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 (빅터 프랭클)
살아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상천지에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사랑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밤새 혼자서 눈물 흘리며 유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할 때가 있다. 살 소망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빅터 프랭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1997)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한때 그는
잘나갔다. 32살 나이에 자신의 클리닉을 개설할 때만 해도 그러했다. 무려 3만 명의 자살 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을 치료했으니
의사로서 긍지도 대단했다. 그런데 나치가 오스트리아에 침공하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마디로 끝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나치 수용소를 전전하였다. 수용소를 네 번이나 옮기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일 먼저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틸리는 베르겐-벨센 수용소에서, 어머니 엘사는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동생 월터는
강제 노역 중에 사망하였다. 누구도 살아갈 소망이 없는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수용소 안은
‘실존적 공허’ 그 자체였다. 거기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는
많은 동료 수감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희망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도
버텨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삶의 의지가 있을 뿐이었다. 매일매일 힘들고 고단한
삶이지만, 생존 의지를 키워나가는 사람들은 살았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본능적으로 수감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
소망을 찾았다.
영화 라운드업에서
그는 니체가 했던 말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왜 사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 그 답을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 한 컵의 물이 배급되면, 반만 마시고 나머지로 세수와 면도를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깨진
유리조각으로 면도하였다. 턱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났지만, 그의 눈은 삶의 의지로 불타올랐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성공과
명예가 아니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운명에 위대한 용기로 맞서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영화 라운드업에서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Abebe Bikila, 1932~1973)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2번 연속 우승하였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되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아베베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두 다리는 무력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두 팔이 있었다. 그는 팔의 힘을 기르며 양궁,
탁구, 눈썰매 등에 매진했다.
1970년 노르웨이 25km 휠체어 눈썰매크로스컨트리대회에서 그는 금메달을 땄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도 비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올림픽에서 우승했던 것은 신의 뜻이었고, 내가 사고를 당했던 것도 신의 뜻이었습니다.
내가 성공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나는 나의
비극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이 두 상황을 삶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베베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The Athlete, 2009, 데이비 프랭켈, 라세라스 라케 감독)
영화 The Athlete
빅터
프랭클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는 집단수용소에 안 갈 수도 있었다. 그는
신경과학자로서 미국으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에게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자, 그는 부모를 외면한 채 혼자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았다.
삶에 절대적 의미란 없다. 오직 각자의 삶에 각자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마라톤 우승을 기뻐하는 아베베
오늘날
많은 사람은 삶을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부나비들은 앞의 나비가 불에 타 죽는 것을 보면서도 불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부나비를 보고 어리석다고 말 할 것이 없다.
빅터 프랭클은 아무런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것을
동조주의(conformism)라 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 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을 따라 넓은 길로 가는 것을 성경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라 한다.
힘들고 어렵다면서, 한 명의 진실한 친구를 찾기 힘들다면서 푸념만 하고 생각 없이 살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찾으면, 당신은 지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당신은 또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면의 본질에 삶의 가치를 두고 자신에게 한 발짝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어라.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 (빅터 프랭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