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847-8 (대신리 818-3) |
---|
지역 | |
---|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烈婦殉節地)는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여러 문중의 부인(12명 또는 13명)이 침입해오는 일본군을 피해 1597년 9월 26일 이곳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까지 피신했다가 바다에서 일본 함선을 만나게 되자 일본군에게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하고 칠산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한 곳이다.각주
나라에서는 부인들이 죽음으로 정절을 지켜 순절한 것을 기리기 위해 1681년(숙종 7)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상을 주고 정려를 내렸다. 그들의 거주지였던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는 정렬각과 열녀순절비를 세웠고, 순절지인 이곳 묵방포에는 순절비를 세웠다.
이곳 순절지에는 두 개의 순절비가 나란히 서 있는데 바다를 바라볼 때 왼쪽은 정씨 팔열부 순절비이고 오른쪽은 밀양 박씨 순절비이다.각주 정씨 팔열부 순절비는 1942년에 건립했고, 밀양 박씨 순절비는 1946년에 세웠다. 두 곳 모두 8각 석주를 4개씩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열부는 모두 12명 또는 13명이지만 이곳에 있는 2개의 순절비 중 하나는 정씨 가문의 8열부, 다른 하나는 밀양 박씨 1열부를 기리고 있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12명, 진주 정씨 가문에서는 13명으로 열부의 수를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열부 중 함양 오씨는 동래 정씨 함평사람 정운길의 처이다. ‘팔열부 정각각주 따라서 밀양 박씨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12명이 되고 포함시키면 13명이 된다.
당시 묵방포 칠산 앞바다에서 일본군에게 잡힌 피난민 중 13명의 여성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 중 진주 정씨 정박의 부인 밀양 박씨는 칠산 앞바다가 아닌 대마도 부근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밀양 박씨에 관해서는 ‘정렬각’ 참조)
열부 순절소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열부 순절소(烈婦殉節所)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열부 순절소 뒤로 보이는 묵방포 칠산 앞바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모열사
모열사(慕烈祠)는 바다를 건너 피난하다가 일본군의 함선을 만나게 되자 바닷물에 몸을 던진 12명의 여인의 정절을 기려 칠산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 언덕에 세운 사당이다. 모열사와 열부 순절소 비각을 묶어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1976년 9월 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사당 모열사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모열사 경내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 표석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백수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본 모열사 사진 왼쪽 비닐하우스 옆에 열부 순절소 비각이 보인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모열사 사적비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모열사 사적비
임진왜란 5년 후 정유재란 때(1597년) 함평군 월야면 달악이(月岳里)에 거주한 동래, 진주, 양 정씨 친인척 12부녀가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서울로 피난가다 음력 9월 26일 이곳 칠산해(七山海)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왜적들의 배가 쫓아오자 이들에 항거 나라와 가문을 위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12 정렬부의 표시(동국삼강행실록 기록순)
서울사람 심해의 처 동래 정씨, 서울사람 권척의 처 동래 정씨, 함평사람 정함일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경득의 처 순천 박씨, 함평사람 정희득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함일의 딸 진주 정씨, 함평사람 정운길의 처 함양 오씨, 함평사람 정주일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절의 처 영광 김씨, 함평사람 정호인의 처 함평 이씨, 무장사람 오굉의 처 황주 변씨, 무장사람 김한국의 처 함양 오씨
위 사실이 당시 금상폐하 선조께 상조(上朝)되니, 선조께서는 12부녀에게 정문(旌門)의 포상을 내렸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동주피적(同舟避賊) 추급십이절부(追及十二節婦) 개투수이사(皆投水而死) 금상조정문(今上朝旌門)(동국삼강행실록에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십이절부지려(旌十二節婦之呂)······ 초개정문사재(初皆旌門事載) 동국삼강행실(東國三綱行實)이라고 기록.
한편 함평군에서는 1681년에 함평 달악이(月岳里)에 정렬각(일명 팔열각)을 세웠고, 그 밖에 정렬각은 각기 고향에 세워졌다. 전라남도에서는 1994년에 함평 정렬각을 문화재 제8호로, 이곳 묵방포에는 1976년에 12정렬부 도해 순절지 및 순절비를 제23호로 지정하였으며 영광군에서는 국 · 도비로 1981년에 본 모열사를 세웠다.
※ 참고: 1996년 편찬 전라남도지, 1998년 편찬 영광군지, 1999년 편찬 함평군사에 각각 등재되었음.
2001년 3월, 지방문화재 제8, 22, 23호 정사(正史) 시정추진위원회 근수
팔열부 순절비
1597년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동래 정씨와 진주 정씨 문중의 부인들이 일본군을 피해 이동하던 중 지금의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 가까운 바다에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선박에 태워져 먼 바다로 나아갈 즈음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한 이들 부녀자들은 남해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이들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순절지 부근 해안 언덕에 순절비를 세웠다. 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팔각의 돌기둥 4개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다.
팔열부 순절비는 앞면에 ‘정씨 팔열부 도해 순절소(鄭氏八烈婦蹈海殉節所)’라고 음각하고 뒷면에는 8명 열부의 이름을 적었다. 순절한 것은 12명 또는 13명이지만 이 중에서 함평사람 8명의 순절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들의 명단은 위의 ‘모열사 사적비’에 들어 있다.
팔열부 순절소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밀양 박씨 순절비
밀양 박씨는 진주 정씨 정박(鄭博)의 부인이다.각주 비석 앞면에는 ‘열부 박씨 순절소(烈婦朴氏殉節所)’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열부 박씨 정려기’를 적었다.
열부 박씨 순절소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