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육(沈錥,1685~1753) [진1705] 본관 청송(靑松). 字화보(和甫) 號 저촌(樗村) 저헌(樗軒).
조부는 응교(應敎) 심유(沈濡)이고, 부친은 영의정(領議政) 심수현(沈壽賢)이다. 모친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만겸(李萬謙)의 딸이다.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으로서 강화학파(江華學派)의 중심 인물이다.
영조17 1741 신유 7월, 형조 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다. ○ 閔鈺, 尹淳을 곡하다.
영조18 1742 임술 3월, 宋寅明의 주달로 別諭가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
영조20 1744 갑자 2월, 호조 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다. ○ 朴弼周, 魚有鳳과 함께 食物을 하사받다.
○ 3월, 성균관 좨주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다.
○ 이해에 報恩, 知禮, 月城, 達成, 義城, 靑松, 鎭川 등을 유람하고 오다.
영조21 1745 을축 3월, 安陰에 다녀오다. ○ 6월, 좨주에 제수되었으나 사직하다.
> 한국문집총간 > 저촌유고 > 樗村先生遺稿卷之八 > 詩 > 최종정보 >번역 김진곤
辛酉秋。過歸晩。其間不過三歲。而村人亦有存歿之感。追憶戊子己丑之間。<하략>
신유년(1741년) 가을 돌아갈 시기가 늦어졌다. 그 기간은 3년에 불과했지만, 촌사람들 역시 죽은 이를 생각하였다. <하략>
過牛頭𡽹。路遇三僧。其前行者乍見。亦可知其非凡緇。駐馬叩之。其名貫澄。住着智異山▣▣菴。葢淨慧之高足也。頗有風骨。在其徒。必有名稱者。要與還店舍與語。渠不肯。所與同行者。其一眉眼甚爽。年纔二十餘。其師亦稱之。第似淸弱。不能遠到矣。
우두령을 지나면서 길에서 3명의 승려와 만났는데 그 앞에 가는 사람을 보니 범상치 않은 스님임을 알 수 있었다. 말을 세워 물어보니 그 이름은 관징(貫澄)이며 지리산 ▣▣암에 가고 있는데 정혜의 고제자 였다.
그 무리들이 자뭇 풍채가 있어 반드시 이름 있는 이가 있을 것이기에, 가게에 둘러앉아 말을 나누고자 요청 하였지만, 우두머리가 옳다고 하지 않아 동행자와 함께 했다. 그는 미안(眉眼)이 시원하였는데 나이는 겨우 20여세 였지만 그 스승 역시 칭찬 하였다. 청약(淸弱)한 듯 하여 원대한 포부에 이르기에는 불가능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