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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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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문화방 예디 벨 장례식 부조 ㅡ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계림 추천 0 조회 8 26.09.03 03:41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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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9.03 03:56

    첫댓글 시리아의 고대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Palmyra)에서 출토된 로마 제국 시기(약 서기 200년~273년경)의 석회암 조각품으로, 당시 팔미라의 독특한 장례 문화와 미술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 26.09.03 04:00

    오른쪽의 수염을 기른 인물이 아버지인 예디벨(Iedi'bel)이며, 왼쪽의 수염이 없는 인물이 그의 아들인 잡대아테(Zabde'ateh)이다.
    수염은 나이, 성숙함, 지위, 그리고 사회적 위엄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 26.09.03 04:00

    로마식 튜닉과 히마티온(겉옷)을 입고 있으며, 팔미라 고유의 반부조(High relief) 조각법으로 인물의 이목구비와 옷주름을 선명하게 표현했다.

  • 26.09.03 04:01

    팔미라의 지하 무덤(입체식 봉안당/하늘로 높은 탑 형태의 탑묘)에 유골함이나 시신이 안치된 칸을 막는 묘비(밀폐용 덮개돌) 역할을 하던 조각이다.

  • 26.09.03 04:04

    이 부조 역시 예디벨(Iedi'bel)과 그의 아들 잡대아테(Zabde'ateh) 두 부자(父子)가 함께 새겨진 장례 부조이다.
    팔미라(Palmyra)의 장례식 부조 중에는 이처럼 가족 관계(아버지와 아들, 부부, 또는 형제)를 한 석판에 함께 조각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 26.09.03 04:05

    고대 팔미라 사회에서는 가문의 혈통과 계보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히 지하 무덤(하늘로 높은 탑묘나 봉안당)에서 함께하며 가문의 유대를 이어간다는 종교적·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 26.09.03 04:05

    두 사람 사이에 새겨진 팔미라 아람어 명문에도 "예디벨과 그의 아들 잡대아테"라고 두 사람의 관계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 이 부조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확증해 준다.

  • 26.09.03 04:07

    당시 로마-팔미라 전통에서 수염은 한 가문의 가장이자 성인 남성의 지위를 나타냈다.
    ​수염이 없는 매끄러운 얼굴은 청년 또는 아직 가정의 주권(가장)을 맡지 않은 젊은 아들을 상징한다.

  • 26.09.03 04:08

    ​오른쪽의 아버지는 로마 스타일의 망토(클라미스)를 가슴의 동그란 핀(피불라, 브로치)으로 고정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팔미라 남성 묘비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서를 말아 쥔 듯한 소품이나 지휘봉 형태를 쥐고 있다.

  • 26.09.03 04:1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문의 혈통과 계보를 보존하는 것은 인류 역사 전반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문화적 가치 중 하나였다.
    지리적·종교적 배경은 서로 달랐지만, 혈통을 기록하고 기리는 방식에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목적과 기능이 존재했다.

  • 26.09.03 04:12

    동양의 문벌 귀족이나 서양의 작위·귀족 가문 모두 혈통 증명을 통해 정치적 권력, 토지, 신분상 특권을 법적으로 유지했다.
    ​가문의 재산이 타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직계 후손에게 온전히 승계되도록 하기 위해 엄격한 혈통 기록이 필수적이었다.

  • 26.09.03 04:13

    동양의 제사 문화(족보)뿐만 아니라, 팔미라나 고대 로마의 장례 미술(가족 부조, 조상 마스크) 역시 후손이 조상을 기억하고 기림으로써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고 믿었다.
    ​혈연 집단 내부의 단결력을 강화하고, 외부 사회에 "우리는 오래되고 명망 있는 가문"이라는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 26.09.03 04:14

    한국·중국 등 동양에서는 문중 중심의 족보(族譜) 제작, 사당 설치, 조상 제사 문화를 통해 대를 잇는(繼後) 행위를 가문의 가장 큰 의무로 여겼다.
    ​중동·팔미라에서는 석조 장례 부조에 조상과 자손의 이름을 아람어로 명확히 함께 새겨 지하 무덤에 안치함으로써 영원한 혈연의 유대를 기록했다.

  • 26.09.03 04:16

    고대 로마~중세 유럽에서는 로마의 조상 초상 마스크(Imagines) 보관, 중세 유럽의 가문 문장(Coat of Arms) 및 계보도(Genealogy) 제작을 통해 가문의 정통성을 입증했다.

  • 26.09.03 04:16

    한 사람의 삶이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가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속된다고 믿었던 점은 인류 공통의 정신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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