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풍경
권 옥 희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귀환 한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 부고가 왔다
창문 밖으로 나간 엄마가
다시 돌아온 창문 안은 모든 게 가득 찼다
기척 없던 집에 생기가 돌았다
얼마 살지 못한 그 생기가 자리를 떠나고
다시 적막에 싸인 창문 안 풍경은
이제 스스로 밖으로 나가지 못 한다
웃음 골로 접히던 주름을 남기고
구름에 평행을 맞춘 창문 밖으로
아주 떠나는 엄마를 배웅하며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흥건하게 바닥을 적셨다
수없는 길로 들고나는 창문 밖 풍경을 끌어들이며
눈물로 꼭꼭 싸매둔 엄마의 고해성사가
희미한 매미소리로 휩쓸려간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데려다 줘!"
술에 젖다
권 옥 희
어느 날 내 사랑의 우물이 말랐다
사랑이 멈추면 온통 사막이라고 마음속 먼지들이 균열을 일으킨다
사랑을 안고 사는 꽃들은 사랑이 멈추면 때 없이 진다
애초에 몸속에 녹아있는 사랑
녹아서 온몸을 흐르다가 어느 한곳이 막히면 그건 못 견딜 욕망이었다
가슴을 찢어 쓰린 잔을 들고 술에 젖으면
사랑의 마름질로 접혀진 불꽃 경계선을 너머
이 가슴 끌어안을 그대가 없어 꽃이 진다
온기 없이 적막한 하루가 거칠게 달려가는 뒤로
붉은 노을이 대신 취하고
술에 젖은 채 말라버린 우물가를 서성이는 그대는
숲의 둔덕을 베어 문 바람처럼 어쩌지 못하고
흐려진 눈으로 애꿎은 꽃대만 꺾는다.
나는 안식 중
권 옥 희
방파제가 길게 바다를 잠재우는 밤은 모든 게 봉인되었다
방전된 배터리로 휴대폰은 죽고
머뭇대며 손 내밀었던 너와의 시간도 간단명료하게 죽었다
희미한 등대 불빛을 좇아 밤바다를 응시하는 동안
숨을 곳이 내 품인 양 다가온 바람 한 줄기가 애잔했다
집을 나온 여자가 화답해 줄 상대도 없는
바다에서 낡은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곧 사라질지도 모를 별들을 핑계 삼아 더는 구속되지 않겠다고,
이미 마음이 찍혀버린 이런 안식에서 무슨 꿈을 더 꿀까
씨줄 날줄로 엮여 숨통 조이던 눈물을 모른 척 숨을 고르던 파도는
매복병처럼 다가와 날실 한 올 건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날 것 같은 날들을
짜맞춰 사는 그것이 눈물을 지킬 안식이라고
온몸으로 바위를 쳐대는 자기도 매일 사랑을 짜는 중이라고.
<약력>
• 경북 안동 출생
• 92년 시대문학(현 문학시대) 신인상으로 등단
•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문학의 집 ․ 서울 회원
• 2017년 강서문학 대상 수상
• 시집「마흔에 멎은 강」,「그리움의 저 편에서」,「사랑은 찰나였다」
공저「별난 것에 대한 애착」,「장미차를 생각함」등 다수
•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 독서논술 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