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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청량산 중턱에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사찰이었으나 차마 가지 못했던 것은 거리 때문이었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실 경북은 수도권 시점에서는 오지이다. 실제로 교통도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만큼 그 지역 곳곳은 깨끗하고 순박하다. 특히 청량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해맑은 지점이다. 그동안 소소하나마 적지 않은 사찰을 찾아갔었는데, 청량사는 그중 두 번째 큰 울림을 주는 곳이었다.
산사 음악회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찰
지금은 흔해진 ‘산사 음악회’가 처음 열린 것은 2001년 바로 이곳 청량사에서였다. 산사 음악회는 그 이전, 이를테면 1986년 구레 불락사에서 최초로 불교 음악회를 연 것을 원조로 보고 있지만, 오늘날의 비교적 대중적인 음악회가 열린 것은 청량사가 ‘원조급’이라 할 수 있다. ‘천년의 속삭임–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타이틀로 당시 음악회가 열렸을 때 무대에 올라왔던 가수들은 장사익, 한영애, 안치환, 노름마치 등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땐 모두가 쟁쟁한 뮤지션들이지만, 당시로서는 장사익도 대중적으로는 거의 무명이었던 시절이었다. 청량사 산사 음악회는 청량사, 봉화군은 물론 공연 예술가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절에서 음악이라니! 그것도 대웅전 앞 마당에서 대중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신도, 군민들이 마당과 언덕에 앉아 공연을 보며 흥을 돋우다니! 게다가 불자는 물론 수녀님, 목사님까지 와서 구경할 수 있는 ‘개방된 행사’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 때 ‘청량사 산사 음악회’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의 무대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찰 입장에서는 불교의 대중화, 친근감, 자비, 나눔 등 숱한 장점이 있는 행사였다. 실제로 청량사 산사 음악회 이후 전국 주요 사찰에서 음악회가 기획되고 열리고 있으며, 산사 음악회로 촉발된 ‘대중 불교’는 ‘템플스테이’ 등 시민과 더욱 가까운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청량사 산사 음악회는 최초 공연 이후 18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인기를 끌며 유지되고 있다. 올해 또한 ‘장사익의 별빛나들이’라는 이름으로 10월5일(토) 오후 7시부터 청량사 경내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사익과 친구들’, ‘박강수’, 팝페라 그룹 ‘퀸스틀러’, 전통 연희당 ‘잽이’, 그리고 청량사 둥근소리합창단 등이 출연한다.
청량사 가는 길은 서울에서 봉화까지 가는 여정은 물론 청량사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가파른 언덕을 30~50분 동안 걸어야 비로소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청량산 등산을 목적으로 올라가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이가 적지 않은 장년, 노년 신도들로서는 산사에 오르는 일이 석가모니의 수행의 길을 따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에서 청량사로 오르는 길은 경사만 가파른 게 아니었다. 구비구비 또한 얼마나 많은지, 마치 강원도 영월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를 지나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청량산의 산세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청량산은 뾰족한 열두 봉우리로 이뤄진 산으로, 고원 지대인 축융봉을 제외하고는 완만함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청량사는 해발 870m 청량산 연화봉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의 경상북도 지역은 주로 깎아지르는 절벽 아래를 흐르고 있는 ‘기암괴석’ 구간인데, 청량사 역시 절벽 수준의 봉우리 중턱에 있어서 가람 하나하나가 마치 다랑이논처럼 층을 이루고 있으며, 건너편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층층이 떠다니고 있는 구름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연화봉 전체를 놓고 볼 때 청량사 자리는 연꽃의 꽃술 부위에 해당된다고 한다. 청량사 윗쪽으로는 자소봉(보살봉), 탁필봉, 연적봉 등이 이어지고 있는데, 경사가 가파르고 정상에 오르면 빼어난 풍광이 아름다워 등산객들의 발길도 매일 이어지고 있다. 청량사가 청량사 스스로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량산청량사’라고 지칭한 배경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자타공인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33개의 부속건물이 있었고, 청량산 곳곳에 있던 연대사, 망선암 등 명찰과 더불어 신라 불교의 중심 산문 역할을 했다. 그 많은 가람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 다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형형한 명성은 여전히 대중 속에 있다.
유리보전과 응진전
청량사 유리보전의 약사여래불 (사진:청량산 청량사) |
청량사의 주목할 만한 가람으로는 대웅전격인 ‘유리보전’과 ‘응진전’을 들 수 있다. 유리보전은 편액을 고려 공민왕이 직접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유리보전’이란 ‘약사유리광여래’(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가람이라는 뜻이다. 약사여래란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사라지게 해 주며 수명을 늘려주는 부처를 뜻한다.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불당에서 신심을 다해 기도하면 ‘질병이 완화되고 근심이 작아진다’고 ‘불자’들을 믿고 있다. 하기사, 기도 앞에 평온해지지 않는 게 무엇 있으랴. 특히 청량사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이다. 이 불상은 나란히 있는 문수, 지장보살과는 달리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칠을 다시 한 후 보전하고 있다.
청량사 가람 가운데 ‘응진전’도 주목을 받는 곳이다. 청량사와 같은 시기에 건축되었는데, 창건 스님인 원효대사가 주로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을 꼭 닮은 응진전은 가람의 소박미는 물론 가람 뒤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아래로는 낭떨어지 형태의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금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듯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멈추게 하는 풍광이다. 응진전은 고려말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한 곳으로 응진전 왼쪽 바위에는 부처님의 발모양을 닮은 불족암과 내청량산의 불수암이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이룬 불국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묘한 형상에 걸맞게 기도 영험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나한 기도도량이다.
무위전, 최치원 암자터 |
응진전은 대웅전 격인 유리보전 근처가 아닌, 계곡 하나 건너 위치에 있다. 약 15분 거리? 가벼운 등산 느낌으로 갈 수 있는데, 좁고 아찔한 소로를 걷는 느낌이 쏠쏠했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르는 절벽, 오른쪽은 깎아 내려간 절벽이 있어서 마치 구름을 탄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이 길에는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과 관련된 흔적들이 있었다. ‘치원암터’는 먼 옛날 최치원이 머물렀던 암자의 터인데, 암자 터가 있던 바위에는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찾은 선현들이 남긴 문장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약수터도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최치원 암자터’ 근처 있는 이 약수는 ‘금탑봉’에서 흘러나오는데, 예로부터 이 물을 마시면 총명해진다 해서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이 줄을 이어 찾아왔다고 한다. 조선 중기 봉화 군수 주세붕은 ‘이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있으면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된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응진전을 찾아간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응진전 자체의 건축미도 친근감 있었지만, 역시 응진전 앞에서 올려다 보는 ‘금탑봉’과 또 하나의 약수터, 그리고 이웃한 곳에 위치한 ‘무위당’(입장 금지) 또한 ‘심산유곡’의 수행자를 생각하게 하는 인상적인 곳이었다. 작은 집 두 채와, 무위당 옆 텃밭, 응진전 뒷쪽의 마당과, 그곳에서 올려다 보이는 수직 봉우리 등은 이곳이 단순한 가람이 아닌, 무릉의 세계로 이어주는 지점쯤으로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응진전에 꽤 오래 머물렀다. 자세히 보고 싶은 유물도 꽤 있었고, 이곳 저곳 둘러보다 보니 ‘무위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때로 망상과 번뇌를 일으키는 유위한 삶의 순간도 필요하겠지만, 사실 ‘일’을 떠난 대부분의 시간은 ‘무위세계’에서 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응진전에서 얻은 그런 깨달음을 갖고 떠나려던 찰라, 입구에 있는 ‘사탕통’을 발견했다. ‘활력충전용 사탕’이었다. 불자든, 등산객이든 ‘떨어진 당을 보충하고 더욱 정진하라’는 스님의 뜻이 담긴 사탕이 아닐까? 이토록 중생을 사랑하는 속 깊은 사찰이라니! 일행 중에 청량사에 자주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우리가 방문한 날 ‘안심당’ 문이 닫혀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 했다. 안심당은 일주문을 지나 처음 만나는 건축 공간인데, 그곳에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차는 심신을 깨끗이 씻어주고도 남음이 있는 곳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간판만 읽어도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청량산 하늘다리
이제 절을 떠날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다 ‘하늘다리’가 생각났다. 청량산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걸어보았을 하늘다리는 요즘 한창 유행중인 산 속 구름다리의 이름이다. 이곳은 생긴지 11년이 된 곳이라 새로울 것은 없지만, 굳이 그곳이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높은 봉우리들 어디쯤 다리가 연결되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얼마나 멀겠어? 1.5km 밖에 안되는데?’ 그렇게 시작된 발걸음은 다리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후회와 투지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잠깐 걸은 오솔길이 곧 끝나자마자 시작된 나무 계단! 대체 몇 개나 되는지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계산해 보니 3500 계단은 족히 되었다. 어쨌든 이를 바득바득 갈며 도착한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자란봉과 선학봉 사이를 잇는 지점에 있었다. 바람이 세차지는 않았지만 하늘다리의 강철 케이블에서 나오는 윙윙 소리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일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이미 하산을 했어야 했던 시간에 그 다리를 건너갔다 다시 건너왔다. 안개가 잔뜩 끼어있어서 계곡 아래 풍경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된 긴장감을 잠시 즐길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더욱 죽을 맛이었다. 등산과 관련된 그 어떤 준비도 없이 스니커즈 차림에 스틱도 없이 달랑 물 한 병 들고 등산급 산책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울러, 청량산 하늘다리는 청량산 등산을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걸을 만한 곳이지만, 청량사에 간 김에 ‘관광차 올라가는 것은 비추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잠깐 들를 만한 곳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봉화의 선비문화가 살아 있는 ‘해헌고택’
봉화는 물론 안동, 영주 등은 우리나라 선비문화가 보전되고 있는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스스로 그렇게 표방하고 있는 지역이다. 해헌고택은 1884년 구한말 때 경주 군수로 지냈던 권상문 공이 경주 동헌 설계도를 그대로 반영해 지은 93칸 짜리 전통 한옥이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지금의 주인인 김세현 씨의 고조 해헌 김석규 공이 중수, 6대가 이어서 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헌고택을 찾아간 이유는 한 가지. ‘해헌고택’에서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는 ‘봉화 선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봉화선주는 오가피를 주원료로 만드는 전통주인데, 이 술이 만들어지게 된 연원은 ‘시회’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인생 낙 중에 ‘시회’가 있다. 선비들이 정자에 둘러앉아 술 한 잔 나눠 마시며, 시회를 주최한 좌장이 던진 시제에 맞춰 차례차례 즉석 시를 지어 감상을 나누는 시회에는 초대자가 마련한 개다리소반에 술과 안주가 올라가는 게 기본. 해헌고택의 ‘봉화선주’는 바로 그 시회에 제공될 술이었다.
선주의 주도는 40도. 손님들은 도착과 함께 그 술을 석잔 내리 마신 후 정신이 얼근해진 상태에서 시를 짓게 되는데, 희한하게도 선주를 마시고 나면 시가 술술 나온다고 했고, 그래서 이름도 신선 선(仙)자를 따, ‘선주’가 되었다. 해헌은 그 옛날에 ‘선주’ 만드는 레시피를 남겼는데, 시회에서 사용된 이력과 깊은 술맛이 유명해지면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는 물론 ‘증보산림경제’7권, 역주방문, 규합총서, ‘임원16지’, ‘농정회요’ 등 고문서에 등장하는 명주 반열에 올랐다. ‘해헌유고’에는 ‘강림대에 모여 지은 시들’이라는 시회편이 등장한다. 해헌공이 가까운 선비들을 청량산 입구에 있었다는 ‘강림대’에 초대해서 연 시회에서 나눈 시들을 모은 페이지이다. 해헌을 포함한 11명의 선비가 나눈 시를 읽다보면 당시 흥겹고 즐거운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해헌고택은 예약을 해야 방문 가능하고, 고택에서 봉화선주를 즉시 구입할 수도 있다.
봉화에서 맛본 특이한 솔잎구이 돼지고기, 청봉숯불구이
숯불로 구운 고기를 접시에 담아 주는 맛있고 친절한 집이다. 주문을 하면 식당 뒷마당 조리실에서 석쇠에 올린 고기를 숯불에 올리고, 고기 위에 다시 솔잎을 올려 훈제해 준다. 테이블에서 굽지 않으니 손님 입장에서는 연기와 먼지로부터 자유롭고, 태우지 않은 상태로 접시에 올려 갖다 주니 먹기도 편하다. 메뉴는 두 가지. 돼지숯불구이(400g에 1만8000원)와 양념구이(400g에 2만 원). 봉성면 미륵골(봉성리) 일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고기를 파는 집들이 몇 곳 있는데, 딱히 이 집을 찾은 이유는 이 집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마을 사람의 추천 때문이었다. 숯불구이 인기가 단연코 좋았다. 돼지고기 특유의 맛과 숯불의 화기, 그리고 솔잎 향이 은은하게 입안에 퍼지는 부드러운 맛이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주문한 ‘공기밥’에는 된장찌개가 동반했는데, 그 맛 또한 놀라울 정도로 담백했다. 그냥 하기 좋은 말로 ‘담백’이 아니라, 전혀 짜지 않고, 부드러운 국물과 양념 맛이 최고였다. 봉성리 일대에 솔잎을 올려 구워주는 식당들이 몇 곳 있는 걸 보면 봉화군 봉성면 ‘솔잎숯불구이’가 꽤 맛있는 음식으로 인정받은 게 확실하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안동수(다큐PD)
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행하세요
감사합니다~"♥"
함께하는 시간
즐거움이 배가 되는거
같아요
동동박사 님 오늘도
힘내시고 파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