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KJV).
성경(KJV, 1611)이 시작되는 첫째 문장에서부터 우리는 성경이야말로 인류역사에 있어 기록된 그 어떤 책과도 다른 가장 독특한 책임을 엿볼 수 있다. 영어 단어로는 10개로 되어 있는 첫 문장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일곱 단어로 되어 있다. 이 우연의 일치같은 사실은 성경에 나타난 숫자를 연구해 본 사람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 혹은 온전함을 나타내는 수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표적이요, 이방인들을 나타내는 수는 10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10:10의 주석 참고)
러시아 학자인 패닌(Panin)의 연구에 의하면 히브리어 본문은 독특한 면을 훨씬 많이 갖고 있는데 지면상 여기서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시편 12:6에 따르면 히브리어 성경은 “일곱 번 단련”되었으며,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에게 그들 민족의 절기로서 “일곱”을 지키라고 하신 말씀(레위기 23,25장)에 히브리어 성경의 창세기 1:1 말씀인 “Berashith bara Elohim eth hashamayim waeth ha'aretz”가 일곱 단어, 스물여덟 철자(4x7), 문장의 주어 부분이 열네 철자(2x7), 그리고 술부 부분이 열네 철자(2x7)인 동시에 “하나님”이 문장의 세번째 단어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사실들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신학자들은 창세기 1:1을 연구할 때 성령님께서 성경의 제일 첫번째 구절에서 인류가 내세우는 6대 철학과 종교를 분쇄해 버리고 있음에 경악하게 된다.
1.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무신론을 배격한다. 왜냐하면 첫 구절이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심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단수로 되어있음에 주목하라. 신들(gods)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시82:6, 고후4:4). 이로써 바빌론의 조물주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신화를 비롯한 시바(Siva), 크리쉬나(Krishna), 팔리(Pali) 및 수천의 인도의 신적 존재들은 입을 다물게 된다(이처럼 성경이 에큐메니컬주의자들에게는 쓴 맛을 안겨주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3.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느니라.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셨다면 그리고 예수께서도 이에 동의하셨다면(막13:19) 다윈은 미국의 고등학교 교사 중 80%를 미혹해 버린 셈이다. 이 경우 유신론적 진화론도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는데 이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했지 “진화”시켰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3:19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창조론자”이셨고 모세도 이 신학 이론에 “아멘”하고 있음을 신명기 4:32에서 볼 수 있다. 만약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모세를 교정”하셨다면(자유주의자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믿고 있다), 어찌하여 예수께서는 진화와 창조에 관한 모세의 잘못된 견해를 교정하지 않으셨겠는가?
4.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셨느니라.
이 귀절은 유일주의(Unity),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 브라만주의(Brahmanism), “크리스챤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 등을 옆으로 제쳐버린다. 왜냐하면 이 귀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로부터 분리되어 계시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물질과 하나이다.”라고 가르치는 모든 “범신론”은 무너져 버린다. 우주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늘”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천국”(Kingdom of Heaven)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영이시나(요4:24) “하늘들”은 문자적이고 물리적이며 눈에 보이는 우주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의하면 땅과 구름들 사이의 공간(행1:8-12, 욥35:5), 대기권과 태양계 사이의 공간(창1:1), 그리고 은하계와 하나님 자신의 임재 사이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계 4:1-6 주석 참고). 이 방향은 정북으로 “알파 드라코니스”(Alpha Draconis) 별 위쪽이다(시75:6,7, 48:2; 사14:12-14; 욥26:7, 37:22). 우리는 케이프 케네디 우주 센타에서 가르치고 있는 우주론을 앞지르고 있는 셈인데 이를 위해 히브리어(Shamayim) 혹은 희랍어(Ouranos)에 대한 이해는 전혀 필요없고, 오직 성경으로 족하다.
5.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느니라.
이 귀절은 모든 학파를 총망라한 희랍 철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희랍 철학자들이 물질의 영원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들은 “태초”에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태초”에는 하나님만 계셨다(요 1:1과 요일 1:1을 보면 성령님의 주석을 알 수 있다).
6.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초자연적 능력이 눈에 보이는 이 우주라는 요소와 시간이라는 요소 안으로 개입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이 구절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를 공격하고 있으며 칼빈의 “숙명론”에도 어느 정도 타격을 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의 피조물들의 활동에 자신이 개입하신다(시편 148편). 앞을 못보고 비틀거리며 미지의 미래를 향해 영광스러운 순례를 할 수밖에 없다는 교리는 창세기 1:1에서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20세기 주요 철학 및 종교 사상들을 한꺼번에 쓸어 버리는 여섯 가지 부분을 갖춘 “증오문학”(증오문학이란 성경이 사람을 특히 지성인과 학자들의 죄들을 지적하고 그들의 오류를 끄집어 내고 있음을 인해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뜻에서 저자가 선정한 용어임)의 모습으로 출발하고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성경이 왜 모든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는가를 잘 설명해 주며, 동시에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로 공격을 가하고 있는 성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이 인간을 반대하고 있기에 인간은 성경을 반대하는 것이다.
성경의 첫번째 절에서 우리는 과학의 모든 요소가 10단어로 요약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시간 - 태초에
(2) 공간 - 하늘들
(3) 운동 - 창조하셨느니라
(4) 물질 - 땅을
(5) 에너지 - 하나님께서
다윗은 사무엘하 16:10-12에서 하나님께서 그가 잘못됐다고 선언하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의 말씀은 시작부터 참되니이다』(시119:160)라고 했다. 옳은 말씀이다.
성경을 여는 첫 절에 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는 창조의 시기가 주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비록 재창조가 2절부터 20절까지 묘사되어 있으나 창세기 1:1의 사건이 언제 있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사실은 대부분의 대학교수와 고등학교 교사들이 창조 연대에 관해 매우 무지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같다. 그들은 성경이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가르친다고 생각한다(이것은 어셔 대주교의 연대 측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사실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은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의 비판을 전개하는 법이 거의 없다). 하나님께서 일곱 저녁과 아침 동안 땅을 재창조하시기 전 아마도 지구의 나이는 4백만년이나 되었을지도 모른다. 본문을 잘 읽어 보면 내 말이 아인슈타인(Einstein), 다윈(Darwin), 헉슬리(Huxley), 밀리칸(Millikan) 혹은 버나드 램(Bernard Ramm) 등의 피상적인 추측보다 훨씬 더 “과학적”일 것이다.
- BB 통권 20호
첫댓글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본 까페의 바탕 배경화면 때문에 글 읽기가 영 불편하네요. 차라리 색상이 없는 하얀 바탕이 좋지 않을까요? 다른분들 의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글씨와 바탕화면이 오버랩 되면서 글 읽기가 어질하고 그래서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부디 생각을 바꿔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잘 알겠습니다 참고 해서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바탕 배경화면 조정하겠습니다
불편한 점 지적해 주셔서 감사하고 참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운날씨 수고 만땅 하시옵기를 바라오며 건강하시고 풍요로운 주 은혜 함께 하시길 간구 합니다.shalom~!
죄송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깔끔해서 읽기가 훨씬 편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