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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3가지 증거
2012년 7월 15일 / 대예배 / 고린도전서 15:9-11
■ 1930년 대 한 시대를 빛내신 목사님 두 분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길선주 목사님, 다른 한 분은 김익두 목사님입니다. 대 부흥사인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조폭 두목쯤 되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김익두가 목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악질 중에 악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김익두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저런 놈을 살려주고 계시냐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고, 염라대왕도 김익두가 무서워 감히 손을 대지 못한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김익두가 새 사람이 되어 사람이 바뀌었는데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나라 전체를 다니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김익두는 없어지고 그에게서는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났습니다. / 그런데 김익두 목사님이 말을 잘 해서 대 부흥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천당을 주셨는데 하물며 여러분들이랴!,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주님의 은혜로 천국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맞다 맞아! 김익두 같은 사람도 사랑하신다면 예수님은 분명히 나도 사랑하신다!”
본문에 ‘은혜’란 단어가 3번 반복됩니다. 무엇이 은혜입니까?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쉽게 사용합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진리의 빛으로 비춤이 있을 때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백한 은혜는 바울을 거듭나게 하고 인간 혁명을 일으키는 능력인 것입니다.
●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고린도교회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 통역을 하는 사람, 병을 고치는 사람, 귀신을 내어 쫓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니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그런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 충성하지는 않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누가 크냐는 싸움(내적ㆍ외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워졌고 파당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합니다.
고전 13:1-2 / 나 비록 지금까지 배운 일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또 하늘과 땅의 모든 언어를 다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소리 나는 시끄러운 꽹과리, 울리는 징일 뿐 2) 나 비록 예언하는 은사를 받아서 장래에 일어난 일을 모두 다 알고 모든 일에 통달하였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요? 나 비록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요?
이렇게 사랑에 대하여 13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15장에서는 자기에 대한 신앙의 고백,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은혜 받은 자의 증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 15:9-11 / 나는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인물이니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10) 그나마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이 자비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11) 그러므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나든 다른 사람이든, 그것이 누구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여러분이 그것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 3가지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 받은 증거는 겸손입니다.
9절 / 나는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인물이니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죄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바울의 죄과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자기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여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것처럼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나는 허물 많은 사람이었는데 … .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 .’ 하며 그 때의 일을 되씹을 때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 충성ㆍ봉사하는 데 앞장을 섰으며, 안일과 유혹을 과감히 물리쳐 나갔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는 말처럼 죄인이었고 지옥 생활을 했던 우리의 과거를 되씹어 보면서 교만한 마음과 안일함을 버리고 충성ㆍ봉사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글에 물고기의 IQ, 곧 지능지수는 0.3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옆의 동료가 낚시 바늘에 걸려 발버둥을 치며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다시 입질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한때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의 정치인의 지능지수도 물고기와 같이 0.3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동료 정치인이 뇌물을 먹고서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괜찮다’ 하며 뒤돌아서서 다시 뇌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IQ 0.3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지능지수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죄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까요? 예수를 믿기 전의 우리의 과거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지옥에 있었던 죄인이었습니다. 잊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 가이드포스트지에 실린 간증에 의하면, 현정화 탁구선수는 16년 동안의 선수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경기로 1993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손꼽습니다. 당시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은퇴하려했던 현정화는 세계선수권대회 대표선수로 뽑혀 힘겨운 훈련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게 해주세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세요.” 마침내 준결승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가서 중국선수에게 완승했습니다. 우승하는 그 순간 그녀는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녀가 세계여자탁구 사상 최초로 단식 우승을 달성한 원인은 기도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녀를 높이 들어 세계 정상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대개 큰일을 이루어 놓고 자신을 높입니다. ‘내가 기도해서’,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했더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안목으로 보면 내가 했기에 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내가 한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하게 하셔서 한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실 바울만큼 많이 수고하고, 많이 일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만큼 많은 서신을 저술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귀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고, 매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고, 풍랑을 만나고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많은 수고를 한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10절에 “내가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과거의 죄인이었음을 잊지 아니하는 태도. 바로 겸손함입니다. 과거를 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가 강한 교만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반대로 세리와 창기처럼 겸손하게 자기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하는 겸손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회개조차 못하는 바리새인입니까? 세리와 창기처럼 자기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를 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 역시 용서받지 못할 큰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면 이제부터라도 겸손해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우리라면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잡고 거듭나기를 위하여 애통해야 할 것입니다(눅 18:13 /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엄청난 죄를 지었던 아합과 므낫세의 회개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고, 므낫세는 선한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었지만 가장 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죄를 회개할 때에 용서를 받았습니다. 물론 온전한 회개와 변화된 삶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임한 재앙을 미룰 수는 있었습니다.
■ 왕상 21:21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식구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너뿐만 아니라 네 집안의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남자를 다 죽이겠다. 22) 네가 이스라엘 백성을 잘못 인도하여 우상숭배에 빠뜨림으로써 나의 진노를 폭발시켰기 때문에 나는 네 식구들을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의 가족처럼 죽여 버리겠다.” … 26) 그의 가장 큰 죄악은 아모리 족속들처럼 온갖 우상을 섬긴 것이다. 주께서는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온갖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주셨는데 아합은 그들과 똑같이 우상을 섬기고 말았다. 27) 엘리야가 말을 마치자 아합은 두려워서 옷을 찢었다. 그는 예언자의 경고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굵은 베옷을 걸쳤다. 그리고 잠을 잘 때에도 옷을 벗지 않고, 걸음도 천천히 걸으며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28) 그러자 주께서 그를 불쌍히 보시고 엘리야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29) “아합이 마침 내 내 앞에 굴복한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가 나의 권능을 인정하고 굴복하였으니 내가 그의 생전에는 그의 집안에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재앙을 내리겠다.”
■ 대하 33:1-10 / [역행과 퇴보의 왕 므낫세] 므낫세는 12세의 철없는 나이에 왕위에 올라 55년(45년으로 보아야 한다)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는 간신배들의 손에 놀아나면서 온갖 악정과 폭정을 일삼았고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쫓아낸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등 여호와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만 골라서 저질렀다. 3)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허물어 없앴던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신을 위해 제단들을 다시 쌓았으며, 나무를 깎아 아세라 여신상을 만들어 세우고 하늘의 일월성신들에게도 기도를 드리며 숭배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원한 거처로 정해 놓으신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조차 이방신들의 제단들을 쌓고 …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경고하고 꾸짖으셨으나, 그들이 그런 말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하 33:11-16 / [므낫세의 징벌과 회개] 이에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휘하 장군들에게 군대를 끌고 가서 유다를 치게 하셨다. 그들은 당장 므낫세를 체포하여 그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놋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다. 12) 이렇게 처지가 궁박해지자 므낫세는 간절히 자기의 하나님을 찾고,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엎드려 회개하였다. 13) 그가 용서를 빌며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어 계속 다스리게 하셨다. 이런 일을 겪고서야 비로소 므낫세가 참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다. 14) 므낫세는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다음에 … 15) 그는 또 나무와 돌로 만들어 세웠던 이방의 신상들을 성전에서 모조리 치워 없애고 또 전에 시온산과 예루살렘의 구석구석에 쌓아놓았던 모든 우상의 제단들도 헐어서 성 밖에 내다 버렸다. 16) 그 대신에 그는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세워 화목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다 바치고 온 유다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도록 명령하였다.
2. 은혜를 받은 증거는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 에드워드 모트는 캐비닛 공장에 고용된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좌절과 원망, 불평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중생한 다음 그의 망치는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는 마침내 공장을 인수하였고, 그 공장을 교회로 드렸고 그 자신도 목사가 되어 그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영감을 받아 쓴 시가 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 539장)
사도바울은 본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변해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에’라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본문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내가 무슨 직분을 갖고 있는지를 감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 : 채널 18 A방송 / 쾌도난마(박종진)에서 김용달 / 용팔이 사건의 주동자>
■ 역도 선수 장미란의 이야기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경기 직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금메달은 하나님이 주는 겁니다. 이것이 제게 주어져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가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사실 당시 참가한 선수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들이라고 놀고먹었겠습니까? 각자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장미란 선수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승한 겁니다.
■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를테면 2004 연예인 시상직장에서“하나님께 영광을” 지난해 말 방송사 시상식 현장에서 하나님께 수상의 영광을 돌린 기독 연예인들의 소감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장 감동을 준 연예인은 2003년에 이어 10대 가수 대상을 2연패한 이수영 씨가 시상식에서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외쳤습니다. ‘발라드의 천사’로 불리는 이수영은 평소에도 “큰 힘이 되고 기쁨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떳떳이 밝혀왔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수영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늘 따뜻하게 다가와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 가수이면서 연기자로 나선 유진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실망시키지 않는 딸이 되겠다”고 시상식장에서 약속했습니다. / 탤런트 최민수는 다른 연기자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보고 수상 소감에서 “저 역시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고 말했고 / 오랜만에 억척스런 아줌마 연기로 인기를 끈 오연수 역시“제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3. 은혜 받은 증거는 충성하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충성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살아온 과거가 있고, 살고 있는 현재가 있으며, 살아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겸손해 졌습니다. 오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바울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충성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있을 것인데”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에 믿음입니다. 오늘을 생각할 때에 사랑입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에 소망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기의 미래를 어떠한 심정으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까? 10-11절입니다.
10) 그나마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이 자비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11) 그러므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나든 다른 사람이든, 그것이 누구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여러분이 그것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라는 기자의 말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하고 자문하기보다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 김천의 한 설렁탕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은 항상 최고의 재료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드셔도 만족해하실 설렁탕을 끓인다는 것이 집 주인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주재료인 뼈와 고기는 물론 양념과 무, 배추도 가장 좋은 것을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국물이 뽀얗지 않고 누렇게 됐습니다. 24시간은 끓여야 되는데 큰일이다 싶어 뼈를 대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런 죄송합니다. 물건이 바뀌었나 봅니다. 사장님, 오늘만 크림을 타시죠.” 크림을 타면 국물이 뽀얗게 된다는 것은 설렁탕집 주인도 익히 들어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크림을 타는 대신 가게 문에 글을 하나 써 붙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못해서 쉽니다. 죄송합니다.” 고객을 예수님처럼 모시는 이 정직한 마음과 주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말까?’라고 자문만 하지 말고, 오히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합시다. 바울은 그 어떤 사도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핍박을 받았고, 매도 수도 없이 맞았으며, 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습니다. 생명의 위협도 수도 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때로는 춥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헐벗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수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내가 수고하는 것도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 결론입니다 / 은혜 받은 증거는 겸손이었습니다. 지난날에 우리들이 다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감사와 겸손한 자세로 살아갑시다. 우리 믿음 잃지 않고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여생(餘生)을 ‘내게 주신 은혜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맡은 바 일을 잘 감당합시다.
■ 1871년 몬트릴 제너럴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과 대학생이 의사시험을 앞두고 합격할지 알 수 없어 근심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의사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바르게 살 것인지? 의 고민을 안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토마스 칼라일의 책 속에서 ‘우리의 주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데 있다’란 구절을 읽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윌리엄 오슬로경입니다.
▶ 인생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위하든 돈을 위하든 권세를 위하든 쾌락을 위하든 나름대로 삶의 목적을 정해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두 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둘이 병원의 복도를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고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것은 분명히 류마티스 관절염이야.’ 그러자 다른 학생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천만에, 저건 디스크가 틀림없어.’ 둘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옥신각신 하였습니다. 그때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아주 힘겹게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화장실이 어디죠?’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틀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경험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도 안 됩니다. 나의 지식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해, 성공을 위해, 출세를 위해, 재물을 위해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진정한 목표가 있음은 행복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7-8 절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권리가 없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하며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주를 위하지 않는 삶은 사나 죽으나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삶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죽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바울의 마지막 신앙목표를 향한 마음가짐과 우리에게 권고한 것을 보면서 설교를 마칩니다.
빌 3:12-16 / [목표를 향한 달음질] 내가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다만 나는 그리스도께서 왜 나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내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13)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아직 나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는 데 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14)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일을 바탕으로 하여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상을 주시려고 나를 하늘로 부르고 계십니다. 15) 나는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생각을 달리하는 점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16)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됐든지간에 이제는 같은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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