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첫 발걸음
홍인숙
딸이 첫 출근을 했다.
아침부터 온 가족이 함께 설레어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분주한 하루였다. 지난해 늦봄쯤에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온 건 바로 올해 들어 첫째 주. 딸아이는 자신의 지원 서류를 잊지 않고 보관했다가 다시 연락을 한 것에 대해 무척 놀라워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에 입사 지원 서류를 접수했을 때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귀하와 다시 인연이 되고 싶다”는 연락과 함께 서류전형에서 불합격이 됐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딸아이는 가을학기에 졸업 예정인 수료 상태였고, 취업을 위해 겨우 웹디자인 자격증 하나를 따놓은 처지라, 스스로 준비가 덜 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류를 내본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그 후 일 년 내내 코로나의 어수선한 시간 속에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회사는 근 일 년 가까이 한 청년의 취업지원서를 품고 있었던 셈이다.
딸은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실무진들과 1차 면접을 보고 임원진과 2차 면접까지 본 후 최종 합격이 되었다. 기획과 홍보 콘텐츠 관련 업체로서 지역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알려진 회사는 실무직원 간의 소통과 조화를 통한 창의적 자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딸은 면접 연락이 처음 왔을 때도, 합격 통보를 받은 때도, 처음 이 회사를 추천해주신 멘토 선생님께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고, 그다음에 엄마인 나에게 알려왔다. “그게 예의잖아요?”라며 당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이를 보면서 간발의 차이였지만 무엇이 먼저인지 헤아리는 딸아이를 보며 모전여전이구나 싶어, 함께 까르르 웃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던가. “이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라면서 주변의 지인들이 당신들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더구나 전공을 살린 업무이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다.
딸은 2020년도를 지나는 동안 사방이 막힌 듯한 답답함 속에서도 오히려 느긋해 보였다. 혼자만의 여유 시간을 가지고 어떤 공부를 더 하는 것이 필요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눈치였다. 어느새 자기 주변에는 이렇게 저렇게 취업을 한 친구들,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이 늘어났지만 초조해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만의 페이스를 차분하게 유지하는 딸에게서 나는 오히려 배우는 점이 컸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자기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왜 없었겠는가. 때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슬기로운 표현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엄마인 나는 성취욕이 강한 편인 데다가 무슨 일이든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적극적인 기질의 소유자이다. 그뿐인가. 다른 사람을 향한 관심까지 많아서 오지랖을 잘 펴는 탓에 늘 생활이 분주하다. 대부분 살면서 생활 속에서 강화된 제2의 성격이 그 사람의 성품을 대표하기 쉽다. 자신의 본성과 다르게 삶에 적용된 성격이 더 우세하게 나타나는 경우 인격이 잘 닦여있지 못하면 뾰족하거나, 비뚤거나, 비열한 그림자가 자신을 가로막을 수도 있는데, 종종 내 마음과 다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내 안의 그림자에 허둥댈 때마다 딸의 예리한 비평에 반성하는 일이 많다. 엄마의 뜻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히 여겨 달라는 사려 깊은 딸 덕분에 감정 선이 섬세하지 못한 나는 또다시 훈습의 시간을 찾는다. 생활과 글이 하나로 조우하는 진실의 시간을 살기 위해 하나님은 나에게 나무늘보 같은 느긋한 딸, 한없이 순수한 영혼, 자신에 대한 독자성을 잊지 않는 개성 있는 딸을 선물로 주셨나 보다.
가끔 씨앗이 단단한 껍질을 깨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홀로 긴 어둠의 시간을 견디어 내며 비로소 제 몸의 변화를 느꼈을 한순간의 감각. 씨앗은 보이지 않는 장막 안에서 그저 웅크리고 있던 몰개성의 시간을 지나 새롭게 탄생할 자신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까지 무수한 햇빛과 바람, 적절한 온도 그리고 구름과 비의 수많은 도움들이 온전히 내려주었던 걸 알아챘을까? 무엇보다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짐작이나 했을까? 사랑하는 자식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로서 나의 부모를 통해 몸을 얻어 온 것을 깨닫는다.
‘쓸모’, 라는 말을 입안에 머금으면 신기하게도 ‘두부’가 먼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동네의 저녁 시간을 알려주던 두부 장수 아저씨의 “두부 사아요~두부~” 딸랑딸랑, 종소리가 귓전에 선명하다. 어머니가 저녁 준비로 된장찌개 재료를 풀어 뚝배기에 넣을 즈음이면 영락없이 골목에 들어서던 두부 장수 아저씨의 손수레가 있었다. 두부가 온 것을 알리는 종소리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찬거리를 위해 몇 분 나오시면 아저씨는 두부 판을 덮은 검은 천을 걷어냈다. 뜨끈한 김이 채 가시지 않은 두부판 위에 칼끝을 세워 척척 두어 번 가로세로 자르면 모판에 정확하게 네모반듯한 금이 그어졌다. 아저씨는 항상 순서대로 두부모를 하나씩 착착 떠서 팔았는데 일찍 줄을 서서 두부 모판의 가장자리 도톰한 부분을 받게 되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네 귀가 반듯하게 도려진 안쪽의 두부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두부를 사 오면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일정한 간격의 두부 종소리와 모판 위에 네모반듯하게 잘린 두부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숙련의 한 형식이었던 것 같다. 오랜 연습 속에 터득한 익숙한 형식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걸 한참 자란 후에야 깨우쳤다. 저녁 시간을 알려주는 두부 장수도 있었지만, 며칠에 한 번 잊을 만하면 오는 엿장수 아저씨도 그랬다. 항상 커다란 무쇠 가위를 쩔그럭거리며 동네에 들어섰는데 수레 좌판 위에 먹음직스럽게 자리 잡은 커다란 호박엿, 가래엿, 깨엿들 그 달콤한 유혹 앞에 아저씨의 가위 소리가 주는 위력은 대단했다. 돈이든 고물이든 내는 값어치만큼 아저씨는 흐트러짐 없이 커다란 엿판에 끌을 대고 큼직한 가위 날을 툭! 치면 탁! 하고 떨어져 나오던 말간 조청 빛깔의 호박엿 조각들. 부스러지는 것도 없이 쪼개져 나오던 엿을 보며 신기해하던 동그란 눈망울들. 엿장수 맘대로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말이었을까? 아저씨는 위풍당당하게 가위를 흔들며 빈 병에 고철에 온갖 잡스러운 물건들을 잘도 계산하며 엿가락을 잘랐는데 정말이지 우리는 그 절도 있는 가위질에 홀랑 빠져 아저씨가 주는 대로 받아오던 기억이 새롭다.
쓸모 있는 사람은 아주 작고 소박한 곳곳에 숨 쉬고 있었다. 두부모를 자르던 능숙한 칼질, 커다란 무쇠 가위를 쩔거덕거리다 주걱 칼을 툭 대는 순간 신기하게 잘려 나오던 알맞은 크기의 호박엿 조각들, 그 능숙한 움직임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숙련의 세계들, 어떤 질문이든 후련한 답을 내놓는 지식의 창고 같던 선생님들,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그런 숙련의 아름다움이었다.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던 아득한 별빛 같은 그 눈부심들, 오랜 기다림과 오랜 관심이 빚어내는 반복의 변주. 나는 시간의 뜰 안에서 빚어내는 숙련의 리듬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모든 자식은 부모 노릇이라는 반복의 내용을 통해 빛나는 형식이 되는 게 아닐까. 자식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는 경전이다.
딸이 어느새 다 커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다. 감개무량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일까마는 본능처럼 올라오는 말이란 게 이뿐인 것을. 내가 가진 결핍을 대물리지 않게 잘 키우고 싶었다. 보석처럼 내게 안긴 아이들을 귀하게만 키우고 싶었다. 타고난 개성을 잘 펼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 푸른 숲의 깊이와 맑은 하늘의 높이를 사랑하는 아이들로 살게 하고 싶었다. 세상이 재는 척도보다 마음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자유로운 심성으로 기르고 싶었다. 거기에 나의 발이 묶인 줄도 모르고 바쁘게만 달려갔다. 앞으로 앞으로, 노력하는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는 없고 포대기만 두른 채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울고 있는 마당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거기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학교였고 세상이었다. 그 마당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그뿐이었다. 생긴 그대로 받아주고, 안아주고, 그 말을 들어주고, 따뜻한 밥상에서 함께 먹으며 격려해주는 것, 잘 여물 때까지 자기만의 시간을 반복해가는 것, 그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전부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믿음으로 성장하는 거였다.
오랜 세월 동안 잊히지 않은 말이 있다. 청년 시절에 몸담았던 직장의 사장님이 해준 말씀이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 몫의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맡겨도 잘 해낸다는 지론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기 할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인재라고, 자기계발에 게으르지 말라고, 영어회화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당신이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지식을 공유해주셨던 80년대 시절에 앞서가는 CEO이셨다. 그분의 영향이 내 안에 오랫동안 씨앗으로 심어진 듯하다. 가끔 나 역시도 한 가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는 법이라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으라고, 확신에 찬 희망 어구를 활용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니 말이다.
어제 저녁에는 출근을 앞두고 백팩에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직장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니?” 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예의를 잘 지키는 게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다 옳은 말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로부터 사회가 성숙하게 성장하는 법이니까. 나의 보석 같은 딸이 예의 있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씨앗을 뿌리고, 싹을 내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단단한 내공이 쌓여가는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가만히 가만히 기도한다. 부족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스스로 인생의 뼈대를 세워가는 딸아이를 위해 여러 은인들의 기도가 깊었던 것을 안다.
2021년 1월, 가슴 떨리는 첫 발걸음을 떼는 딸아, 사랑한다는 말은 수만 번도 모자라는구나!
홍인숙
1961년 부평 출생,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수료
2013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집 <딸꾹, 참고서>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