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19세기 미국 기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 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영화, 만화, 과학기술학(STS), 과학기술 민주화 등에 대해 잡다하게 관심을 가지면서 다양한 글을 쓰고 번역해 왔으며, 1998년부터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1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시민과학센터 소식지 [시민과학]의 편집 책임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성공회대와 서울대에서 <과학기술과 사회> 등의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원래 전공인 과학 기술사 외에 과학 논쟁, 과학 언론, 대중의 과학 이해, 과학 연구 윤리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는 『대중과 과학기술』(편저) 『과학기술·환경·시민참여』(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인체 시장』(공역) 『디지털 졸업장 공장』 등이 있다.
20세기 거대과학이 가져온 논쟁들을 해부한다!
20세기의 과학은 인류에게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안겨주었다. 20세기 과학활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통해 양적으로 팽창하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전문 연구자와 엔지니어가 참여하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거대과학이 탄생하였다. 과학기술은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하지만 점차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이 부각되고, 과학과 관련된 사회적 논쟁들이 치열해지면서 과학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과학기술은 전쟁에 이용됨으로써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환경 오염 등의 전지구적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과학윤리의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야누스의 과학』은 이렇게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20세기 과학의 딜레마를 살펴보는 책이다.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주요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고, 그것이 사회나 시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것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제들을 고찰하면서, 그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들을 소개하고 있다.
배 선옥님의 글을 퍼 옴(다음에서)
야누스의 과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으로 나누어진다. 어찌 보면 서로 상극이라 절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공유하는 것. 그런 일들을 표현하는 말들은 많다. 아이러니라거나 넌센스라거나 동전의 양면이라거나 또는 야누스의 얼굴이라거나. 어떤 제목을 붙이거나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이 책이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부조리에 대한 것들이다. 다만, 그 이름 앞에는 ‘과학’이라는 제목이 하나 더 붙는다.
야누스의 과학은 20세기 들어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분야의 양면을 사회사적으로 들여다 본 보고서이다. 제목의 ‘야누스’가 의미하는 바대로 과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들여다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출간한 사계절 출판사는 이미 나에겐 익숙한 출판사이다. 사계절에서 펴 낸 책들이 내 책꽂이에 제법 여러 권 꽂혀있다. 물론,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출판사의 이름이 한 몫 했음도 사실이다. 세상이 점점 더 기득권 중심으로 자본 중심으로 유명세 중심으로 프로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인 내가 책을 선택함에 있어 위의 그런 기준들을 적용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과 철학 협동과정에서 미국기술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저자의 학문 과정 중 [과학과 철학 협동과정]에 눈이 간다. 무엇인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과학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급격하게 성공한 데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로부터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과학이발전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은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촉발시켰는데 과학은 그러한 논쟁 속에서 중요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몇 사건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page6 서문]
저자의 말대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들 위주로 이 책은 이루어져 있다. 현대 과학에서 제일 먼저 핵과학과 원자폭탄을 빼 놓을 수 없다. 다음엔 컴퓨터와 인터넷. 우주개발. 합성살충제와 오존층파괴 지구온난화와 환경 호르몬 등의 환경문제. 생명공학. 그리고 망원경의 거대화와 천문학의 거대 과학화. 판구조론 혁명과 냉전 시기의 지구과학. 여성과학자들의 좌절과 도전과 함께 과학의 상업화가 가져올 새로운 위험에 대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과학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에 조금 더 가까워진]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순수과학이 어떻게 세상과 손을 잡고 ‘순수’의 이름을 잃어버렸거나 또는 벗어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기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과학기술은 전쟁의 승패 그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되었다. 교전 각국은 전쟁초기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기존 무기의 개량과 신무기 개발에 나섰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각국의 정부들은 과학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계속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체제로 인해 군사적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전쟁에 대한 놀라운 연구개발의 기여에 힘입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냉전 초기에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이 사회 전반을 풍미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경향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거대과학(Big Sceience)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거대과학이란 대형기기를 중심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의 전문 연구자들과 엔지니어, 테크니션 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학 활동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입자가속기를 이용하는 고에너지 물리학연구, 허블망원경과 대형망원경의 건조, 아폴로계획, 인간 게놈프로젝트 등이다. 특히, 입자가속기는 거대한 장치이며, 제작하는 데 수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거쳐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과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서면서 과학이 정치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과학자의 수가 급격히 늘면서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규모로 확장된 과학자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고 연구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체계적인 협동 작업이 없는 과학 활동이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분업화, 위계화 경향이 강한 일부 분야에서는 과학자들이 거대 연구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면서 소외현상을 느끼는 일까지 생겼다.
이와 같은 입자가속기와 고에너지 물리학의 사례는 대형기기에 의존하는 거대과학의 양상과 특정과학 연구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 연구 규모의 대형화와 연구자의 소외, 기기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 증대, 과학의 정치화와 그 한계와 같은 거대과학에 재재된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어느 과학 기술이든 처음부터 인간생활에 해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면서 자본가를 위한 것임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에는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지원해주는 자본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개발된 기술이 때로는 인간들에게 치명적 결함을 드러낼 경우라도 쉽게 폐기해버리지 못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화가 나고 두렵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널리 쓰이기 시작했던 살충제 DDT 논란에 대해 읽으면서 과학 기술과 정치와 자본의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전후 진보의 상징과도 같았던 합성 살충제 DDT가 생태계와 인간에 해를 끼치는 주범으로 낙인찍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바로 구입했으려고.
판구조론으로 설명되는 오늘날의 지구과학 연구도 20세기 중반을 휩쓸었던 냉전의 자장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분야라고 한다. 판구조론 연구를 하는 해양과학자들은 군의 지원을 받아 값비싼 장비를 갖춘 해군고속의 연구선을 타고 해양 탐사를 나갔는데 이런 군대의 ‘개입’은 자유분방했던 연구의 이점을 부분적으로 상실해야 했다고 한다. 군대의 돈을 받는 학자들은 1950년대의 메카시즘(이른바 ‘빨갱이 사냥’) 열풍 속에서 정부의 신원조회를 통과해야만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고 해저지도 같은 연구 성과의 일부는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논문으로도 발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순수과학’의 처녀성이 다소 훼손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지만, 한 편 이 시대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처럼 깊숙이 그리고 집요하게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 과학이 가지는 두 얼굴 만큼이나 두렵게 느껴졌던 책이다.
당신의 미래는 얼마나 확실한가!
한국의 지성 10인이 말하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지난 2009년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대 사회를 좌우할 열쇳말로 ‘불확실성(uncertainty)’을 꼽았다. 2008년 국제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경제 위기가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2010년 현재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에서 빠져 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금융 위기를 일으킨 불확실성이 해소되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투자자 들은 추가적인 위기를 경고하고 있고, 여전히 세계 경제의 미래는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경기 지표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 주고 있고, 소비 심리나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우리 사회 지면 아래 잠재되어 있는 불확실성의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정치판에서는 세종시와 4대강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 일정을 혼돈 속에 몰아넣고, 사회에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초강력 범죄가 확산되고, 심지어 과학 기술계에서조차 황우석 교수 사건 같은 스캔들이 빈발한다. 최근 발생해 한국 사회 전체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천안함 침몰 사건 역시 한국 사회의 불확실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말 그대로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땅, 한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아무런 성찰 없이 보내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경제인도, 지식인도 위기의 현대 사회를 좌우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매번 벌어지는 사건들의 뒤처리에 급급하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10명의 지식인들과 함께 펴낸 [불확실한 세상: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은 불확실성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 대한 논의 물꼬를 트기 위한 첫 시도이다.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각 분야에서 저술 및 발언 및 참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 10인의 담금질된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최초의 메스를 대며 시대를 좌우할 키워드를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땅, 한국
“이 불확실한 나라가 정말 싫어!”
불확실성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등 사회의 온갖 영역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출몰한다. 이 책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생태/환경, 과학 기술 크게 다섯 지점에서 불확실성을 공략해 들어간다. 그리고 정치는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관점에서, 경제는 거시적 측면과 미시적 측면에서, 문화는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에서, 생태/환경은 국민 보건적 관점과 전 지구적 기후 변동 관점에서, 과학 기술은 순수 과학과 응용 기술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종으로 횡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정치 파트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 컨설턴트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와 국제 인권 문제전문가인 조효제 성공회 대학교 교수가, 경제 파트에서는 제도주의 경제학의 신예 학자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와 진화 생물학과 행동 경제학을 통섭적으로 연구하는 최정규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문화 파트에서는 문화 이론과 비판 이론의 전문가인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와 소정 종교학자인 이창익 한신대 연구 교수가, 생태/환경 파트에서는 광우병 논쟁 시 활발하게 논쟁을 주도했던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
...대 정책 국장과 젊은 과학 생태 문제 전문 기자인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과학 기술 파트에서는 대표적인 물리 철학자인 김재영 이화여대 HK 연구 교수와 과학 사회학자인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 위원이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에 도전한다.
경제 위기, 정치 불안, 성과 속의 혼란,
전 지구적 기후 변동, 과학 기술의 내재적 불안정성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이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것인가?
한국 정치 컨설팅 업계의 개척자이자, 대표적인 정치 평론가인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는 불확실한 정치에서 한국인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읽어 낸다.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정치의 무능력함에서 한국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근원임을 날카롭게 찾아낸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핵무기 통제에 실패하고, 테러리즘의 만연 속에서 증대되어 가는 핵위기의 상황을 반추하고, 국제 금융 위기의 전말을 살펴보며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의 저울이 국제 정치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국제 정치 세계에서 이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여러 흐름들을 소개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차이에 대해 성찰해 온 케인스 이후 경제학자들의 논의를 치밀하게 짚어 가면서 경제학에서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어떤 대응 방안을 내놓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 준다. 불확실성으로 하여금 창조의 동력으로, 새로운 활동의 원천으로 기능하게 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모색한다.
최정규 경북대 교수는 정보화 시대가 분명 전통 경제에 존재했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확실히 성공하기는 했지만, 모순적으로 새로운 불확실성을 생산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성은 ‘승자 독식’의 구조를 사회 속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불확실성 앞에서 무능력해진 인간이 어떻게 종교와 과학 기술 같은 세속 지식을 이용해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려 하는지 보여 준다. 불확실성에 대한 오래된 대처 방안이었던 종교가 힘을 잃자 경제인(Homo economicus)이 호모 쇼퍼홀릭(Homo shopaholic)으로 진화해 불확실성에 대처하려 했고, 결국 20세기에 빈발했던 대공황과 경제 위기에서 증명되었던 것처럼 실패했던 근대인의 시도를 냉철하게 그려 낸다.
이창익 한신대 연구 교수는 성스러움이 종교를 떠난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어떠한 변천을 겪었는지 치밀하게 분석한다. 기성 종교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서 힘을 잃고 세속적인 장치들에게 역할과 권한 그리고 권력을 양보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분석해 현대의 불확실성에 종교가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 국장은 광우병과 관련된 의과학계 논쟁의 역사,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의 논의를 소개하면서 광우병이 얼마나 불확실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지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그리고 국민 건강/보건 문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사전 예방’의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역설한다. 신종 플루 등 새로운 질병과 보건 문제가 운위되고 있는 현실에서 중요한 시사점들을 던져 주고 있다.
강양구 기자는 최근 논란이 격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석유 생산 정점(oil peak) 관련 이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기후 변동과 석유 생산이 한계에 달하는 석유 생산 정점 문제에 분명 불확실성이 있을 수 있고, 예측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응과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전 지구적 명운이 걸린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연대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김재영 이화여자대 HK 연구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과 수학이 불확실성이라는 개념을 학문 속으로 포섭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데카르트의 확실한 지식에 대한 꿈이 깨진 후 확률을 과학적, 수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고,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를 거쳐 과학과 수학이 자신 속에 내재하는 불확실성을 긍정하게 된 역사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 위원은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와 유전자 조작 식품의 사례들을 상세하게 분석하며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믿음이나 기대와는 달리, 실험실 밖으로 나온 과학과 기술에는 불확실성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으며 절대 배제할 수 없고 오히려 확대됨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 땅에서 불확실성이라는 괴물에 포획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지혜는 무엇인가?
그러나 누가 뭐래도 한국 사회 불확실성의 주범은 단연코 정치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행복 지수를 100위 밖으로 끌어내린 상당한 책임은 정치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정치의 본령을 망각한 행위다. 정치는 원래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치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중 가장 훌륭한 것은 ‘Agenda를 Non-Agenda로 바꾸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슈가 될 것을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슈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란 ‘불확실’을 ‘확실’로 바꿔 대중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가시 거리’를 길게 확보해 주는 기술인 것이다. 좋은 정치란 대중이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도록 새벽에 쓰레기를 몰래 치우는 청소차와 같은 것이다.
-박성민, [한국인은 왜 불행한가? 불확실성의 정치학]
결론 삼아, 두 가지 길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근대성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점진적으로 불확실성의 빈도와 범위를 줄여 나갈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은 이성의 문제를 이성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 그러나 불완전한 방식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대성과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 그 길은 상상력으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이지만 또 다른 불확실성을 초래할 유토피아적 신화의 세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길을 걷든 인류가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인간 조건에 내재된 근원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조효제, [불확실성의 저울이 지배하는 국제 정치]
그러나 불확실성이 이러한 순기능을 발휘하려면, 또는 그 구성원들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역동적인 사회가 작동하려면, 삶의 근본적인 안정성도 함께 확보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삶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변화와 구조 조정, 나아가 혁신에 기꺼이 동의하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제도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 제도란 시민과 정부의 상호 협력 속에서 진화해 가는 집합적 주체로서, 개인들에 비해 보다 많은 지식에 근거해 인간 사회 속의 복잡성이 낳는 부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 이익과 일반 이익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어 사회의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잘 발달된 복지 제도는 시장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줌으로써, 두려움 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창의적이고도 활력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사회의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박종현, [불확실한 세상에서 경제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독점화가 진행되면서 경쟁은 많이 제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쟁에 의한 결과는 훨씬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우연이 우연에 그치지 않고, 행위자 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가 증폭되어 파장을 가지고 올 여지가 더 많아졌다. 효율적이라고 살아남으리란 보장은 없어진지 오래고, 살아남은 것이 모두 효율적인 것들이라는 근거도 없어졌다.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시장을 선점하면 그만큼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 보이지 않는 손은 더 이상 어떠한 효율성도 약속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우리 사회는 점점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최정규, [정보화가 가져온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성]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펀드 매니저의 꼬드김에 빠져 주식에 투자했던 개인은 확실성을 판매하던 자본이 초래한 경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희생자가 된다. 경제 위기를 맞이해 파산당한 개인은 자신의 파산 원인이 확실성 상품 판매자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유래했다고 해석하지 못한다. 오히려 개인은 그 반대의 결론을 이끌어 낸다.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파산한 개인들은 자본과 거리를 두는 전략이 아니라 가장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인은 자신이 처한 삶의 위기와 확실성 상품에 대한 맹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는 오히려 확실성 상품을 너무나 적게 구매했기에 삶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한다. 삶의 위기 상황에서도 개인은 아무런 학습 효과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개인은 전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가장 불확실한 자본에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의 통제를 맡기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노명우, [불확실성의 시대와 자기의 테크놀로지]
우리 시대에 성스러움의 불확실성이 문제된다면, 그것은 성스러움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환상 때문이다. 성스러움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어서 냄새도 없고 웃음도 없는 것이라는 우리의 종교적 환상 말이다. 그러나 종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성스러움의 더러움과 추함까지도 더불어 같이 연구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종교학자의 손을 더럽힐 때가 된 것이다.
-이창익, [불확실성의 시대, 종교의 끝, 혹은 종교를 떠난 성스러움]
질병의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특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칼은 고기를 자르거나 야채를 써는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전쟁 무기나 살인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은 위험을 예방하는 유용한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위험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위험에 대처하느냐가 공중 보건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정부와 산업계는 과학적 근거주의에 입각한 유해성 입증의 원칙을 선호한다. 비판적 과학자와 시민 사회 진영은 사전 예방의 원칙에 근거한 무해성 입증을 요구한다.
-박상표, [불확실성이 증폭시킨 광우병 공포]
서로 연대해서 피해를 입는 이웃을 최소화하면서 ‘석유 없는 삶’으로 ‘정의롭게 전환(just transition)’할 때, 인류는 지금보다 한 차원 더 ‘윤리적인 동물’로 거듭날 수 있다. 사실 불확실한 세상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았던 사랑, 우애, 연대 등의 가치를 떠올리고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기회이다.
-강양구, [불확실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불확실성의 위협은 언제나 확실한 지식의 추구를 향한 진일보로 이어지고는 했다. 피론주의와 같은 근본적인 회의주의는 오히려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주의 철학으로 이어졌고, 확률적 사유 때문에 불안해 보였던 물리 과학과 생명 과학은 오히려 더 세련되고 발전된 이론으로 혁신을 일으켰다. 불확정성 원리나 불완전성 정리나 미결정성 논제는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것이 곧 확실한 지식을 향한 여정을 그만둘 변명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과학과 수학에 관한 한, 아직은 확실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재영, [불확실성의 과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규제 과학과 사회적 실험으로서의 공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에는 실험실 내의 아카데믹한 과학과는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흔한 통념과는 달리, 이러한 불확실성은 앞으로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한다고 해도 반드시 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 과학 기술과 사회와의 접점에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것은 난망한 과제라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과학 기술자들 스스로도 이를 상당 부분 인정할 정도로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김명진,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 확대된 불확실성]
[확실성의 종말]을 써 과학과 지식의 확실성에 의심한 일리야 프리고진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확실성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 현대 사회는 정치, 경제에서 과학 기술과 지식 학문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 쓸려 가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맺은 지적 연대의 결과물인 이 책은 한국 독자들에게, 그리고 한국 지식 사회에 새로운 논의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야 프리고진은 확실성의 종말을 선언한 직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것을 인간의 패배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반대라고 믿는다.” 그처럼 한국 지식 사회 역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책을 시작하며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가장 불확실한 땅에서 보내는 편지
불확실한 정치
한국인은 왜 불행한가? 불확실성의 정치학
박성민 │ 정치 컨설팅 ‘민’ 대표
불확실성의 저울이 지배하는 국제 정치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불확실한 경제
불확실한 세상에서 경제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박종현 │ 진주산업대학교 교수
정보화가 가져온 새로운 차원의 불확실성
최정규 │ 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불확실한 문화
불확실성의 시대와 자기의 테크놀로지
노명우 │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불확실성의 시대, 종교의 끝, 혹은 종교를 떠난 성스러움
이창익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 교수
불확실한 지구
불확실성이 증폭시킨 광우병 공포
박상표 │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 국장
불확실한 지구에서 살아남기
강양구 │ [프레시안] 기자
불확실한 과학과 기술
불확실성의 과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김재영 │ 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 교수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 확대된 불확실성
김명진 │ 시민과학센터 운영 위원
첫댓글 꼭! 읽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