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필 신인상 수상작
가을꽃
이상열
추석을 얼마 앞둔 대목장은 먹거리가 넘쳐 났다. 오일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릴 때 좋아했던 생과자와 뻥튀기도 보이고, 찰수수 부꾸미, 메밀전병이 군침을 돌게 했다.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난전에 앉아 모듬전에 막걸리 반병을 비웠다. 가마솥에 설설 끓고 있는 장터국밥을 곁눈질하며 불콰하게 가을 단풍 든 얼굴로 장터를 휘저으며 걸었다.
가을볕에 농익은 과일들이 추석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맑은 황토 빛을 띤 커다란 배가 가운데 자리 잡고 앉았고 그 아래에 붉디붉은 사과가 알전구마냥 빛나고 있다. 가을 장에는 토종 과일이 으뜸이다. 수입 과일의 달콤한 유혹도 이즈음이면 힘을 잃는다. 칠레산 포도와 열대 바나나들은 눈치를 보느라 시들부들하다. 그것들 사이에 가을꽃처럼 활짝 핀 붉은 감이 눈에 들어온다. 홍시, 단감, 주먹만 한 대봉감이 꽃 잔치를 벌인다.
‘감은 울쿤감이 최곤데….’
나는 과일 좌판을 두리번 거린다.
“할머니, 혹시 땡감 없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아서…. 어디보자, 마당에 매달린 거 몇 개 가져온 게 있을지 몰라.”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자루를 뒤적인다.
우린 감이 정확한 명칭이지만 고향에서는 울쿤감이라고 했다. 딴딴하고 떫은 땡감을 소금물에 숙성시켜 단맛을 짙게 우려낸 감인데 단감이나 홍시보다 맛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울쿤감하면, 내 친구 진규네 감이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진규 어머니 솜씨로 담근 울쿤감은 가을이면 단골 간식이었다. 우리 집에도 어머니께서 울쿤감을 담그기도 하셨는데 어쩐 일인지 진규네 감이 훨씬 더 맛있었다.
진규는 같은 또래보다 키가 크고 눈도 컸다. 얼굴이 갸름하니 작았고 코는 오똑하고 약간 곱슬머리였다. 피부도 하얀 데다 서구적인 미남형이었다. 그렇지만 별로 나서지도 않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진규네 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보기에도 형편이 안 좋아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마음 편하게 놀다 가도록 진규 부모님들이 살뜰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우리는 진규네의 귀한 손님이 되었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 같은 푸짐한 간식을 먹으며 실컷 놀 수 있었다. 동네 뒷산에 가서 밤도 줍고, 전쟁놀이도 하고, 말뚝 박기도 하고, 냇가에서 피라미도 잡고 놀았다. 보리가 많이 섞이긴 했지만 된장국, 감자볶음 등으로 차려준 밥은 더할 수 없이 달았다.
가을에 진규 집에 가면 학교에서는 항상 조각으로 잘라 먹던 울쿤감을 통째로 맛볼 수 있었다. 진규 부모님은 우리에게 주려고 수시로 항아리에 감을 담그고 안방 아랫목에 두어 울쿠는 정성이 대단하였다. 안 그래도 염치없이 발길이 잦은 우리가 울쿤감에 꽂혀서 가을이면 진규 집에서 살았다. 오죽했으면 우리 어머님이 쌀 한 포대라도 진규 집에 보내려고 하였을까.
진규네 뒷담에 붙어 있던 감나무가 아주 컸다. 어느 날, 진규가 평소보다 높은 가지에 올라 홍시를 따서 장대로 내려줬는데, 나는 갑자기 그에게 거기서 뛰어내려보라고 부추겼다. “너는 바보라서 못 뛸 거야.”라고 약 올렸고 내가 올라가서 시범을 보여줄 수 있다고도 하였다. 바보라는 말에 진규는 몇 번을 망설이며 주저하다가 바닥으로 꽈당 굴렀다. 아뿔싸! 녀석은 발을 접질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였다.
목발을 짚고 퇴원한 진규는 미안해하는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더욱 미안해진 나는 우리 집은 학교에서 50여 미터 정도 거리이니 학교를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규 부모님을 설득하였다. 다음 날부터 나는 진규 책가방을 대신 들고 같이 등교를 했다. 그러는 바람에 진규 아버님은 매일 두 차례씩 우리 집을 왕복하였다. 오실 때마다 새로 싼 점심 도시락과 울쿤감을 가져오셨다. 한 달 가까이 같이 지내면서 진규와 나는 처음에는 떫은 사이였지만 울쿤 감처럼 단맛이 들었다. 아침마다 먼 길을 마다않고 울쿤감을 들고 오시는 진규 아버님의 수고를 지금 생각해봐도 죄송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
진규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이었다.
“아들한테 지극 정성이시다. 너 아빠한테 잘 해드려.”
순간 진규는 조용히 바닥만 쳐다보고 있더니 지나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네가 부럽다. 너하고 아버지 사이가.”
“짜식, 니네 아빠가 너한테 그렇게 잘해주시는데, 나는 네가 더 부럽다.”
진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래, 친척들이 수군거려 알았어.”
“….”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음처럼 앉아 있었다.
“전쟁이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 갔대….”
진규와 마지막 밤을 하얗게 새웠다. 나는 처음으로 진규가 이국적이 외모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울쿤감처럼 스스로 자신을 곰삭히던 진규의 손을 나는 꼭 잡아 주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진규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다른 도시에 있는 학교로 가는 바람에 그나마 안부조차 모르고 살았다. 진규 부모님 속은 어떠했을까.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떫은 풋내를 뱉고, 달짝지근한 맛으로 익은 울쿤감 같은 가족이었다. 서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가족이라는 하나의 맛으로 탄생한 진규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정이었다.
기억이란 것은 때론 잔인하고 때론 아스라이 가슴을 뒤흔들기도 한다. 붉은감이 내 가슴에 등을 켜는 것처럼 환하게 진규를 불러낸다. 입맛이라는 것도 변해버렸고 진규 어머니도 이젠 안 계시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울쿤감을 담아 보기로 했다.
할머니가 과일 좌판 뒤에 있는 자루를 거꾸로 쏟아내니, 생긴 것도 못난 감이 우르르 쏟아진다. 떫고 이지러진 땡감이 과즙 한입 가득 고이는 울쿤감으로 변할 때까지 가을의 시간은 또 흐를 것이다.
“이거 그냥 가져가. 집에 굴러다녀서 가져오긴 했는데 돈 받긴 그래.”
“이걸 그냥 주시다니….”
나는 어쩔 줄 몰라 눈만 껌벅이면 미안해한다.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 감을 담는다. 억센 갈퀴처럼 휘어진 할머니 손가락 사이로 붉은 감이 꽃처럼 피어난다.
“할머니, 울쿤감 담아 다음 장날에 들고 올게요.”
할머니는 굽힌 허리를 펴지도 않고 서서 손을 흔든다. 가을 햇살이 할머니 등 뒤로 쏟아진다.
나무에 매달렸을 때부터 감은 온 힘을 쏟아 붉어졌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아픔을 스스로 응시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진규에게 필요했으리라. 곰삭고 잘 발효된 울쿤감처럼 그득그득 묵은 향내를 풍기는 그곳, 진규네 초가집이 그립다. 삶이 그저 그런 날에는 감이 익어가던 질항아리 시간 속으로 나는 풍덩 담그고 오래오래 쉬어 가고 싶다.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저 홀로 가을꽃을 피운 땡감을 한아름 들고 나는 시골 장터를 휘적휘적 빠져나온다. 파란 가을 하늘에 붉은 감이 알알이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