른 피부색,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사고방식,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지구의 이곳저곳을 채우며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낸다. 우리는 서로 독립된 개체처럼 보이지만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홀로 있어도 같이 있는 법을, 우리는 결국 배워갈 것이다. 계속되는 거리두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위해 계속 손을 뻗을 것이다. 별들이 오롯이 스스로 존재하면서 무리를 이루는 것처럼.
그날 저녁, 나는 어둠 속으로 달려가 어머니가 주는 폭죽을 받아들었다. 우리가 여전히 함께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려주듯이, 입은 점퍼를 서로의 어깨에 둘러주고,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봐주며, 우리는 그날 밤의 별에 대고 손에 든 폭죽을 한참 동안 쏘아 올렸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아주 깊고 검은 어느 가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