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인간이 두다리로 걷는건 가장 오래된 이동 방법이며
원초적인 삶의 행동이다"
인간이나 동물은 수 많은 이동방법이 있고 지금도 새로운 방식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 한걸음씩 걷는 삶은 영원할 것이다.
- 걸었던 날 : 2026년 2월 21일(토요일)
- 걸었던 길 : 남해구간 44~45코스 (평산항~임진성~남해스포츠파크~서상항~예계~염해~새남해농협 중현지점)
- 걸었던 거리 : 26.1km.( 41,000보, 7시간30분)
- 누계거리 : 660.1km
- 글을 쓴 날 : 2026년 2월 21일(토) 저녁에 씀.
나는 4~5년전 "베르나르 올리비에(프랑스)"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샀다.그렇지만 읽지를 못했다.
책은 3권으로 이루진 "실크로드"를 도보로 여행하며 쓴 이야기였고 권당 450페이지인 장편이었다.
엄청난 분량에 놀라 서문만 적당히 둘러 보고 방치하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꺼내어 읽기로 했다.
또 모르지~ 읽다가 실증이 나서 덮어 버릴지도!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프랑스의 정치부기자였으며 경제 칼럼리스트였다.
10여년전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내고 중년의 나이에 그는 고독했으리라.
직장에서 은퇴를 한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엇고
1999년 5월 61세 나이에 유럽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시안에 이르는 "실크로드(12,000km)"을
4년 동안 걸었으며 "나는 걷는다" 라는 여행기을 남겼다.
그가 남긴 교훈은 명백하다.
"인간은 늘 떠난다"는 것이며
"운명이라는 것은 언젠가 모든 걸 벗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느림과 비뭄,그리고 침묵하며 내려 놓는것이다".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책에서 단 한장의 사진도 인용하지 않았다.
사진 조차도 사치였을까?
또한 독서광이엇던 그는
"서양인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은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것이다".
라는 설명에서 그의 역사적 지식을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최근 일주일만에 1권을 겨우 읽었다.
1권의 내용은 트레킹을 떠나는 준비 과정과
지금의 튀르키에(터키)를 횡단하여 이란의 국경 근처까지 걸으며 경험한 이야기이다.
1999년 5월부터 한해 동안 터키에서 1,700km를 걸었다.
당시 터키는 내전이 있었던 시기이고
교통 여건도 열악하였으며 인터넷이 보급하기 시작한 초기였으며
지금처럼 GPS 정보을 얻을 수 없어 종이 지도와 나침판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먹지도 못하고 결국 엠블러스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어야 했다.
사람은 생각의 크기나 고민 그리고 욕망이 모두 각각 다르다.
나는 내 인생 후반부에는 경쟁하는 것은 멈추고
진실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에 충실해 보고 싶었다.
그중에 하나는 우리나라 우리땅을 천천히 한바퀴 걸어 보고 싶었다.
나는 남한의 백두대간을 걸었고 제주 올레길도 완보했으며
동해의 끝섬 독도와 울릉도의 성인봉에 오르기도 했다.
서해의 끝 외딴섬 어청도 등대에 다녀왔고 서남해의 홍도와 흑산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의 서해 인근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수 없이 많은데
천사의 섬지역 임자도와,비금,도초,여인송의 자은,안좌,암태,
또한 섬티아고라 불리는 소악도와 대기점도에 있는 명품길 12사도의 길도 걸었다.
그러나 걸을수록 걸어 보고 싶은곳은 더 쌓여지기만 했다.
해외 멋진곳으로 알려진 산티아고(스페인)나 돌로미티(이탈리아),
그리고 알레스카 또는 미국의 PCT등을 가지 못하더라도
쉽게 갈수 있는 내 나라 내 땅이라도 두다리가 튼튼할 때
싸묵싸묵 걸어 보고 싶은거다.
오늘은 코리아 둘레길중 남파랑길 44코스을 이어 걸으려고 떠났다.
아침 8시 아내와 나 그리고 장기 선배님의 부인께서 동행 출발하였다.
아내는 작년 11월 중순경 한의원에서 무릎 통증을 치료하면서
세균이 감염되어 긴급하게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고
아직 완전한 회복 상태가 아니어서 운동삼아 10여km 정도만 걸어 볼 계획이고
선배님 부인께서 아내의 보디가드겸 동반자로 나서 주셔서 감사하다.
10시 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항에 도착하였고,
나는 임진성을 향하여 곧장 출발하였다.
오늘 걷는 코스는 총 13.5km로 평산항를 출발하여 낮은 야산을 넘고
마을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지나 들녁 남해의 보물 섬초밭(시금치)을 지나고 또 지났다.
그리고 한시간여 걸어 "임진성"에 도착하였다.
임진성은 임진왜란 당시 민,관,군이 합세하여 축성한 산성이며
당시 산성 안에는 서당과 관아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현판글이 있었으며
물 집수지와 수로(水路)가 있었다.
그리고 천황산 임도(林道)에 올라 숲길을 4~5km 정도 걸었다.
천황산 임도는 잘 정비 관리되고 있는 평화의 길이었다.
소나무와 편백이 적당하게 혼재한 산림이엇으며 해발 280~300m 정도의
전망이 좋은 남해 숲길이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항해변 식당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였다.
나는 10~20여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었고
곧장 내려가 생선구이 백반으로 점심을 먹었다.
임도(林道)에서 휴식할 때 간식으로 준비해간 약밥과 사과 반쪽 그리고 충분하게 물을 마셔서
적당히 배는 불렀지만 일행이 있어서 사양하지 않고 점심을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점심상의 반찬은 격조가 있었고,
깔끔한 찬거리와 서대 회무침은 정말 맛이 있어 좋았다.
오늘 계획한 44번 코스는 3시간30분만에 끝났으며
다음 45번코스를 걸어도 되는 충분히 여유있는 시간이엇다.
그래서 내일 걷기로 한 45번 코스를 마저 걷기로 했다.
나는 점심을 후다닥 먹고 바로 일어나서 고고~
45번코스 시점은 남해 스포츠 파크는 종합 스포츠 타운이엇다.
남해 스포츠 파크를 지나는데 특히 축구장 시설이 규모도 있고 좋아 보였다.
언젠가 유튜브로 초등학생들의 축구경기를 보다가
국내 프로선수 출신으로부터
남해 스포츠 파크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남해 스포츠 파크 축구장 시설은 축구 선진국 유럽 빅 클럽의 유소년들 훈련 시설에
조금도 뒤지지 않게 잘 만들어진 시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이제 이런 시설에서 우리의 유소년 축구 지망생들이
맘껏 훈련하고 수준 높은 기술들을 연마하여 제2의 손홍민과 이강인 선수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상항을 벗어나면 트레킹로는 한참 동안 원초적 갯바위와 자갈 해변길이다.
마침 물이 빠져 있어 그 자연스런 구간을 한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트레킹구간은 드물다.
대부분 데크길 이거나 시멘트 길이 펼쳐져 있거나 인위적인 구간 아니면 야산 구간이 많다.
나는 늦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온 몸에 안고 갯바위에 앉자
20대에 들었던 노래도 듣고 싶었고
어릴적 어께동무들의 추억속에 빠져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멈추어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다만 머릿속으로만 힐링하고 기억속에 저장하였으며
이제 자연스런 갯바위 구간을 지나 예계마을과 염해마을을 지났다.
나는 걷는 동안 나처럼 걷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으며
간간히 갯바위에서 바다 낚시를 하는 사람은 볼 수 있었다.
바다는 잔잔했고 해안의 겨울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춥지 않았고
들녁에서는 시금치를 수확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야산을 내려 가고 있는데 그 초입에서
아내가 반대방향으로 한참 동안 걸어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새남해농협 중현지점에 도착하여 45번 코스까지 두개의 코스를 마쳤다.
오늘은 날씨 마저 좋았다.
낮 기온은 15~18도로 온화하고 바람이 없었으며 들녁도 한가했다.
오늘 걸었던 코스도 평범한 들녁과 숲을 품고 잔잔한 물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갯바윗 길이 있었다.
나는 2025년 2월1일 부산오륙도에서 출발하여
오늘로써 남파랑길 90개 코스중 절반을 완보하였으며 이제 남은 절반을 향햐여 걸을 것이다.
최근 한돈(양돈)산업 현장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몸살이다.
여러경로로 역학 조사중이지만 감염경로에 대한 명확한 확증이 없어 두렵다.
다음주에도 여러 혼란이 예측되는 상황이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더 땀나게 걸으며 현재 상황을 멀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오늘 내가 걷는 해안길은 접촉하는 사람도 드물고 한돈산업과 무관하기도 하다.
수년전 코로나시대를 격어왔기에 이것 또한 극복하리라 믿으며
나는 최선을 다할것이다.
트레킹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광주 봉선팥죽집에 들러
서경문친구 내외를 만나고 따뜻한 팥죽 한그릇으로
원기회복을 하고 귀가했다.
2026년 2월 21일 걷고
그날 저녁에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