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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전부터 기도 가운데 이 말씀을 준비했지만, 지난 한 주간을 살아오면서 이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은 총 3주에 걸쳐 함께 나누는 시리즈입니다. 지난 첫 번째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라는 큰 주제 아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게 된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정체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영적인 신분과 특권들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 다음 주에 마지막으로 이 정체성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가야 할지 마무리하겠습니다.
먼저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내가 나인 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잘 풀린다고 하더라도 결코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나에게는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정체성을 잊고 부모님을 무시하고 교제를 끊은 채,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길만 간다면 설령 그 길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 내가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목사라면 목사로서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잊고 세상이 인정하는 길만 쫓아간다면, 언젠가 사람들이 "저 사람이 목사였어?"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체성을 잃은 삶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명확히 알고, 그 정체성에 합당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지난 시간의 말씀 — 기본이 되는 세 정체성
지난 시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정체성을 확인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다시 한번 기억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이 아닙니다. 자녀에게 주어지는 권세와 특권을 함께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예수님은 "너는 베드로라"고 새 이름을 주시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 열쇠를 주시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권세입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 끌려다니는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십시오.
둘째,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죄와 습성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피조물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다시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만날 수 있는 관계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언제 어디서든 그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 가지 정체성 위에, 오늘 우리는 베드로전서 2:9, 고린도후서 5:20, 마5:13-16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곱 가지 신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9, 이미 주어진 새로운 신분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을 읽을 때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이다"라고 선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나는 아직 부족하니까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룩해지기 위한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너는 이미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신분이 삶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그에 맞춰 살게 되지만, 모르면 헤매게 됩니다. 자, 그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택하신 족속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본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말해 줍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고, 이스마엘의 족속처럼 약속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12절이 우리의 본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주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주어진 신분입니다.
신명기 7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뛰어난 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의 사랑과 약속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다” —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낮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의 가치를 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나의 가치를 확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대로 살아갑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빛 가운데로 이끄시고, 그분의 덕을 선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다.”
둘째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왕 같은 제사장들"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사장"이 아니라 "왕의 품위와 권위를 가진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리고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바꾸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4-16절입니다.
“(히 4:1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제 우리는 어떤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6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제사장으로서의 특권 —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삶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집에서, 길을 가면서도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격이 부족하다고 주저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이것이 신분이 주는 확신입니다.
제사장으로서의 특권 — 중보하는 삶
제사장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백성을 대표하고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중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가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손이 들려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려오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었고, 해가 질 때까지 들고 있었더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가 백성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자녀를 위해, 직장에 있는 형제자매를 위해,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중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나의 기도에 힘이 있다.”
셋째로 우리는 거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우리가 "거룩한 나라"라고 선언합니다. "거룩하다" 라는 말은 흔히 "착하다" "도덕적이다" 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본래의 의미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부터 떨어져,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십시오. 솔직하게 말입니다.
“나는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기뻐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즐거움과 걱정에 마음이 끌려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롯의 때와 노아의 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눅 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그 당시 사람들은 특별히 악한 일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 먹고사는 일, 결혼하고 집 짓는 일들에만 매달려 하나님께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속적인 삶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하나님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복잡한 잣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질문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나는 이 한 주간을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았는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보고 계신다"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았는가?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행동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도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며,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 — 이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의식하며 섬기며 살아간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소유"라는 말은 단순히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값을 지불하고 얻은 것, 끝까지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우리는 값으로 사신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값을 치르고 얻으신 자녀를 아버지께서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장 35절과 38-3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살아가다 보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이런 불안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29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당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당신을 붙들고 계십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신(대사)라는 말은 황제를 대신하는 공식 사절을 의미합니다. 대사는 자기 마음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의 임금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을 —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일 — 이제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말을 잘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복음을 전할 의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하겠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
여섯째로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되라"라고 권면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미 소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소금의 특징은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썩어가는 것을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거짓과 불의로 물들어 갈 때, 진실과 정의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소금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소금의 주위에는 부패함이 견디지 못합니다. 소금 스스로가 주변을 부패하지 못하도록 막아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주위에 부패한 것들이 들어오도록 막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찰스 피니의 부흥 때에 술집들이 문을 닫고 유흥가들이 문을 닫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찰스 피니의 자서전에는 “부흥이 도시를 덮치자 술집과 오락장, 도박장이 비어갔다. 사람들은 유흥을 즐기던 장소 대신 기도회와 예배당으로 모겨들었고, 불법적인 사업을 하던 이들이 스스로 업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복종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소금의 특징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소금없는 음식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맛이 없을 것입니다. 음식에 맛이 없다는 것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삶이 메마르고 힘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처럼 음식에 맛을 내듯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어 삶에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소금은 그 맛을 내기 위해서 스스로 녹아들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희생과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물에 녹아들어야 맛을 냅니다. 우리도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만,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함께 살며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일곱 번째로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16절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스스로 숨길 수 없습니다. 저절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말하지 않아도 그 빛이 비춰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다" "저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빛을 비추는 모습입니다.
또한 빛은 드러내야 합니다. “나 혼자 잘 믿으면 되지”라고 숨어 있으면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착한 행실, 진실한 삶, 희생과 섬김으로 빛을 비춰야 합니다. 빛은 옳고 그름을 드러내줍니다. 그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은 스스로가 빛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뜻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빛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모든 정체성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 분류 | 나의 정체성 | 삶의 방향 |
| 기본 신분 | 하나님의 자녀 | 권세를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않음 |
| 새로운 피조물 | 과거를 뒤로하고 주님을 위해 삶 | |
|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 |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만남 | |
| 영적 신분 | 택하신 족속 |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부심을 가짐 |
| 왕 같은 제사장 | 직접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중보함 | |
| 거룩한 나라 |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삶 | |
| 하나님의 소유 |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안전함을 가짐 | |
| 사명 | 그리스도의 사신 | 화목의 복음을 전함 |
| 세상의 소금 | 부패에 맞서 진실하게 살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함 | |
| 세상의 빛 |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 |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주어진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언제쯤 이런 사람이 될까?" 라고 기다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미 그런 사람입니다. 이제 그 정체성대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정체성을 잊고 살면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제자리입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와 성공으로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이 본래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리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우리들이 마땅히 가져야 될 정체성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를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한 주간 동안 아니 일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믿음의 바른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 되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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