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jnilbo.com/2019/09/15/2019091512283498171/
성범죄 의심 교사 이유불문 직위해제 광주, 대구 두 곳
광주시교육청 스쿨미투 대응 논란 <상>
6개 광역시교육청 사안에 따라 수업 배제, 연가 등 조치
수사개시 후 직위해제... 위헌 소지로 폐기된 법안과 동일
"직위해제 사실상 징계... 한 명의 억울한 교사도 없어야"
지난 7월 24일 광주 모 중학교의 배이상헌 교사가 성비위 혐의로 직위해제됐다. 광주시교육청이 해당 학교 전 학년 전수조사를 통해 배이교사의 성비위가 의심된다고 판단, 지난 7월 9일 경찰에 수사의뢰 했고 경찰로부터 수사개시가 통보되자 취한 조치다.
당시 배이교사와 학교 측은 소명기회도 주지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시교육청은 경찰에서 성범죄 의심 교원에 대한 수사가 개시되면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직위해제하게 돼 있다며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해명했다.
과연 정말 어쩔수 없는 조치였을까? 본보 취재 결과 8개 광역시교육청 중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직위해제 처분을 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했다. 아울러 이런 조치는 2017년 위헌소지 문제로 일주일 만에 폐기됐던 법안의 내용과 ‘동일’하다. 법적 근거도 희박하다는 의미다.
물론 성비위 교사를 강력하게 제재하겠다는 시교육청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민원이 제기되는 순간, 비위에 대한 의심만으로 ‘교사의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무죄추정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민원을 제기한 학생은 옳고 민원의 대상자는 예비 성범죄자, 아니 설혹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해도 학교를 떠나야하는 결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성범죄 교원 무차별 직위해제 광주, 대구 두 곳
시교육청 관계자가 말한 직위해제와 관련된 법이란 국가공무원법 제73조3 6항으로, 직위해제 대상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성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위행위로 인하여 감사원 및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자로서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현저히 어려운 자.”
해당 법은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다는 표현을 통해 범죄의 ‘경중’을 조건 짓고 있다. 그런데 시교육청은 일단 ‘직위해제’부터 시작한다.
법과 함께 다시 문의하자 시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성범죄는 비위의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단한다”면서 “(직위해제) 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지 않냐. 피해자-가해자 분리를 위한 것이다”고 말을 바꿨다.
즉, 당초의 입장인 모든 성범죄 의심 교원이 직위해제 되는 것은 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정’이 아니고, 피해자-가해자 분리를 위한 시교육청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리 방법으로는 직위해제밖에 없는 것일까?
광주를 제외한 나머지 7개 광역시교육청 중 6곳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직위해제, 수업교체, 수업배제, 연가 등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방법을 택한다. 부산, 울산, 세종은 성폭행 등 심각한 성범죄의 경우나 피해자의 상태 등을 고려해 직위해제를 판단했고, 대전에서는 경찰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위해제를 결정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혐의가 밝혀지기 전에 직위해제를 하지 않는다”며 “다른 분리 방법을 택하고 범죄 혐의가 확실하게 밝혀졌을 때 징계위원회가 직위해제 등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 위헌소지로 폐기된 법안 교육부 매뉴얼로 부활
시교육청에서 제시하는 직위해제의 또 다른 근거인 교육부의 “‘2019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의 행위 교원 조치 부문 중 수사기관 통보 시 직위해제'” 지침도 논란이다.
이는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위헌 소지가 제기돼 일주일 만에 철회했던 발의 법안의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2017년 12월 11일 교원이 성범죄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경우 직위해제토록 한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당시 박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법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한 명이라도 억울한 교원을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직위해제는 징계가 아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파면·해임에 준하는 징계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국회의원 역시 ‘무죄추정’이라는 대원칙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철회한 사항을 시교육청이 교육부의 지침이라는 이유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법률전문가들은 이런 시교육청의 조치는 교권 침해와 자치단체의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민플랫폼 나들의 김경은 변호사는 “한 번 직위해제가 되면 소청으로 이의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취소해야해서 무혐의가 나온다해도 교사로서의 명예와 지위를 바로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에서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사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지 않아야함을 명시하고 있다”며 “성비위 근절의 행정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해 법령의 처리절차를 무시하고 교육부 매뉴얼을 임의로 우선 적용하는 것은 자치단체의 권한을 남용하는 결과를 낳을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내 성범죄는 분명 근절돼야 할 문제지만, 이로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한명이라도 나온다면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시교육청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