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예수님처럼 살아봤나?
새벽 시간 강단에 앉았다. 주님을 부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순간 바람이 머리를 스쳐 가듯이 생각 속에서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주님처럼 살아보았나? 주님처럼 일해 보았나?
주님께서는 어떻게 사셨지? 주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이었지?
백지처럼 하얘진 머릿속 생각을 집중하면서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주님이 만났던 사람들,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찾으셨던 현장과 말씀하심을 다시 듣기 위해 집중하였다.
그중에 주님의 삶에 원칙적인 중심이 되는 말씀이 떠올랐다.
주님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 명령하신 것을 순종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것,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 원하신다고 하셨다.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대로 약속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성경대로 오셔서 성경대로 행하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가 성경대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다.
사역의 현장에는 죽이려는 자들, 체포하려는 자들, 정죄하기 위해 말꼬리 잡는 자들의
감시를 받으며 그들과 함께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이단이라고, 거짓말한다고,
하나님 아들 행세한다고, 하나님 이름을 사칭하고 모독했다고 위협하고 공격했다.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라고, 무시당하고, 멸시당하셨다, 고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셨다.
형제들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피곤하실 만큼 밤, 낮 사역을 감당하셨다.
밤이 맞도록, 새벽까지 기도하시고, 전도하시고, 가르치시고,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하시고,
죽은 자도 살려주시고, 필요를 공급해 주시며 원하는 것을 믿음대로 이루어 주셨다.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이 너무 많아서 기록을 하면 세상에 쌓아둘 곳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낳기 전부터 죽임당할 위협을 받아 피하셔야 했다. 어린 시절은 아버지 집에 계시는 것을
좋아하셨고 공적인 사역 3년 반 동안 참으로 산과 들, 강과 바닷가, 풍랑이는 바다 가운데 등
여러 곳을 다니시며 전도하시고, 제자를 세우시고, 가르치시고,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허기지고 곤하실 만큼 전심을 다 하셨다.
그리고 결국 제자에게 배신을 당해 팔리셔서 체포당해 잡혀가셨다.
여기저기 끌려 다니시며 심문과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 선고를 받고 넘겨져서 채찍을 맞으며
침 밷음을 받으시고, 뺨을 맞으시고,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다.
골고다를 오르시며 여러차례 넘어지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겉옷과 속옷까지 벗겨지시며
수치를 당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고통 속에서 저들이 알지 못해서 행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리고 저들의 죄를 씻어주시고 죽으셔서 온몸에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셨다.
그리고 장사지내어 무덤에서 삼일간 안식을 이루시고 부활하셨다.
대략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살아가신 모습이고 하신 일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모두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 것이고 아버지의 명령과 가르치심이었고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것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에 감춰졌던 비밀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실제로 세상에서 이루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었고 원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나에게 예수님처럼 살아보았느냐고 질문한다.
지금 예수님처럼 일해 보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얼마나 많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처럼, 주님같이,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외쳤는가? 얼마나 많이 약속하였나?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말끝마다 아멘 했고 기도할 때마다 수없이 서원하며 약속을 하였는가?
어디 그뿐인가! 어쩌다가 행한 작은 것 하나 가지고도 과장하고 부풀리기를 열배 백배로 더하고,
자랑만 아니라 영광도 받으려고 기웃거리며 바라고 찾고 두드리지 않았는가?
몇 가지만 따져보아도 예수님처럼이 아니라 예수님과 반대로 살아왔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엄청난 부도 수표를 남발하였다. 사기치고 배임을 하였다.
나는 주님처럼 살아봤나? 주님처럼 일해 보았나?
따지고 보면 솔직히 거의 내 꿈, 내 뜻과 생각대로 원하는 것들을 이루려고 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신 후에 말씀하신 것은 작고 큰 모든 것들을 친히 본을 보이시면서
주님처럼 행하라고 하셨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께 가까이
붙어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부인하지도 못하고 자기 십자가도 지지 않고 주님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겨우겨우 따르는 척하였다. 솔직히 나는 나의 자존심, 자아를 따라 살았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들의 무덤에까지 내려가셨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썩어 냄새가 나고
죽은 자가 오래되어 메마른 뼈다귀들이 흐터져 뒹구는 무덤에 찾아 들어가신 것이다,
그리고 그 뼈다귀들을 다시 맞추시고 썩어 냄새나는 시체를 살려내시고 풀어놓아 자유하게 하셨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 묻혀있는 이 세상은 공동묘지 무덤과 같다.
세상 가운데 부패한 시신 냄새가 가득하다. 악취를 풍긴다. 그 무덤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
살아나게 된다. 음성을 듣는 그들은 무덤을 열고 살아나온다. 그럼에도 아직도 남아 있는 무덤들이 즐비하다.
드문드문 열려있는 무덤이 보인다. 음성을 듣고 살아나온 자들의 빈 무덤이다.
그 열린 무덤 앞에 내 이름의 비석을 확인하라. 내 이름의 비석이 열린 무덤 앞에 있는지?
아직도 닫혀있는 무덤 앞에 남아 있는지? 내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이 나의 실체를 세상에 선포한다.
내가 다시 살아난 증거를 열린 무덤으로 확인하라. 빈무덤 앞에 있는 비석에 나의 이름이 있나?
예수님은 동물의 배설물로 질퍽해진 외양간 더럽고 추한 곳에 들어오셔서 그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누이셨다. 짐승들에게 살이 뜯기고 피를 쏟아 마시게 하셨다.
그래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게 하셨다.
나는 주님이 치뤄 주신 댓가로 생명을 얻어 살아났는데 나는 몇 사람이나 살려냈는가?
나는 주님처럼 살아보았나? 주님처럼 일 해보았나?
어떤 목사님께서 죽음 직전에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지금 죽어 주님 앞에 서면 어떻게 얼굴 들고
주님을 뵈올까? 과연 주님 앞에 얼굴 들고 설 수 있을까? 라는 것 때문에 두려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회개하며 한번 더 살 기회를 주시라고 부르짖어 살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이 세상 떠날 날과 시간은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맞이하게 될
그 시간이 가장 성령 충만하고 깨어 있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마지막 시간 아버지 앞에서 대속의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아버지께 영혼을 올려드렸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숨을 거두셨다.
나는 주님처럼 살아보았나? 주님처럼 일 해보았나?
내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고 있나? 믿음으로 순종하나?
나는 아버지와 아들을 앎으로 누리는 평강과 자유가 있나? 그 자유로 무엇을 하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사랑으로 종노릇 하였나? 내 안에 사랑이 있나? 정말 사랑하나?
내 안에 평강이 있나? 파도치고 풍랑이는 바다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있나?
나는 나를 사랑함 처럼 누구를 사랑해 본 적 있나? 정말 그를 사랑하나?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나?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떠했나? 진심을 무엇으로 증명하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 생각하는 반응, 행동하는 반응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사랑함에 어떤 조건이 붙어 있는가? 나는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지?
사랑한다는 이웃을 위해, 세상을 향해 나는 어떤 관심을 가져보았나?
저들의 상황이나 환경에 대하여 이해하며 수고를 해보았는가? 길가에 떨어진 휴지라도 하나 주워보았나?
길가면서 스쳐 가는 영혼들을 향해서 어떤 관심이 있었지? 긍휼한 마음으로 중보기도 해 보았나?
실패와 좌절 속에 고통을 받으며 신음하는 이들과 죽은 자들에게 죽음에서 살아나 생명으로 옮겨져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려주었나? 목마른 자에게 냉수라도 한 모금 마시게 해보았나?
헐벗은 자에게, 옥에 갇힌 자에게, 병든 자에게, 어떤 관심을 가지고 섬겨보았는가.
주님의 섬김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이었는데
나는 주님처럼 이웃을 위해 세상을 향해 내놓은 것이 무엇인가.
나는 주님처럼 살아보았나? 주님처럼 일 해보았나?
아무래도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답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선뜻 아멘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래도 처음 어린아이 신앙일 때에는 나를 위해 오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도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내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고 소리치지 않았는가.
그 때는 정말 그랬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주님 한 분만으로 족하다고 선포했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실재가 되게 하려고 세상의 권리를 포기하고 어떠한 댓가라도 치루는 것이
기쁨이었고 감사함이었다. 그때에는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도 영향받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들, 전심을 다해서 이루려 했던 모든 것들을 다 잃었지만 주님 안에서 자유 하였고,
평안했으며 원수를 사랑하고 허물을 용서하고 덮을 수 있었다. 모든 관계에 친밀함을 이룰 수 있었다,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교제가 있었다. 영혼과 육체와 범사에 안정감으로 쉼을 누릴 수 있었다.
상황이 어렵고 환경이 최악이었던 그 때에는 마음에 뜨거움이 있고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었다.
드릴 것이 몸 밖에 없어 이 몸을 드린다고 하며 기쁨으로 감사하며 뛰어다녔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 지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전 3:15- 옛적에 있었던 것이 이제도 있는 것이고 장래에도 있 을 것인데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감히 주님처럼 살 수는 없지만 주님처럼 살아보려고 아버지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듣고
가르침을 받으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려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면 충분하다고 만족하다고 하며 부르던 찬양이 기억난다.
주님 한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 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날 울며 고백하던 말
주님 한분 밖에는 사랑할 이 없어요. 작은 가슴 뜨거웁게 주님 피가 흘러요.
주님 한분 밖에는 약속한 이 없어요. 주를 믿고 따르는자 반석 위에 서리라.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 안에서 떠나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 솟으니 이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말씀이 나의 삶을 통해서 생활 현장에서 실재가 될 것이라고
아멘 하였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일이라면 조건 없이 아멘 이었다.
나는 주님처럼 살아 보았나? 이제라도 다시 처음처럼, 처음 사랑을 찾아야겠다.
다시한번 정밀 진단이 필요한 때이다. 부름심과 보내심 앞에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자.
계2:4-5 너의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