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근 찰방(沙斤察訪) 이두현(李斗賢)
임진.1712,숙종38,12월도임
을미,1715,숙종41,3월과체.임기만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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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현(李斗賢,1673~?)
[진사] 숙종(肅宗) 22년(1696)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12위(17/100)
생년 계축(癸丑) 1673년 (현종 14)
합격연령 24세
본인본관 함평(咸平)
거주지 한성([京])
선발인원 100명 [一等5・二等25・三等70]
부모구존 ○○하(○○下)
[부(父)]
성명 : 이심(李潯)
품계 : 어모장군(禦侮將軍)
관직 : 행충무위부사용(行忠武衛副司勇)
[출전]
『병자식년사마방목(丙子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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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7년 신해(1731) 10월 11일(신축) 흐림
07-10-11[23] 시민당에서 윤대관이 입시할 때 통례원 찬의 이두현 등의 이력과 소회를 물었다
미시(未時)에 상이 시민당(時敏堂)에 나아갔다. 윤대관(輪對官)이 입시한 자리이다. 동부승지 한사득(韓師得), 가주서 강필문(姜必文), 기사관 송시함(宋時涵)ㆍ조명리(趙明履), 통례원 찬의(通禮院贊儀) 이두현(李斗賢), 사복시 판관(司僕寺判官) 정석주(鄭錫疇), 활인서 별제(活人署別提) 진상주(陳尙周), 의영고 주부(義盈庫主簿) 강완(姜梡), 중학 훈도(中學訓導) 박수태(朴壽台)가 입시하였다.
이두현이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직명(職名)과 성명을 물으니, 이두현이 아뢰기를,
“소신은 통례원 찬의 이두현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력(履歷)을 물으니, 이두현이 아뢰기를,
“병자년(1696, 숙종22) 식년시 소과에 합격한 뒤에 참하(參下) 인의(引儀)에서 6품으로 올라 북부 주부(北部主簿)가 되었고, 찬의(贊儀) 및 사근 찰방(沙斤察訪)으로 옮겨 제수되어 임기를 채웠습니다. 병오년(1726, 영조2)에 복직되어 남부 주부(南部主簿)가 되었고, 사도시 주부(司䆃寺主簿) 및 6품 인의로 옮겨 제수되었다가 지난해에 또 본직(本職)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였다. 상이 담당하는 직무를 물으니, 이두현이 아뢰기를,
“통례원은 달리 맡은 일이 없습니다. 크고 작은 조정의 의식이 있을 때마다 예조가 의주(儀註)를 내어 계하받은 뒤에 홀기(笏記)을 만들면 봉행(奉行)할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소회(所懷)를 물으니, 이두현이 아뢰기를,
“특별히 진달할 소회가 없습니다.”
하였다.
정석주가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직명과 성명을 물으니, 정석주가 아뢰기를,
“소신은 사복시 판관 정석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력을 물으니, 정석주가 아뢰기를,
“을미년(1715, 숙종41) 식년시에 생원이 되고 병신년(1716)에 세마(洗馬)에 제수되었다가 6품으로 올라 예빈시 주부가 되었습니다. 그 뒤 의금부 도사, 익위사 위솔(翊衛司衛率), 선혜청 낭청(宣惠廳郞廳), 호조 정랑, 고양 군수(高陽郡守),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 형조 좌랑을 지내고 기유년(1729, 영조5) 윤7월에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담당하는 직무를 물으니, 정석주가 아뢰기를,
“맡은 일은 목장 토지에서 세(稅)로 들어오는 전곡(錢穀) 및 제원(諸員)의 가포(價布)로 사복시 원역(員役)들의 요포(料布) 및 크고 작은 공적인 비용에 지급하는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소회를 물으니, 정석주가 아뢰기를,
“본시의 모든 일은 모두 옛 규례가 있는데, 혹 부득이하게 변통할 것이 있으면 작은 일은 제조(提調)에게 물어 의논하여 합니다. 만약 제조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은 초기를 올리거나 진달하여 행하니, 별달리 아뢸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진상주가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직명과 성명을 물으니, 진상주가 아뢰기를,
“소신은 활인서 별제 진상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력을 물으니, 진상주가 아뢰기를,
“무자년(1708, 숙종34) 식년시로 출신(出身)하여 처음 관직에 붙여져 훈련원 참군(訓鍊院參軍)이 되었고 신해년(1731, 영조7) 8월에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담당하는 직무를 물으니, 진상주가 아뢰기를,
“무녀(巫女)를 맡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소회를 물으니, 진상주가 아뢰기를,
“별다른 소회가 없습니다.”
하였다. 강완이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직명과 성명을 물으니, 강완이 아뢰기를,
“소신은 의영고 주부 강완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력을 물으니, 강완이 아뢰기를,
“계사년(1713, 숙종39)에 가인의(假引儀)가 되었다가 갑오년(1714)에 파산(罷散)되었는데, 병오년(1726, 영조2)에 복직되어 가인의가 되었고, 무신년(1728)에 겸인의(兼引儀)가 되었다가 경술년(1730)에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담당하는 직무를 물으니, 강완이 아뢰기를,
“촉자(燭子) 및 소선(素膳) 등의 물건을 맡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유재(遺在)를 물으니, 강완이 아뢰기를,
“원공(原貢) 공상(供上)으로 거의 다 떨어져서 지금은 가용(加用)하기 때문에, 유재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소회를 물으니, 강완이 아뢰기를,
“만약 대단하게 변통할 일이 있으면 호조 판서가 예겸 제조(例兼提調)로서 여쭈니, 소신은 별달리 아뢸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박수태가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직명과 성명을 물으니, 박수태가 아뢰기를,
“소신은 중학 훈도 박수태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력을 물으니, 박수태가 아뢰기를,
“기유년(1729, 영조5) 친림하여 전강(殿講)을 보이셨을 때 전시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받아 그해 식년시 때 전시(殿試)에 응시하여 급제해서, 몇 개월 전에 본직에 제수되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담당하는 직무를 물으니, 박수태가 아뢰기를,
“맡고 있는 것은 유생(儒生)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소회를 물으니, 박수태가 아뢰기를,
“사학(四學)이 피폐하여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안(扶安)에 면세받은 대전(垈田)이 있어 조종조 이래로 사학으로 하여금 거두는 세금을 가지고 선비를 양성하는 밑천으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호조에서 세금을 물리므로 지난번에 동학 훈도(東學訓導) 배경후(裵慶垕)가 윤대관으로 입시했을 때 진달하여, 상께서 해당 조로 하여금 부안의 대전 40결을 도로 면세하라는 하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유년(1729, 영조5)과 경술년(1730) 두 해의 세미(稅米)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사학이 더욱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여 선비를 양성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것은 거조를 내고, 호조에 신칙하여 내주도록 하라.”
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 나갔다.
[주-D001] 제원(諸員) : 승문원, 상의원, 사복시, 전설사, 교서관, 사옹원 등에 딸린 아전의 하나이다. 《六典條例 吏典 司饔院》[주-D002] 유재(遺在) : 호조에서 공인(貢人)들에게 공가(貢價)를 선지급하고 공물(貢物)을 납품받은 뒤 회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로, 납품받은 양이 적어 채우지 못한 물종(物種)으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구유재(舊遺在)는 유재로 처리된 지 여러 해 된 부분을 말한다. 《萬機要覽 財用編3 戶曹貢物》[주-D003] 가용(加用) : 호조에서 공인(貢人)들에게 공가(貢價)를 선지급하고 공물(貢物)을 납품받은 뒤 회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로, 납품받은 양이 공가보다 많아 기록할 물종(物種)의 명목이 부족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 공인에게 더 받아 쓴 것이라는 의미이다. 《萬機要覽 財用編3 戶曹貢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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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년 을사(1725) 3월 7일(을사) 맑음
01-03-07[13] 이비(吏批)와 병비(兵批)의 관원 현황과 계 및 관직 제수 내용
병비가 아뢰기를,
“어제 정사에서 새로 제수된 천수 첨사(天水僉使) 이두현(李斗賢)의 ‘현(賢)’ 자를 ‘흥(興)’ 자로 잘못 써서 들여 낙점받았으니, 황공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원래의 단자에 고쳐 부표(付標)해 들입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년 을사 > 4월 2일 > 최종정보
영조 1년 을사(1725) 4월 2일(기사) 맑음
01-04-02[09] 우현 첨사(牛峴僉使) 유첨(柳瞻) 등에게 궁시(弓矢)를 주어 보내라는 비망기
비망기에,
“지금 내린 궁시(弓矢)를 우현 첨사(牛峴僉使) 유첨(柳瞻), 천수 첨사(天水僉使) 이두현(李斗賢), 위곡 첨사(委曲僉使) 문수원(文壽元), 조산 만호(造山萬戶) 김우서(金禹瑞) 등에게 주어 보내라.”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하운하 (역)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