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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 1:3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우리가 보통 보는 영화관은 평면 화면으로 영화를 봅니다. CGV 용산아이파크몰 4DX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영화 장면과 연동되어 위아래, 좌우, 앞뒤로 직접 움직이는 특수 좌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입체 안경을 쓰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화면 속 인물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바람과 진동이 느껴집니다. 마치 영화 한가운데 들어간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많은 성도들이 ‘천국’을 생각할 때, 죽어서만 가는 저 먼 미래의 일차원적인 장소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단면적이지 않습니다.
신구약성경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시작하셨고(막 1:15), 하나님 나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 겨자씨, 누룩, 보화 등의 비유 역시 대부분 하나님 나라를 설명합니다. 또한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주제를 오직 하나, ‘하나님 나라의 일’로 압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하나님 나라는 그의 신학과 사역,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였습니다. 단 한 구절로 이를 보여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28:31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의 마지막 사역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앞둔 수감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선상에 두고 전파했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 나라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이자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이미(Already)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Not Yet)은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그 통치와 은혜를 지금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끝날까지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늘 저는 천년왕국에 있어서 역사적 전천년설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4차원으로 말씀드립니다. 1차원은 지금 내가 누리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세천국입니다. 2차원은 육체의 죽음 후에 가는 낙원입니다. 3차원은 주님 재림의 날에 펼쳐질 천년왕국이고요. 4차원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1. 현재적 하나님 나라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우리는 먼저 모델하우스를 찾아갑니다. 아직 아파트 전체 단지가 완공된 것은 아니지만,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면 장차 내가 살게 될 집의 구조와 마감재, 내부 인테리어를 미리 보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완공될 영원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거룩한 모델하우스, 즉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과 심령입니다. 비록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왕 되신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심령 속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해 있습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7대 특징입니다.
①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영역입니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드린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드리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없습니다.
②성령 안에서 누립니다. 두 개의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마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14:17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을 힘입어’, ‘성령 안에 있는’ 두 말씀 다 하나님 나라가 성령님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③의입니다. 다시 롬 14:17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기서 말하는 ‘의’는 단순한 도덕적 깨끗함이나 윤리적 바름을 넘어, 하나님 나라를 받치는 가장 근본적인 기둥이자 기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는 도덕적 완성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이자 자격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우리의 의로움”(고전 1:30)이라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바른 관계가 필수적이지만, 죄인인 우리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완전한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전가’ 또는 ‘칭의’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입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성도는 존재만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의로운 삶도 살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실 때, 내 힘으로 억지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서 자연스럽게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④내면적입니다. 다시 롬 14:17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될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내면적입니다.
⑤평강과 희락입니다. 다시 롬 14:17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평강과 희락은 왕 되신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 심령에 임할 때 열매로 맺히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인 감정이자 상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누렸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시편 3:5-6을 보면, 수많은 적들이 둘러싼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다윗은 평안히 누워 잤습니다. 세상 조건이 아닌, 붙드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초월적 평안을 누린 것입니다. 또한 시편 4:7에서 도망자 신세로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물질적 풍요를 뛰어넘는 이 기쁨이 바로 성령 안에서 부어지는 희락입니다. 다윗은 비록 환경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속에서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백작은 소년 시절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상태로는 구원받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년이 되어 깊은 불행과 절망에 빠진 그는 부유한 귀족들 역시 불행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족들이 멸시하던 가난한 농노들에게서 만족과 고상함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참된 신앙이 있었기에 고난 중에도 만족을 누렸던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신앙을 품게 된 톨스토이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때부터 이전의 즐거움을 훨씬 능가하는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톨스토이는 평강과 희락으로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누린 것입니다.
➅확장성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체되거나 멈추어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라나고 퍼져나가는 역동적인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를 심으면 새들이 깃들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며 또 다른 나무들을 만들어 냅니다. 누룩 역시 작은 한 조각이 가루 서 말 전체를 부풀려 성질 자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나 누룩처럼 작은 순종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 심령과 가정, 삶의 현장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나가는 강력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땅 대한민국에 임한 하나님 나라 역시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885년 부활절 아침, 만 25세의 언더우드와 26세의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가난과 질병, 절망이 깔린 땅이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본국 선교부에 보낸 보고서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절에 이곳에 상륙했습니다. 이날 무덤의 빗장을 부수고 나오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쇠사슬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빛과 자유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믿고 소망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작은 순종과 기도에 담긴 생명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6·25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복음의 누룩은 우리 심령 깊이 침투하여 삶의 성질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4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땅에는 5만 개가 넘는 교회가 불을 밝히며 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확장성이며, 핍박도 막을 수 없는 성령의 생명력입니다.
⑦관계성과 공동체성입니다.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해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주변으로 흘러갑니다. 상처와 갈등이 있던 가정, 이기심과 경쟁이 가득하던 일터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평화와 정의가 임하는 하나님 나라에 포함되게 됩니다.
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입니까? 비가 새고 바람이 드는 보잘것없는 오두막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직접 그 작은 오두막집을 방문하여 할머니와 함께 머물며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국가에 중요한 일을 명하였습니다. 그 순간 그 보잘것없는 오두막집은 단순한 시골집이 아닙니다. 왕의 임재와 통치가 나타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내가 얼마나 넓은 아파트에 사느냐, 통장 잔고가 얼마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 삶의 환경이 오두막집처럼 초라할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을 때,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바뀝니다.
중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머리로 아는 것만 아니라 실제로 누려야 합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❶‘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참된 왕으로 모시기’입니다. 주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내려놓고, 삶의 모든 결정권을 왕 되신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❷‘성령 충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이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내 의지나 열심이 아닌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➌‘말씀에 순종하기’입니다. 십자가 은혜로 얻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바탕으로, 삶의 자리에서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➍‘염려를 기도로 바꾸기’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염려와 불평 대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➎‘현장에서 사랑과 섬김 실천하기’입니다. 내 안에 임한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나 혼자만 누리면 안 됩니다. 먼저 용서하고 섬김으로써 가정과 일터를 하나님 나라의 영역으로 자라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2. 낙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편 강도가 예수님에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하셨습니다. 낙원은 성도가 죽음 직후 주님 품에 안겨 누리는 안식의 장소입니다. 낙원은 장차 들어갈 영원천국을 기다리는 중간 상태입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부터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 때 있을 육신의 부활 전까지 영혼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보면,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던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고통받았고, 고통받던 나사로는 낙원에서 위로받았습니다. 부자는 극심한 괴로움 속에 물 한 방울을 구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낙원과 음부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 서로 오갈 수 없습니다. 이 비유는 죽음 이후 음부와 낙원이라는 명확한 현실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죽음 후의 운명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잠들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확한 의식과 인격, 기억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제합니다. 낙원에는 사탄의 활동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더 이상 죄의 유혹이나 유혹으로 인한 갈등, 사탄의 공격이 없습니다(계 7:9-10). 낙원은 이 땅에서 겪던 수고와 눈물, 고통, 질병, 피로가 완전히 끝나고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계 14:13).
3. 천년왕국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재림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천년 동안 이 땅 위에 실제적인 메시아 왕국이 건설됩니다. 그 왕국을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천년왕국의 전개 과정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이 부활합니다. 이때 부활은 유령이나 환상이 아닌, 실제적이고 완벽하게 변형된 영광스러운 몸을 입는 부활입니다(눅 24:39). 부활의 몸은 죄와 육신의 소욕이 아닌 성령의 완전한 지배를 받는 거룩한 몸입니다(고전 15:44). 이 땅의 육체는 늙고 병들어 죽지만, 부활체는 결코 쇠하거나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집니다(고전 15:52-53). 주님 재림 때 죽은 성도는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빌 3:21).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재림하신 주님께서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멸하시고, 사탄을 무저갱에 천 년 동안 가두어 결박하십니다. 이런 비유를 들겠습니다. 사나운 사자가 마을을 덮쳐 양 떼를 물어가고 농민들을 위협할 때 마을은 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이 나타나 그 사자를 사슬로 단단히 결박하여 깊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자 마을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사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공격받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사탄이 무저갱에 갇히는 천년왕국 동안은 유혹이나 영적 방해가 완전히 차단된 거룩한 통치의 기간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공의와 평화를 누리며 다스리게 됩니다. 이 기간에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피조세계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피조세계의 탄식이 끝나고, 이사야의 예언처럼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는 놀라운 회복이 실현됩니다.
천년왕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거하게 됩니다.
첫째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러운 몸을 입은 부활한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죄와 질병, 죽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세상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거룩한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이 왕 노릇은 세상의 독재자들처럼 힘으로 압제하고 억압하는 다스림이 아닙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온 세상을 공의와 사랑으로 판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어 탄식하던 피조세계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관리하며 가꾸는 복된 다스림입니다.
둘째는 환난과 재림의 심판 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천년왕국에 들어간 일반 육체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과 달리 지금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구약의 족장 시대처럼 수명이 대폭 연장됩니다. 그래서 “백 세에 죽는 자를 어린아이”(사 65:20)라 부를 만큼 장수할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 속에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고 온 땅에 번성하며, 부활한 성도들의 거룩한 다스림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다.
4. 영원천국
1000년 동안의 천년왕국이 끝난 후 성도가 영원천국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4가지 구속사적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①사탄의 잠시 풀려남과 마지막 반란(계 20:7-9)입니다. 천년왕국이 끝날 때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이 잠시 풀려납니다. 사탄은 천년왕국 동안 겉으로만 복종했던 불신자들인 곡과 마곡을 선동해 성도들의 진과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최후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우주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즉시 멸하시고, 마지막 반란은 허무하게 종식됩니다.
②사탄의 최종 멸망과 불못 투옥(계 20:10)입니다. 미혹하던 마귀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있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이로써 우주 만물 가운데 사탄의 권세와 어둠의 영향력은 영원히 소멸됩니다.
③악인들의 부활과 백보좌 대심판(계 20:11-15)입니다.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고 흰 왕좌가 펼쳐지면 모든 불신자가 부활합니다. 이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그들은 몸을 입고 심판대 앞에 서서 행위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엄정한 최후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 결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모든 악인은 불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이때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집니다. 불못은 지옥이며, 이곳에 들어간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때 이미 첫째 부활을 통해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입고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했던 성도들은, 백보좌 앞에서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집행되는 과정을 주님 곁에서 함께 바라보며 찬양하게 됩니다.
④피조세계의 최종 갱신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계 21:1-5)입니다. 기존의 오염되었던 첫 하늘과 첫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불로 정화되고 갱신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탈바꿈합니다. 첫 하늘과 첫 땅은 피조세계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신약성경 헬라어에는 '새롭다'를 뜻하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네오스(Néos)’입니다. 시간적으로 새로 생긴 것, 전혀 존재하지 않던 종류가 새로 출현한 것을 말합니다. 그 다음 카이노스(Kainos)입니다. 기존에 있던 것이 성질이나 질적으로 새로워진 것, 본질은 유지되면서 정화되고 갱신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1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여기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는 바로 ‘카이노스(Kainos)’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만물을 아예 버리시고 파괴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오염된 세상을 거룩하게 정화하여 완벽한 상태로 갱신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미 천년왕국에서 부활의 몸으로 주님과 왕 노릇 했던 성도들은 죄와 고통, 눈물, 죽음이 완전히 사라진 이 영원천국에 입성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희귀병을 앓아 평생 병원 침대에서 주사와 수술, 극심한 통증 속에서 살아가던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날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가면 다시는 아프지 않고 마음껏 달릴 수 있단다” 아이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겼을 때, 엄마는 슬픔 속에서도 소망으로 고백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의 눈물은 완전히 닦였습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의 고통, 마음의 상처, 노화의 절망, 그리고 사망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다시는 아픔도, 죽음도 없는 완벽한 희락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곳입니다. 천국은 성도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먼 나라가 아닙니다. 오늘 내 심령에서 누리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가, 주님 품에서 누릴 낙원으로, 부활의 몸으로 주와 함께 통치할 천년왕국으로, 마침내 만물이 새로워질 영원한 천국으로 연결됩니다. 여러분! 이 영광스러운 4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왕 되신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은 이미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낙원에 들어가고, 부활 후에는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을 하며, 백보좌 심판 후에는 영원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은 이 땅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먼저 주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구합시다. 그리고 성경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의 심령과 가정, 교회, 그리고 삶의 일터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는 현장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