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메밀꽃 정희순 지천으로 피던 들꽃이 다 질 무렵, 메밀은 힘 있게 뻗어나가 8월 하순이면 하얗게하얗게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다. 그 누가 그리도 그리운 것일까? 그 누가 그리도 사무치는 것일까? 달밤에 흔들리며 생전에 못 다한 말 바람에 토해내고 있다. 싹이 나서 자랄 때는 여린 순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주고, 여물어 수확해서는 묵으로 효도하고, 껍질로는 님의 숨결 느끼려고 베게가 되어 님의 곁을 서성이는 메밀은 사람하고 참 친한 곡물이다. 메밀은 성질이 차고 서늘하여 더위를 식히는 음식이며 많이 먹으면 위벽을 깍으므로 하루에 3번씩 주식으로 먹을 음식은 못된다. 그래서 대접을 못 받던 작물인데 지금은 웰빙 식품으로 귀하신 몸이 되었다. 메밀은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멸하려고 심고 먹게 하였으나 우리민족이 요리를 잘 해먹으므로 더 주목받는 음식으로 탈바꿈이 되었다. 먹을 것이 모자라던 때에 메밀은 소중한 양식이 되었다. 여름에는 국수로 겨울에는 묵으로 서민들에게는 효자 식량이 되었는데.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랐고 때를 조금 늦게 심어도 잘 여물었다. 그리고 씨앗을 보관만 잘하면 만년이 되어서도 싹이 나는 전설의 씨앗이다. 메밀의 원말은 모 밀이다. 열매가 삼각으로 모가 났다하여 모 밀이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 밀이 메밀이 되었다. 모 밀은 가루 내어 국수를 해서 먹고 껍질은 베게로 사용하여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는데 지금은 강원도 봉평이 주산지가 되었다. 7월의 하순 어머님은 메밀을 심었다. 때를 따라 밭의 작물을 다 심고 밭이 남았더니 메밀을 심으셨다. 때가 늦어 싹이 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하셨는데 씨를 심고 비가 와서 그랬는지 금방 싹이 났고 이내 밭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그 후 한 달이 지나자 여물더니 많이 수확이 되었다. 어머님은 풍년이라고 좋아하셨다. 겨울이 되자 나에게는 힘든 시간이 되었다. 엄동설한에 묵을 쑤신다고 맷돌에 갈고 체에 쳐서 고운 가루를 만들더니 물을 풀어 들기름을 넣고 자루를 짜는데 걸쭉해서 쉽게 물이 빠지질 않았다. 온힘을 다해 자루속의 메밀을 짜내어 묵을 쑤는데 이것도 걸쭉해서 주걱 젓기가 힘들었다. 나는 힘들었어도 묵 쑤는 법을 배우고 싶어 거들었으나 어머님은 일을 잘한다고 자꾸 시켜서 한해겨울 메밀묵 쑤느라 혼이 났다. 그래도 묵을 쑤어 신 김치를 넣고 무쳐서 온가족이 야식으로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힘들었지만 배부르게 먹었고 온가족의 정이 뭉쳐졌던 겨울의 그 밤이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다. 메밀이 바람에 날리며 그리움을 토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메밀도 나 같은 그리움이 있어서이겠지. 메밀도 나 같은 배고픔이 있어서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