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주주의민족전선간부들이 주로 어울리며 모임을 갖던 장소 중 하나이다. 중앙이발관의 주인은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 선전부장 김행백이라고 한다. 이발소에는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왕래가 많았으며 그는 사태가 위험해지자 전남 목포로 피신하여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3․1기념일의 불상사건 발생으로 인하여 남로당 제주도당위원회 자체로서는 제주 일반 사회 계층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지 못할것을 염려하여 묘안을 찾던 중 대정면 남로당위원회로부터 3․1사건 대책에 관한 건의를 받고
1947년 3월 5일 오전 10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간부 수십 명이 제주읍 삼도리 김행백 집에 모여 ‘제주도 3․1사건 대책 남로당 투쟁위원회를 결성했으며, 위원장에 김용관, 부위원장에 이시형을 선출하였다.
※남로당제주도당 대정면당은 군정당국에 항의의 표시로 평화적이면서도 그 강도가 가장 높은 전도 총파업을 도당에 건의하기로 하고 조직부장 이승진(김달살)을 파견한 것이다.
※위원장 김용관은 1947년 1월 31일 하귀국민학교 제2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거행한 3.1시위운동을 주도한 후 남로당 제주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고, 하귀국교 아동들이 교사 인솔하에 집단시위에 참가한 관계로 1947년 5월 6일 김용관 교장에게 책임을 물어 미 군정청에 의해 면직되었다. 1948년 2·7총파업 사건 이후 남로당 제주도 구국투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고, 1948년 4·3사건이 발생한 후 김달삼이 월북한 뒤에 김용관은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으로 산중에서 빨치산 게릴라 활동을 하던 차에 1949년 4월 21일 군경과의 교전 끝에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