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정하는 이유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림지는 제천 10경중 제 1경입니다. 2006년에 의림지와 주변의 소나무, 버드나무와 함께 명승20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의림지는 저수지인데요, 저수지가 뭘까요? 왜 만들어졌을까요?
네 맞습니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저수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유물에 의해 청동기시대로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 전국적으로 농지를 개발하고 넗혀나간 것은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시대였습니다. 이 때 전국에 저수지들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저수지는 정비를 하였습니다.
이런 벼농사의 역사를 통해서 의림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천의 지형을 살펴보면 용두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을 파면서 흙과 모래들을 가지고 흘러내려 하류쪽에 흙을 쌓아 퇴적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퇴적지가 지금의 농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쪽의 물길에 둑을 쌓으면서 의림지가 된것입니다. 의림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있었구요, 의림지의 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림지의 둘레는 1.8km, 깊이는 8~13m입니다. 의림지의 주변으로는 180그루의 소나무, 버드나무, 벚꽃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는 수령이 200년이상 된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의림지의 재림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영호정, 경호루, 우륵정 이렇게 3개의 정자가 있습니다. 영호정은 1807년 이집경이 건립하였습니다. 6.25 전란을 겪으면서 부숴졌던것을 그의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의림지 주변으로 많은 정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관광지로 소문이 나면서 많은 양반들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등을 겪으면서 다 부숴졌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겼던 제천군수 김득련이 1948년 서울의 홍순간에게 돈을 빌려 지었다고 합니다. 우륵정은 의림지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라 요즈음에 지어진 정자입니다. 우륵은 가야금을 만든 사람입니다. 가야 사람인데 신라가 충북을 차지했던 5세기에 신라을 따라 충주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기록은 여기까지 입니다. 우륵이 제천지역을 관광하다가 의림지를 보고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터를 잡고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어 제천민들을 도와 주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전설을 기반으로 정자를 짖고 우륵이 물을 마셨다는 우륵샘도 있습니다.
의림지 안에 섬이 있는데 순주섬입니다. 옛날에는 순주섬 근처로 순채라는 수생식물이 자생하였다고 합니다. 순채는 임금님께 진상이 되었던 특산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생하지 않아 인공적으로 복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림지바닥에서는 샘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림지의 수온이 낮게 유지가 되어 빙어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팔둑만한 붕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의림지의 물이 적을때는 붕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의림지는 옳을 의 , 수풀 림, 못 지, 자를 씀니다. 의림은 고려시대 때 제천지역이 '의천' '의원' 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요,샘물이 솟아나는 지역을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거기서 '의' 자를 따서 의림지로 지었다고 합니다.
제천이라는 이름은 '둑 제' , '내 천' 자를 쓰고 조선시대부터 쓰였습니다. 의림지를 말합니다. 고구려 때 '내토', 신라 때 '내제' , 고려 때 '제주' 모두 의림지를 가르킴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의림지가 제천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있는 대목입니다. 수천년의 역사 동안 제천민들과 함께한 의림지는 지금도 청천뜰에 물을 제공해서 쌀을 길러내고, 제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면서 앞으로도 수천년동안 제천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