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테는 왜 저편 세계의 이야기를 마치 실재처럼 이야기 하였을까?
단테의 『신곡(神曲)』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모두 여행한 자신의 체험담-사실은 판타지이겠지만-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는 신곡에서 저편세계의 체험을 마치 자신이 실제로 겪을 일처럼 ‘기행문’의 형식으로 쓰고 있다.
어떤 이들은 10년 동안 썼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40년을 썼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왜 비-현실적인 저 세상의 이야기를 그토록 심혈을 기울려 썼을까?
오늘은 그의 여행 중 첫 번째 장소였던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 지옥은 끔찍하고 추한 곳이다!
지옥에는 온갖 끔찍하고 추한 모습을 한 영혼들이 나온다. 그 끔찍한 영혼들의 모습은 지상에서 그들이 행한 육체적 정신적 행위들과 습관들에 일치한다. 그 구체적인 진술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그들을 자세히 보니 하나같이 돈주머니를 목에 매달고 있는데... ”
(『신곡』, 유빌 옮김, 미리언셀러, 2011, 91쪽.)
“그가 좀 더 자세히 관찰하다가 그들의 기괴한 형상을 보고는 섬뜩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턱에서 앞가슴 까지 비틀어 꼬아 놓은 형상으로 얼굴이 등 쪽에 달라붙어 앞을 바라 볼 수 없었다.” (106쪽)
“마왕 루시펠은 지금은 이처럼 추한 몰골이지만 하느님을 배반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기 이전에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였다.” (154쪽)
● 지옥의 존재이유는 정의를 위한 것이다!
단테는 이러한 지옥이 존재하는 것은 곧 정의 실현을 위해서라고 한다. 마치 불교에서 업보가 개개인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하듯이, 신의 정의가 저편세계에서 이편세계의 각자의 행위들에 대한 심판을 한다고 본 것이다. 단테의 눈에는 세계는 결코 부조리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말해주는 그의 진술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정의가 세상의 위조범들을 벌주고 있었다.” (141쪽)
“하느님의 정의가 무엇이며, 그리고 왜 이 같은 죄악들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지 두려워하며...” (47쪽)
“이곳에서는 신의 정의로운 심판에 동정을 느끼는 것처럼 큰 불경스러움은 없는 것일세.” (107쪽)
“이 형벌은 당신들의 탐욕이 선한 사람들을 짓밟고 악한 인간들의 영화를 위한 세상을 만든 죄악의 업보입니다.” (103쪽)
“정의를 목말라 하는 자 복이 있도다.” (250쪽)
이상의 단테의 지옥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준다. 선량한 이들이 흘린 눈물이 결코 무상은 아니며, 힘과 폭력으로 나약한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이들이 결코 그 행위의 댓가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과 구체적인 이름들 –역사에 실제로 존재한 사람들-을 밝혀주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마치 ‘단테가 실제로 지옥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참으로 강심장이 아니라면 실제로 존재했던 이들을 그것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정치가들이나 성직자들까지도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추정하여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테가 묘사하는 지옥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이름이 열거되어 있고, 그 중에는 학자, 정치가, 성직자, 이웃 사람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이름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실존의 인물의 이름을 밝히고 있을까?
단테가 말해주고 있는 지옥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아마도 이러한 지옥의 모습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면
누구도 현재의 부-도덕한 모습들을 그대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지옥의 고통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이러한 지옥에나 어울리는 자신의 영혼의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부정하고,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고,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가난한 이들의 재물을 약탈하고, 거짓을 일삼으면서 타인들을 괴롭히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법과 양심과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단테가 섬세하고 리얼하게 그리고 길게 묘사하고 있는 <지옥의 모습>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현재 자신들의 영혼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하고 추한 것인지를
가늠해 보고,
또 자신들의 행위가 낳을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 것인지를
직접 눈으로 본다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어린이 동화 같은 소리’라고 비웃는 자가 있다면
아마도 단테는 이러한 사람에 대해
“가장 아름다웠던 천사 루시퍼가 가장 추한 천사로 추락할 때
범하였던 그 어리석음과 동일한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