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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모녀 상봉 순천진인은 땅으로 내려서자마자 오른손의 장검을 떨쳐내어 힘차게 흑백사의 등을 내리치면서 왼손의 불진으로 상대방의 손목을 쓸어 돌렸다. 흑백사는 조금 전 잔금섭혼신편으로 쟁취했던 위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도리어 상대방에게 기선을 빼앗겨 열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때 별안간 앙칼진 고함소리와 함께 야무진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순간, 흑백사의 왼손에 들려 있던 장검이 순천진인의 장검에 맞아 은빛을 번쩍이며 삼사 장 밖으로 날아갔다. 굽힐 줄 모르는 흑백사는 왼손의 장검이 멀리 날아갔지만 투지는 여전히 충천했다. 그녀는 팽이처럼 몸을 돌려 한쪽으로 옮겨가면서 상대방의 쓸어 돌리는 불진과 내리치는 장검을 피하였다. 그와 동시에 흑백사는 갑자기 진기를 끌어올려 공중으로 몸을 솟구치면서 오른손의 잔금섭혼신편으로 순천진인의 머리를 내리쳤다. “흐흐흐흐… …” 순천진인은 음산하게 웃으면서 오른손의 장검으로 상대방 채찍을 쳐올렸다. 다음 순간-- 싹! 가벼운 음향이 일며 순천진인의 장검이 채찍에 의하여 두 동강나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이때, 순천진인의 왼손의 불진이 번개처럼 흑백사의 팔을 휘감아 버렸다. 그가 힘껏 잡아당기기만 하면 흑백사의 팔은 즉시 끊어져 버릴 판국이었다. “앗!” 흑백사는 놀라 외치며 왼손에 공력을 끌어 모아 신속히 뻗쳐내었다. 순천진인은 날벼락 같은 호통을 쳤다. “손을 놓아라!” 그와 동시에 왼손의 불진을 홱 뿌리치자 흑백사는 팔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 녀의 손에 들려 있던 잔금섭혼신편이 쏜살같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순천진인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번개같이 몸을 솟구쳐 맹렬히 공중의 잔금섭혼신편을 움켜쥐려 했다. 오만하고 굽힐 줄 모르는 흑백사는 앙칼지게 고함치면서 역시 상대방과 거의 같은 순간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왼손으로 잇달아 삼장을 가했다. 그러나 순천진인은 갑자기 몸뚱이를 쭉 뻗어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오른손으로 한 줄기 예리한 경풍을 쏟아내었다. 공중에서 겨룰 때는 시간적으로 털끝만한 차이가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흑백사가 손을 떨쳐냈을 때 순천진인 역시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일장을 가하자 그녀의 몸뚱이는 완전히 순천진인의 장세 아래 놓이게 되었다. 급속히 내리 뻗치는 장력이 곧 흑백사의 가슴팍 급소에 격중되려는 순간-- 느닷없이 한 줄기 은빛 무지개가 번갯불처럼 공중으로 뻗쳐올랐다. 은빛 무지개는 땅으로부터 치솟아 오른 것으로써 곧장 순천진인의 허리를 향해 쏘아갔다. 순천진인은 이 신속한 검초를 목도하자 소스라쳐 놀랐다. 한 줄기 은빛 무지개는 마치 천하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어검술(御劍術) 같았기 때문이다. 순천진인은 별안간 머리를 치켜들고 몸을 활처럼 굽혔다가 다시 펴면서 공중으로 석 자 솟아올랐다. 그의 동작은 상당히 빨랐다. 그는 그때 싸늘한 검풍이 정면을 향해 곧장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잔금섭혼신편은 이미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내에 있던 강호 무림의 고수들은 저마다 큰 소리로 외치면서 채찍을 향해 급히 몸을 날렸다. 이때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던 은빛 무지개는 별안간 수만 점의 싸늘한 별빛을 튕기며 급속히 아래로 퍼져 내렸다. 그리고 그 검막(劍幕) 속에서 광풍과 같은 경기가 휘몰아쳐 내려왔다. 고함소리와 호통소리 속에서 검광이 갑자기 사라지자 장내에는 어느새 조금 전까지도 뻣뻣한 시체처럼 누워 있던 비류신이 산악처럼 우뚝 서 있는 게 아닌가. 장내의 군호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일시에 얼빠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었다. 지옥혈녀 흑백사는 우뚝 서 있는 비류신을 보자 놀람과 기쁨이 극도에 달하여 급히 소리쳤다. “비… 비류신,다… 당신이 살아났군요.… …” 비류신은 갑자기 왼손을 뻗치면서 말했다. “낭자, 피하시오!” 그는 몸을 옆으로 틀어 급히 달려갔다. 다음 순간 비명소리가 나면서 흑도삼괴의 살독수 강파문이 한쪽으로 나가떨어졌다. 알고 보니 강파문은 신속히 몸을 날려 땅에 떨어져 있는 잔금섭혼신편을 움켜쥐려하다가 비류신의 장력에 격중되었던 것이다. 비류신의 일장은 소리도 없고 기묘하기 이를 데 없어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무림에 명성을 떨치던 살독수 강파문도 일격에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비류신은 일장에 살독수 강파문을 격살시킨 후 오만하게 입을 떼었다. “누구든지 살기 싫은 자가 있다면 잔금섭혼신편에 손을 대보시오!” 이때 남의소녀의 앙칼진 음성이 들렸다. “둘째 사형, 어서 저 자를 처치해 버리세요.” 다음 순간 백발노인이 돌연 크게 소리치면서 질풍같이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수중의 철장을 떨쳐내어 광풍호소(珖風呼嘯)의 초식을 발휘, 비류신의 허리를 쓸어 돌렸다. 그 일격의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옆에 있던 흑백사가 놀라 외쳤다. 그러나 비류신은 냉소를 치면서 괴이한 신법을 발휘, 옆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수중의 번쩍이는 장검으로 번개처럼 백발노인의 팔을 내리쳤다. 이 일련의 동작은 실로 전광석화와 같이 빨라 거의 동시에 취해진 것 같았다. 이때 백발노인은 철장을 채 거두어들이지 못했으므로 도저히 반격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옆으로 한 걸음 옮겨 피했다. 비류신은 일격이 빗나가자 즉시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덮쳐가 연달아 삼 초를 공격했다. 그러자 싸늘한 검광이 번갯불처럼 뻗치는 가운데 백발노인은 두 걸음 물러났다. 백발노인은 노한 음성으로 호통을 치듯이 말했다. “너는 죽음을 자청하는 구나!” 그는 철장을 춤추듯 휘두르다가 질풍같이 옆으로 후려 돌렸다. 비류신은 재빨리 뒤로 몸을 젖히면서 여섯 자 가량 뛰어 물러났다. 이때 지옥혈녀 흑백사가 돌연 몸을 날려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잔금섭혼신편을 움켜쥐었다. 이 광경을 본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잽싸게 흑백사를 향해 덮쳐가더니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맹렬히 낚아채 갔다. 순간, 노기어린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터졌다. “피하라!” 이어 청색혈마가 귀신처럼 민첩하게 앞으로 덮쳐가며 왼손을 떨쳐 내었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그녀의 공력이 심후하여 일거수일투족에 모두 극히 무서운 살수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황급히 몸을 날려 물러났다. 그러나 다른 쪽에 있던 신독괴살수는 이미 아무 소리도 없이 흑백사의 뒤로 다가가 오른손을 잽싸게 뻗쳐 그녀의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흑백사는 전신의 경력이 빠져 수중의 채찍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얏!” 적귀노파 청백구가 사납게 소리치며 귀두철괴를 신속히 쓸어 돌렸다. 신독괴살수는 원래 흑백사를 해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채찍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 잽싸게 왼손을 뻗쳐 채찍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뒤쪽에서 적귀노파의 쇠지팡이가 경풍을 일으키며 뻗쳐오자 하는 수 없이 잔금섭혼신편이 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오른발을 높이 차올리며 호통을 쳤다. “도사, 받으시오!” 순간 싸늘한 금빛이 번쩍이면서 채찍이 익공관주 순천진인을 향해 날아갔다. 순천진인은 그 채찍을 잡으려고 번개같이 오른손을 뻗쳐내었다. 그러나 청색혈마의 섬섬옥수가 순천진인의 손보다 앞서 뻗쳐갔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다급한 나머지 뻗쳐낸 오른손을 다시 힘차게 떨쳐 한 줄기 강맹한 장풍으로 잔금섭혼신편을 날려 보냈다. 툭!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잔금섭혼신편은 공교롭게 흑룡강 삼녀의 앞으로 떨어졌다. 남의소녀는 가볍게 몸을 굽혀 땅에 떨어진 채찍을 집어 들고 간드러지게 웃었다. “호호호… 당신들은 무엇을 가지고 다투시오? 어째서 이 채찍을 내게 보냈지요?” 장내에서 치열한 격투를 벌이고 있던 사람들은 이때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백발노인이 신속하게 흑룡강 삼녀 앞으로 뛰어가더니 철장을 빗겨들고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섰다. 세 여인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군호들도 그들 네 사람을 향해 다가가서 빙 둘러쌌다. 비류신은 돌연 수중의 장검을 흑백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흑 낭자, 이 검을 돌려드리겠소.” 원래 조금 전 비류신이 깨어났을 때 순천진인이 날려버린 흑백사의 칼이 공교롭게 그의 옆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던 것이다. 지옥혈녀 흑백사는 장검을 받아들고 비류신을 바라보며 생긋이 웃었다. “아까 당신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돌연 애상에 젖어 처량한 한숨을 내쉬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비류신은 몹시 이상하여 물었다. “낭자, 왜 그러시오?” “비 공자… …” 흑백사는 갑자기 슬피 부르짖으며 날씬한 몸을 비류신의 품속으로 던졌다. 비류신은 옆으로 몸을 틀면서 두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낭자! 낭자는… …” 청색혈마가 쓸쓸히 탄식하며 말했다. “비류신, 그녀를 힘껏 안아 주세요!”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약간 안색이 변하며 놀라 물었다. “뭐라고요? 당신은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흑낭자는 오래지 않아 죽게 될 거요!” 청색혈마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비류신은 놀라서 다그쳐 묻자, 청색혈마는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녀는 당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당신의 목숨과 바꾸기로 남의소녀에게 맹세하였소.” 비류신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당신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좀 더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없겠소?” 지옥혈녀 흑백사는 이때 비류신이 고의로 모르는 척 한다고 오해하고 슬픔을 참지 못하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적귀노파 청백구가 비류신을 향해 사납게 호통을 쳤다. “너는 무정한 사내로구나. 그녀는 너를 위해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희생하려 했는데 너는 그토록… …”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옥혈녀 흑백사가 울부짖었다. “청 선배님, 그를 나무라지 마세요. 그것은 제가 스스로 원한 일이니까요.” 청색혈마가 입을 열었다. “비류신, 당신은 중상을 입고 음독이 전신에 퍼져 기식이 엄엄했었어요. 그래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치료할 수 없었는데, 오직 남의소녀만이 당신의 몸에 중독된 무상지음부골의 음공을 치료할 수 있었어요.그러나 남의소녀는 당신의 목숨을 내걸었지요. 그런데 흑 낭자가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으로 교환하겠다고 자원 했어요.그래서 지금 당신은 다시 살아났지만, 무림 인물이 한번 한 말은 태산같이 무거워 다시 번복할 수 없으니 그녀는… …”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마음에 심한 격동이 일었다. 그는 두 손으로 흑백사의 어깨를 부여 잡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흑 낭자,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했소?” 지옥혈녀 흑백사는 평생 동안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토록 연약한 여인으로 변해 슬프게 울먹였다. “비 공자… …” 그녀는 얼굴을 비류신의 넓은 가슴에 파묻고 나직이 흐느꼈다. 자고로 누구나 죽음을 당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이다. 이것은 비류신이 느꼈던 심정이다. 비류신은 물론 흑백사의 지금 심정이 얼마나 괴롭고 슬플 것인가 알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를 부르는 그녀의 음성에서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류신은 두 손으로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여자들은 모두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 흑백사는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를 거두었다. 그녀는 지금 죽음 직전의 짤막한 순간에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체온과 달콤한 감정을 말이다. 이것은 그녀가 평생 동안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또 이 순간은 그녀의 평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내가 나의 생명을 희생하려 하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이런 행복감을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무수한 미녀들 사이에서 그녀들과 싸우며 애정을 쟁탈하려면… 나에겐 오직 실망과 짝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만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사람은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을 지녀야만 남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아름다움은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애정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물론 지나치게 추한 모습이라면 별 문제겠지만 말이다. 흑백사는 자신의 모습에 항상 열등감을 느껴온 까닭에 지금은 만족한 웃음을 짓고 죽을 수 있었다.그는 비류신에게 더 이상 마음의 부담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행복만으로도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돌연 남의소녀의 냉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 두 사람이 떨어질 수 없다면 차라리 함께 저 세상으로 가시오. 저 세상에선 당신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든 뜻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흑백사는 이 말을 듣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즉시 비류신의 품속에서 벗어났다. 비류신은 무서운 눈초리로 남의소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흑백사는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비 공자, 그녀를 해치지 마세요.… …” 그녀는 신속히 비류신의 곁으로 달려갔다. 비류신은 슬픔에 젖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괴로움을 금치 못하여 쓸쓸히 한숨을 쉬었다. 남의소녀는 비류신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아주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나와 상대할 작정인가요?” 비류신은 차갑게 남의소녀를 쏘아 보았다. “나는 당신을 죽이려 하는데 어찌 상대에 그치겠소.” 그는 번개같이 그녀를 향해 덮쳐 갔다. 이때 백발노인의 목소리가 사납게 들려왔다. “멈춰라!” 그는 들고 있던 철장으로 비류신을 향해 찔러 갔다. 비류신은 몸을 앞으로 날려 피하기 무섭게 영사(靈蛇)같이 교묘히 몸을 꿈틀대며 남의소녀 앞으로 다가갔다. 이런 신법은 실로 무림에서 보기 드문 신법이었다. 절정의 고수인 백발노인까지도 그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백발노인은 일격이 빗나가자 왼손을 번개처럼 떨쳐내며 비류신의 어깨를 움켜쥐려 했다. 이때 옷자락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청색혈마가 유령같이 몸을 날려 다가서면서 손가락으로 잽싸게 백발노인의 곡척혈(曲尺穴)을 찔렀다. 비류신이 급히 덮쳐들자 백살, 백미 두 소녀가 일제히 손을 쳐들어 공격하려 했다. 순간 남의소녀가 손을 뻗쳐 저지했다. “언니, 그가 다가오도록 놔두세요. 그는 절대로 나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예요.” 비류신은 오른손을 치켜들면서 냉랭히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손을 대지 못한다고? 흥, 실로 염치도 모르는 여자로군.” 백살, 백미 두 여인은 암암리에 공력을 모아 경계하고 있었다. 비류신이 손을 뻗치기만 하면 즉시 전력을 다해 출수하여 남의소녀를 구할 계산이었다. 남의소녀는 비류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손을 치켜들고서도 어째서 나를 치지 못하죠?” 이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류신은 그녀의 얼굴에 남사(藍紗)가 가려져 있어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음성을 듣자 요염한 웃음을 띤 얼굴을 보는 듯했다. 더욱이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갈 듯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비류신은 어찌된 일인지 치켜든 손을 내리칠 수 없었다. 남의소녀는 그의 앞에서 한 자 거리로 다가들더니 돌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양심도 없는 우악스런 사내야. 내가 먼저 당신의 따귀부터 때려야겠어요.” 순간 향기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 같더니 찰싹찰싹하고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비류신은 남의소녀에게 양쪽 뺨을 한 대씩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그는 얼떨결에 뒤로 두 걸음 물러나서 치켜든 오른손으로 남의소녀를 내리치려는 순간,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약간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류신은 그녀의 가련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동하였다. ‘이 여인은 나의 상처를 치료해 준 은인이니 마땅히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인데 내가 어찌… …’ 이런 생각이 들자 비류신은 억지로 가슴 속 분노를 누르고 천천히 오른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낭자, 나를 구해 주었으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 합니까?” 남의소녀는 쓸쓸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평생 남에게 손해를 본 적 없어요. 더욱 나는 당신을 구하고 싶지 않았는데, 저 여자가 당신을 치료해 달라고 애걸하기에 할 수 없이 당신의 생명을 그녀의 것과 바꾸기로 한 것이에요.” 비류신은 이 여자에게 그런 괴팍한 성격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었다.그는 처량하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남에게 조금도 도움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오. 정 그렇다면 낭자가 다시 나를 죽여주시오!” 이때 지옥혈녀 흑백사가 돌연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애걸했다. “비 공자, 죽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청색혈마도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몹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적귀노파 청백구가 흑백사를 바라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계집애야, 너는 뭣 때문에 뒈지려고 하느냐?” 흑백사는 슬픔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미 승낙한 이상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류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생사에 관한 일을 어찌 남에게 함부로 승낙한단 말이오?” 흑백사는 그를 바라보며 땅이 꺼질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도 늦었어요. 저는 죽어도 아까울 것 없습니다. 다만 제가 죽은 후 비 공자께서 이 불행한 계집을 영원히 잊지 않으신다면… …”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메어 말을 맺지 못했다. 남의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렸다. “그래야지요! 그는 자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가련한 여자를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그리고 그는 당신을 위해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주고, 해마다 청명(淸明)이 되면 당신의 무덤에 성묘하러 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의 죽음은 가치가 있는 거예요. 자, 시간이 되었으니 당신은 속히 검으로 자결을 하세요!” 흑백사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장검을 치켜들더니 검 끝으로 자기의 목을 힘껏 찌르려 했다. 이 전광석화와도 같은 순간-- “흑아야, 너… 죽어선 안 된다!” 적귀노파 청백구의 날카로운 외침소리와 함께 싸늘한 광채가 흑백사의 피부를 스쳤다. 순간 그녀는 청백구의 심상치 않은 외침소리에 수중의 장검을 약간 늦추었다. 바로 이때 옆에 있던 비류신이 왼손을 뻗쳐 그녀의 완맥을 움켜쥐고 장검을 빼앗았다. 적귀노파 청백구가 다시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흑아야, 죽지 마라. 나는 네가 죽으려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너를 위해 그 약을 찾아냈다.” 그녀의 음성에 무한한 자애와 감상이 충만해 있었다. 흑백사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갑자기 청백구의 앞으로 달려가더니 울먹이는 음성으로, “청 선배님은 저의… 저의 어머님이시지요.… …” 적귀노파 청백구는 안색이 홱 변했다. 그러나 곧 정상을 회복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흑아, 내가 너의 어미다. 그러나 너는 당분간 내게 아무런 이유도 묻지 마라. 너의 부친도 계시다… …” 흑백사는 이때 청백구의 자기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열등감도 약간 감소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처음 자기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청색혈마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안고 두 여인이 슬퍼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어느새 눈물을 흘렸다. 청룡백호는 청색혈마가 애상에 젖어있는 것을 보자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남의소녀는 실로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러한 광경들 보고도 여전히 개의치 않고 냉랭히 웃었다. “흑백사, 당신들 모녀의 대화 시간은 이미 지났어요.”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를 죽이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이어 그는 가슴을 내밀었다. 추호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였다. 남의소녀는 서릿발처럼 냉랭히 대꾸했다. “좋아요! 어차피 당신들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죽어야 하니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수중의 잔금섭혼신편을 서서히 치켜들어 비류신의 가슴팍을 겨누었다. 청색혈마가 돌연 탄식을 했다. “비류신, 그대는 지금 죽을 수 있단 말인가요?” 비류신은 그녀의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하여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 나는 지금 자신의 피맺힌 원한도 갚지 못하고 은사 소대호가 당부하던 일을 한 가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 이때 흑백사가 슬픈 음성으로 말했다. “비 공자, 당신은 죽으면 안 됩니다… …” 그녀는 질풍같이 몸을 날려 비류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이때 남의소녀의 잔금섭혼신편은 이미 흑백사의 가슴을 향해 뻗쳐갔다. 다음 순간 처절한 비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흑백사는 채찍 끝에 가슴의 음도혈(陰都穴)을 찔려 한 줄기 선혈을 뿜으면서 서서히 쓰러졌다. 이 광경을 본 적귀노파 청백구는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그녀의 몸뚱이를 부둥켜 안았다. 비류신은 두 눈에서 불꽃을 뿜어내면서 떨리는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이 야만스런 계집애야, 너는… 악독하기 그지없구나. 나… 너와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 …” 남의소녀는 별안간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수중의 잔금섭혼신편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백살소녀가 재빨리 한 걸음 나서서 가볍게 그녀를 부축하며 물었다. “소저, 왜 그래요?” 남의소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백살 언니, 나… 잘못 찔렀어요!” 이때 장내의 멀지 않은 곳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낭자, 당신은 잘못 찌른 게 아니오. 털끝만큼도 빗나가지 않고 제대로 찔렀소. 소생은 천하에 둘도 없는 낭자의 절묘한 수법에 탄복했소이다!”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홱 변했다. 그는 번개같이 남의소녀 앞으로 몸을 날려 땅바닥의 잔금섭혼신편을 움켜쥐었다. 태양은 점점 기울어 서산마루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때 좌측 수풀 속에서 등에 장검을 멘 중년 문사 한 사람이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지신도 소대천이었다. 남의소녀의 괴이한 거동과 지신도 소대천의 뜻밖의 출현에 대하여 장중의 여러 고수들은 매우 의아하게 여김은 물론 도대체 무슨 수작들인가 하는 의혹을 품었다.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수중의 채찍을 비류신에게 넘겨주었다. “이 채찍은 자네 것이니 빨리 가져가게.” 지신도 소대천이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청룡형, 장중에는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이렇게 많거늘 당신은 내가 잔금섭혼신편을 약탈해 갈까 봐서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청룡형은 여기 계신 고수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구려.” 비류신은 지신도 소대천의 출현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다만 그를 한차례 힐끗 쳐다보고 나서 잔금섭혼신편을 받아쥔 다음 남의소녀를 향해 말하였다. “나는 이 채찍으로 낭자를 죽여 그녀의 원수를 갚고 말겠소.” 소대천이 우렁찬 음성으로 외쳤다. “비소협은 너무 걱정하지 마오. 흑백사는 결코 죽지 않을 거요!” 이때 적귀노파 청백구가 후다닥 놀라서 황망히 입을 열었다. “뭐라고?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소대천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청백구, 우리는 모두 무림의 동도(同道)이거늘 무엇 때문에 당신을 속이겠소?” 비류신은 싸늘한 어조로 소대천에게 다그쳐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거요?” 적귀노파 청백구는 소대천의 말이 떨어지자 곧 고개를 숙여 품속에 안겨있는 흑백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는 백지장처럼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숨결은 금방 끊어질 듯하였지만 청백구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이때 소대천이 비류신의 퉁명스런 물음에 대답하였다. “정 못 믿겠다면 저 낭자에게 물어보면 알 거요.” 남의소녀는 소대천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물었다. “날더러 말을 하라는 거예요?” 소대천은 안색이 돌변하였으나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소. 낭자는 기지가 비범하고 매우 총명하여 나는 크게 탄복하였소. 만약 낭자가 꺼려하지 않는다면 나도 귀 문파와 유대관계를 맺고 싶소.”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음험한 냉소를 터뜨리고 나서 말했다. “흐흐흣… 소대천, 당신의 수단은 갈수록 훌륭하구려. 비록 당신이 흑룡강 일파와 손을 잡는다 해도 강호 무림의 많은 동도들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믿소.” 소대천은 싸늘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관주께서는 내 말을 오해하고 계시는구려.” 청풍명사 청룡백호가 말을 가로챘다. “소형이 이렇게 악랄한 수법으로 친구를 대한다면 언젠가 큰 화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오.” 소대천은 청룡백호를 주시하며 껄껄 웃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청룡형에게 섭섭한 행동을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야속한 말씀을 하시는구려.” 청룡백호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광채가 번뜩였다. “듣기 싫소. 자기 행동에 대하여 자기가 책임져야 하오. 소형은 내가 여러 소리를 않더라도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이때 비류신은 살기등등한 눈초리로 소대천을 노려보며 싸늘한 어조로 외쳤다. “소대천, 나는 언젠가 기필코 당신과 개인적으로 만나 한 가지 중대한 문제를 따질 테요!” 장중의 군중들은 비류신의 한마디에 모두들 크게 놀랐다. 지신도 소대천의 무공이나 명성은 무림칠절과 비교하여 추호도 손색이 없는 터인데 비류신이 정면에서 도전적인 말을 그처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신도 소대천은 여유를 잃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좋아! 비소협의 뜻이 그렇다면 나는 얼마든지 상대해 줄 용의가 있소!” 이때 청색혈마가 쌀쌀한 목소리로 소대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약 비류신에게 추호라도 잘못을 저지른 사실이 있다면 소대천 당신은 절대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할 터인즉 각오를 단단히 해야 될 거요!” 지신도 소대천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청색여협은 너무 지나친 말을 하는구려. 목하 강호 무림의 인물 중에 그를 해치려는 자가 많거늘 당신까지 비소협의 적을 또 한 사람 만들려 드는 거요?” “뭐라고요? 어떤 인물이 그를 해치려 든단 말입니까? 어서 말해 보세요!” “그걸 일일이 내 입으로 설명해야 알겠소? 잔금섭혼신편이 그의 수중에 있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록 당장에 손을 쓰지는 않지만 언젠가 기필코 그에게 화를 미치게 하고 말 거요.” 이때 신독괴살수가 고막을 찢는 듯 우렁찬 웃음을 터뜨려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으하하핫… 소대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요? 이 자리에 모인 군중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오.” 지신도 소대천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제 보니 신독형도 여기 와 계셨구려. 몰라 뵙고 실례가 많았소이다 그려. 그렇습죠, 신독형이라면 얼마든지 손을 써서 그의 수중에 있는 잔금섭혼신편을 빼앗을 수 있겠지요.” 이렇게 비꼬아 말하자 신독괴살수는 더욱 노발대발하여 버럭 언성을 높였다. “소대천! 감히 나를 희롱하려 드는 거요? 좋소!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나는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우리 한바탕 겨뤄 봅시다.” 지신도 소대천은 본래 수양이 깊은 위인인지라 상대방이 그처럼 격분하며 도전해 왔으나 여유를 잃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신독형, 종전에는 그렇지 않으시더니 근래에 와서 왜 그다지 성미가 급하게 변하셨습니까? 사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한 나는 누구와 격투를 벌이고 싶은 흥미가 없소이다.” 남의소녀가 냉소를 머금은 채 참견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지요? 설마 나와 글재주라도 겨룰 목적이었단 말인가요?” “나 같이 미천한 주제에 어찌 감히 낭자와 글재주를 겨룰 수 있겠소? 낭자는 문무를 겸비하여 이 세상 어느 호걸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거늘 어찌 감히 낭자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 있겠소? 다만 나는 낭자에게 한 가지 가르침을 받고자 할 따름이오.”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만약 내가 응낙한다면 자연히 당신을 찾아갈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이만 작별을 고하겠소이다.” 그들이 이렇게 주고받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장중의 군웅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지신도 소대천은 장중의 인물들에게 커다란 의혹을 남긴 채 서서히 걸음을 옮기다 말고 돌연 고개를 돌리니 청풍명사 청룡백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청룡형, 사람이란 뭐니 뭐니 해도 몸이 건강해야 되오. 아무쪼록 청룡형은 자중하시기 바라오.” 이윽고 그는 청룡백호의 대꾸도 듣지 않고 저녁노을을 받으며 어디론지 총총히 떠나가 버렸다. 소대천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자 청풍명사 청룡백호는 땅이 꺼질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비류신에게 말하였다. “비 노제, 내 곁으로 좀 오게. 긴히 할 말이 있네.” 비류신은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무슨 말씀인지 할 말이 있으면 거기서 하시오.” 청룡백호는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비류신 곁으로 걸어가더니 그이 귓전에 입을 대고 잠시 무슨 말인가 열심히 속닥거렸다. 물론 비류신 이외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일순 비류신의 안색이 변하더니 그는 갑자기 쏜살처럼 몸을 치솟아 몇 자 밖으로 날아가서 남의소녀를 노려보았다. “낭자는 정말 흑백사에게 독수를 뻗쳤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도 눈이 있으니 직접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어찌됐든 만약 그녀가 소생하지 못한다면 기어이 낭자를 죽여 복수해주고 말겠소.”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비류신은 곧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남의소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인지 넋두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는 지금 장사를 지내려고 저렇게 서두는 모양이구나.” 이때 비류신이 돌연 획 몸을 돌려 남의소녀 곁으로 다가가서 싸늘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낭자는 사람을 너무 무시하여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마구 험담을 늘어놓는구려. 만약 내각 낭자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 남의소녀는 독사처럼 표독스런 눈초리로 비류신을 노려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그랬지요? 나한테 한 소린가요?” “그렇소! 낭자가 먼저 욕을 했기 때문에 나도 참을 수 없었소.” “뭐라고요? 내가 언제 당신에게 욕을 했단 말에요? 정말 뻔뻔스러운 소리를 하는구려.”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사내대장부로서 한낱 소견 좁은 낭자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소.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또 한 번 낭자를 용서해 주겠소.” 그는 남의소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훌쩍 몸을 날려 소대천이 사라진 쪽을 향해 번개처럼 질주해 갔다. 청색혈마가 약간 몸을 휘청거리며 곧장 비류신의 뒤를 쫓으려 하자 청룡백호가 황망히 외쳤다. “청색여협, 잠시 걸음을 멈추시오. 할 말이 있소.” “무슨 말인지 어서 해 보세요.” “지금 여기서는 남의 이목이 많아 말하기가 적이 곤란하오.” 이때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냉소를 터뜨리고 참견했다. “후후훗… 청룡형, 아마도 남이 들어서는 안 될 중대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구려.” 일순 청색혈마가 번개처럼 신속하게 쌍장을 휘둘러 급습을 가하니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장풍이 방출되었다. 왼쪽 손의 장풍은 익공관주에게 덮쳐 갔고, 오른손은 곁에 있는 청풍명사를 향해 맹렬한 기세로 후려쳐 갔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그녀의 일장이 매우 날카로운 줄 알고 감히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못하고 신속히 몸을 날려 피해냈으나, 청풍명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여 강맹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일장에 맞아 연속 삼보나 후퇴당한 뒤 울컥 선혈을 토해냈다. 청색혈마는 익공관주 순천진인이 미리 피해낸 것을 보자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다시 맹렬한 기세로 순천진인에게 속공을 퍼부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