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조 역시 예디벨(Iedi'bel)과 그의 아들 잡대아테(Zabde'ateh) 두 부자(父子)가 함께 새겨진 장례 부조이다. 팔미라(Palmyra)의 장례식 부조 중에는 이처럼 가족 관계(아버지와 아들, 부부, 또는 형제)를 한 석판에 함께 조각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동양의 제사 문화(족보)뿐만 아니라, 팔미라나 고대 로마의 장례 미술(가족 부조, 조상 마스크) 역시 후손이 조상을 기억하고 기림으로써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고 믿었다. 혈연 집단 내부의 단결력을 강화하고, 외부 사회에 "우리는 오래되고 명망 있는 가문"이라는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한국·중국 등 동양에서는 문중 중심의 족보(族譜) 제작, 사당 설치, 조상 제사 문화를 통해 대를 잇는(繼後) 행위를 가문의 가장 큰 의무로 여겼다. 중동·팔미라에서는 석조 장례 부조에 조상과 자손의 이름을 아람어로 명확히 함께 새겨 지하 무덤에 안치함으로써 영원한 혈연의 유대를 기록했다.
첫댓글 시리아의 고대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Palmyra)에서 출토된 로마 제국 시기(약 서기 200년~273년경)의 석회암 조각품으로, 당시 팔미라의 독특한 장례 문화와 미술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오른쪽의 수염을 기른 인물이 아버지인 예디벨(Iedi'bel)이며, 왼쪽의 수염이 없는 인물이 그의 아들인 잡대아테(Zabde'ateh)이다.
수염은 나이, 성숙함, 지위, 그리고 사회적 위엄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로마식 튜닉과 히마티온(겉옷)을 입고 있으며, 팔미라 고유의 반부조(High relief) 조각법으로 인물의 이목구비와 옷주름을 선명하게 표현했다.
팔미라의 지하 무덤(입체식 봉안당/하늘로 높은 탑 형태의 탑묘)에 유골함이나 시신이 안치된 칸을 막는 묘비(밀폐용 덮개돌) 역할을 하던 조각이다.
이 부조 역시 예디벨(Iedi'bel)과 그의 아들 잡대아테(Zabde'ateh) 두 부자(父子)가 함께 새겨진 장례 부조이다.
팔미라(Palmyra)의 장례식 부조 중에는 이처럼 가족 관계(아버지와 아들, 부부, 또는 형제)를 한 석판에 함께 조각한 작품들이 다수 존재한다.
고대 팔미라 사회에서는 가문의 혈통과 계보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영원히 지하 무덤(하늘로 높은 탑묘나 봉안당)에서 함께하며 가문의 유대를 이어간다는 종교적·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새겨진 팔미라 아람어 명문에도 "예디벨과 그의 아들 잡대아테"라고 두 사람의 관계가 명확히 명시되어 있어, 이 부조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확증해 준다.
당시 로마-팔미라 전통에서 수염은 한 가문의 가장이자 성인 남성의 지위를 나타냈다.
수염이 없는 매끄러운 얼굴은 청년 또는 아직 가정의 주권(가장)을 맡지 않은 젊은 아들을 상징한다.
오른쪽의 아버지는 로마 스타일의 망토(클라미스)를 가슴의 동그란 핀(피불라, 브로치)으로 고정하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팔미라 남성 묘비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서를 말아 쥔 듯한 소품이나 지휘봉 형태를 쥐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문의 혈통과 계보를 보존하는 것은 인류 역사 전반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문화적 가치 중 하나였다.
지리적·종교적 배경은 서로 달랐지만, 혈통을 기록하고 기리는 방식에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목적과 기능이 존재했다.
동양의 문벌 귀족이나 서양의 작위·귀족 가문 모두 혈통 증명을 통해 정치적 권력, 토지, 신분상 특권을 법적으로 유지했다.
가문의 재산이 타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직계 후손에게 온전히 승계되도록 하기 위해 엄격한 혈통 기록이 필수적이었다.
동양의 제사 문화(족보)뿐만 아니라, 팔미라나 고대 로마의 장례 미술(가족 부조, 조상 마스크) 역시 후손이 조상을 기억하고 기림으로써 영혼의 안식을 얻는다고 믿었다.
혈연 집단 내부의 단결력을 강화하고, 외부 사회에 "우리는 오래되고 명망 있는 가문"이라는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한국·중국 등 동양에서는 문중 중심의 족보(族譜) 제작, 사당 설치, 조상 제사 문화를 통해 대를 잇는(繼後) 행위를 가문의 가장 큰 의무로 여겼다.
중동·팔미라에서는 석조 장례 부조에 조상과 자손의 이름을 아람어로 명확히 함께 새겨 지하 무덤에 안치함으로써 영원한 혈연의 유대를 기록했다.
고대 로마~중세 유럽에서는 로마의 조상 초상 마스크(Imagines) 보관, 중세 유럽의 가문 문장(Coat of Arms) 및 계보도(Genealogy) 제작을 통해 가문의 정통성을 입증했다.
한 사람의 삶이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가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지속된다고 믿었던 점은 인류 공통의 정신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