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19매) 눈 이불 / 최영재
산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네요. “와, 멋있다.” 산토끼 가족은 굴속에서 창밖을 구경하였지요.
“하느님께서 이불을 덮어 주시는 거야.” “왜요?” “푹 쉬라고.” “누구를요? 왜요?” “산은 풀과 나무를 키우느라, 꽃과 열매를 만드느라 힘들었거든.” “왜요?”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 일하시는 아빠처럼 산도 힘들었단다.” “왜 힘들어요?” “그건 말이다. 쉿, 아빠 주무신다. 이불을 잘 덮어드리자꾸나.” 아빠는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고셨습니다.
아기 산토끼 형제는 알고 싶은 게 참 많습니다. 엄마 토끼가 하늘을 보며 말했어요. “꼭 물총새의 등처럼 파랗구나.” “왜 하늘이 파랗지요?” “비가 그쳤으니까.” “왜 비가 그쳤죠?” “목마르던 산이 웃으면 비는 그치지.” “왜 산이 웃지요?” “빗물을 실컷 마시니까 배불러서 웃는 거야.” 엄마는 산토끼 형제의 ‘왜요?’에 두 손을 번쩍 들었어요. 아기 토끼들이 하도 ‘왜요? 왜요?’ 물어서 엄마는 ‘왜요 형제’라고 부르지요.
봄이 왔어요. 왜요네 가족은 모두 굴에서 나왔어요. “아, 따뜻해.” 아빠가 가슴을 활짝 폈어요. “왜 따뜻하죠?” “해님이 가까이 오셨거든.” “왜 가까이 오시죠?” “봄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지. 힘껏 숨을 들이켜 봐라. 그러면 봄이 몸 안에 가득찬단다.”
골짜기에서는 물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왜 물소리가 커졌죠?” “눈 이불이 다 녹았잖니.” “왜요?” “하느님이 산더러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라 하셨거든.” “그럼 눈 이불은 어디로 갔죠?” “바다로 갔단다. 가다가 해님 손을 붙잡고 조금씩 하늘로 올라가기도 하지.” “하늘로 왜 올라가죠?” “하늘에 이불을 널어 두었다가 다음 겨울에 꺼내어 다시 써야 하니까. 봐라, 저기 구름이 보이지? 저 구름 이불이 지난 겨울에 산을 덮어주던 하얀 이불이야.”
“아빠, 눈 녹은 물은 어디로 가죠?” “산골짜기에서 강으로 간단다. 강에 모이면 손잡고 바다로 가지.” “바다에 가면 눈 이불을 다 만날 수 있겠네요?” “암.” “바다에 가 보고 싶어요. 온 산의 눈 이불이 다 모이니 바다는 산 보다 더 넓겠네요? 바다는 어디 있죠?” “너무 멀어서 너희는 가기가 힘들어요.” “저희는 겨우내 새로 시친 눈 이불에서 뒹굴며 놀았어요. 눈 이불이 녹아서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바다에 꼭 가고 싶어요, 아빠.” “힘든 일이지만 잘 이겨내야 한다. 알았지?” “그럼요, 그럼요.” 아빠가 만들어 주신 작은 배를 타고 왜요 형제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갔어요. 처음 보는 절벽과 들판이 신기했지요. 내려갈수록 점점 물줄기는 넓어졌어요. 물은 흐르다가 작은 바위산의 허리를 감고 지났어요. 금방 밤이 되었습니다. 왜요 형제는 강가에 배를 세웠어요. 저녁을 먹고 잠 잘 준비를 하였어요. 바스락. 이 때였어요. 검은 그림자가 굴 앞으로 다가 왔어요. “누구시죠?” “나다. 늑대님이시다.” 왜요 형제는 겁이 났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어요. “우리는 지금 저녁을 먹고 잠 잘 거예요.” “나는 이제야 저녁밥을 먹으러 왔다.” “그럼 어서 잡수시고 가세요. 우린 자야하니깐요.” “어서 잡수시라고? 으하하하.” “왜 웃으시죠? 왜요?” 왜요 형제는 그것이 꼭 알고 싶은 얼굴로 말했어요. “왜 웃냐구? 그걸 꼭 대답해야 하니?” ‘어라? 이 놈들 봐. 나를 무서워하지도 않네?’ 늑대는 주춤하였어요. 왜요 형제는 끊임없이 ‘왜요? 왜요?’ 하고 물었어요. “내가 그까짓 거 대답 못 할줄 아냐?” 늑대는 끝없는 질문에 끝까지 대답하였어요. 그러다 그만 힘이 쭉 빠졌어요. “너희들처럼 끈질기게 물어보는 토끼는 처음 봤다. 아이고 목 아파라. 아이고 입 아파라.” 늑대는 또 “왜요?”하고 질문할까봐 얼른 달아났어요. 그 무서운 늑대가 상대도 안 되는 토끼의 질문에 대답도 못해 쩔쩔맸다는 소문이 숲 속에 금방 돌아다니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큰일 날 뻔 했어.” 왜요 형제는 서로 얼싸 안았어요. 휴우, 한 숨을 쉬며 밤하늘을 보았어요. 별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왜요 형제를 내려다보았어요. “왜요? 왜 그렇게 큰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시죠?” 왜요 형제는 반짝이는 별을 향해 물었어요. “하하하하.” 반짝 반짝. 별들은 밝은 빛을 내며 웃었지요.
마침내 왜요 형제는 바다가 보이는 산까지 왔습니다. “와아,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었구나.” “녹은 눈 이불이 온통 바다에 다 와 있었네.” 바다 하늘에 펑펑 솟아오르던 뭉게구름이 손짓하였어요. “지난 겨울, 내 이불 위에서 뒹굴던 녀석들이로구나?” “반가워요, 눈 이불님!” 왜요 형제는 자기들을 알아보는 눈 이불이 고마웠어요. 왜요 형제는 산자락에 누웠어요. 움직이는 구름을 따라 고개를 천천히 돌렸지요. 그러다가 고개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바로 뒤에 엄마, 아빠가 서 계신 게 아니겠어요? “아기 왜요들아, 잘 해냈구나. 사실은 엄마 아빠 어렸을 때 별명도 너희들처럼 ‘왜요?’였단다.” “왜요?” 왜요 형제가 또 이렇게 물었어요. 엄마 아빠는 두 아기 토끼를 끌어안고 하하호호 웃었답니다. (끝)
최영재
1. 프로필 1947년 서울출생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한국동화문학상, 어린이가 뽑은 올해(1995)의 작가상 수상 지은책 : 별난국민학교, 말하는 숲, 탈주범과 이발사, 어린이였던 어른 등 |
첫댓글 재밌어, 단순 깔끔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