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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학음집(惕若齋學吟集) 김구용(金九容)생년1338년(고려 충숙왕 복위 7)몰년1384년(우왕 10)자경지(敬之)호척약재(惕若齋)본관안동(安東)초명제민(齊閔)특기사항정몽주(鄭夢周)ㆍ이숭인(李崇仁)ㆍ이색(李穡) 등과 교유
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下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寄無說長老子野先生
苦憶潭陽郡。秋天一雁嘶。高僧依竹澗。野客隱梅溪。月照淸香動。風來翠影低。相從無十步。茅屋近招提。淸一作暗。翠一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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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下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奉酬康子野相賀之什次韻
子野先生在錦南。一緘珠玉瀉雲藍。殷勤遠賀梨垣客。披閱高吟日再三。
相思極目望天南。杳杳秋雲更蔚藍。莫向江湖藏大器。君王從諫要登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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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下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寄康子野先生
再覩佳章苦憶君。何時相見說慇懃。年年故里花如海。回首江南日暮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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惕若齋先生學吟集卷之下 通善郞晉陽大都護府判官兼勸農兵馬團練判官男明理編 / 詩
寄子野先生 姜好文
故人遠在兮天一涯。登高矯首兮雁南歸。欲寄相思兮不可追。秋空渺渺兮碧雲飛。從軍爲樂兮鬢如絲。臂弓腰箭兮志不衰。閑吹玉笛兮秋月輝。爭唱纖歌兮斂娥眉。男兒得意兮各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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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子野先生 姜好文 ->康好文
*강호문(康好文)
고려 공민왕(恭愍王)~우왕(禑王) 때의 문신. 1362년(공민왕 11)에 과거에 급제하여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냈으며, 시문(詩文)에 능함. 부인 문씨(文氏)는 왜구에게서 순결을 지켜 열녀(烈女)로 칭송됨. 이색(李穡)․권근(權近) 등과 교유함.
자야(子野)@강호문
자야(子埜)
매계(梅溪)@강호문
*원문이미지 교감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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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집(陽村集) 권근(權近)생년1352년(고려 공민왕 1)몰년1409년(조선 태종 9)자가원(可遠), 사숙(思叔)호양촌(陽村)본관안동(安東)초명진(晉)시호문충(文忠)특기사항이색(李穡)의 문인, 정도전(鄭道傳)ㆍ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
陽村先生文集卷之七 / 南行錄
子埜康先生馳馹見訪。別後寄詩二首。其一賀圃隱相國復職。扈駕南都也。次其韵答之。
道屈身因屈。文窮智亦窮。謫來依古寺。深省聽晨鍾。北闕書曾上。南冠縶自同。故人時枉駕。惆悵又西東。
右自叙
才名曾籍甚。經術極硏窮。望重調殷鼎。功高上景鍾。拯沉猶己溺。持論豈雷同。曳履承天寵。休聲振海東。
右賀圃隱
子埜先生詩幷錄 後一首爲圃隱作 [康好文]
偶入招提境。興亡意不窮。雲行餘古塔。日落動踈鍾。客裏千愁散。天涯一笑同。誰能慰幽獨。叢菊在籬東。
處險思謙退。推仁救阨窮。材能扶大廈。筳豈犯鴻鍾。補衮誠彌切。垂衣德卽同。三峯迎玉輦。佳氣向天東。
양촌선생문집 제7권 / 시류(詩類) - 남행록(南行錄)
강 선생(康先生)이 또 장구 사운(長句四韻)을 부쳐 왔는데 그 운을 차한다.
청천 백일이 밝게 비치니 / 靑天白日照臨明
마음에 어찌 임금을 속이는 정이 있으랴 / 方寸寧容罔上情
광언이 화살같이 곧은 줄은 깨닫지 못하고 / 不覺狂言如矢直
공도가 저울같이 평한 것만 아네 / 但知公道似衡平
가벼운 벌을 받았으니 은혜 갚기 어렵고 / 得霑輕典恩難報
매양 부모를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네 / 每憶高堂泪自橫
상루를 조상하고자 하나 재주가 없으니 / 欲吊湘纍才調薄
감히 사부를 지어 이름 남기기를 바라랴 / 敢將詞賦要留名
자주(自註) : 온 시에 이소(離騷)를 이으라고 청한 말이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강 선생 시를 또 기록한다.
높은 의론이 일월같이 밝으나 / 高議雖同日月明
어찌 곧은 도로 인정을 순히 할 수 있으랴 / 那將直道順人情
한 장의 상소에 임금은 더욱 멀어지고 / 一封朝奏天彌遠
천리 남으로 귀양가니 길이 험하구나 / 千里南遷路不平
선탑은 적적한데 단풍은 지고 / 禪榻寥寥黃葉盡
어버이 계신 곳은 아득한데 흰 구름이 비꼈구나 / 親居眇眇白雲橫
공은 모름지기 이소의 원을 잇게나 / 請公須續離騷怨
강물처럼 좋은 이름 끝없으리 / 江水無窮有令名
[주-D001] 상루(湘纍) : 굴원(屈原)이 죽은 것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굴원을 가리킨다. 양웅(揚雄)의 반이소(反離騷)에 “초(楚)의 상루에 조상한다.” 하였는데, 그 주에 “죄 없이 죽은 것을 누라 하며, 상강(湘江)의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으므로 상루라 한다.” 하였다.[주-D002] 이소의 원(怨) : 임금이 자기를 알아 주지 않음을 원망한다는 말. 이소는 《초사(楚辭)》의 편명으로 굴원이 지었다. 그 내용은 대략,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받들었으나 간신의 모략에 걸려 쫓겨났음을 하소한 것이다. 《史記 屈原列傳》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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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5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답 죽간선사[答竹磵禪師]
이색(李穡)
산에 놀면서는 곤륜에 오르고 / 山游登崐崘
물을 건너서는 방호(선산(仙山))를 지났다 / 水涉經方壺
몸소 천하의 반을 다녔는데 / 身行天下半
발자취는 동해의 모퉁이에서 시작했다 / 跡起東海隅
심신은 말이 마굿간에 매어 있는 듯하고 / 神心馬繫皁
세월은 양이 도수장에 가듯 한다 / 歲月羊趨屠
더러운 냄새 나는 가죽 푸대[사람의 몸] 속에 / 誰謂臭皮袋
여의주를 감추었음을 누가 알리 / 自藏如意珠
맑은 얘기는 지극히 오묘한데 / 淸談極要妙
농담은 도리어 과장되고 허탄하다 / 戲語還於于
높은 풍치는 천 길 산과 같고 / 高標山千仞
담담한 생각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 / 淡慮水一盂
고요한 방에는 향불이 차가운데 / 静室香火冷
좌우에는 책과 또 그림뿐이다 / 左右書與圖
때때로 가끔 시를 지으매 / 時時出詩句
쉽기는 마치 저포(도박의 일종)하는 것 같다 / 易易如摴蒱
근원이 깊으매 흐르는 것이 마르지 않고 / 源深流不竭
도는 살졌으나 몸은 심히 파리하다 / 道腴身甚癯
변환을 잘하는 것이 중의 업인데 / 善幻是僧業
묘한 작용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 / 妙用隨時殊
오래 ‘뜰 앞의 잣나무’로 참선하여 / 久參庭前栢
강 위의 갈대를 타려고 한다 / 欲跨江上蘆
하수 언덕이 지금 전쟁에 시달려서 / 河壖今苦戰
군령이 도망하는 자 엄하게 단속한다 / 軍令嚴稽逋
바라노니 공은 석장을 날려가서 / 遲公飛錫去
저들을 감동시켜 정도로 돌이키라 / 感彼歸正途
[주-D001]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 : 어느 중이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祖 師 달마(達摩))가 서방에서 온 뜻입니까.” 하니,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라.” 하였다. 이것을 참선(參禪)하는 사람들의 화두(話頭)라 한다.[주-D002] 강 위의 갈대를 타려 : 달마조사(達摩祖師)가 갈대 한 가지를 타고 강을 건넜다 한다.[주-D003] 석장(錫杖)을 날려가서 : 양(梁)나라 보지선사(寶誌禪師)가 백학도사(白鶴道士)와 산에 터 잡이로 서로 다투다가 약속하기를, 도사는 학을 날려 그 자리로 보내고, 보지선사는 주석 지팡이[錫杖]를 날려 보내어 먼저 그 자리에 도착하는 자가 터를 차지하기로 되었는데, 주석 지팡이가 도사의 학보다 먼저 갔다.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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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권 / 시(詩)
제공(諸公)이 호(壺) 자 운으로 화답하므로, 다시 몇 수를 지어 답하다.
서유의(胥有儀)에게 답하다.
소년 시절에 기발한 뜻을 품고 / 少年負奇志
슬피 노래하며 타호를 쳐 댔는데 / 悲歌擊唾壺
슬프다 내 훌륭한 젊은 친구가 / 慨我少良友
연산 한 구석에 배회하는 것이 / 躑躅燕山隅
호걸의 선비를 어떻게 알아보랴 / 焉知豪傑士
술집이나 도살장에 숨어 있으니 / 隱淪沽與屠
외모는 비록 초라한 차림이지만 / 外雖披短褐
가슴속엔 혹 보배를 품기도 하네 / 內或懷明珠
멀리 연 소왕을 사모하여라 / 遠慕燕昭王
어진 선비들이 기꺼이 몰려왔네 / 賢士來于于
황금대 곁을 조용히 배회하노니 / 徘徊金臺側
불룩한 집터가 엎은 사발 같구나 / 隆基如覆盂
그런데 어찌하여 자객 형가는 / 奈何荊軻子
독항도로써 재앙을 불렀던고 / 賈禍督亢圖
세속이 어찌 이런 사리를 알랴 / 流俗豈知此
유협객은 도박꾼이나 될 뿐이네 / 游俠競摴蒱
가장 기쁜 건 자네를 얻음이니 / 最喜得吾子
산택에서 여윌 사람이 아니로다 / 知非山澤癯
당로자들은 나를 아는 이 없는데 / 當路莫予識
시 읊는 벗으로 유달리 친밀하네 / 哦詩伴密殊
가을바람이 서륙에서 일어나니 / 秋風起西陸
찬 이슬이 갈대를 시들게 하누나 / 白露萎菰蘆
강 남쪽엔 차가운 매화가 있어 / 江南有寒梅
절구 시가 임포에게서 전해 오네 / 絶句傳林逋
복사꽃 오얏꽃이 왜 안 좋으랴만 / 桃李豈不好
우리 함께 가는 길을 신중하세나 / 與子愼趨途
죽간 선사(竹磵禪師)에게 답하다.
산의 유람은 곤륜산까지 올랐고 / 山游登崑崙
물은 건너서 삼신산을 경과했네 / 水涉經方壺
몸은 천하의 절반을 주행하였고 / 身行天下半
자취는 동해 구석에서 일어났네 / 跡起東海隅
마음은 마구간에 매인 말이라면 / 神心馬繫皁
세월은 도살장에 가는 양이로다 / 歲月羊趨屠
그 누가 이르리요 취피대 속에 / 誰謂臭皮袋
스스로 여의주를 감추고 있다고 / 自藏如意珠
청아한 담론은 지극히 정묘하고 / 淸談極要妙
장난의 말은 도리어 과장되도다 / 戱語還於于
고상한 풍치는 천 길 산과 같고 / 高標山千仞
맑은 생각은 물 한 사발 같은데 / 淡慮水一盂
고요한 방에는 향불만 썰렁하고 / 靜室香火冷
좌우에는 서적과 그림뿐이로다 / 左右書與圖
때때로 시구를 읊어 내는 데는 / 時時出詩句
마치 윷놀이 하듯 쉽기도 하여라 / 易易如摴蒱
근원이 깊어 물줄기 다하지 않고 / 源深流不竭
도가 살찌매 몸은 더욱 파리하네 / 道腴身甚癯
환술을 잘함은 곧 스님의 업이라 / 善幻是僧業
교묘한 응용이 수시로 다르도다 / 妙用隨時殊
뜰 앞의 잣나무에 오래 참선하고 / 久參庭前柏
강상의 갈대를 타려고도 하였네 / 欲跨江上蘆
하유는 지금 한창 고전을 하는데 / 河孺今苦戰
군령이 지체하는 데에 엄격하니 / 軍令嚴稽逋
공은 석장 날려 떠나길 늦추어서 / 遲公飛錫去
저들을 정도로 돌아오게 감화시키소서 / 感彼歸正途
동암 선사(東菴禪師)에게 답하다.
오늘 저녁이 이 어떤 저녁인고 / 今夕是何夕
금 술병의 막걸리를 기울이노니 / 白酒傾金壺
포도 덩굴이 깊은 그늘을 이루어 / 蒲萄結層陰
맑은 바람이 자리 곁에 불어오네 / 淸風生座隅
동암은 삼한의 빼어난 인물로서 / 東菴三韓秀
우뚝한 풍채는 옥 솟대 같거니와 / 巉巉玉蘇屠
장난 삼아 사문에도 마음을 두어 / 游戱於斯文
구슬을 꿴 듯 시문도 화려한데 / 疊璧聯雙珠
욕되이 나에게 창화를 허락하니 / 愧我辱酬唱
지란에 악초 섞임이 부끄러워라 / 芝蘭雜軒于
그물 쳐서 좋은 시구 사냥하려고 / 張羅獵佳句
좌우에 진을 엄숙히 펼치었네 / 儼開左右盂
그 옛날 우리 선인이 계실 적엔 / 疇昔先人在
정분이 삼소도보다 더 깊어서 / 契深三笑圖
봄바람과 가을 달을 배경으로 / 春風與秋月
시 읊고 술 마시길 놀이 삼아서 / 詩酒爲摴蒱
명교의 밖에 우뚝 벗어났으니 / 超然名敎外
살찌고 파리함을 다시 논할쏜가 / 肯復論肥癯
학은 가고 구름만 홀로 남았으니 / 鶴去雲獨留
인간 세상 변천함이 마음 아프네 / 傷心人世殊
못난 자식 또한 얼마나 다행인고 / 豚犬亦何幸
부들 갈대에 등 덩굴 얽힌 셈이니 / 藤蔓纏葫蘆
잔술은 감히 사양할 수 없거니와 / 巵酒不敢辭
시의 명령도 감히 피할 수 없어라 / 詩令不敢逋
취해 읊으며 만고를 죽 훑어보니 / 醉吟視萬古
소란한 것이 똑같은 한 길이로다 / 擾擾同一途
철강 장로(鐵舡長老)에게 답하다.
불교는 말세에 가장 웅대하여 / 梵雄在叔世
중류의 천금 바가지가 되었고 / 中流千金壺
도가 한계를 헤일 수 없이 커서 / 道大無津涯
석가 노자가 한 구석도 못 채웠네 / 二氏不滿隅
그런데 철강이 그 근원 궁구하여 / 鐵舡窮其源
세속의 인연을 모두 잘라 버리고 / 外緣俱剪屠
산에서는 귀신의 글귀에 화답하고 / 居山和鬼句
바다에 가서는 교주를 만났었네 / 過海逢蛟珠
남쪽으론 월 땅까지 다 유람하고 / 南游盡於越
북쪽으론 흉노까지 다 달려가매 / 北走窮單于
흰 구름은 대지팡이를 따르고 / 白雲逐笻杖
단 이슬은 쇠바리때에 채워졌네 / 甘露盈鐵盂
일상생활이 어찌 얕다 이르리요 / 日用豈云淺
복을 받들고 방장에 돌아와서는 / 奉福歸蘿圖
이미 오욕의 즐거움을 가져다 / 已將五欲樂
빈 주사위처럼 죄다 없애 버렸네 / 一掃空摴蒱
그러나 기어는 아직도 못 면하여 / 綺語尙未免
억지로 파리한 시객 흉내 짓지만 / 強作哦詩癯
시편마다 호일한 기상을 띠어서 / 篇篇帶豪逸
교도의 시풍과는 월등히 다르네 / 逈與郊島殊
기자는 양웅에게 가서 물어보고 / 奇字問揚雄
진귀한 서적은 호리병에서 얻었네 / 祕書傳瓠蘆
미치광이 나는 시 재료 다했으니 / 狂生乏詩料
경병을 어떻게 감히 도피하리요 / 競病安敢逋
고담준론에 즐거운 흥취 동하여 / 高談發佳興
이따금 돌아갈 길을 잊기도 하네 / 往往忘歸途
[주-D001] 슬피 …… 쳐 댔는데 : 진(晉)나라 때 왕돈(王敦)이 매양 술이 거나하면 위 무제(魏武帝)의 악부가(樂府歌) 가운데 “늙은 준마는 마판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고, 열사는 늙은 나이에도 장대한 마음은 그치지 않네.[老驥伏櫪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라는 노래를 읊조리면서 여의봉(如意棒)으로 타호(唾壺)를 쳐서 장단을 맞추다 보니, 타호의 언저리가 모두 깨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전하여 장대한 회포나 혹은 불평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을 형용한다.[주-D002] 멀리 …… 같구나 : 전국 시대에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를 위하여 역수(易水)의 동남쪽에 황금대(黃金臺)를 짓고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초빙(招聘)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주-D003] 자객(刺客) …… 불렀던고 : 전국 시대에 자객 형가(荊軻)가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진왕(秦王)을 죽이려 하였는데, 연나라의 독항 지도(督亢地圖)를 진왕에게 바치다가 잘못해서 비수(匕首)를 들켜 마침내 진왕은 죽이지 못한 채 도리어 자신만 잡혀 죽고 따라서 연나라도 멸망하게 되고 말았음을 이른 말이다.[주-D004] 강 …… 전해 오네 : 송(宋)나라의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 시에, “성긴 가지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껴 있고, 은은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아래 부동하네.[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한 것을 이른 말이다.[주-D005] 마음은 …… 말이라면 : 진(晉)나라 때 왕돈(王敦)이 매양 술이 거나하면 위 무제(魏武帝)의 악부가(樂府歌) 가운데 “늙은 준마는 마판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천리 밖에 있고, 열사는 늙은 나이에도 장대한 마음은 그치지 않네.[老驥伏櫪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라는 노래를 읊조리면서 여의봉(如意棒)으로 타호(唾壺)를 쳐서 장단을 맞추다 보니, 타호의 언저리가 모두 깨졌다고 하는데, 전하여 장대한 회포나 혹은 불평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을 형용한다.[주-D006] 세월은 …… 양(羊)이로다 : 불가(佛家)의 말로, 마치 양을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도살장을 향해 가는 것과 같이 죽을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한 말이다.[주-D007] 취피대(臭皮袋) : 불가의 용어로, 인체(人體)의 구각(軀殼)을 비유한 말이다. 사람의 몸속에는 가래, 눈물, 똥, 오줌 등 더러운 물질들이 들어 있으므로 이렇게 일컫는다.[주-D008] 뜰 앞의 …… 참선하고 : 뜰 앞의 잣나무란 불가의 화두(話頭)로서, 어떤 중이 조주(趙州) 종심 선사(從諗禪師)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하니, 종심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주-D009] 강상(江上)의 …… 하였네 : 양(梁)나라 때에 달마 선사(達磨禪師)가 일위 소주(一葦小舟)를 타고 양자강(揚子江)을 건너 북위(北魏)에 들어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주-D010] 삼소도(三笑圖) : 진(晉)나라 때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 두 사람을 전송할 때에 흥겨운 이야기에 팔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건너가 범 우는 소리를 듣고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세 사람이 서로 크게 웃었다고 하는데, 그때의 광경을 상상하여 그린 것을 삼소도(三笑圖)라고 한다.[주-D011] 중류(中流)의 …… 되었고 : 《할관자(鶡冠子)》에, “중하에서 배를 놓치면 바가지 하나가 천금과 같다.[中河失船 一壺千金]” 한 데서 온 말로, 바가지를 끼고 물을 건널 수 있음을 뜻하는데, 전하여 여기서는 부처가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주-D012] 교주(蛟珠) : 남해(南海)에는 교인(蛟人)이라는 괴상한 인어(人魚)가 사는데, 그가 울면 눈에서 구슬이 나온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주-D013] 오욕(五欲) : 불교 용어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다섯 가지의 정욕(情欲)을 가리킨다.[주-D014] 기어(綺語) : 애욕(愛欲) 등에 관한 화려한 문사(文詞)를 이른 말이다.[주-D015] 교도(郊島)의 시풍(詩風) : 교도는 당(唐)나라 때의 시인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를 합칭한 말인데, 소식(蘇軾)이 그들의 시풍을 일러 “맹교는 차갑고, 가도는 파리하다.[郊寒島瘦]”고 하였다.[주-D016] 기자(奇字)는 …… 물어보고 : 기자는 문자(文字)의 육체(六體) 가운데 하나로서 고문(古文) 비슷한 글자인데, 한(漢)나라 때 유분(劉棻)이 일찍이 양웅(揚雄)을 찾아가 기자를 배웠던 데서 온 말이다.[주-D017] 진귀한 …… 얻었네 : 진(晉)나라 때 서희(徐煕)가 진망산(秦望山)에 은거할 적에 한 도사(道士)가 지나다가 물을 마시고는 그에게 호리병을 주면서 “그대의 자손이 의당 도술로 세상을 구제할 것이다.” 하므로, 그것을 열어 보니, 편작경경(扁鵲鏡經)이 들어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주-D018] 경병(競病) : 아주 험난한 운자(韻字)를 가리킨다. 양 무제(梁武帝) 때 조경종(曹景宗)이 개선(凱旋)할 적에 무제가 화광전(華光殿)에서 주연을 베풀고 연구(聯句)를 시험했는데, 조경종이 최후에 들어가자, 다른 운자는 다 지어 버렸고 험운(險韻)인 경병 두 자만 남았으므로, 조경종이 즉시 붓을 들고 읊어 쓰기를, “떠날 때엔 아녀들이 슬퍼했는데, 돌아올 땐 피리 북이 다투어 울리네. 길 가는 사람에게 시험 삼아 묻노니, 곽거병과 어떠한고.[去時兒女悲 歸來笳鼓競 借問行路人 何如霍去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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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 정월 하순에 남쪽에서 온 서신을 얻어 보고 인하여 제공(諸公)을 생각하다.
무열장로(無說長老)에 대하여
무열산인은 스님들 중 문장가인데 / 無說山人釋翰林
바다 끝 서로 바라본 지 오랜 세월이었네 / 相望海角歲年深
매화는 지려 하고 봄추위는 극심하니 / 梅花欲落春寒甚
응당 남쪽 창 향하여 온종일 읊으리라 / 應向南窓盡日吟
강자야(康子野)에 대하여
늙어가도 호기는 다 없어지지 않아서 / 老來豪氣未全除
형창에 괴로이 글 읽은 게 후회스럽네 / 悔殺螢窓苦讀書
그대는 좋이 감영의 막부가 되었는데 / 好作碧油幢下客
봄바람은 또 이 태평의 처음이고말고 / 春風又是大平初
권길부(權吉夫)에 대하여
당일에 재명이 조관들을 진동시켜 / 當日才名動搢紳
지금까지 문단에 명성이 알려졌는데 / 至今詞苑播芳塵
나이 겨우 오십 지나 벼슬 버리고 떠나서 / 年過知命休官去
홀로 강산을 향하여 이 몸을 늙히는구려 / 獨向江山老此身
안면(安勉) 동년(同年)에 대하여
송정의 문하에서 일찍이 급제를 하고 / 松亭門下早題名
연사의 다리 가에서 스님과 또 사귀었네 / 蓮寺橋邊更結盟
다행히도 부형들이 모두 다 건강하니 / 幸是父兄俱健在
고향에 대한 생각을 부디 잊지 말게나 / 莫敎鄕里便忘情
[주-D001] 형창(螢窓) : 동진(東晉) 때 차윤(車胤)이 집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었으므로, 주머니 속에 개똥벌레를 많이 잡아 넣어서 그 반딧불로 책을 비추어 공부했던 데서 온 말로, 고학(苦學)을 의미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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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권 / 시(詩)
수안 방장(壽安方丈)에 연무설(演無說), 섭백경(聶伯敬)이 한자리에 있었다.
수안 방장에는 털끝만 한 먼지도 없어 / 壽安方丈無纖塵
말에 내려 당에 오르니 내 마음 기뻐라 / 下馬登堂怡我神
단구 선생은 필법이 대단히 신묘하고 / 丹丘先生筆法妙
늙은 선사 죽간은 시어가 새롭구나 / 竹磵老禪詩語新
다과로 손 만류함은 절로 속세를 떠났고 / 茶瓜留客自離俗
사람 비추는 그림은 자못 실물에 가깝네 / 圖畫照人殊逼眞
다만 한스러운 건 석양에 문을 나서매 / 只恨斜陽出門去
험난한 벼슬길에 방향이 희미함이로세 / 宦途嶮巇迷路津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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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3 - 석전류 1 / 석전총설(釋典總說)
석교(釋敎)ㆍ범서(梵書)ㆍ불경(佛經)에 대한 변증설(辨證說) 부(附) 석씨잡사(釋氏雜事) (고전간행회본 권 39) / 사찰(寺刹)
고려의 중 굉연(宏演)이 찬한 《도선전(道詵傳)》에 “처음 도선이 당(唐)나라에 들어가 일행선사(一行禪師)에게 불법을 배울 때, 일행선사가 삼한(三韓)의 산수도(山水圖)를 보고 말하기를 ‘사람이 만일 병이 나면 혈맥(血脈)을 찾아 침(針)도 놓고 뜸질도 하면 낫듯이, 산천(山川)의 병도 그와 같아서 혹 절을 건립하여 불상을 세우고 탑을 세우면 마치 사람에게 침 놓고 뜸질하는 것과 같으니, 이를 비보(裨補)라 한다.’ 하였는데, 뒤에 도선이 5백개의 사찰을 비보하였다.” 했으니, 지금 곳곳에 있는 석불(石佛)ㆍ부도(浮圖)가 아마 그때에 세운 것인가 보다. 지금 사찰을 따져보건대, 8도(道)의 해협이나 산 구석구석에 사찰 없는 데가 없어, 크고 작은 절이나 암자의 숫자가 무려 천여 곳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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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5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구곡계’의 제목을 얻어 벗을 보내며[分題得九曲溪送友]
석굉연(釋宏演)
시내 꽃은 곳곳에 피고 / 溪花處處發
시내 물은 굽이굽이 맑도다 / 溪水曲曲淸
꽃이 피니 세월 가는 것이 아깝고 / 花發惜年華
물이 맑으니 갓끈 빨기에 마땅하도다 / 水淸宜濯纓
시서를 강론하던 땅에 / 睠言詩書地
유유히 돛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 悠悠櫂歌聲
천 년의 무이시는 / 千年武夷詩
고정(주자 (朱子))의 이름이 그리워라 / 懷哉考亭名
고도하여 전철을 계승할 것이니 / 高蹈繼前轍
어찌 평생의 맹세를 저버리랴 / 寧負平生盟
해 늦게 방황하니 / 歲晩此翺翔
매화와 대에 얼음과 눈이 밝도다 / 梅竹氷雪明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동문선 제5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종류교’의 제목을 얻어서 부모님께 문안 가는 벗을 보내며[分題得種柳橋送友省親]
석굉연(釋宏演)
그대를 양류교에서 보내며 / 送君楊柳橋
그대에게 양류 가지를 주노라 / 贈君楊柳枝
양류는 줄 만한 것이 아니지마는 / 楊柳不足贈
생각하는 것은 이별에 있도다 / 所念在別離
그대가 돌아감은 과연 무엇을 위함인가 / 君歸果何爲
흰 구름을 바라보는 생각이 유유하네 / 悠悠白雲思
채색옷이 진실로 즐겁기는 하나 / 綵衣固自樂
도를 배우는 것을 늦게 하지 말며 / 學道莫遲暮
반수의 미나리 캐고 캐어 / 采采泮中芹
흐르는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오 / 流年莫虛度
[주-D001] 채색옷 : 노래자(老萊子)가 나이 칠십에 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면서 부모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어린애처럼 채색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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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집 제3권 / 서(序) / 조명상인에게 주는 시의 서[贈祖明上人詩序]
무설대사(無說大師)가 병이 들어 진원산(珍原山) 가상사(佳祥寺)에 누워 있었는데, 하루는 왜구(倭寇)가 갑자기 그 절에 침입하였다. 모두가 겁을 내어 사방으로 흩어지다가 혹은 죽기도 하고 혹은 포로가 되기도 하였는데, 대사의 제자 조명(祖明)은 대사를 업고 도망쳐 겨우 몸을 화에서 면하게 하였다.
나는, ‘백성은 세 곳(군(君)ㆍ사(師)ㆍ부(父)를 말함)에서 삶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동일하게 섬겨야 한다. 그래서 그 섬기는 곳에 따라서는 생명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라고 들었다. 이것은 유가(儒家)의 말이나, 절의 중들은 가정과 세상을 떠나서 어버이 버리기를 내던지듯 하니 기타(군ㆍ사(君師))야 의당 생각조차 못할 것 같은데도, 이따금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은혜가 돈독하여, 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구원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도리어 인인(仁人)ㆍ의사(義士)의 위에 있으니 조명(祖明) 같은 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고 보면, 그 마음속에 의리가 본래 갖추어져 있어 없애려도 없앨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본에는 이(以)자가 이(而)로 되어 있다) 저, 친척을 이별하고 인륜을 버리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 자는 또한 어떠한 마음에서일까? 비록 그러하지만 인심(人心)이란 모두다 같은 것이어서, 내가 먼저 발(發)한다면 저쪽에서도 감응(感應)되어 진실로 하지 않으려 해도 그만두지 못할 바가 있을 것이니, 의당 시(詩)를 읊는 자가 많음직도 하다.
[주-D001] 그 섬기는 곳 : 오직 섬기고 있는 곳에서란 뜻으로 ‘아버지를 섬김에 있어서는 아버지에게, 스승을 섬김에 있어서는 스승에게,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임금에게’라는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도련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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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97권 / 설(說) / 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정도전(鄭道傳)
여황(艅艎) 조생(趙生) 박(璞)이 극복루기(克復樓記)를 가지고 와서 내게 보이고 말하기를, “이 기는 무설산인(無說山人)이 지은 것인데 누각이 용진사(湧珍寺)에 있다. 사람이 누관(樓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높은 데 올라서 먼 데를 바라보고 마음을 풀고, 눈으로 멀리 산천을 궁진하고 풍월을 이끌어서 유관(遊觀)의 즐거움을 도울 뿐이요 학문에는 관계가 없는데, 이제 이 누각을 극복으로 이름하였으니 무엇을 누(樓)에서 취한 것인가.”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의 근심과 즐거움은 마음에 매어서 만나는 경우에 따라서 드러나니, 그 마음이 근심에 매어 있으면 비록 산천의 좋은 것과 풍월의 아름다운 것을 만나더라도 서글픈 감정을 도울 뿐이다. 영릉(零陵)의 산은 남방(南方)의 가장 수려한 것이나, 쫓겨온 자는 갇힌 것으로 생각하고, 악양루(岳陽樓)는 천하의 장관이지만, 좌천된 사람은 슬프게 생각하나니, 진실로 그 본심을 잃는다면 가는 곳마다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누관이 있으나 어찌 즐거울 수 있으랴. 만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없애고 천리를 회복한다면, 그 마음이 활달하여 천지와 더불어 그 큰 것을 함께 하고, 만물과 더불어 그 화함을 같이 하여, 넓고 커서 만나는 것에 따라 모두 즐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한 광주리의 밥과 표주박으로 궁벽한 촌간에 있어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 이가 있으니, 안자(顔子)의 극복이 그것이다. 요컨대, 오직 어진 뒤에야 능히 그 낙을 낙으로 여기는 것이니, 극복으로 누를 이름한 것이 그 근본을 얻은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역)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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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三十五 / 全羅道 / 羅州牧 / 佛宇
涌珍寺。在涌珍山。寺有克復樓,無說山人有記。○鄭道傳書記後曰:“艅艎趙生璞袖《克復樓記》來示予,曰:‘此記乃無說山人所作,樓在涌珍寺。夫人之所貴乎樓觀者,以其登高望遠,游心騁目,窮山川引風月,以資遊觀之樂而已,於學也無與焉。今玆樓以克復名,何取於樓哉?’ 予曰:‘否。人之憂樂係之心,而發之於所遇之境,彼其心有係於憂者,雖遇山川之勝、風月之美,適足以爲之傷感也。零陵之山,南方之最秀者也,而逐臣以爲囚;岳陽之樓,天下之壯觀也,而遷客以爲悲。苟失其本心,則無往而不慽慽也,雖有樓觀,豈得而樂哉?若夫克去己私以復天理,則其心豁然,與天地同其大,萬物同其和,浩浩蕩蕩,隨所遇而皆樂。故有以簞瓢陋巷而不改其樂者,顔子之克復也。要之,惟其仁而後能樂其樂也,其以克復名樓,得其本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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壄隱先生逸稿卷之六 / 附錄 / 尊慕錄附
鄕黨 取古人同里閈之義
姜昌富與先生比隣。先生家世淸貧。多所資者。子璜寶。
康好文字子野。號梅谿。恭愍壬寅科。官至判典校寺事。潭陽鄕校記云。田康之屬。生玆學校。修業立朝。垂名後代。又與李牧隱相善。詩在東文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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壄隱先生逸稿卷之四 / 附錄○遺事 / 潭陽鄕校寶上記[南孝溫]
潭陽爲府。在百濟全盛時。爲秋子兮郡。在新羅兼幷後爲秋戊郡。今名之呼。當代制也。鄕校在府北二里檠臺山之南原栗川之滸。山川鬱紆。厥位向陽。扶輿孕秀。爲南道人材之淵藪。材術如李靈幹。功名如李晟。文章如田祿生,康好文。篤行如金頎,全謹,宋時興。皆府產也。敎官金君諱濱。字渭叟。予竹馬交也。謂余曰。學校之重修也。府使南侯季堂賜也。寶上之創立也。監司金君宗直,郭侯垠賜也。嗚呼。不置寶上。養育有缺之前。尙有二李,田,康之屬。生兹學校。修業立朝。垂名後代。況自二公置寶以後。養育加初。則必有賢等數子者。彬彬輩出。蔚爲名臣者有之矣。余何幸身親見之。弘治四年龍集辛亥二月有日。過客宜春後學進士南孝溫。謹記。出潭陽鄕校懸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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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新羅兼幷後爲秋戊무郡-秋成성郡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9권 / 전라도(全羅道) /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
【군명】 추자혜(秋子兮)ㆍ추성(秋成)ㆍ담주(潭州).
*秋江先生文集卷之四 / 記 / 潭陽鄕校寶上記
在新羅兼幷後。爲秋成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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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강집(秋江集) 남효온(南孝溫)생년1454년(단종 2)몰년1492년(성종 23)자백공(伯恭)호추강거사(秋江居士), 행우(杏雨)본관의령(宜寧)시호문청(文淸)특기사항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ㆍ김시습(金時習) 등과 교유.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
秋江先生文集卷之四 / 記 / 潭陽鄕校寶上記
성종 | 22 | 1491 | 신해 | 弘治 | 4 | 38 | 湖南地方을 유람하다. ○ 礪山에서 〈鑑亭記〉, 潭陽에서 〈潭陽鄕校寶上記〉, 長興에서 〈釣臺記〉를 짓다. |
潭陽爲府。在百濟專盛時。爲秋子兮郡。在新羅兼幷後。爲秋成郡。今名之呼 缺 ▣當代制也。鄕校在府北二里檠臺山之南原栗川之滸。山川鬱紆。厥位向陽。扶輿孕秀。爲南道人材之淵藪。
材術如李靈幹。
功名如李晟。
文章如田祿生,康好文。
篤行如金頎,金謹,宋時興。
皆府產也。余行湖南。寓宿校舍。殿廡高大。丹靑明穊。奠祀有廳。財用有庫。生師異舍。什用皆新。寶上收散。以資供用。諸生八十餘人。皆有材行。不減京學。
敎官金君名濱。字渭叟。余竹馬交也。謂余曰。學敎之重修也。府使南侯季堂賜也。寶上之創立也。監司金公宗直,府使郭侯垠賜也。金公賜賨布十五匹。郭侯賜租三十石。賨布五匹。歲時取息。以供諸生書糧鹽醬。郭侯又賜賨布六匹。爲府中生員,進士相會講信之資。名曰司馬寶上。侯又因金公到付關內旨。令校中懸板重記。子爲我記之。余惟國家之興衰。係于政令之擧廢。政令之擧廢。係于人材之存亡。而培植人材之道。在乎學校育養之不可無素也明矣。
金公號佔畢齋。文章道德。爲一代搢紳領首。朝廷有事。問焉。學者有疑。質焉。所謂民有父母。國有蓍龜者也。余師事有年。公亦含容禮待。例視門士。故辱知滋深。
郭侯勤身薄俸。莅事淸修。爲政寬簡。吏畏其威。民懷其惠。卒于官。歸葬之日。巷哭聲相接。
士民相議。歲歲忌還之夕。聚米設齋。以祈冥福。余始入府境。問府中名宦。夫婦皆云郭侯一人而已。二公之德大矣哉。夫全羅爲道。歷幾監司。潭陽置邑。歷幾守令。而鄕校寶上之設也始於今日。則孔子所謂人存政擧。可知也。嗚呼。不置寶上。養育有缺之前。
尙有二李田康之屬生茲學校。
修業立朝。垂名後代。況自二公置寶以後。養育加初。則必有賢等數子者彬彬輩出。蔚爲名臣者有之矣。余何幸身親見之。弘治四年龍集辛亥二月有日。過客宜春後學進士南孝溫。謹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