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맹학교의 역사를 찾아서
이번 호 장애인계 뉴스에서는 맹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학생들의 스포츠 분야 수상소식이 전해졌다. 맹학교에서는 시각장애학생이 시각 외에 다른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 지도하며 특히 촉각과 청각을 활용한 교육효과에 중점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점자, 녹음도서, 각종 모형 등을 사용하여 교육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해 맹학교가 설립되어 있으며 시각장애의 특성에 맞춰 특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번 흰 지팡이 발자취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맹학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생긴 맹학교는 1784년 파리에 설립된 파리맹학교다.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파리맹학교에서 점자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파리맹학교가 설립된 후 여러 나라에서 파리맹학교에서 시행하는 시각장애인 교육을 보고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미국의 안과의사 새뮤얼 하우는 프랑스 유학 당시 시각장애인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830년에 미국 최초의 맹학교인 퍼킨스맹학교를 보스턴에 설립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헬렌 켈러 역시 퍼킨스맹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는 퍼킨스맹학교에 등록하여 교육을 받은 후 청각장애학교에서도 교육을 받고 공부하여 대학교 진학까지 성공하게 된다. 이처럼 퍼킨스맹학교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설로 손꼽히며 기숙사제도와 직업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퍼킨스맹학교는 영아원 시설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반교육과 다름없는 교육과정과 특수 직업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1881년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의 귀국보고서인 ‘일본문견사건’이나 유길준이 서양을 방문하고 작성한 ‘서유견문’을 통하여 다른 나라에서 실시되는 시각장애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자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에는 당시 서양의 특수교육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교인 치아원, 시각장애인 교육기관인 맹인원, 농아인 교육기관인 아인원 등 장애의 특성별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당시 서양 특수교육이 ‘서유견문’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시작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귀중한 자료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에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특수교육을 실시할 전문 인력이 없었고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선교사에 의하여 특수교육이 실질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 홀은 1894년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하여 시각장애인 소녀 오봉래 양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지난 호 흰 지팡이 발자취에서 선교사 홀이 뉴욕포인트라는 미국의 점자를 토대로 평양 점자를 만들었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선교사 홀이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하고 시각장애학생을 가르치면서 평양점자를 제작한 것이다. 이어 선교사 홀은 농아인을 위한 평양농아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나중에는 평양여맹학교와 평양농아학교를 합병하여 평양맹아학교로 개칭하였다.
초기 평양맹아학교에서는 점자지도 외에 학생의 능력에 따라 성경, 지리, 음악, 직업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점차 국문, 생리학, 산술, 음악, 영어 등 다양한 과목이 편성되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후에는 점차 일본학교의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개편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 당시에도 맹학교에서 침, 구, 안마 등을 가르쳐 직업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맹학교의 첫 제자인 오봉래 양은 동경맹학교 사범과에서 침안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직접 학생들에게 침, 구, 안마를 가르쳤다. 평양맹아학교의 초기 교육과정에서는 안마 교육이 포함되지 않았으나 후기로 가면서 안마가 교육과정에 포함된 것이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점복자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위해 실시한 교육이었다.
또한 평양맹아학교에서는 일상생활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쳤다. 특히 기숙사에서 밥하기, 빨래하기, 바느질하기, 청소하기 등을 가르쳤으며 전광명 선생은 시각장애인이라도 자기 옷은 자기가 꿰매 입어야 한다고 말하며 철저하게 일상생활 기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특히 시각장애여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김장하기, 메주 쑤기, 장 담그기, 떡 만들기, 전 만들기 등도 가르쳤다. 학교에서 식사 준비를 할 때도 보모가 쌀을 내어주면 시각장애여학생들이 스스로 밥을 지을 정도였다.
선교사 홀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는 1912년 제생원을 짓고 맹아부를 설립하였다. 제생원 맹아부는 최초의 관립특수학교로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보통교육, 직업교육을 실시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으며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송암 박두성이 조선어점자위원회를 조직하여 훈맹정음을 배포한 것이다. 특히 제생원 맹아부는 현재 서울맹학교의 전신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이 후 1935년에는 이창호 목사가 평양에 평양광명맹아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최초로 한국인이 직접 맹학교를 지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현재 맹학교는 전국에 총 13곳이 있다. 구한말 어려운 시기부터 시각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위해 많은 사람이 애써온 만큼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이 나날이 발전하여 시각장애학생들의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더불어 전국에 있는 시각장애학생들을 위해 맹학교의 숫자가 늘어나 물리적 거리로 인해 겪는 시각장애학생의 어려움이 사라지길 바란다.
-「한국 시각장애인의 역사 (임안수, 2010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발췌
출처 : 브레일 타임즈 7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