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가던 날(4월 25일)-하늘은 심술을 부리시고
요즘 일기예보가 잘맞아서 종묘/ 비원 탐방이 제대로 진행될지 노심초사... 예보에는 아침 9시부터 비가 내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시간도 되기 전부터 부슬부슬 내리더니 9시가 지나자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할수없이 실내관람이 가능한 '고궁박물관'(경복궁내)으로 계획 변경 문자를 날렸는데, 12시가 지나면서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춰서 월래 계획대로 한다는 문자를 다시 보냈다. 역시 귀신들(?)을 보러가는 여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오후 2시 경, 종로3가 역에서 부터 이곳이 노인들의 천국(?)임을 실감했는데, 역의 계단마다 옹기종기 앉아있는 어르신들이 종묘공원에는 마치 까마귀떼가 아니 공손한 말로 두루미떼가 숲을 점령한듯한 느낌마져 든다. 형님들(?)의 숲을 헤치고 간신히 종묘 입구에 도착하니 원백, 은곤, 장원, 호성이 도착해 있었고 부지런한 익섭은 주위를 한바퀴 돌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광현이 도착하여 표를 구입하고 해설을 따라 탐방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해설자는 젊은 여성으로 해박한 지식이나 물흐르는 듯한 말솜씨에서 지금까지 겪어 본 젊은 해설자 중엔 단연 돋보인다(단지 약장수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음).
종묘와 관련된 용어 풀이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종묘(宗廟)와 관련이 있는 용어를 풀이하는 것이 순서인듯 하다. 물론 여기 풀이는 사전이나 사이버 공간 등에 나와 있는 걸 짜깁기 한거지만, 필자가 옛날 어른들께 들은 얘기들도 함께 버무려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람).
혼(魂)과 백(魄) : 선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어 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魄은 육신과 함께 땅에 머문다고 믿었다. 물론 요절한 경우나 원통하게 죽었을 때는 魂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자기가 살던 데를 배회하는 '전설의 고향'과 같은 일이 없진 않지만...
사당(廟)과 무덤(墓) : 둘다 한자로는 '묘'이지만 사당(廟)의 경우는 魂을 모시는 곳이고 무덤(墓)은 魄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사당(廟)은 대부분의 사대부가에 있었지만, 특별히 나라에서 제사지내는 사당도 있다.
문묘(文廟)와 종묘(宗廟) : 업적이 뛰어나 나라와 백성들에게 크게 이바지한 문인(文人)의 경우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주는데, 이를 문묘(文廟)라 한다. 공자의 사당(孔廟), 그리고 지난번 탐방한 정몽주의 경우나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에는 무인을 기리는 무묘(武廟)도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논의만 되었지 실제로는 없다. 왕과 왕비의 경우 으뜸(宗)이 되는 사당이라 하여 종묘(宗廟, 조선 초기에는 太廟라 불렀음)라 부른다.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 보통 왕권을 말할 때 '종묘와 사직'이란 표현을 쓰는데, 종묘는 이미 언급했고 사직의 겨우 '社' 자가 원래 토지의 신을 지칭하며, 稷은 곡식의 한 종류인 기장을 나타내는 한자지만. 오곡의 신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즉 조상의 신과 토지나 오곡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이 귀신들의 보살핌이 있어야 왕조가 번성한다 믿었다. 조선조의 경우 태조 이성계가 건국할 때, 맨 먼저 궁의 왼쪽에 종묘를 오른 쪽에 사직단을 세웠다고 한다.
묘호(廟號)와 능호(陵號) : 왕이 죽은 후 붙이는 명칭이다. 廟號는 종묘에 모셔진 신주에 쓰이는 이름으로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외우던 '태종태세문단세..' 가 묘호의 첫 글짜이다. 능호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태종 이방원의 헌릉 등이 능호이다. 즉 왕의 사후 魂이 찾아가는 곳에 쓰여진 이름이 묘호이고, 魄이 머무는 곳에는 능호가 있다.
신주(神主)와 혼구멍(魂窺) : 하늘에 있는 魂을 불러들이는 나무로 만든 패를 말하며, 종묘의 경우는 묘호(廟號)를 보고 귀신이 찾아 오신다. 그러나 이 신주에는 묘호 이외에도 어려서 쓰던 자(字)나 세자 때 쓰던 휘(諱), 또한 능호(陵號) 등도 같이 적혀 있어 혹시 헷가리는 혼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신주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를 혼규(魂窺) 또는 흔히 혼구멍이라 부르며 이곳을 통해 혼이 들어 온다고 믿었다. 정신 나간 녀석에게 '혼구멍이 나게' 야단친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함은 당연지사.
세계문화유산, 세계무형유산 종묘(宗廟)에 대하여
해설자의 이바구, '종묘' 한국어 판 안내서 그리고 인터넷 해당 콘텐츠를 취합하여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옮겨 놓는다.
-종묘에는 몇위의 神主가 모셔져 있나?
정전(正殿)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하여 왕과 왕비 49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으며, 영녕전(永寧殿)16칸에는 34위가 모셔져 있다.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없고 복위된 단종의 신주는 나중에 영녕전에 모셔짐.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은 어떻게 다른가?
원래 정전의 경우는 건국한 태조와 4대 조상(황제의 나라인 경우 7위) 만을 모시도록 되어 있다. 그후 공덕이 큰 왕(왕비도)의 신주를 추가하다 보니 신주가 늘어났고, 그외 왕들의 신주는 중국 송나라의 예를 벤치마킹하여 영녕전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정전의 경우 건물의 규모가 더 크고 잘 조성되져 있기도 하다.
종묘의 메인 건물 정전(正殿)
기타 임금들의 신주가 묘셔진 영녕전(永寧殿)
-정전(正殿)에는 어떤 왕의 신주가 모셔져 있나?
태조를 비롯하여 태종(3대), 세종(4대), 세조(7대), 성종(9대), 중종(11대), 선조(14대), 인조(16대), 효종(17대), 현종(18대), 숙종(19대), 영조(21대), 정조(22대), 순조(22대), 문조(익종, 추존), 헌종(24대), 철종(25대), 고종(26대), 순종(27대). 이들 중 선조와 인조는 왜란과 호란을 견뎌냈다는 공(?)이라도 있어 해당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정조 다음부터의 왕들은 이 正殿에 모시기 민망한 왕들이 아닌가 사료됨(필자생각)
-정전이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 중 가장 길게 된 사연은?
원래 종묘는 주나라의 예법(周禮)에 따라 4대 조상과 건국왕 등, 모두 5위를 모시게 되어있었으나, 공덕이 큰 임금을 추가하다 보니 계속 이어 붙여 지어 19칸의 신실(神室)로 늘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종묘 정전과 영녕전의 神室 문이 벌어진 이유?
얼핏 보아 잘못 만들어진 것처럼 모든 문의 틈이 벌어졌는데, 이는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 습기를 조절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한다.
-세계무형유산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앞서 말했듯이 옛날 사람들은 魂과 魄을 구분하여, 혼을 모시는 일은 상사(喪事)나 흉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길사(吉事)라 믿었다. 그래서 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종묘의 경우 이를 종묘제례악이라 한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제례악을 수입(?)하여 썼으나 세종대왕께서 손수 제례악을 작곡하고 국산 악기를 만드셔서 연주에 사용,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종묘제례악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종묘제례악 연주 모습-빌려온 사진
-조선왕이 아닌 고려왕의 신주도 있다는데?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민왕의 신주가 정전이나 영년전이 아닌 망묘루(望廟樓: 종묘를 지키는 건물) 옆에 왕비 노국공주와 함께 모셔져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공민왕 영정이 바람에 날려 이부근에 떨어져서 조정회의 끝에 이곳에 신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댓글 종묘 가이드 약장수 맞습니다요. 아주 열심히, 재미있게 해설은 했습니다만 창경궁 후원(비원) 가이드와 비교하면 격이 많이 떨어진다 라아고~ 생각하시면 되시겠습니다.
종묘가이드와 창경원가이드 기념 사진이라도 찍어보여줬으면 좋앗을걸... 사정상 불참한 회원도 알게끔말야.....
초상권침해로 못 찍은 모양임다.^^
사진이 아니라 녹음을 해야 됩니다. 어투가 전형적인 약장수 스타일이어서 말끝마다 ~라고 생각하시면 되시겠습니다가 상투적으로 붙습니다. 외형이 본질을 왜곡하는 우(愚)라고 생각하시면 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