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30)
6.25 전쟁 참전용사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중환자실 회진을 하는데 어디선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1929년생 이 할아버지는 6.25참전유공자이신데 장폐색이 자주 일어나 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다. 장폐색 증세가 보이면 종합병원으로 갔다가 호전되면 다시 우리 병원으로 오기를 자주 반복하셨다.
“나를 다시 삼팔선으로 보내주게. 전우들이 나를 부르고 있어.”
6.25가 언제 이야기인데 아직도 저렇게 고통스러운 환청에 시달린단 말인가? 이분은 20대에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70년이 지난 요즘도 겪고 있다. 이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도 노래를 같이 불러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복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또 장폐색 의심 소견이 보여 보호자(딸)에게 연락하여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90이 넘는 고령이라 이젠 수술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과 의논해 보겠지만 이제 그냥 돌아가셔도 어쩔 수 없으니 이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를 해주십시오.“
6.25전쟁에 참전하신 분들을 병실에서 종종 만난다.
조 할아버지는 32년생으로 포항전투에 참가한 해병대원이셨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마크가 적힌 해병대 모자가 침상 옆에 자랑스럽게 놓여있다. 하루는 필자 또래의 아들이 찾아왔다.
“선생님, 아버지 기력이 점점 떨어져 이곳에 있다가는 임종도 못 보고 보낼 것 같습니다. 보훈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소견서를 잘 적어주십시오. 담당자가 말하는데 웬만한 병으로는 입원이 안되니 입원이 꼭 필요한 병명을 적어야 한답니다.”
하지만 환자는 뇌경색증 후유증과 치매, 노환 등의 병이 있을 뿐이어서 보훈병원에서 받아주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정 할아버지는 1931년생이시다. 아내를 사별하고 거동도 불편하여 입원하셨다.
“6.25가 터질 때 나는 영도의 경찰기동대에서 근무했어요. 후방에 침투하는 간첩들과 공비들을 소탕한다고 20대를 다 보냈지요. 이곳에 오니 밥도 세끼 꼬박꼬박 먹여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얘기할 친구도 있고 나에겐 천국 같아요.”
이분은 글자가 큰 성경책을 늘 읽고 계셨는데 항상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노년을 보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김 할아버지는 1935년생으로 학도병 출신이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경북 영덕 장사리에 학도병들을 중심으로 한 국군 부대가 상륙작전을 펼쳐 인민군의 주력부대를 이곳으로 유인하였는데 이 전투에 참전하셨다고 했다. 당시 평균 나이 17세, 단 2주간의 훈련을 받은 772명의 학도병들이 장사리에 상륙하여 인민군들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 내용은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증 한번 보여주세요.”
이분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평소에는 어그적어그적 걸으시는데 이 말을 들으면 쏜살같이 달려가 ‘6.25전쟁유공자증’을 보여주신다. 이 증을 보여줄 때만큼 자랑스러운 얼굴을 한 적이 없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어를 잘하셨다. 일본 유학생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본어에 친숙했고 4학년까지 다닌 소학교에서도 일본어를 제일 잘했다고 한다. 이분은 항상 복도의 의자에 앉아 바닥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오야스미니 나리마시다까(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아침에 만날 때마다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센세(선생님) 아리가도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일본어로 말하면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이분을 만날 때에도 노래를 같이 부른다.
6.25전쟁에 참전하신 이분들이 피 흘리며 목숨을 바쳐 지켜낸 나라 대한민국. 우리 세대는 1920년대~30년대 생 부모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분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번영한 대한민국이 있고 자유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쟁세대인 이분들이 편하게 노후를 보내야 하는데 전쟁의 트라우마, 치매, 노환 등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분들의 희생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족들과 우리 의료인들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