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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 무성전의 삼인 1 검은빛 철문. 철문의 재질은 백 번 정련한 강철로 이루어져 있기에 보검으로 내리친다 해도 흠집 하나 나 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누각의 철문(鐵門)을 외부에서 열려면 만 근의 폭약을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폭약을 쓸 경우 문을 열 수도 있겠으나, 반경 십 장 이내가 불바다로 변할 것이다. 철문의 내부에는 화약이 내장돼 있었다. 안에서 열기 전에는 밖에서 열 방법은 없는 것이다. "화타 할아버지께서 와병 중이신지라 문이 꽉 잠겨 있는 것이지요!" 항마령주가 요염히 웃으며 안에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 휘익-!" 파랑새가 우는 소리같이 맑은 휘파람 소리가 시작되자, 안쪽에서 늙수그레한 말소리가 전해 졌다. "난음(蘭音)이냐?" "예." 항마령주가 얼른 휘파람 소리를 끊었다. 그리고 상관안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때 상관안은 아주 기이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항마령주가 그의 표정을 보고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어… 어인 일이십니까?" 상관안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낭… 자의 방명이 난음이오? " "그렇습니다. 저는 이난음(李蘭音)이라 합니다. 이난공이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이난음이 본 명입니다." "이… 이럴 수가……?" 상관안의 얼굴이 자주빛으로 물들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상관안은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고 한참 있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이난음의 얼굴을 자세 히 살폈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얼굴 윤곽이 상관안이 아는 한 사람의 얼굴과 흡사했다. '이 대숙의 얼굴과 비슷하다. 그… 그렇다면 이 여인이 바로 이 대숙의 딸 이난음 소저이구 나.' 상관안의 눈알이 토끼 눈같이 빨개졌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려냈다. 이난음이 그가 우는데 놀라 멍한 표정이 될 때, 삼층 누각 전체가 뒤흔들리며 철문이 안쪽 으로 활짝 열렸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계피학발(鷄皮鶴髮)의 황포노인(黃包老人) 하나가 있었다. "난… 나음아, 그 젊은이는 누구냐?" 허리를 구부정해 하고 이난음을 향해 묻는 사람은 상관안이 한 번 본 바 있는 천하제일의 무림화타였다. 그는 지난번에 비할 수 없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 사이 어려운 고비가 많이 있어 진기가 다 했고, 그 덕에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할… 할아버지! 이분은 당금 천하의 젊은 고수 중 가장 강하다는 옥면혈마입니다. 할아버지 를 뵙고자 여기 왔습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무성곡은 오늘로 강호에서 사라졌을 것입니 다." 이난음이 교태를 부리며 말하자. "자… 자네는?" 무림화타가 진물 투성이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하… 저올시다. 운학령 위에서……." 상관안이 얼른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아, 이제 보니 대막쌍마군 손에서 노부를 구해 준 바 있는 협사이군. 자네가 바로 옥면혈마 라는 신성(新星)이었군." 무림화타는 그제서야 상관안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운학령 위에서는 어둠에 가려 상관안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 않는가? 상관안의 본모습이 이렇게 뛰어나다는 것은 무림화타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닮았군.' 무림화타가 상관안의 용모에 저으기 감탄했으며, 그가 알고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닮았다는 데 의아심을 느꼈다. "할아버지께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상관안이 무릎을 꿇고 앉아 품안에서 수건으로 싼 물건 하나를 꺼냈다. 순간, 지극히 강한 향내가 근처를 싸고 돌았다. "아… 아니?" 무림화타의 주름진 얼굴에 격동의 빛이 흐르는 가운데, 그의 얼굴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 다. 냄새를 맡고 수건으로 싼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음에 틀림없는 일이었다. "이… 이것은 화리 내단의 냄새인데……." 무림화타가 말을 더듬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검주 만장호에 가서 가져왔습니다. 할아버지께 드리기 위해 갖고 온 것이 니, 사양치 말아 주십시오." 상관안이 화리 내단을 두 손으로 쥐어 무림화타 쪽으로 받들어 올렸다. "이… 이럴 수가? 하… 하늘이 우리들을 버리지 않았단 말인가? 세 분의 생명이 경각에 달 했는데, 지… 지금 노부의 눈앞에 화리 내단이 나타나다니……." 무림화타는 격동되어 두서없이 떠들어대다가 상관안의 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자… 자네는 무림의 은인이네. 자… 자네가 무성곡에 와 이것을 전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 다면, 그… 그렇게 오랜 세월을 수심 속에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네." 무림화타의 얼굴이 눈물에 젖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난음도 상관안이 꺼내 든 물건이 만년화리의 내단이라는 것을 아는 순 간부터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자… 자네 덕에 세 사람이 살 것이네. 그… 그리고 무림의 백도가 다시 일어날 것이네." 무림화타가 울며 말하다가 상관안을 향해 절을 하려 했다. 순간. "아니 됩니다, 할아버지!" 상관안이 무형경력을 일으켜 무림화타의 몸을 떠받들며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과거 할아버지 덕에 살았습니다. 지금 이것을 드리는 것은 그날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것도 됩니다." "내… 내 덕에 살다니?" "저를 모르시기에 제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인지 아신다면, 칭찬을 하실 뿐 감사하 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 누구이기에 그리 말하는가?" 무림화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할아버지께 사촌누이가 되시는 백화곡주(百花谷主)의 전인(傳人), 백화선자의 아들입니다!" 상관안이 찬 돌바닥에 두 무릎을 댔다. "백… 백화선자의 아들이라고?" 무림화타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확대되었다. "예." 상관안이 고개를 떨군 채 공손히 대답했다. "그… 그러면 네… 네가 안아(雁兒)란 말이냐?" 무림화타는 아주 쉽게 상관안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예, 저는 상관안입니다." 상관안이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무림화타가 지팡이를 내던지며 상관안을 끌 어안았다. "이… 이렇게 기쁠 수가… 강… 강호를 들썩이고 있는 옥면혈마가 바로… 바로 안아, 네녀 석이었다니……." "할아버지!" 두 사람은 목놓아 울었다. 운다고 비웃을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안 오빠이셨구나……." 항마령주, 그녀는 바로 천지죽림의 병약한 소녀 이난음이었다. 무림화타의 의술이 그녀를 건강한 신체로 만들었으며, 오늘의 항마령주로 만든 것이다. 이난음은 천지죽림의 일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한참 울었는지 얼굴이 눈물로 덮이고 눈 주위가 시뻘겋게 물들었을 때, 무림화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가자. 네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가자." "아… 아버지 계신 곳으로요?" 상관안의 입을 딱 벌어졌다. "네… 네 아버지도 여기 있다. 아주 오래되었다. 네가 일곱 살 되던 해부터 여기 살고 있 다." "그… 그럴 수가……?" 상관안의 얼굴이 다시 백지같이 희어졌다. "네 아버지는… 살아 있기는 하나,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다. 하나, 만년화리의 내단 이 있으니 살 수 있다. 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중원무성도 살 것이고, 천지대협도 살 것이 다." "이… 이 대숙도?" "그렇다. 그는 천지죽림이 불탈 때 악착같이 살아나 노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쓰 러져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천한 계집 단방(檀芳)에 의해 쓰러진 네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듯!" "단… 단방이라고요?" 상관안이 다시 크게 놀랐다. "네 아버지를 해한 장본인이 단방이다. 그 계집은… 네 어미 백화선자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네가 병약한 소년시절을 보낸 이유도 그 계집 때문이고!" "단… 단방은 죽지 않았습니까?" "죽은 것으로 소문났으나 죽지 않았다.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다. 천녀제보다도 악착스러운 계집이다." 무림화타가 치를 떨다가 몸을 돌려 계단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상관안이 급히 그 뒤를 따랐고, 이난음은 차(茶)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 있는 곳으로 달려갔 다. 누각 이층. <무성전(武聖殿)> 문이 꽉 닫혀진 석실 하나가 있고… 그 위, 이런 세 자 글씨가 금강지로 의해 파여져 있었 다. 문 근처에 이르자 향내가 코를 찔렀다. 무림화타가 그 앞에 이르자 상관안을 둘러봤다. "약재(藥材)는 거의 다 마련되어 있다. 만년화리의 내단을 섞어 기사회생의 영약을 만드는 데는 단 하루가 걸린다." "아……!" "자, 네 아버지가 저 안에 있으니 어서 들어가자." 무림화타는 상관안의 팔을 붙잡고 무성전의 문을 밀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 세 개의 돌침상이 일 장 거리를 두고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위, 세 사람이 누워 있는데 모두 눈을 감은 채였다. 그중 가운데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피골이 상접한 백발노인이었고, 좌측에 누워 있는 사 람은 청수한 인상의 문사였다. 오른쪽 침상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은 상관안의 얼굴과 비슷했다. 지극히 말라 보기 애처로울 정도인데, 그 모습은 상관안이 꿈에도 잊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 이었다. "이… 아버지!" 상관안이 소리치며 침상 가로 달려갔으나, 천룡신협 상관위는 몸을 일으켜 아들을 반기지 못했다. "아… 아버님!" 상관안은 아버지의 몸을 붙잡고 흐느꼈다. 단장협의 말에 그 동안의 상심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만이 아는 일이다. "네 아버지는 단방에게 당했다. 그 일은 실로 원통한 일이었다. 네 아버지가 단방 따위에게 당해 쓰러졌다는 것조차 믿어지지 않는다." 무림화타는 천룡신협 상관위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아직도 분노하고 있었다. 상관위는 무림화타의 양자나 다름없다. 중원무성의 뒤를 이어 천하의 주인이 될 상관위가 병자로 누워 있던 십수 년의 세월은 그에게 상심의 나날이었다. 무림화타의 주름진 손이 상관안의 어깨에 얹혀졌다. "네가 태어나던 해, 네 아버지는 네 어머니의 원수 단방을 쫓아가 천룡대승진기를 발휘했었 다. 단방은 네 아버지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었지. 네 아버지는 그때 단방이 죽었다 믿고 너를 안고 은거에 들어갔었다." "흐흑……!" "칠 년 후, 네 아버지는 단방이 보낸 배첩을 받게 되었다. 단방이 살았다는 것을 안 것도 그 때였다. 네 아버지는 단방을 잡아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났고… 떠나기 전, 너를 이옥룡에게 맡겼던 것이다." "아……!" "한데, 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노부는 그냥 있을 수 없 어 네아버지와 단방이 싸우기로 약속한 장소로 가 보았다. 그곳에서 네 아버지를 발견했지. 다 죽게 되어 절벽 아래 쓰러져 있더구나. 그리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네가 천지죽림 안에 있을 때 네게 말하지 않은 까닭은, 네가 너무 슬퍼할까 걱정해서였다. 이옥룡은 다 알고 있 었지." "아……!" 상관안은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여기 계셨었군.' 상관안은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도 형편없이 되었다는 데에서 눈물을 금하지 못했다. 단방이라는 여인에게 당했다니……. '검주 땅에서 나를 암습한 여인이 단방이 아니었을까? 그러기 쉬운 일이다. 그녀가 천녀교 의 고수라 여기었는데… 단방이었을 것이다.' 상관안은 단방이란 여인에 대해 원한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안 후 단방을 가장 큰 원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원수, 아버지의 손에 쓰러진 줄 알았던 어머니의 원수가 아직 살아 있을 줄이 야……. 그러고 있을 때였다. 무성전의 문이 다시 한 차례 열리며 청아한 차향이 풍겨 왔다. 이난음이 차를 끓여 쟁반에 얹어 들고 오는 것이었다. 무림화타는 그것을 보고 매우 흡족해 하며. "너희 둘은 정혼(定婚)한 사이다. 그러니… 이후 잘 사귀어야 한다. 안아! 네가 딴 데 눈길을 돌린다면 이옥룡에게 혼이 날 것이다." "예!" 상관안이 크게 대답하자, 무림화타가 껄껄 웃으며 무성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림화타가 사라지자 이난음이 뺨을 홍조로 물들인 채 상관안 곁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향긋한 난초향이 느껴진다. 상관안은 구유망혼장에 당한 그녀를 치료하는 와중에 그녀의 진면목을 본 바 있다. 그때는 시들어 가는 꽃이었으나, 지금은 방향을 물씬 풍겨 내는 살아 있는 꽃이다. 화공이 세필로 정성껏 그린 것보다 아름다운 아미, 흑진주보다 검은 눈, 오똑하게 솟아오른 콧날, 그 아래 짙붉은 입술……. 너무도 완벽한 미의 조화. 상관안은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짐짓 허공을 쳐다봤다. "안 오빠에 대한 것은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말로 들을 때는 좀 과장된다 여겼는데, 사실 과장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하… 난음이는 나를 처음 본 셈이군." "예!" "하하하… 나는 난음이를 잘 알고 있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능운 형도 좋아할 것이야." "능… 능운 형이라니요? 설… 설마… 과거 천지죽림 안에서 무공을 연마했다는 북천검사의 아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하… 그 이름을 아는군." "그… 그분이 살아 계십니까?" "물론이지. 그가 바로 한세랑객의 화신이야!" 상관안이 찻잔을 들고 오자, 이난음이 기쁜 표정이 되어 어깨를 가볍게 떨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혈해광마(血海狂魔)의 독장(毒掌)에 당해 일곱 살을 넘기지 못 하고 죽을 운세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알고 있지." "저는… 천지죽림이 미혼관음의 부하들에 의해 불탈 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 여기로 오게 되었습니다. 중원무성과 무림화타 할아버지께서 제 몸 안에 공력을 넣어 주시지 않았다면 오래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천녀제가 중원무성 사부님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저 때문입니다. 사부님이 저의 생사현관(生死玄關)을 타통케 하느라 진기를 많이 잃으셨기에 천 녀제에게 그리 쉽게 당 했던 것이지요." 그것도 신빙성 있는 말이었다. 중원무성이 이난음에게 절기를 가르치느라 공을 들이지 않은 채 천녀제와 맞섰다면, 거의 평수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난음을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난음이 죽다 살아나 젊음을 협행에 바치는 이 유도 그 때문이었다. 사부가 하던 일을 이어 하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항마구검은 봉문한 구대분파에서 비밀리에 키운 고수 한 명씩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랬구려." "그 우두머리는… 소림의 나한수재(羅漢秀才)입니다, 그리고 무당의 풍뢰신검(風雷神劍) 복 진(福眞), 화산의 철매화(鐵梅花) 안소홍(安少紅), 아미(峨嵋)의 일법승(一法僧), 공동( ) 운 학자(雲鶴子), 점창의 점창일수(點蒼一秀) 구성(具成), 청성(靑成)의 복마서생(伏魔書生) 당소 옥(唐小玉), 그리고 전진의 옥기린, 마지막이 태백파(太白派)의 천궁신검(天窮神劍) 장천한 (張天漢)입니다 . 강호가 평화로워지는 날, 구대문파의 장문인(掌門人)이 될 사람들이지요." "하하… 그들이 그리 지고한 신분인지 몰랐소. 그들과 불미한 일이 있었으니, 어서 그들과 화해해야겠소! 하하하……!" 상관안이 쾌활히 웃는 모습은 열 살 이후 처음이었다. 마음이 고향에 온 기분이기 때문이리라. 곁에 이난음이 있고, 또 아버지가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2 그날 오경(五更), 상관안은 무림화타가 단약 만드는 것을 구경하다가 이난음을 은밀히 불러 내 말을 건넸다. "한 세 시진 가량 나갔다 와야겠소." "어… 어딜 가시는데요?" "악양에 다녀와야겠소!" "예… 에? 악… 악양까지 세 시진에 갔다 오신다고요?" "하하… 내게 신기한 경신술이 있소. 그 정도면 능히 다녀올 수 있소." "어… 어인 일로?" "능운 형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소. 그래서 소식을 전하려 하려는 것이오." "그럼 조심해 다녀오십시오." 이난음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음이를 부른 이유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있어 이곳을 지킬 방도를 주고 떠나려 함 이오." "천녀교 무리들이 다시 올까 그러시는군요?" "그렇소." "하긴 그들이 오고, 가가(哥哥)께서 아니 계신다면 공든 탑이 다 무너질 것입니다. 방도가 있으면 일러주십시오." "내게 세 가지 방도가 있소. 그 하나는 난음이에게 천뢰지곡(天賴之曲)을 전수하는 것이고, 둘째는 항마구검수들 중 신체가 성한 네 사람을 골라 사상무적검진(四象無敵劍陣)을 전수하 는 것이오. 마지막 하나는 무성곡 어귀에 기문진 하나를 펼쳐 만일 천녀교 무리가 오더라도 한두 시진 동안 발이 묶이게 하는 것이오." 모두 귀신 같은 책략이었다. 상관안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일만의 무사가 쳐들어온다 해도 무성곡은 하루 정도 안전 할 수 있다. 상관안은 제일 먼저 이난음에게 천뢰혈적을 전했다. 천뢰혈적의 주인이 상관안에게서 이난음으로 변하는 순간이고, 벽력천마의 절기가 제 주인 을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난음은 항마대천시공을 익히기에는 자질이 부족했다. 항마대천신공은 상관안 같은 기재가 익힐 수 있는 것이지, 이난음이 익힐 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이난음은 상관안이 갖가지 신기한 수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라 그가 전수하는 음공 (音功)을 조금도 경시하지 않았다. 상관안은 천뢰지곡을 전수하고 한 번 시험한 후 밖으로 나와 항마구검사 중 네 사람을 불렀 다. 그들과 상관안 사이는 이미 친구 사이로 변해 있었다. 상관안이 천룡신협 상관위의 아들이라는 것이 항마구검사를 친구로 만들게 한 것이다. 천룡신협 상관위, 그가 이십여 년 전 이룩한 협행은 아직도 젊은 협사들의 귀감이 되고 있 다. 항마구검사 중 몸이 성한 사람은 넷뿐이다. 소림의 나한수재(羅漢秀才), 공동( ) 운학자(雲鶴子), 점창의 점창일수(點蒼一秀) 구성(具成), 청성(靑成)의 복마서생(伏魔書生) 당소옥(唐小玉). 이미 일급무사의 경지를 넘어선 무림의 신성들이다. 이들의 의협심은 상관안이 따라올 수 없다. 상관안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생이 전하려 하는 것은 한 가지 검진이외다. 그것은 사상무적검진(四相無敵劍陣)이라 하 는 것으로, 소생이 만든 것이오." "아……!" 네 사람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하나, 거기 쓰이는 검초는 상고기인의 절학이외다." 상관안은 어떤 검식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한 가지 오묘한 검법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가 전수하는 것은 바로 천살검식(天殺劍式)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악랄한 검식이라고 불리우는 천살검식의 위력은 구대문파 절기의 광명정대함 을 갖고 있지 못한 대신, 지극히 독랄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마도 무리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더없이 적당한 수법이었고, 항마구검사들이 경악할 만한 위 력을 갖고 있었다. 상관안은 네 사람에게 검진의 요령을 일러준 이후, 안심하고 무성곡 밖으로 나섰다. "이쯤이면……." 상관안은 좁다 할 수 있는 곡도의 중간에 이르러 세 번째 호법 수단을 만들었다. 절대금진(絶代禁陣). 십일 년 전, 상관안은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때 상관안이 절대금진을 펼칠 수 있었다면, 마후상인에게 잡혀 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금진이 완벽하게 펼쳐진다면 백만 대군이라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절대금진을 펼치는 데는 십 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상관안이 설치하려는 진식은 절대금진의 요결을 따온 것이다. "오분(五分) 위력의 절대금진(絶代禁陣)이라면, 절세고수 백 명을 두 시진 간 잡아 놓을 수 있다." 상관안은 돌무더기 이십여 개를 세워 기문진 하나를 형성한 후에야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 다. 보라! 곡구가 어느 틈에 신령스런 안개로 뒤덮여 있는 것을. 진세로 일어난 환무(幻霧)! 그것을 뚫어 보기 위해서는 상관안 정도의 공력이 필요하다. 우르르릉-! 은은한 뇌성마저 들려 온다. 상관안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만들었다. '이제 마음놓고 악양에 다녀올 수 있겠군.' 상관안은 악양 땅에서 자신이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그 리며 위로 날아올랐다. 상관안의 신법은 가히 천하제일이었다. 그는 곧 모습을 감췄고, 마치 그가 사라져 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괴고수들이 무성 곡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다가서는 자들, 그들의 수는 이백 정도.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우두머리는 요염한 용모의 소녀였다. 그들은 상관안이 사라지기 무섭게 무성곡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마 미혼관음을 따라왔다가 패퇴한 무리들이 천녀교의 분타 한 곳에 소굴을 정하고 도움을 줄 만한 고수들을 모시고 다시 왔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새벽이 되어 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