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 그래서 무수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곳. 장례식장이라는 장소가 나에게 주는 이미지다. 작가에게도 그러지 않았을까. 3일이라는 시간동안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아버지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만남. 마치 압축된 파일이 열리듯이 펼쳐지는 그들의 이야기.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서 내는 생생한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작가는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지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TV(MBC, 뭐라도 남기리, 김남길, 이상윤)에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요?’라는 누리꾼의 질문에 정지아 작가는 “제 소설책에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게 어른들의 언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작가가 한 말이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날 작가가 언급했던 책이 바로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정말로 이 책에는 "오죽하면 그러겠냐"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왠지 나에게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긍정하라"라는 말로 들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44p)"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언론 인터뷰 하면서 말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날, (중략) 나는(아버지) 사회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았다. 사람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시절에는 그 대안이 사회주의였을 뿐이다."라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그 말들 때문일까? 책 속에 조각 조각 묘사된 아버지의 삶들이 모여 아주 보기 좋은 그림을 보는듯 느껴진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신영복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담론'에서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작가는 아버지의 조각난 삶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이 책을 통해서 한 게 아닐까. 그래서 아버지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나도 작가처럼 사실의 조각들을 모아 아버지의 진실을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